그 림 자
유재용
시외버스 터미널에 이르러 매표구 앞에 설 때까지 장 순구는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왜였다. 알 만한 지명과 그것들보다 훨씬 많은 생소한 지명들이 매표구 위에 각기 운임표를 매단 채 겨루듯 늘어서 있었다.
정해진 금액을 구멍 속에 집어넣어라. 그러면 일정한 행로를 거쳐 예정된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이 원하는 어느 고랑 어느 산천 속에 몸과 마음을 담그게 해 주겠노라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넘어가듯 반월형의 매표구 속에 돈을 집어넣고는 차표를 받아 쥐곤했는데, 마치 환상여행을 즐길 수 있는 전자오락기의 동전투입구에 집어넣을 동전을 구입해 손에 넣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그런 연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전자오락실에 들어가 본 것은 퍽 오래전 일이었다. 조 근식을 따라서였다. 조 근식은 밤 어둠 속에서 정신이 술기운에 휘말리게 되면 즐겨 전자오락실을 찾아가곤 했다.
"네 나이 낼 모래면 사십이야 장난감 가지구 놀게 생겼니 ?"
순구는 그런 조 근식에게 야유를 하곤 했었다.
"술 먹구 개 되는 것보다 아이 되는 게 낫잖아? 너두 장난감 가지구 놀아봐."
조 근식은 대꾸하며 동전을 전자오락기의 동전투입구에 집어넣었다. 동전을 삼킨 기계는 혈액 순환이 시작돼 생명현상을 일으킨 듯 현란한 움직임으로 작동을 시작했다. 조 근식은 살아 움직이는 기계를 조작하며 기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기계 속 전장의 구릉 너머에서 적 탱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 근식은 잡고 있던 포신을 재빨리 회전시켜 탱크를 겨냥하며 발사한다. 명중된 탱크가 파열하여 굉음을 울리며 뿜어내는 섬광이 조 근식의 얼굴에 번들번들 끼얹어진다. 적 탱크는 예측할 수 없는 지점으로부터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연이어 침입해 온다. 조 근식이 움켜 쥔 포신이 먹이를 찾아 미친 듯 호(弧)를 그린다. 포탄은 명중되기도 했고 빗나가기도 했다. 조 근식의 생각 속에 상상의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이윽고 환상의 세계가 아득하게 펼쳐진 듯 눈이 비현실적인 빛을 두르고 몽환의 아지랑이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거기가 끝나면 조 근식은 다른 기계로 옮겨가곤 했다.
순구는 매표구 속에 돈을 집어넣으며 지명 하나를 말했다. 와수리. 자신이 발음한 어느 마을 이름이 생경한 진동으로 귓바퀴를 울렸다. 그가 태어난 이래 처음 입에 올려 보는 마을 이름이었다.
그는 차표를 끊고 있는 매표원 아가씨의 손을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며 망설여지는 자신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지명을 고쳐 말하자고 생각하며 눈을 들어 늘어선 지명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다른 지명을 골라 내기 전자 매표구 속에서 표가 끊겨져 나왔다. 거스름돈에 휩쓸려 나온 보잘 것 없는 종이 조각 같은 차표를 집어들며 좋다, 가보는 거다 하고 체념하듯 마음을 정했다.
버려진 휴지조각처럼 값어치 없어 보이는 차표 속으로 초라한 시골마을 풍경이 비쳐 보였다. 전방의 첩첩한 산 갈피 속에 오스스 소름 돋은 모습으로 몸을 붙이고 앉은 작은 마을이었다. 거기 길손이 묵어 갈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기는 할 것인가.
순구는 시계를 보았다. 네 시.
"와수리 가는 차 몇 시에 떠나지요?”
"네 시 반이요.”
"와수리까지 몇 시간 걸리지요?"
"두 시간 반이요."
와수리에는 일곱 시에나 가 닿게 될 것이었다. 날이 저무는 시간이었다.
"와수리에서 서울 오는 막차 몇 시에 있지요?"
매표원 아가씨는 귀찮게 구는 사람의 얼굴을 화인하고 싶다는 듯 치떠 보고는 눈길을 가라앉혔다.
"일곱 시 반이요.”
순구는 대합실 의자에 가서 앉았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대합실이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지만 웅성거리는 소음과 복작대는 움직임이 대합실 공간 속에 가득 들어 차 있는 느낌이었다. 분위기나 여운을 넘어 선 어떤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합실에 잠깐씩 머물렀다가 어디론지 떠나간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몸에 앞서 길을 떠난 마음의 뒤쳐진 조각들이 모여, 떠도는 혼처럼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마음 한 조각도 호응하며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도 그의 몸에 앞서 길을 떠나고 있었다.
"어디 뚝 떨어진 고장에 가서 며칠 시원한 바람이나 쏘이고 오세요."
아내가 말했다. 순구의 역정과 호통을 뒤집어쓰고 순애가 경황없이 떠나버린 뒤였다.
밤 열시. 가게에서 돌아온 아내가 마당 수도가에서 손발을 씻고는 마악 방으로 들어 왔을 때 차임벨이 뻐꾹왈츠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건넌방 집 식구가 돌아왔거나 그 집 손님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집 한 채를 두 가구가 나눠 세 들어 살고 있는 그 집에는 초인종이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건넌방 사람이 나가 대문을 열어주는 소리가 났는데 조금 뒤 방문이 열려서 보니 순애였다. 왼종일 바깥에서 지내다가 늦어서야 귀가하는 집안식구처럼 스스럼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하루생활이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는 듯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아무렇게나 아랫목에 퍼져 있는 것이 심술을 부려 스스로를 잡아 흩뜨린 몰골이었다.
순구는 가슴속에 역정이 일어 엉기는 것을 느꼈다.
"이 밤중에 웬 일이니?"
그는 자신을 억제하며 물었다,
"내가 여기밖에 올 데가 더 있우?"
순애는 짐짓 화전 척하며 되물었다. 짙은 응석이 섞여 있었다. 서글픔과 측은함을 안겨주곤 하던 그 걸맞지 않는 어린티가 별안간 엉성하고 천격스러운 얼굴화장처럼 구역질나는 역겨움으로 화락 다가섰다.
"어린이가 아니에요. 누이 하는 짓 어디가 그렇게 순진해 보이지요? 당신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 보여 주구 싶어 꾸민 것뿐이에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내는 말했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거기는 색안경을 끼구 순애를 보구 있는 거야. 순애는 나이만 먹었지 마음은 어린 채로 있어. 마음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지녀보지 못한 채 몸이 픈 애라구. 가엾은 애야. 가없게 여기라구.”
그는 굳건한 방패처럼 버티고 서서 아내의 화살을 막아내곤 했다.
순구는 그 밤 돌연 아내의 눈으로 순애를 바라보게 된 것일까.
"여기서 잘 생각은 말아라."
그는 선언하듯 말했다. 순애가 얼굴을 후딱 쳐들며 의아스럽다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못 들었거나 잘못 말해진 말이라는 생각을 그 눈이 품고 있었다.
순구는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흩뜨리지 않고 완강한 성벽처럼 순애 눈길 앞에 버터 보였다.
"그 사람이 날 때렸어요, 오빠."
순애가 호소하듯 말했다.
"어쨌든 잠은 네 남편이 사는 집 지붕 밑에서 자야 해."
"그 사람이 뉘우치구 데리러 오기 전에는 그 사람한테루 돌아가지 못해요."
한밤중 번개 불 속에 들짐승의 모습이 후딱 들어나 보이듯 순애의 숨은 뜻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주고 또 옮겨 주어도 끝없이 불편한 처음자리를 되찾아와 앉는 외곬의 고집 같은 것이었고, 정성을 다해 길들이려 애써도 끝내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야수의 교활성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툭하면 집을 뛰쳐나오는 네 버릇부터 고쳐 놔야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를 재워 줄 수 없으니 느이 집으루 돌아가."
"오빠!"
순애의 눈에 당혹의 빛이 짙게 서려 있었다.
"밤 늦었다. 빨리 일어나라,"
"오빠가 오늘은 아주 딴 사람 같애. 내가 여기서 잠 좀 자면 안 뒬 사람이우?"
의심과 저항을 담은 순애의 눈길이 그를 스쳐 지나 아내에게로 가 머물었다
"언니 안 그렀수?"
"난 남매분들 일에 끼어 들구 싶지 않아요."
아내는 순애의 매달리는 눈길을 옆으로 젖혀놓으며 피하듯 방을 나갔다.
"두 사람이 미리 의논이라두 한 것 같애."
순애가 방어태세를 갖추듯 몸을 추스려 고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그는 순애의 말에 자극 받으며 소리질렀다.
"날 쫓아내는 거유? 이 밤중에 날 쫓아내자구 한 사람이 오빠유? 올케유? 쫓아내려거든 오라가 날 질질 끌어내가요. 오라가 끌어내기 전엔 난 못 가."
"나가! 당장 나가! 없어져 버려 !"
그는 발작하듯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내 방바닥에 메어꽂았다. 거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순애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헝크러지며 두려움과 낭패감이 그 속에 깊은 구렁을 이루는가 하는데 왈칵 눈물로 고여 넘치며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대문이 여닫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질 듯 난폭한 소리가 아니라 사뿐히 몸을 빼내가는 듯 조용한 소리였다. 그의 몸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았다. 그의 가슴속에 커다란 공동(空洞)이 입을 벌리고, 그 텅 빈 구멍이 주위의 소리들을 온통 빨아들여 간 돈 그는 별안간 적막 속에 몸을 담그고 서 있었다. 박살난 거울조각들이 그의 깨어진 마음을 비쳐 보이듯 첨예한 날 안에 들쭉날쭉 찢긴 형체들을 어수선하게 담고 있었다.
아내가 그의 쪘어진 마음을 추스리듯 거울조각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이 기회에 근을 송두리째 뽑아 내야 해요. 당신은 누이 때문에, 누이는 당신 때문에 곪아 쌕어가구 있었어요. 당신두 누이두 썩은 살을 도려내구 새 살루 살아나야 해요"
아내가 외과의사의 손에 쥐어진 수술 칼처럼 냉정한 표정과 음성으로 말했다. 아내는 자신의 집도로 이루어진 수술의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후유증을 경계하고 있다는 투였다.
순구는 대꾸 없이 창가로 가서 아내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그는 진작부터 아내의 그런 말에 조금씩 조금씩 침식되듯 무너져 온 터였다. 하지만 그는 창 밖에 충충하게 고여 있는 어둠 속으로 은밀하게 귀 기울여 보았다.
순애가 떠나지 않고 가까이에 머물러 있는 기척이 어둠 속에서 들려 을 것 같았다.
"당신 여행이나 하구 오세요. 남쪽이나 동쪽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다 바람이라두 쏘이며 한 일주일 지내다 오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순구의 등이라도 쓰다듬듯 들렸다.
와수리 행 직행버스는 승객을 기다리느라 10분을 지체한 뒤 떠났다. 좌석이 반나마 비어 있는 버스의 서쪽 창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볕이 한가롭고 쓸쓸한 느낌을 일으켜 주며 비쳐 들어왔다. 그 적요한 풍경은 버스가 허위적허위적 헤치고 있는 도시의 혼잡 속에서 이상한 괴리감을 안겨 주었다.
그는 객석에 높이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던 듯한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그의 몸 속에 피로가 가득 배어들어 있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고 오라는 아내의 말에 저항이 일면서도 못이기는 체 승락해 버린 것은 그의 내부에 위험수위로 차 오르고 있는 피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래서 가는 게 아니야. 내가 가구 싶어 가는 거야."
그는 아내 마음을 긁어 놓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러믄요. 해묵은 먼지, 해묵은 기름때나 말끔히 떨어 버리구 오세요."
아내가 밝은 목소리로 사근사근 대답했다.
버스는 도시를 헤치고 나가면서 무수하게 걸음을 멈췄다. 도시의 복잡성이 자력을 품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버스를 잡아 세우는 것 같았다. 도시의 자력이 버스 바닥과 벽을 뚫고 들어와 그에게도 끈적끈적 작용하고 있었다.
나는 도시를 탈출하려는 것도 아니고 도시에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막연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쓰라림과 아픔에 휘감기는 자신을 느끼며 반발하듯 버스가 어서 속히 도시 밖으로 그를 실어내 가 주기를 바랐다.
이윽고 버스가 도시의 북쪽 경계를 넘어 얽히고 설킨 그물을 벗어 내던지듯 시야 트인 전원으로 빠져나갔을 때 그는 옹색하게 똬리 틀었던 마음을 시원스럽게 펼쳐진 창 밖 풍경 위로 풀어냈다. 그것은 체념 같은 뒷맛을 자아내 주었다.
버려지지 않는 못된 버릇처럼, 끈질기게 뒤쫓아 다니는 어수선한 꿈처럼 도시의 복작거리는 거리 모습이 한가로운 전원 위로 겹쳐 보였다. 아내가 그 거리 속을 능숙한 몸놀림으로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가게부터 들르세요"
아침에 가게로 나가며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여행을 떠나는 그와 터미널까지 동행하고 싶어했다. 그가 탄 고속버스가 남해안이나 동해안을 향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했다.
그는 아내의 친절을 뿌리쳤다. 왜 그런지 여행을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을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는 아내를 먼저 내보내고 누워서 딩굴다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는 때늦게 굴 속을 빠져나가는 게으른 짐승처릴 어슬렁거리며 집을 나섰다,
오십 분 뒤 그는 미아동에 가 있었다, 순애가 사는 동네였다. 그는 순애네 집으로 통하는 넓은 골목길을 주저하며 걸어 들어갔다. 순애와 마주치지 않고 순애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큰 골목이 순애네 집 쪽으로 가지를 친 샛골목 어귀에 생맥주 집이 있었다. 그는 생맥주 잔을 앞에 놓고 창가에 앉아 샛골목 어귀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지켜 앉았다가 생맥주 집을 나왔다. 술기운을 빌어 순애네 집으로 가볼까 하다가 억제하고 골목을 걸어 나와 시내버스를 탔다. 한참 뒤 닿은 곳은 아내가 기대했던 영동 고속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버스는 의정부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북쪽으로 달려갔다. 아내의 기대에 어긋나는 방향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내와 공모해 순애를 떼어내 버리려 하고 있다는 생각 속에 빠져 들어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풀 그릇 속에서 풀로 범벅이 되어 헝클어진 실타래를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그를 무력하게도 과민하게도 만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가게부터 들르세요. "
아내의 그 말을 그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했고,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너무도 명화하고 첨예하게 날마저 세우고 그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주일의 여행에서 돌아와 그가 살던 집 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울렸을 때 대문을 열어 주며 그를 맞는 생판 낯선 얼굴이 얼핏 떠올라 보였다.
아내는 진작부터 그런 주장을 해왔다. 순애에게 알리지 않고 순애 모르게 이사를 함으로써 순애를 정리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순애 자신에게 알려주자는 것이었다,
순애가 찾아와 초인종을 울린다. 낯선 얼굴이 문을 열어 주며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안방에 사는 장 순구씨가 내 오빠예요. "
"그 집 식구는 이사갔어요."
놀라 크게 열린 순애 눈에 버림받은 자의 아픔과 당혹과 노여움이 서려 엉기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그는 그런 모습을 지우려고 머리를 흔들곤 했다. 아내는 그러한 그를 딱하게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아내는 그의 눈앞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무너앉듯 한숨을 쉬어 보기도 했다,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이고 더 이상 시도해 볼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하얗게 사윈 속 모습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당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나봐요. 피로와 서글픔을 불 사윈 재처럼 담은 아내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집착해서 헤어나지 못하는 개흙 진창 같은 과거 속에 당신을 팽개쳐 두고 우리끼리 마음 개운하게 마른땅을 딛고 미래로 걸어갈 수밖에 없나봐요.
하지만 아내는 인연의 줄이 질기디 질겨 끊어내기 힘들다는 듯 다시 기력을 가다듬고는 그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개흙진창에서 이 악물구 뛰어 나와 마른땅에 서 보세요. 개흙진창 속에 버티구 서 있는 고집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게 뒬 거예요.) (자, 당신이 잘못 보구 잘못 생각하구 있어. 개흙진창두 아니구 고집두 아니야.)
"당신 고향친구 있지요? 실상 난 당신 고향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두 싫어요. 조 근식이라는 사람 말구 박 성출씨한테 당신이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요. 조 근식이라는 사람은 멀리 하라구 권하구 싶어요. 고향친구를 만나지 않구 못 견디겠으면 박 성출씨와 만나세요."
아내가 말했다.
"박 성출이 놈. 그 놈은 고향 사람두 친구두 아니야. 인간이 돼먹지 않은 놈이야."
"당신 박 성출씨를 다른 눈으로 보구 박 성출씨 값어치를 새로 매겨야 해요. 그렇게 되면 조 근식이라는 사람두 달리 보이게 될 거예요. 고향사람들의 시시한 얘기나 이리 저리 전하구 댕기면서 술이나 얻어 마시는 일루 세월 보내는 폐인 같은 사람, 그런 조 근식씨 어디에 값 매길 구석이 있어요? 당신 나이 낼 모래면 오십이지만 늦지 않았어요. 아니 오십이 낼 모래니까 정신을 차려 세상을, 세상 어디에 당신이 서 있는가를 바르게 봐야 해요."
순구가 순애 코앞에서 거울을 박살내던 일, 그것은 그와 아내의 팽팽하던 오랜 맞섬에서 이윽고 그가 패하고 패배를 받나들인 사실을 아내에게 증명해 보인 의식행사였던 셈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리라도 피하듯 여행길에 올랐다.
아내는 방 청소를 할 때는 식구들을 방밖으로 몰아내곤 했다. 손수 해야 성에 차 했다. 어른도 아이도 청소를 할 때면 몰아내기 전에 미리 몸을 피해 주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리고, 터리개로 먼지를 털어 내는 아내 모습이 떠올라 보였다. 어느덧 아내는 순구의 몸 속으로 들어와 그의 내부 구석구석에 터리개질을 해대고 있었다, 아내가 터리개질을 하는 곳은 새로 얻은 방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게를 점원아이한테 맡기고 방을 얻으러 나선다. 가게를 다른 자리로 옮긴 것은 지난 1월이었다. 그가 가게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 그녀가 나서서 경영을 맡게 되자 곧 그녀는 가게 내부수리를 했다. 천정과 턱의 색깔도 바랬고. 상품 진열의 모양도 바뀌었다. 터리개질이었다. 그가 가게를 지키지 않게 되자 조 근식도 순애도 가게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조 근식과 순애가 찾아와 수작을 걸기를 기다렸다. 조 근식이 돈을 꿔 달라면 전에 꿔 간 돈을 갚고 나서 담보를 세우라고 요구하리라. 순애가 가져가려는 옷은 사정없이 제값을 받아 내리라. 박성출이 사용해 온 방법이었다. 그녀는 필요하다면 악마의 지혜라도 빌려다 사용할 태세였다. 조 근식은 세 번인가 찾아와 지나다 들렀느니, 근처에 볼일이 있어 나온 김에 들렀느니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돌아간 뒤에 발을 끊었다. 순애는 한 번 찾아와서 그가 집에 들어앉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다시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그녀의 코는 가게 안에서 때묵은 먼지냄새를 맡았다. 터리개질하고. 비질하고, 걸래질해도 먼지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장소를 물색해 가게를 얾겼다, 5년 가까이나 지키고 앉아 어지간히 자리잡힌 장소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모험이지만 그녀는 툭툭 털어버리듯 해치웠다. 그것이 지난 1월이었다.
이제 그녀는 다시 살림집을 옮기려고 방을 구하러 나선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듯 망설이지 않고 남쪽으로 강을 건너간다. 강남 쪽은 지난날의 사연이 엉켜 있지 않은 미래지향적인 땅이다. 강물이 지난날에의 기억을 차단하고 흐른다. 그녀는 미래지향적인 방을 찾아 강남 옥의 주택가를 헤매다닌다.
"평화적 정권교첸가, 쿠테탄가?"
아내를 가게에 내세우고 집에 들어앉은 그에게 어느 고향 친구가 농담삼아 물었다.
"아동복점이니 여자가 가게를 지키구 있는 게 날 것 같아서."
순구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얼굴이 뜨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숨겨 놓은 의중을 엿보이기라도 한 듯 가슴속에 물결이 일고. 얼굴이 얼숭덜숭 고르지 않게 물이 드는 것 같아 잠시 동안이지만 그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당신한테만 가게를 맡길 수는 없어요.”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전에 없이 결의에 차 있었다. 조 근식이 꾸어간 돈이 돌아오지 앉자 아내가 자제력을 잃은 듯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그는 진작부터 의욕이 위축되고. 자신이 지치고 피로하다는 사실을 자각증상처럼 느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거꾸로 그 동안 축복되어 온 힘이 이제야 분출하듯. 솟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애쓰는 것 같았다.
아내는 그보다 다섯 살이 아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현상이 그쯤의 나이 차이로 설명되어 질 수는 없었다. 쉰 살이 되는 그에게는 힘의 생산이 힘의 소모를 따르지 못하는 데 비해 마흔다섯 살이 되는 아내는 힘의 생산이 힘의 소모를 앞질러 넘쳐 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남자란 여자보다 빨리 소모되는 것일까.
어쨌든 그는 아내의 넘쳐나는 힘을 빌려쓰기 시작했다. 그의 영역을 호시탐탐 엿보던 아내가 허술해진 틈을 재빨리 알아차리고는 날쌔게 파고 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봄부터였다. 그 전까지 그는 아내가 가게에 나와 필요 이상 얼쩡거리지 못하게 했다.
순구가 망우동 시장부근에 차려놓은 가게는 고급 아동복점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문화수준이 향상되면서부터 아이들의 옷도 실생활을 위한 필요 조건을 넘어서서 예술적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디자인과 색상, 두 단어로 요약해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간단한 두 단어 속에 무궁한 변수가 복병처럼 숨어 있었다. 상인은 변화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감수성을 지니고 제품업자와 소비자 사이를 민첩하게 헤엄칠 줄 알아야 할 뿔 아니라 신선한 변화를 지닌 상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벽 네 시에 남대문과 청계천의 도매 시장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 하루도 쉬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가차없이 뒤처져 버렸다. 쉽사리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낮잠을 자야 했다. 아내가 가게에 나오는 것이 허용되기는 그가 점심을 먹고 낮잠 자는 시간뿐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가 독감으로 누워 지내느라 부득이 사홀 동안 아내에게 가게를 맡겨야 했던 때가 있었다.
병에서 회복된 뒤 가게 꼴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가게에는 흩어지거나 허술해진 구석이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잘 정돈되고 더 충실해진 것 같아 보였다. 받아다 놓은 물건의 디자인과 색상도 그의 마음에 차는 것들이었다.
오랜 타성의 틀에 갇혀 있던 가게의 분위기에 활력과 의욕이 스며들어 꿈틀거리는 느낌 이었다.
그가 몇 년 걸려 터득한 경지를 아내는 어머니 뱃속에서 타고난 듯 지니고 있었다. 그가 낮잠 자는 시간에 아내는 재빨리 익힌 것일까,
하지만 단순한 눈썰미 이상의 것을 부인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만족감과 함께 시샘 같은 보랏빛 감정의 안개가 가슴속에 피어 서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칭찬 한 마디 없이 아내를 제 자리인 집안으로 돌려보내고 잃었던 영토를 되찾기라도 하는 기분으로 가게를 다시 그의 지배하에 넣었다. 그가 없이도 가게를 운영해 나가는 아내의 솜씨에 빈틈이 없었던 것은 사흘이라는 짧은 동안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마음을 가다듬듯 생각했다. 몇 년은 고만 두고 몇 달만 가게에 매달려 보라고 해라. 지쳐 물러앉아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테니까.
순구가 아내에게서 가게를 되찾은 이튿날이었다
새벽 3시 50분. 그는 도매시장으로 물건을 하러 가려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옷을 입다가 현기증이 일어 주저앉았다. 잠시 뒤 현기증이 갈아 앉아 그는 아내 쪽을 살펴보았다, 아내는 그냥 잠든 채 누어 있었으면 하는 그의 기대를 배반하고 어느 틈에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 살피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현기증은 다시 일지 않았지만, 잠시 그의 머리 속을 휘젓고 간 단 한번의 어지러움이 찬 서리인 듯, 태풍인 듯 사지의 힘을 휩쓸어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서서 그는 안간힘을 써 보았다. 이마와 등에서 진땀이 솟았다.
"무리하지 마세요. 며칠 더 몸조리 하셔야겠어요."
아내가 말했다. 며칠 더라는 말이, 치부를 드러내 보인 듯한 수치감과 건인 자존심을 다독거려 주었다.
"그럴까?"
그는 승복했다기보다는 너그러움을 드러내 보이며 몸을 주저앉혔다.
아내는 스스로 다음 순서를 알고 있다는 듯 옷을 꺼내 입고, 물건 담아 올 대형 가방을 챙겨 들고는 동트기 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늑하고 달착지근한 새벽 잠자리를 헌옷 벗어 던지듯 하고 하품 한 번 하는 일없이 찬바람 휘도는 어둠 속 한데로 몸을 래내 가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그는 틀 잡힌 민첩함과 의지가 배어든 꿋꿋함을 읽은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의 일이고. 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듯한 아내의 태도 속에 그에 대한 불신감이 배어들어 있다고 느낀 것은 자격지심 때문일까.
다섯 시 반이 되니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부시시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입더니 부엌으로 나갔다. 잠꾸러기라는 별명까지 붙어 어미한테 늘 핀잔을 듣던 아이였다. 딸아이는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조반 짓는 일이 자기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듯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해냈다.
여섯 시가 되니까 딸아이가 부엌에서 들어와 다른 아이들을 깨웠고, 여섯 시 반이 되니까 밥상이 차려져 들어왔다. 아이들은 밥상 둘레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밥을 먹었고, 일곱 시가 지나니까 책가방을 챙겨들고 제각기 갈 길을 찾아 떠나갔다.
"아버지두 우리하구 같이 아침 잡수시겠어요?"
"느 엄마 오믄 같이 먹을란다."
그 동안 그와 아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것뿐이었다.
"아버지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돌이 떠나가 조용한 방에 아이들이 남겨놓고 간 인사말이 윙윙거리며 떠돌다가 잦아들었다.
아이들은 헛갈리거나 삐걱거리는 일 업이 잘 돌아가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은 식구들이 성능 좋은 자동 기계처럼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앓아 누웠던 지난 사흘 동안 그러한 집안 모습에 접해 왔지만 그것은 집안을 이끌어 오던 가장의 기능 마비로 갑작스럽게 끊긴 일상의 흐름을 이어 놓으려고 집안 식구들이 임시방편으로 동원돼 허둥대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열 가신 눈으로 다시 살펴 본 집안식구들의 그러한 움직임은 뜻밖에 깨어진 생활의 흐름을 땜질하려고 급작스럽게 주워 모은 것이기에는 너무도 매끄럽고 평온하고 질서정연했다. 사흘 동안의 동원된 실습으로 아이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그만큼 틀잡히기는 힘들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아내는 벌써부터,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어떤 상황에 대비해 아이들과 자기자신을 훈련해 온 것일까.
그가 없이도 어느 구석 하나 흩뜨러짐 없이, 구겨지는 일없이, 떨어져 내리는 일없이 궤도 위를 순탄하게 달려 갈 가족들의 생활모습이 떠올라 보였다.
순구가 새벽 도매시장에 타가 물건 해오는 얼을 아내에게 떼어 맡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마음속에서 남편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줄여가고 있는 아내를 구슬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다, 몸조리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러는 동안 그 일은 어느새 아내의 몫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머지 않아 아내는 그 일을 싫증낼 것이고, 그 일은 저절로 그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런 그의 예측은 어긋났고, 아내가 그의 헛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의 영역을 침범하고 눌러앉아 버린 듯한 느낌, 또는 아내의 팽창하는 힘에 밀려난 꼴이라는 떱떠름한 생각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 꺼림칙한 응어리가 빚어지는 듯했지만, 그것도 그렁그렁 사그러 들었다. 아내의 도움이 가져다 주는 편안함이 차츰 그의 몸 속으로 배어들어 약 기운처럼 자리잡아 갔다.
"새벽에 시장에 가서 물건 해오는 일은 요즘 마누라가 하구 있어."
그는 조근식에게 말했다.
"새벽에 시장 가는 일은 올케가 하구 있다."
순애한테도 말했다. 그들이 묻지 않은 일을 새 소식이나 전하듯 그는 말해준 것이다.
조근식은 (삼신대서소)라고 푸른 페인트 글씨로 씌어진 유리문을 열었다.
책상 위로 상반신을 구부정 굽히고 앉아 글씨를 쓰던 김정수가 고개를 쳐들어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조근식을 바라보다가 외면하듯 책상 위로 눈길을 걷어 내려갔다.
손님이 두 사람 벽에 기대놓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근식은 빈 의자를 골라 엉덩이를 얹고 나서 방안 분위기에 익숙해지려는 듯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문간에 손바닥만한 공간을 남겨놓고는 낡은 책상 하나와 의자 다섯으로 대서소 바닥이 그럭저럭 다 메워져 있었다.
조근식은 휘두르던 시선을 거둬들여 김정수의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유행을 따라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둔 머리가 반백이 되어 있었다. 그 머리에 반쯤 덮인 검붉은 목덜미도 세월에 절어 짐승의 가죽처럼 주름지고 질겨 오였다. 조근식의 머리 속에 담아 왔던 얘깃거리가 한옆으로 밀려나고, 김정수의 어린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키는 껑충하면서도 자기보다 작은 아이한테도 얻어맞고 눈물 찔끔거리던 칠칠치 못한 아이,
조근식은 그 아이가 지금 눈앞에서 책상에 엎드려 글씨를 쓰고 있는 반백머리의 가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서글프게 미소지었다.
손님 두 사람은 동행인 듯 김정수가 써 놓은 서류를 돈과 바꿔 가지고 대서소를 떠났다.
조근식은 김정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지워 버리고 준비해 온 얘깃거리를 머리 속 계 자리에 다시 옮겨다 놓았다.
김정수는 조근식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 한동안이나 책상 위를 정돈하고 서랍을 여닫고 난 뒤 이윽고 의자를 돌려놓았다. 손목을 들어 시계바늘을 들여다보고 나서 천천히 조근식에게로 옮겨다 놓는 눈길이 할 얘기가 없다는 투였다.
"복덕방에 나간다면서? 어때? 잘 되나?"
그래도 김정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야 놀러 나가는 거지 뭐. 요새 복덕발 영 안 돼. 셋방 찾는 사람두 없는걸?"
조근식은 준비해 온 얘기를 꺼내 놓을 기회를 노리며 대답했다.
"그럼 요즘 뭘 하나?"
"그냥 놀지 뭐."
"자네 부인이 하는 사업은 잘 되구?"
"사업이랄 게 있나? 이름 난 화장품회사 외판원들은 수입이 괜찮은가부든데 이름 없는 회사 물건이 돼 놔서 힘든가봐."
조근식은 자신의 얘기를 할 기회를 엿보았다.
"이름 있는 회사 외판원으루 들어가지 그래 ? 이름 있는 회사에서두 외판원을 수시루 모집하나부던데."
김정수는 좀체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전부터 댕기던 데라면 괜찮아두 새루 들어가는 데는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군. 마흔 살까지라야 되는데 우리 마누라는 마흔 두 살이거든."
조근식은 구질구질한 마누라 얘기 집어치우고 자신이 얻어 온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자네 부인이 박성출이를 찾아갔더라는 소식이 들리던데 박성출이한테 무슨 부탁을 하러 갔던 게지?"
김정수의 눈이 반짝 빛을 내며 조근식을 재빨리 살폈다
"언제? "
조근식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자네 부인이 자네한테 말 안 하던가?"
김정수의 눈에 호기심이 서렸다.
"우리 마누라 얼마 전부터 화장품회사 외판원 노룻 집어치우구 보험회사 외판원 노릇 시작했어."
조근식은 김정수의 물음을 회피하며 자신도 모르게 변명조의 말이 되어 나왔다.
"자네 부인이 보험을 얻으러 박성출이한테 갔었던 게로구만. 근데 박성출이가 보험을 들어줄까?"
조근식에게서 대답을 얻어내고 싶어하는 말투였다.
"잘 알아보지두 않구 간 걸 테지. 박성출이까 왼 눈하나 깜짝할 사람인가 말야. 어림두 없지."
"밑져야 본전이니까. 얌전하구 부끄럼 잘 타던 부인네두 외무사원만 되면 유들유들해지구 끈질겨지더군 그래. 자네 부인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박성출이를 찾아간 모양이야. "
몇 번씩이나? 조근식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는
"장순구한테 가서 보험을 얻어 오더니 박성출이두 남편의 고향 친구루 알구 찾아 간 모양이군 "
이렇게 추측해 보았다.
"자네가 앞서서 돌아댕기며 운을 떼 놓구는 부인을 보내는 거 아냐? 난 자네 부인이 온대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
김정수는 미리미리 예방을 해 놓자는 듯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난 마누라 일에는 통 참견을 안해. 그래서 마누라한테 미움을 받지만 말야. "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구."
김정수는 유난히 입을 크게 벌려 가지고 보란 듯 하품을 했다. 이제 그 얘기는 흥미가 없다는 뜻일 터이었다.
조근식은 준비해 온 얘기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 열구 얘기 들었나?"
조 근식은 은근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김 정수가 잊고 있던 생각이라도 별안간 떠올라 온 듯 손목을 들어을려 시계를 보았다.
"안 구청에 가 봐야겠는 걸. 호적 관계 일을 부탁 받은 게 있어. 모처럼 찾아왔는데 점심두 같이 못하게 돼서 어떡하지? 앞으룬 나올 때 미리 전화를 하라구. 그럼 나중에 시간 만들어 술이라두 한 잔 하자구."
김정수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잠시 후 조 근식은 길 건널목에 혼자 서 있었다. 오전 열한 시 사십 분. 해가 한 공중에 솟아올라 있었다. 점심 때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어떻게 할까. 조 근식은 길 건너편의 빨간빛 신호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서 골목 어귀 구멍가게에서 라면이라도 외상으로 얻어다가 끓여 먹고 다시 나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다른 친구를 찾아가 볼 것인가
조근식이 집을 비우기 일쑤여서 아내는 점심밥을 남겨놓지 않았다. 집에서 넘심을 먹게 되면 새로 밥을 지어먹던지 라면을 외상으로 얻어다가 끓여먹으라고 말하곤 했다. 집주인 여자에게 궁상맞아 보일까 염려해서가 아니라 기어 들어가 손을 꿈지럭거려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귀찮기만 해 점심은 거르는 날이 더 많았다,
한데 오늘은 유난히 시장기가 느껴졌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조 근식은 사람들 틈에 섞여 길을 건넜다.
시장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고비만 참아 넘기면 안정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경첩으로 알고 있었다.
조 근식은 친구를 찾아가자고 마음 먹었다. 길가의 공중전화 박스가 비어 있었지만 그는 지나쳐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놓았다.
"미리 전화를 걸구 오지 그랬어 ?"
그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을 찾아가려고 나서면서 전화를 했었다.
"어, 근식이, 잘 있었나? 그런데 오늘은 무척 바쁜데 어떡하지? 며칠 후에 다시 전화 걸어."
"오늘은 말야. 거래처 사람하구 만나기루 했는데. 다음 번에---"
그들의 말대로 전화를 미리 해 가지고는 그들을 만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금새 깨닫지는 못 했었다. 장 순구라는 예외가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장 순구한테 전화를 하면 주저 않고
"놀러 와."
하고 말했다. 장 순구는 선약이 있을 때도 조 근식을 맞아들여 그 자리에 합석시켜 주곤 했다,
"내 불알친구예요."
장 순구는 조 근식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불알을 내놓고 뛰놀던 시절의 조 근식을 찾아보려는 듯 조 근식의 얼굴을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조 근식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 근식은 고향친구들이 그를 위해 따로 시간을 떼어내 주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들의 시간 속에서 그들에게 거치장스러운 존재가 됨이 없이, 그들의 시간에 편승해 잠시 잠시 그들과 함께 헤엄치고 싶을 불이라고 스스로에겐 다짐하곤 했다, 그들 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그들의 얼굴을 대하고 그들과 시시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고향에서 모여 놀던 사랑방 있었잖아? 여기두 그 비슷하게 우리 고향 사람 모이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어."
언젠가 조 근식이 그런 얘기를 했다가 퉁바리 먹은 적이 있었다.
"자네 사는 동네에서 찾아보게. 경로회라구 있을 테니까."
고향친구 만나 보고 싶으면 전화 따위 하지 않고 곧바로 찾아 문을 열어 젖혀야 했다.
조 근식은 버스를 탈까 하다가 걷기로 했다. 느릿느릿 급할 것 없이 걸음을 옮겨 놓으며 아내가 박 성출이를 찾아갔었다는 얘기를 머리 속애 되살려냈다.
아내가 집안 일이나 밖에서 있었던 일을 조 근식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의무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아내가 박 성출을 찾아간 일을 조 근식이 모른다고 해서 대수로운 일은 못 되었다. 아내가 장 순구를 찾아가 보험을 얻어 온 일도 아내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장 순구를 통해서 알았으니까 말이다.
아내가 박 성출을 찾아간 회수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몇 차례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에 고개가 기웃거려졌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열 번 스무 번을 찾아간대도 이상한 일일 수는 없었다. 외무사원이란 그렇게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이니까 말이다.
아내는 연줄을 찾아내 그 연줄에 얽힌 사람을 만나서 쪼아 대는 일이 일개미나 일벌의 일상처럼 본능적인 행동이다시피 되어 있었다. 어느 때는 아내가 성(性)마저 퇴화한 중성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신기한 것은 박 성출이 조 근식의 아내를 몇 번씩이나 찾아가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 근식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은 못 되었다.
아내는 자기가 박 성출의 고향친구인 조 근식의 아내라고 소개하며 접근했을 것이었다.
장 순구가 그렇게 말했다. 뜻밖에 너무 오래간만에 찾아온 조 근식의 아내를 장 순구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누구십니까?"
"저 조 근식써 아시지요?"
"예, 잘 압니다."
"지가 조 근식씨 처되는 사람이에요."
아내가 그렇게 자기 소개를 해서 기억을 되살렸노라고 했다.
박 성출이도 조 근식의 결혼 초에는 아내를 몇 번 만나보았다. 그 무렵만 해도 박 성출이 고향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곤 했었으니까.
박 성출이 고향친구들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은 박 성출이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였다. 박 성출은 처음에는 변두리시장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전기 밥솥, 보온 밥통, 전기 후라이팬 등 주방용 전기 기구를 몇 점씩 갖추어 놓고 소매를 했는데 상술이 뛰어나선지. 운이 돌아와선지 몇 해 뒤에는 총판을 맡아 도심지 번화가에 큼직한 가게로 옮겨 앉았다. 상품도 종래 취급해 오던 것에다 믹서, 코피 포트, 전기 곤로, 전기 장판, 선풍기, 에어컨 등 다양해졌다.
고향사람들의 입에서 박 성출을 욕하는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고향사람들이 박 성출의 물건을 팔아 줄 겸 다른 데보다 조금이라도 싸게 물건을 구할까 해서 일부러 찾아가서 사다 놓고 나중에 알아보면 소매값을 그대로 다 받았더라고 했다. 곱게 사용한 중고품을 손질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신품이라고 속여 팔아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게 고향사람한테 할 수 있는 짓거리야?"
목에 힘줄을 돋구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사람은 박 성출을 찾아가 물건을 외상으로 달랬다가 똑 떨어지게 거절당하고 돌아왔다며 분해했다.
"아니 월부판매하구 외상하구 뭐가 다르다는 거야? 월부 물건 들여놀 데가 없어서 즈이 가게 찾아간 줄 아나? 아니꼽구 더러워서."
박 성출은 다른 사람들한테는 월부판매를 하면서도 고향사람들과는 월부거래를 한사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건을 팔아주어도 코피 한잔 시켜오는 적이 업더라고 했다. 코피는 커녕 물건 팔아주어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업이 물건을 거저 주기라도 한 듯 뚝뚝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같은 또래의 고향 친구 세 사람이 뒤늦게나마 점포확장이전을 축하하는 화분을 사 가지고 박 성출의 가게를 찾아갔다. 저녁 때가 되었는데도 음식을 시켜오거나 식사하러 가자는 말이 없어 기다리다 못해 손님으로 간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의했댄다. 박 성출은 선선히 뒤따라 나왔다. 음식점을 찾아가 소주 한잔 곁들여 수수하게 저녁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끝내고 앞장서서 음식점을 나가던 박 성출이 계산대 앞을 모른 척 지나 문 밖으로 나갔다. 할 수 없이 입맛을 절절 다시며 음식값을 염출해 치르고 뒤쫓아 음식점을 나온 친구들이 어쩌나 보려고
"다방애 가서 차나 한 잔씩 하구 헤어지지."
하고 말했다. 이를 쑤시며 서 있던 박 성출은 고개를 내저으며
"난 바빠서 들어가 봐야겠으니 자네들끼리 하게. "
그렇게 말하고는 한번 더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휭하니 걸어가 버리더라고 했다.
또 언젠가는 고향 사람 하나가 박성출을 찾아가 돈을 꾸어 달라고 졸랐다.
"사흘 뒤엔 꼭 갚겠네."
박 성출이 눈을 깜박거리며 잠시 생각해보더니
"사흘 뒤에 꼭 갚으실 수 있읍니까?"
하고 물었다.
"염려 말게. 틀림없이 사흘 뒤엔 갚겠네."
"어떻게 해서 갚으실 수가 있지요?"
"사흘 뒤에 돈 나을 데가 있어."
"틀림없습니까? 사흘 뒤에는 틀림없이 돈이 나옵니까?"
"아 틀림없대두. 하늘을 두구 맹세하겠네. "
"좋습니다. 아저씨 말씀을 믿구 꾸어드리겠습니다. "
박성출이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
돈 꾸러온 사람은 일이 뜻밖으로 수월하게 풀리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박 성출은 꺼르릉 소리 내며 금고를 열었다. 하지만 금고 곡을 들여다보던 박 성출은
"아니 돈이 없잖아?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아까 물건값 치르느라 있던 돈 다 꺼낸 일을 깜박 잊었잖나?"
박성출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내일 한번 더 들러 주시겠습니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고향 사람은 그러마고 선선히 대답하고는 집에 돌아왔다가 이튿날 다시 박성출을 찾아갔다.
"아저씨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내일 한 번만 더 오십시오."
박 성출이 미안해 쩔쩔 매듯 하며 말했다.
고향사람은 이튿날 다시 찾아갔다.
"오 양, 내가 아까 말한 돈 이 분 갖다드려.”
박 성출이 경리사원에게 영을 내렸다.
"사장님, 저, 급한 일이 생겨서 부득이 그 돈을 쌨는데요."
경리사원은 큰 죄를 지었다는 듯 얼굴을 가슴께로 끌어 박았다.
"뭐야? 그럼 그 돈을 언제 거야?"
박 성출이 소리질렀다.
"내일이면 됩니다."
경리사원이 대답했다, 박 성출은 못마땅하다는 듯 경리사원을 노려보다가 고향 사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끝으루 꼭 한 번만 더 오셔야겠습니다.”
박성출이 말했다.
고향 사람은 이튿날 다시 찾아갔다.
"지금 문득 생각나서 말씀드리는데. 전 번에 아저씨가 사흘 뒤면 어디서 돈 생길 데가 있어서 저한테서 꿔 간 돈 갚을 수 있다구 하셨지요? 생각해보니 오늘이 바루 아저씨가 말씀하시던 사흘 뒤가 되는 날입니다. 아저씨두 오늘 돈 나을 데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나요? 번거롭게 저한테서 돈 라 가실 생각 마시구 아저씨 돈을 쓰시도록 하십시오."
박 성출이 빤질빤질한 얼굴로 말했다.
이놈이 그 동안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고향사람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꼼짝없이 무안만 당하고 박 성출이 앞을 물러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박 성출은 고향사람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제 박 성출과 만나고 있는 고향사람은 돈깨나 모았다고 알려진 한 두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가 박 성출을 찾아가기 전에 한마디만 물었어도 조 근식은 이런 저런 얘기를 소상하게 들려주어 시간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끗이었다.
"조 근식씨 아시지요? 지가 조 근식씨 처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따위 자기 소개가 박 성출이한테 먹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조 근식은 고향친구들을 다 찾아다녀도 박성출이한테만은 발걸음을 안 하고 있었다, 박 성출이한테서는 조금도 고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박 성출이 조 근식의 아내가 찾아가는 것을 한 번으로 막아버리지 알고 내 버려 둔 것이 사실이라면 언젠가 돈 꾸러 간 고향사람에게 했듯 아내를 조롱하고 골탕먹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 근식은 한성종합병원 정문을 들어서면서 송 광덕이 병원 안에 있는지를 수위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냥 지나쳐 들어갔다.
운전기사 대기실은 영안실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올 적마다 으스스한 느낌을 안겨 주곤 했다.
"기사장님 구내 식당에 점심하러 가셨는데요. "
운전 기사 대기실을 지키고 있던 삼십대의 운전 기사가 말해 주었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여기서 기다려두 되겠지요? "
조 근식은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바닥에 걸터앉았다. 운전기사 대기실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었다. 야간에 대기하는 운전기사를 위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리라.
송 광덕은 삼십 분을 기다려서야 돌아왔다.
"좀 일찍 오지 그랬어. 점심에다 코피까지 다 하구 왔으니 이를 어쩌지?"
송 광덕은 또 다시 다방에라도 나갈 생각은 없다는 듯 말했다.
"얼굴이나 보구 갈라구 온 거야."
조 근식이 대꾸했다.
"다 껴들은 얼굴은 봐서 뭐 할라구?"
그러면서 송 광덕은 조 근식을 새삼스럽게 눈 여겨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눈여겨 보다가 비시시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송광덕의 어릴 적모습이 떠을라 오는가 하는데 왁자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있는 영안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였다.
"자네나 나나 금새 저렇게 돼."
송 광덕이 말하고는 끙 소리내며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송 광덕은 병든 사람 얘기, 병들어 죽어가고 죽은 사람의 얘기를 즐겨 입에 담았다. 늘 환자만 실어 나르는 데다가 다음 일을 기다리는 시간을 영안실 옆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송 광덕의 아버지는 왜정 때 고향에서 소학교 교원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네. "
조 근식이 대답했다.
"이 사람아 나이 오십이면 언제 차례가 올지 모르는 거야. 자넨 아직두 멀었다구 생각하나? 이 병원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보면 자네나 내 나이는 살 만큼 살아본 측에 들어간다구."
송광덕의 얘기는 영안실에서 들려 오는 울음소리를 배음으로 깔아 어쩔 수 없이 우울하고 서글픈 그늘을 방안에 드리우게 했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광덕이. 자네 이 열구 얘기 들었나?"
조근식은 화제를 바꿀 겸 가지고 온 얘기를 꺼내 놓았다.
"구청에 당기는 이 열구 말인가?"
"그 이 열구 말구 또 이열구가 있나?"
"이 열구가 어쨌는데 ? "
"올 가을에 정년퇴직 한대는군, "
조 근식은 결정적인 대목을 말해 놓고 송 광덕의 표정을 살폈다.
"정년퇴직이라니, 이 열구가 몇 살인데?"
송 광덕은 벌떡 일어나 앉지는 않았지만 스위치를 넣은 듯 눈에 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쉰 살이지"
"쉰 살에 무슨 정년 퇴직을 해 ?"
조 근식은 만족했다. 송 광덕이 그 얘기를 모르고 있는 것과 그 얘기에 깊은 흥미를 보여 주는 것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이 열구가 난리 때 피난 내려와서 취직을 할라구 하는대 나이가 모자라서 안 된다구 하더래잖아? 그래 가 호적을 하면서 나이를 다섯 살이나 늘여 놨대 구만. "
"저런! 나이를 다시 졸일 수는 없나?"
"안 된대. 그 사람 또 유난스럽게 머리칼이 일찍 새서 백발이잖아?"
"와 논 재산은 있나?"
"몰라. 하지만 왠 게 있을라구?"
"하기야 호적을 제대루 고칠 수 있대두 기껏 오 년 더 명줄이 붙는 것를 시간문제야. 오 철환이두 나이 오십에 쓰러졌잖아?"
"오철환이가 쓰러졌다니?"
조 근식온 귀가 의심스러워 틈을 주지 알고 물었다.
"모르고 있었나? 쓰러져서 정신 못 차린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됐는데. 뇌출혈이야"
"회생할 가망이 있나?"
"절망적이지. 기적적으루 달아난대두 폐인이 되는 거구. 그것 때문애 오 철환이 어머니와 마누라 사이에 말다툼이 생겼대. 어머니는 집을 팔아서라두 끌까지 치료를 하자구 하구. 부인은 힘닿는 데까지는 치료를 하되 집은 팔지 못하겠다구 뻗댄대는 거야, 한데 대학과 고등학교에 댕기는 아들 딸이 즈이 할머니 편을 들지 않구 즈이 어머니 편만 든대는군."
"쓸모 없어진 사람 위해서 재산 없앨 필요가 없다는 소리겠지. 오 철환이 마누라 우리 고향 사람 아니지 아마? "
"오 철환이 마누라뿐인가? 남쪽에 넘어온 뒤 결혼한 사람은 너 나할 것 없이 고향 사람 아닌 여자와 짝을 지었지. 그렇지만 고향 여자라구 해서 아이들하구 살아갈 길이 까마득한데 집 팔아 희망 없는 병자한테 쓸어 넣을라구 할 것 같은가?"
옳은 얘기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조 근식은 일 년에 한 번씩 고향사람들의 모임을 눈앞에 떠올려 보았다. 해가 갈수록 고향의 분위기가 없어지고 있었다. 짙은 향수를 뿜어내 분위기를 끈적끈적하게 만들던 노인들이 한 둘 세상을 떠나 모습을 감추고 남편의 고향을 가보지도 못한 남쪽 태생의 여자들과 그 여자들이 낳아놓은 자식들. 아버지의 고향에는 관심도 없는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이 모임의 분위기를 생경하고 어설프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와 젊은 운전기사는 호출되어 나가고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 철환이 얘기도 끝난 것이다.
잠시 머리 속을 비워 놓고 앉아 있으려니까 영안실에서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송 광덕에게로 눈길을 돌리니 송 광덕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조 근식은 잠든 송 광덕을 남겨놓고 병원을 나왔다.
걸음을 옳기면서 조 근식은 기분이 흡족했다. 비교적 보람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가지고 간 고향친구의 소식을 고향친구인 송 광덕에게 전해주었고, 송 광덕에게서 고향친구의 소식을 새로 들었다. 재산이 한가지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시간 뒤 조 근식은 보생 한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들어서는 사람에게로 향해진 얼굴들에 서리던 기대가 급하게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인사말을 되삼키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어쪘 일인가?"
진열장 위에 종이를 늘어놓고 첩약을 짓고 있던 권 기남이 미지근하지도 않은 얼굴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시내 나온 김에 자네 얼굴 좀 보구 가려구 들렀네."
조 근식은 비어 있는 소파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으며 잠시 권 기남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해 보았다. 한약방 집 아들이어서 보약을 많이 먹어 그런지 발육상태가 좋아 별명이 양돼지였다. 아버지 대를 이어 한의사가 된다고 하더니 한의사는 못 되었지만 한의원에 취직해 일하고 있었다.
조 근식은 권 기남이 첩약을 짓고 있는 진열장 속의 인삼, 녹각 따위를 욕심 없는 눈길로 바라보며 권 기남이 무슨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렸다.
"뭐 좋은 소식 없나?"
이런 식으로 말이었다,
조 근식은 입을 다문 채 참을성 있게 기다려 보았지만 권 기남은 첩약을 다 짓도록 아무 말도 물어주지 않았다.
"기남이 자네 오 철환이 쓰러진 소식 들었나?"
이윽고 조 근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 사람아,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그래? 모두 문병을 다녀왔어."
권 기남이 퉁바리 주듯 말했다.
"이 열구 올 가을에 정년 퇴직한다는 소식 들었나? "
"며칠 전에 몇몇 친구들이 이 열구를 불러내 위로 술을 샀지."
조 근식은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좀 전에 한성병원을 나와 걸음을 옮기며 재산이라도 얻은 듯 든든하던 기분에서 별안간 거꾸로 박혀 빈털털이가 된 기분으로 까부라져 있었다.
조 근식은 소파 등받이 깊숙히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잠이 들어버렸다. 침까지 흘리고 세상 모르게 잔 모양이었다.
누가 어깨를 흔들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턱으로 끈끈하게 침이 흘러내린 것을 깨달았고, 한의원 천정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일곱시.
"권 기남 아저씨는 볼일이 있어서 일찍 퇴근하셨는데요."
조 근식의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워 준 젊은 사람이 눈에 경멸을 담은 채 말을 전해 주었다.
조 근식은 한의원을 나와 걸음을 옮겼다. 가슴이 쓰렸다. 배가 고파서만 쓴 아닌 것 같았다.
이대로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장 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 근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 근식은 공중전화박스로 다가갔다. 수화기 속에서 조그맣게 축소된 장 순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 근식이야 자네 나한테 술 한잔만 사주게."
순구는 조 근식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려던 참이야, 기다릴 테니 오게."
장 순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기며 대답했다
처음에 장 순구는 순애를 조 근식과 짝지어 주려고 마음먹었었다. 벌써 이십 년 전 이야기였다. 조 근식이야말로 순애에게 남편과 오빠와, 더 나아가 아버지의 역할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인물로서 적격자라고 생각했다.
열 살의 나이 차. 그것은 남편인 동시에 오빠와 아버지 역할을 하는 데는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었다,
순구는 순애를 만나러 갈 때는 되도록 조 근식을 불러내 합석시키곤 했다. 같은 고향을 가진 오라의 친구. 친구의 누이동생이어서 친근감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생략시켜 주었다. 순애는 조 근식을 ‘근식이 오빠’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순구가 자리를 슬쩍 비켜주며 몰래 지켜보아도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공백 없이 오손도손 대화가 이어져 갔다
"너 내 동생 어떻게 생각하니?"
어느 날 순구는 술기운을 빌어 불쑥 물었다.
"사랑스러우면서두 불쌍한 생각이 든다."
조 근식의 대답이었다.
"됐어. 너 내 동생하구 결혼해라."
순구는 마치 명령이라도 내리듯 말했다,
"뭐라구? 너 지금 뭐랬니?"
조 근식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잔소리 말아. 넌 내 동생 순애하구 결혼하는 거야. 알았지?"
조 근식은 순구를 멀뚱한 눈으로 건너다보고 있더니
"너 취했구나."
들어볼 가치도 없다는 듯 외면했다.
"농담이 아냐. 농담할 게 없어서 그런 걸 농담거리루 삼겠니?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야. 어 순애가 지긋지긋하두룩 보기 싫지 않으면 결혼해라."
순구는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야, 생각해봐라. 내가 어떻게 순애 속옷을 벗길 수가 있니?"
조 근식이 딱하다는 듯 불쑥 내뱉은 대답이었다. 순구는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내가 언제 너더러 순애 속옷 벗기랬니? 순애하고 결혼하랬지."
조 근식이 픽하고 실소를 홀렸다.
"속옷 벗기지 않구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니? 여자 속옷 벗겨낼 자신이 생겨야 결혼을 할 수 있는 거야."
조 근식이 오히려 타이르듯 말했다.
"그래서? 넌 순애 속옷을 벗길 자신이 없다는 거니? 까닭이 뭐야?"
참 어처구니없구나 싶었다.
"순애한테는 자신이 있구 없구가 상관없어."
조 근식에게 전에 없던 고집스러움이 나타나 있었다.
"결국 순애가 싫다는 거로구나?"
"넌 순애가 싫어서 순애하구 결혼 못하니?"
"뭐야? "
순애와 결혼하는 것은 자기 누이동생과 결혼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라고 조 근식은 우겼다. 아니, 조 근식은 한 고향 여자와도 결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고향 여자의 속옷을 벗길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객지에 와서 함께 고생하는 이상 고향여자들은 친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미친 놈. 하지만 조 근식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업었다.
순구는 그 결혼이 성사되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기회 있을 때마다 우러나곤 했다, 그랬으면 조 근식도 순애도 지금처럼 엉망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제와서야 조 근식은 고향 여자들의 속옷을 지나치게 신성시했던 자신의 결벽을 뉘우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조 근식과 순애가 결혼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들의 됨됨이 속에 지니고 있는 씨앗이 어차피 그들을 부패하게 하고 무너앉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 사람 둘을 한 울타리 속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그들이 일어서겠는가. 순애가 살아온 과정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지 않는가.
순애가 살아가는 모습을 아내가 지켜보기는 순애의 첫 번째 결혼생활부터일 것이다.
결혼하고 삼개 월쯤 된 어느 날 밤 순애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들이닥쳤다는 표현이 알맞을 만큼 그것은 뜻밖이었고 또 늦은 시간이었다.
"웬 일이니?"
순구가 물어도 순애는 대답이 없었다,
"싸운 게로구나"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순애의 얼굴이 굳어 있지도 않았고 몸매가 흩뜨러져 있지도 않았다. 순구는 아내와 힘을 합해 순애를 놀려주며 부부싸움에 대해서.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데 관해서 얘기해 주었다.
"첫 번째 부부싸움인가? 축하해요."
아내의 말에 순애는 마음이 풀어진 듯 웃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여기서 주무세요. 낼 새벽같이 새신랑께서 모시러 오실 거예요.
한 방에서 세 사람이 섞여 잤다.
아내가 말한 대로 이튿날 아침 식전에 신랑이 떫은 얼굴을 하고 순애를 데리러 왔다. 아내는 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만들고 맥주를 곁들여 순애 내외를 잘 대접해 돌려보냈다.
한데 그때부터였다. 순애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신혼의 보금자리를 뛰쳐나와 오빠와 올케가 살림을 차란 단칸방에 와서 자고 가려 들었다.
"이상해요."
그런 일이 몇 차례 되풀이 된 뒤 아내가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모퉁이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부부싸움을 한 달만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돼서 그때마다 방 하나뿐인 오라 내외한테 와서 끼어 자려 드는가 말이다. 그나마 신랑이 데리러 오지 않으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마냥 눌러 있으려 들지 않는가.
"누이 어렸을 때 어땠어요?"
아내가 고개를 갸웃해 보며 물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지=
순구는 순애가 아버지와도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내는 순구가 다니던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였다. 두 사람이 가까워져서 결혼을 약속하게 되기까지 아내는 순구에게 아버지와 누이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누이동생이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사코 순애를 당신의 딸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아버지가 순애를 딸로 인정하지 않아 순애가 아버지나 오빠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음산한 이야기를 어떻게 결혼을 약속한 숫된 처녀에게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가 있는가.
순구는 그가 결혼하기에 앞서 순애를 결혼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해오고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와 한 지붕 밑에서 피낼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혼기를 맞는 대로 적당한 남자를 물색해 짝 지워 주는 것이 순애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사이에 은밀하게 결혼약속이 이루어지면서 순구는 순애의 결혼 문제에 좀 더 급한 마음이 되었지만 진작부터 추진해 오던 일이어서 마음속에 이는 갈등을 어지간히 늦출 수가 있었다. 순애를 먼저 결혼시키자는 생각이 어수선한 집안 꼴을 아내에게 숨기자는 꿍꿍잇속에서 출발한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순애의 결혼으로 당장 드러내놓기 심히 거북살스러운 집안 꼴이 가려지더라도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아내는 머지 않아 심상치 않은 집안 분위기를 알아차리게 되지 않겠는가.
점찍었던 조 근식은 그렇듯 막무가내로 도리질하며 뒷걸음질쳤고, 순애의 신랑감으로 마땅한 사람이 나서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차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변소에 다녀 나오던 아버지가 현기증을 일으킨 듯 쓰러졌는데 그것으로 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그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 문구는 당황과 슬픔보다 먼저 안도감이 가슴 밑바닥에 깔리는 것을 느꼈다. 죄스러움이 안도감을 헤살부리며 뾰족한 감각으로 파고 들었지만 그 위에 비로소 고이는 슬픔은 진하고 격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순애가 빈 자리를 메우듯 들어왔다. 평생을 이를 수 없을 줄 알았던 가족과의 합류였다. 꿈 같으면서도 다시는 놓칠 수 없는 복된 가정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적당한 사람 나서면 일찌감치 시집이나 가버리겠다던 얼마 전까지의 태도에서 시집 같은 거 가지 않겠다는 태도도 급선회한 것이다.
"오빠 뒷시중이나 들며 살아갈래."
순애가 말했다. 이만하면 순애를 맡겨도 되겠다 싶은 사람을 물색해 선보는 자리를 마련해도 순애는 도리질만 쳤다.
"시집 같은 거 뭐하러 가? 오빠하구만 살 거야."
순애가 말했다.
반 년을 데리고 있으면서 타이르고 구슬리다가 일단 단념하고는 순구는 먼저 결혼해 버렸다,
새 올케가 들어와 오빠를 차지해 버리고, 살림살이를 맡아 버리고, 그러자 순애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지을 알게 된 것일까.
다시 마련된 선보는 자리에 순애는 선선히 나가 앉았고, 단 한번에 천생배필이라도 만난 듯 그 사람과 결혼했다.
"어머니와 떨어져 자랐다구 해서 모두 누이처럼 제멋대루 처신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 거예요. 누이 하는 걸 보구 있으면 예절을 익히지 못 하구. 자기 마음 다스릴 힘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충동적인 행동 같기두 하구, 또 어떤 때는 미리 계산하구 나서 취하는 행동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두 해요."
아내는 머리를 추켜드는 어두운 예감을 지워 버리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
"단지 철이 덜 든 것 뿐이야, 차차루 좋아지겠지."
순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대꾸하며, 순애가 죄 없이 배척 당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았다.
"오빠. 난 정말 아버지 딸 아니우?"
순애가 이렇게 물은 것은 순애 나이 열 다섯 살 때였다.
"넌 틀림없는 아버지 딸이야."
"근데 왜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 딸 아니라구 하지?"
"아버지는 병이 드셨어. 그 병 때문이야."
"그 병은 안 낫는 병인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
"그럼 아버지 병은 언제나 낫지?"
"좀 더 기다려보자,"
순애는 헤일 수 없는 날들을 기다려왔다. 아버지가 순애를 당신의 딸로 인정하고 귀여워해 주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기약 없는 기나긴 날들 속에서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준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기다림은 끝내 공허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아버지가 기거하던 방에서 오빠와 지내게 된 것은 그 기나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한데 그 기나긴 기다림에 비해 오빠와 함께 지낸 반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을까. 반 년이란 기간은 오랜 세월 쌓인 순애의 목마름과 허기를 몰아내 주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누이의 행동이 계산된 것이라면 거기 또 아리숭한 데가 있어요. 오빠를 겨냥한 것인지 자기 신랑을 겨냥한 것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아내가 말했다. 순애는 신랑과 대단치 않은 말다툼만 벌여도 뛰어 나와 오빠한테로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신랑한테 오라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선가, 부부싸움을 핑계삼아 오라에게로 달아나 오기 위해선가. 어느 때는 순애가 모라 내외의 부부생활을 시샘해 훼방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랑의 애정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고 했다, 신랑이 와서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혼이라도 하겠다고 큰소리 치면서도 신랑이 데리러 오지 않을까 초조해 하는 모습이라든가, 그러다가 신랑이 데리러 왔을 때 승리감에 빛나는 얼굴 표정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신랑 앞에서는 오빠의 존재를, 올케 앞에서는 신랑의 존재를 과시해 털이고 싶은 충동이 순애의 마음속에 끝없이 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순애가 그런 충동에 시달릴 까닭이 뭐지?"
순구는 조금 짜증스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까닭이 뭐냐구요? 그건 내가 묻구 싶은 말이에요."
아내는 순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투명한 눈 속에 짜증이 잔 거품처럼 일고 있었다. 열어야 할 문의 열쇠를 찾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었다.
아내에게 순애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순구는 생각했다. 그것은 순애 얘기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순구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얘기가 될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 서방질하러 나돌아 댕기는 거지?"
아버지의 의심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온갖 모습을 허공에 그리다가 이윽고 상상의 그림은 현실이 되어 아버지 머리 속에 가슴속에 견고한 물상을 빚어 놓았다.
"간부와 내통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냐? 그 일을 감추지 않구 털어놓기만 하면 니 목숨만을 살려 주겠다. 순애 저 지지배두 간부 놈의 새끼지? 숨기지 말구 털어놔 봐."
아버지는 순구는 당신의 자식이라고 인정했지만 순애는 당신의 자식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니가 입 다문다구 내가 모를 줄 아니? 순애 지지배 나이가 다섯 살이니니까 간부 놈과 내통한 지는 못 해두 육 년이 됐다는 얘기야. 어떤 놈이지? 순애 애비가 어떤 놈이야? 털어 놓으면 너를 죽이지 않고 순순히 헤어져 주마."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의 자백을 듣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죽이지 않고 헤어져 당신이 자식이라고 인정한 순구만을 데리고 삼팔선을 넘어왔다. 그러니 순애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셈이었다.
아내에게 그 얘기를 자세히 들려준다면 순애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이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순애의 행동을 덮어놓고 심술부리고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고 해묵은 목마름과 허기로 아직도 비어 있는 마음속을 채우려는 외로운 몸부림으로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내와 결혼하기 전 집안 얘기를 털어놓지 못한 것은 자신의 어둡고 추한 구석을 들추어 보이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 방어본능에 이끌린 행위였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여자를 속이는 비겁한 행위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순구는 자신의 정신 속에 유전인자가 숨어 있어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해 아내와 자식을 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의심 같은 것은 품어 보지도 않았다. 이 여자를 죽도록 믿으리라. 자신은 또 하나의 불행하고 억울한 어머니를 만드는 어리석고 잔인한 짓은 곁코 하지 않으리라.
집안 얘기는 그가 하려는 결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결혼하려는 여자가 오르지 못할 높은 나무에 매달린 분수에 넘치는 과일도 아니지 않은가.
집안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몸 깊은 곳에 나 있는 옛 상처를 애써 드러내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순구는 이렇게 생각해 왔었다.
이제는 그 얘기를 털어놓자고 순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얘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들어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의 살로 굳어버린 듯 끌어올리자니 아픔마저 느껴졌다. 화석으로 변한 옛 흔적이 아니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같았다. 주저하는 자신을 느꼈다. 좀 더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자. 얘기를 들으면 아내는 순애의 그러한 행동이 이루어지게 된 맥락을 자기 나름으로 가늠하계 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순애의 행동을 용납하고 받아 들이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가노라면 어느 기회에 아내는 저절로 그 얘기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순애나 다른 어떤 사람이 아내에게 얘기를 들려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가서 아내와 그 얘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순애는 나를 단지 오빠로만 여기지 않구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친정 식구들. 친정 그 자체루 생각하구 찾아오는 걸 거야."
순구는 그 정도로 대답을 했다. 억지로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당신, 누이를 저대루 내버려두실 거예요? 우리한테 오른 건 그렇다 치구 신랑이 누이의 그런 행실을 언제까지나 참아낼 수 있을 거라구 생각하세요?"
아내가 다그쳤다.
"조금 더 두구 봅시다."
순구가 말했다.
순구는 방 둘 짜리 셋집을 얻어 이사를 했다. 아내와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순구는 순애가 아이 낳기를 기다렸다, 어린애가 끈이 되어 순애의 발을 현실에, 그리고 순애의 마음을 가정에 굳게 매어놓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순애는 두 번 유산을 하고 나서 아이가 들어서지를 않았다. 순애의 발은 여전히 공중에 뜨고 마음 뜬 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순애는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처럼 오빠 내외가 순애를 위해 예비해 둔 방에 와 죽치고 들어앉아 남편의 애정을 시험해 보곤 했다.
순애 남편은 술래잡기 놀이에 지쳐가고 있었다. 왜 거듭거듭 술래가 되어 편한 곳에 숨어 있는 순애를 끊임없이 찾아내러 가야 하는가,
순애가 남편을 기다리느라 초조해하면 순구는 슬그머니 순애 남편을 찾아가 술집으로 데리고 가곤 했다.
"여보게 매부, 순애두 곧 숨바꼭질놀이에 싫증을 내게 될 거야. 나두 순애를 타이를 테니 조금만 더 술래 노릇을 해주게나. 순애는 사랑 놀음을 하구 싶어하는 것 뿐이야."
순구의 간곡한 말에 순애 남편은 몇 번 더 술래노릇을 성의껏 해냈다. 하지만 이윽고 술래잡기 놀이는 깨어져 버렸다. 순애 남편이 술래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남편이 집안 얘기를 들려 준 것은 시누이 뜨려 버린 직후였다. 순애가 첫 번째 결혼을 깨뜨렸을 때는 남편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편은 두 번씩이나 결혼 생활을 깨뜨려 버린 시누이의 행동을 변명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른다.
시누이의 결혼 생활이 깨뜨려지는 것은 전적으로 시누이에게 책임이 있었다. 남숙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남자가 수시로 집을 뛰쳐나가 진을 치듯 하고는 남편에게 그때마다 항복하키를 요구하는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무한정 용납하려 하겠는가.
남편이 뒤늦게 집안 얘기를 털어놓은 것은 누이동생의 그런 절조가 결여된 행위를 변명할 겸 남숙의 마음속에 빚어진 거부반응을 무마시키기 위한 조치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잠자리 속에서 남숙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사랑이라도 속삭일 때처럼 은근한 목소리로 집안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남숙은 남편이 들려주는 얘기가 흥미진진하기까지 했었다.
"당신두 혹시 의처증에 소질이 있는 거 아니예요?"
남숙은 남편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응석부리듯 말했고
"옛 속담에 남편감으루 의처증 환자의 아들을 골라잡으라는 말이 있어."
남편도 아내의 부드러운 반응에 마음이 놓인다는 듯 농담 섞어 대꾸했다.
"그건 어느 나라 속담이지요?"
"죄 없이 아버지한테 의심받고 시달리는 어머니의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자기 자신도 함께 고통을 겪은 아들은 자기 아내에게는 이를 데 없이 극진하게 대하게 된다는 얘기지."
"피, 그런 속담이 어디 있어요?"
"속담이 아니까 현실적인 얘기야. 술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의 자식은 술을 멀리하게 되구, 여자루 패가망신한 사람의 자식은 여자를 멀리하게 되는 거야, "
남편의 그런 말이 남숙의 귀에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남편의 집안 얘기는 남숙의 의식 속에 스며들어 동화되지 않고 동떨어져 거치적거리며 어두운 예감의 그늘 같은 것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것은 갈수록 짙어지는 자각중상처럼 남숙의 신경을 건드려 놓았다.
간단명료하지를 않고 어딘가 애매하고 복잡했다. 그 복잡성이라는 것도 표면에 드러난 채 뒤헝클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어둡고 깊숙한 지하에 묻혀 보이지 않고 느낌으로만 만져지는 것 같았다. 차츰 예민해져 가는 수많은 신경의 갈래 끝 여기저기에 눅눅하게 와 걸치는 음산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남편은 어째서 뒤늦게 그 얘기를 털어놓은 것일까. 의심이 솟았다. 결혼 전에 얘기하지 않은 것은 남숙을 놓치기 두려워서였을까.
남편의 가족이 비교적 단출하다는 점이 그들의 결혼에 건설적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남숙이 순구라는 남자에게 만만치 않은 호감을 품게 왼 이후에 안 사실이었다. 남숙이 순구를 남편으로 택한 것은 순구의 외모와 인품이 만들어 내는 매력 때문이었다.
"이남 사람이면 더 좋았을 텐데."
남숙이 순구와 결혼할 뜻을 알렸을 때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이북 사람은 어때서요?"
“살던 고장을 떠나와 근거 잃은 삶을 살아서 그런지 어딘가 안존치 못 하구 어수선해 보여. 제자리에 놓이지를 않아 흐트러지구 떠 있는 것 같아 믿음성이 없어 보여."
"사람 나름이에요, 엄마. "
"니 맘에 어지간히 드는 모양이다만 잘 살펴 보구 해라. 이남 사람 한 번 살펴볼 거면 이북 사람은 두 번 살펴봐야 해."
"이북에 본처라두 있는 사람일까봐서요? 그 사람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남쪽으루 내려 왔어요."
그런 문제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나. 착하고 성실하고 외모도 그만하면 괜찮았고, 억세고 단단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약한 편도 아니었다. 약점이 있다면 어딘가 맺고 끊는 데가 모자라 보인다는 것이라고 할까.
어머니는 순구가 제 집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었지만 그가 특별히 이북 사람이어서 제 집을 지니지 못한 것도 아니고 또 집이란 살아가면서 장만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하나 순구에게 약점이 있다면 때없이 그를 사로잡는 우울이었다. 얼굴에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 하지만 우울의 정체는 쉽사리 알아낼 수가 있었다.
"나두 모르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에 잠기게 되는군요."
순구가 말했다. 순구를 때없이 찾아와 사로잡는 우울은 다름 아닌 향수였다. 순구의 향수는 오히려 남숙의 가슴에 애틋한 정을 일으켜 순구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했다. 순구의 마음속에 들어가 향수를 다독거려 잠재워 주리라,
결혼 전에 시아버지 될 분이 세상을 떠났다.
"할말은 아니다만 셋방살이하면서 시집어른 섬기기 힘들겠다구 생각했더니 그 어른이 돌아가시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남숙은 순구의 향수가 깊어질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순구의 향수가 더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결혼을 했다. 식에 참석한 신랑 쪽 사람 중에는 친척은 없었고 고향사람들뿐이었다. 몇 대째 독자(獨子)로 이어져 온 가계여서 고향에서도 이렇다할 친척들의 왕래가 없었다고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신랑 쪽에는 시누이인 순애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순애 유모였다는 여자가 함께 서서 찍었을 뿐이었다.
"홀가분해서 좋다. 일가붙이들 많아 봐야 무슨 날 모여들면 여자 고생하기 알맞을 뿐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결혼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시누이마저 시집을 보냈다. 시누이 시집 보내느라 직장 생활하며 저축했던 돈 다 꺼내 썼고, 빚까지 조금 얻어 썼지만, 예상보다 빨리 부부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꾸밀 수가 있었다.
"아들 둘, 딸 하나만 튼튼하게 낳아 놓구 알뜰하게 살림 꾸려서 내 집 장만하거라,"
어머니는 마음이 흡족하다는 듯 말했다.
자. 이제 남아서 흥청망청 써버릴 수 있는 삶은 못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보자. 날이 밝고. 밝게 개인 하늘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신선한 대기 속에서 심호흡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때없이 남편을 덮어버리는 그림자, 향수쯤은 별문제가 못 된다 싶었다.
한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못했다.
그 그림자는 처음에는 막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신 고향얘기 저한테 털어 놓으세요. 그럼 당신 기분이 개운해질 거예요. 당신 얼굴을 덮구 있는 그림자가 제 마음까지 어둡게 덮을려구 하잖아요."
남숙의 말에 남편은 그림자를 지닌 채 빙긋이 웃었다.
"뭐 흥미 있는 얘깃거리가 있어야 말이지."
"당신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
"왜정 때 여학교 교육을 받은 분이었지. 아버지와 결혼하시기 전에 소학교 교원 생활을 몇 해 하셨구. 어머니 고향은 환해도, 어머니 키는 보통이구 얼굴은 동그란 편이구, 성격은 다정다감하다기보다는 이지적인 편이었어."
남편은 되도록 얘기를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향수를 발산하지 못한 채 움츠러들고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당신 고향얘기 더 들려주세요. 당신 고향은 어떤 곳이지요?"
"특색이 없는 조그마한 읍 거리야. 읍을 감돌아 흐르는 작은 강에 놓인 양회 다리가 채마다 장마 때면 끊어져 새루 놓군 했지. 그리구 뭐 별루 재미있는 얘기가 없어, "
남편은 얘깃거리에 궁한 것 같았다. 그런 남편에게서 남숙은 막연히나마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막연한 소외감은 남편의 고향친구가 놀러 온 어느 날부터 뚜렷한 현실감으로 남숙의 가슴에 얹혔다. 남숙에게 얘기할 때는 얘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쩔쩔매며 어색해하던 남편이 고향친구와 어울리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무궁무진하게 얘기를 쏟아놓는 것이었다.
고향 뒷골목 뉘집 담 안에서 골목으로 가지를 런은 개복숭아 나무, 학교에 오르는 돌계단에 뚫린 작은 구멍 속으로 굴러 들어가고는 나오지 않는 쇠 구슬 한 개, 가재 잡으러 가는 뒷산 골짜기의 오솔길 한가운데 불쑥 내민 돌뿌리 하나, 횐 수탉과 붉은 수탉의 대헐투가 벌어진 읍 공회당의 마당, 산토끼를 쫓아가 찾아낸 와우산 숲 속의 바위굴, 무지개 꽂힌 옹달샘을 찾아가던 길가의 뱀딸기 밭,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렇듯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눈에는 그의 고향 봄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엷은 막이 쳐지고, 버들피리 소리가 들리는가 표정이 꿈을 꾸듯 아련해졌다. 남편의 눈에 쳐진 엷은 막과 얼굴에 어린 아련한 표정이 남편과 남숙의 사이를 차단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엷은 막과 아련한 표정에 가려진 남편의 마음속에는 고향마을의 뒷골목 길과 산야의 오솔길이 얼기설기 뻗어 있었다.
남숙은 남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보잘것없는 길들을 남편과 나란히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보잘 것 없는 시골 마을의 길과 거친 산과 들의 오솔길을 남편처럼 정답게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숙은 그 길에 들어가 설 수가 없었다. 어머니 말이 생각났다,
이북 사람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 뒷골목 길과 오솔길을 따로 은밀하게 숨겨두고 때때로 홀로 숨어 들어가 거닐곤 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시골 어느 곳에나 있을 뒷골목과 오솔길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일까.
남숙은 남편의 마음속에 아내가 들어가 설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남편의 마음속에 들어가 남편과 나란히 그 뒷골목 길과 오솔길을 걷고야 말리라.
남숙은 때때로 남편의 고향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남편의 고향 얘기를 귀담아 들었고, 고향사람들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남편을 따라가 남편와 고향사람들과 어울려 그 분위기에 젖어보려 애쓰곤 했다.
남숙이 순애의 분방을 오래 참고 견뎌낸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순애, 끝내는 유희처럼 지칠 줄 모르고 남편을 시험하다가 이혼하고 오빠한테 와서 지내고 있는 순애는 이번에는 오빠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내가 어디 가서 죽어 없어졌으면 하지?"
순애는 밥상머리에서 느닷없이 말하곤 했다.
"무슨 소리냐?"
"흥, 내가 오빠 속마음을 모를 줄 알구? 나가버릴 테니 걱정 말아."
"꿈에두 그런 생각해본 일 없다. 다시 좋은 사람 나설 때까지 맘 푹 놓구 쉬어라."
"거봐. 나를 쫓아낼 궁리를 하구 있으면서 뭘 그래 ?"
"쫓아내는 게 아냐. 내가 너를 쫓아내서 시원한 게 뭐 있니? 니가 좋은 사람 만나 잘 사는 모습을 보구 싶은 생각뿐이야. 어머니가 여기 계셔두 나하구 똑같이 생각하실 거다."
"엄마 핑계 대지 말아요."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사이 시누이는 문밖에 바람이라도 쏘이러 나가듯 슬그머니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얘 어디 갔지?"
저녁밥상을 대하고 비어 있는 순애 자리를 가리키며 남편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화장실에라도 가듯 방을 나가구는 들어오지 않았으니까요."
통행금지 시간이 되도록 순애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나 좀 늦을지두 몰라. 순애를 찾아봐야겠어."
이튿날 아침 출근하면서 남편이 말했다.
"어디 짐작 가는 데 있어요?"
"몇 군데 찾아가 보는 거지."
밤 늦어 남편은 누이동생을 찾아 데리고 돌아왔다. 수원에 있는 순애 유모네 집에 가서 데려왔다는 것이다. 순애의 얼굴에는 승리감 같은 것이 환하게 번져 있었다.
“유모네 집이라면 며칠 묵어 오두룩 내버려두시지 그랬어요? 기분 전환두 될 체구요."
남숙이 남편에게 말해보았다,
“순애 유모두 전실자식한테 얹혀 지내는 형편인걸."
남편의 허전한 대답이었다.
순애는 한 달이 멀다하고 집을 뛰쳐나가 전실자식의 집에서 식모살이 하듯 얹혀 지내고 있는 유모를 찾아가 진을 치곤 했다.
-오빠는 내가 어디루 없어졌으면 하지? 오빠 속마음 난 다 알아요."
밑도 끝도 없이 트집잡아 오빠 마음 긁어 놓고는 오빠없는 사이에 집을 나가는 순애는 오라가 찾아갈 수 업는 데로 가 숨어 버리지를 않고 오빠가 찾아갈 수 있는 수원 유모한테로 가 있곤 하는 것이었다.
남숙은 그 일을 무수하게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애가 유모를 찾아가는 건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일 거야. 그리구 개게 트집을 잡구 뛰어나가는 건 내가 자기를 싫어하게 될까봐 겁이 나서 그러는 걸 거야."
남편이 말했다. 그렇더라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순애는 왜 구태여 그런 방법을 사용해 오빠의 관심을 시험하고 확인해 보려는 것일까. 다른 시위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시누이의 그런 짓거리는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져 일상의 평화로운 흐름을 휘저어 헝클어 놓곤 했다.
남숙은 때때로 억제하기 힘든 역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럴 때면 시누이의 그 버르장머리 없는 짓에 왜 질질 끌려만 다니냐고 남편을 몰아세우기도 했지만 부부싸움에 이르기 전에 자제할 수 있었던 것은 잘못 섣부른 행
위가 되어 남편의 마음 속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남숙의 노력에 해를 끼칠까 염려되어서였다.
남편은 적당하다 싶은 남자를 물색해 시누이를 두 번째로 시집보내며
"고생 되더라두 꾸욱 참구 살아라,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야."
그렇게 타일렀다.
하지만 누이는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집을 뛰쳐나오는 버릇이 도졌고, 두 번째 남편을 되풀이 되풀이 시험하다가 이윽고 또 하나의 파경을 맞았다.
"순애가 어린애가 생기지 않아 불안한 모양이야."
남편은 변명하며 시누이가 뛰어 나을 때마다 두 번째 매부를 찾아가 술 대접을 하며 구슬리곤 했지만, 한정 없는 관용이 베풀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누이는 구제 불능의 인생 말종이에요.-
남숙이 남편에게 그런 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남편이 가슴 깊숙이 넣어 두었던 그의 집안 얘기를 털어 놓은 것이다.
실상 남숙은 남편의 품에 안겨 그 얘기를 들으면서 감동으로 몸을 떨기까지 했다. 나의 인내와 노력은 드디어 남편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만드는 위업을 이루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벅찬 승리감이었고 성취감이었다. 남편의 마음 속에 펼쳐져 있는 고향의 산하. 마을의 뒷골목 길과 산과 들의 오솔길에 남편과 나란히 서서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보이기까지 했다. 남편의 고향을 내 고향으로 삼으리라.
시누이의 그 이해할 수 없는 처신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모습이 바뀌어 보였다. 그랬었구나. 그런 깊은 사연이 있었구나.
남숙은 조촐하게 음식을 차리고 남편이 늘 잊지 못해 하는 조 근식씨를 초대했다,
순애까지 합쳐 네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남숙이 어느 때보다 정성껏 장만한 요리를 들기 시작했다. 남숙이 예상했던 대로 고향얘기가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남숙은 기꺼이 대화 속으로 끼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숙을 남겨둔 채 그들끼리 남숙이 알 수 없는 뒷골목 길을, 숲길을,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언어를 지껄이며 어우러져 걸어서 멀어져 갔다. 남숙은 그들을 좇아가려고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영사막 속의 풍경처럼 단절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남숙은 그들을 남겨둔 채 조용히 방을 나와 부엌에 쪼그려 앉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숙의 가슴에 절망감과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이남 사람이면 더 좋은데."
이남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마음속에 뒷골목 길과 오솔길을 은밀하게 지니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남 사람이라면 비록 그의 마음속은 아니더라도 그의 고향으로 달려가 뒷골목과 오솔길을 싫도록 쏘다녀 볼 수 있지 않는가. 남숙은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나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일까. 남편은 내게 어느 정도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일까. 남숙은 남편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왜소해져 가는 자신을 느꼈다.
남숙은 문득 친정으로 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입가로 실소가 비어져 나왔다. 시누이처럼 남편을 시험해 보겠다는 것인가. 뛰쳐나가 친정으로 가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남편도 남숙을 단념해 버릴 것인가. 남편이 단념할 때 남숙은 버림받는 것일까. 아니면 꿈에서 깨어나는 것일까. 한 번쯤 남편을 시험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꼬물거리며 머리를 쳐들고 있었
다.
방에서 어린애 우는소리가 들렸다.
"여보, 어디 갔어 ?"
남편이 남숙을 불렀다. 남숙은 눈물자국을 지우며 어린애가 있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어린애가 남편과 남숙의 사이를 이어놓고 있었다. 그것은 체념이었고, 활력이기도 했다.
남숙이 남편의 마음 속 오솔길에서 남편과 나란히 서서 걷고 싶다는 꿈을 버리고 남편을 그 오솔길에서 끌어내자고 생각을 돌린 것은 아이들이 뚜렷뚜렷한 모습으로 자라면서부터 였다.
"이 세상 누구나 마음 속 한자리에 지난날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현재나 앞날을 위해 사용해야 할 장소를 지나간 날들이 차지하도록 방치해 뒀단 말이에요. 지난날이란 사진첩에 꽃아둔 사진처럽 깊이 넣어두었다가 어쩌다 꺼내봐야지 늘 펼쳐놓구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구 생각해요. 당신이 앞날이 없는 노인이나 병자예요? 왜 지난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남숙이 공세를 취했다.
"북쪽에 고향을 두구 온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떠나 온 사실이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구 있는 일이야. 그 사실이 과거가 되려면 고향 가는 길이 뚫리거나 내가 죽어 의식이 없어져야 해. 고향 가는 길이 뚫리지 않구 내가 살아 있는 한 고향을 잃어버린 일은 과거 속에 파묻힐 수 없는 영원한 현재야."
남편의 대답이었다
"당신이 남쪽에 내려와 새로 만든 현실은 어떻게 하구요?"
"어떻게 하다니? 내가 처자식을 헐벗구 굶두룩 만들었단 말인가?"
"아. 기막혀. 어쨌든 난 당신이 고향생각을 하건 말건 참견하지 않겠어요. 결혼생활 십여 년에 셋방살이 면치 못한 것두 탓하지 않겠어요. 단지 벌써부터 아이들 뒤대기가 벅차다는 사실은 얘기해야겠어요. 이대루 가다가 는 내년부터는 적자 생활 면치 못해요."
"절약해야지,"
남편은 조금은 기가 꺾인 것 같았다. 남숙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등을 밀어냈다.
"말씀 잘 하셨어요. 당신은 시누이와 조 근식씨한테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구 있어요."
남편은 처자식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시누이에게는 철마다 옷을 사 주었다. 틈틈히 용돈도 집어 줄 것이었다. 조 근식씨와는 주말마다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조 근식씨는 부인한테 얹혀 사는 처지이니 술값은 남편 주머니에서 나을 것이었다,
"순애나 조 근식이를 멀리하라는 얘기야?"
남편은 다분히 힐난조로 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요."
남숙은 남편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물러설 수 없는 심정이었다.
남편의 목 울대가 감정을 삼키듯 오르내렸다.
"당신한테 얘기하겠는데 말야. 난 조 근식이를 만나면서 고향을 만나구, 순애를 보면서 어머니를 보는 거야. 알겠어?"
뭔가 섬뜩한 느낌이 남숙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머리 속에서 번개가 친 것 같기도 했다. 순간적인 충격과 섬광 속에 시누이와 조 근식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다가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그래, 허깨비다! 남숙은 깨달음처럼 마음속으로 외쳤다. 시누이와 조 근식씨는 실체가 아니라 지난날의 허깨비였다. 남편의 마음에 비친 옛 그림잔일 뿐이었다. 남편은 허깨비에 손목을 잡혀 지나간 날들 속을 헤매다니며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다. 허깨비들을 남편의 마음속에서 떼어 내야 한다, 남숙은 마음을 추스르며 생각했다.
"시누이 말이에요. 의지는 어린애의 상태에 머물러 있구. 잔꾀를 생각해 내는 지능은 어른들의 보통 수준을 훨씬 앞지른 기형적인 모습이에요. 당신의 과잉보호가 빚어놓은 모습이에요."
"제발 불쌍한 내 동생 헐뜯지 말아. 모른 척 내버려 두라구."
남편이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더 늦기 전에 누이가 제 자리를 찾아 설 줄 알게 비뚤어진 정신상태를 바로 잡아줘야 해요. 누이가 일어설 수 없도록 망가져 버리는 꼴을 당신두 보구 싶지 않겠지요?"
"거기가 언제부터 순애 생각을 그렇게 절절하게 가슴속에 담아 가지구 있었지?"
"누이가 멀리 떠나가 준다면 난 누이라는 사람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요. 그렇지만 누이는 망가지구 썩어가면서 그 독을 우리한테 끼얹을 만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단 말예요. 말이 났으니 말이지 당신 정신상태두 정상이 못 돼요. 아니 병들어 있어요. 당신과 당신 누이동생은 서루 독을 옮겨 주구 병을 키워 나가구 있어요."
"입 닫아! "
"조근식 이라는 사람두 그래요."
"져 닫지 못해?"
"난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두 당신을 그 사람들한테서 보호할 의무가 있어요."
"쌍!"
꽃 몇 송이를 꽂고 책상 위에 얹혀 있는 붉은 자기꽃병이 남편의 손아귀에 잡혀 높이 솟았다가 방바닥에 미어꼰져졌다. 박살난 꽃병의 붉은 색 파편과 방바닥에 흥건하게 엎질러진 물 속에서 잘린 줄기를 드러내고 헝크러져 누워 있는 꽃들이 남편의 날선 의식과 찢긴 가슴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남숙은 입을 다물었지만, 도사리고 앉아 물러서서는 안 된다, 밀고 나가야 한다 하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남숙은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그 퇴직금으로 아동복점을 차리면서부터 시누이와 조근식을 떼어놓기 위해서는 남편의 손에서 가게 경영권을 뺏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어느 기간 동안만이라도 남편을 경제적인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신 나이 오십이 가까웠어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구 생각하셔야 해요."
남숙은 그렇게 말했지만 남편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난 불안해요. 당신은 자기자신을 방어하구 보호할 줄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당신 고향사람 박 성출씨의 반만큼만 자기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돼 보세요."
"박 성출이 같은 놈 이름 입에두 올리지 말아."
남편은 욱해서 거칠게 내뱉았다
"내가 가게를 볼까요? "
남숙은 슬며시 한 발을 디밀어 보았다
"집에서 살림이나 해."
남편은 한마디로 내몰았다.
"당신 혼자 힘들지 않겠어요?"
"점원을 두면 되잖아? "
"당신 좋으실 대루 하세요. 하지만 정신 차리세요. 그리구 시누이두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나이 사십이 다 돼 만난 사람과 다시 헤어지는 날이면 그때는 정말이지 구제 불능이예요. 시누이를 위해서두 전 같이 받아주면 안돼요. "
"알았어, 그만 해."
남편의 말은 여전히 미덥지가 못했다.
가게를 차린 뒤에도 남편은 예상한 대로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 근식이 찾아오면 남편은 주저 없이 가게를 점원아이에게 맡기고는 술을 마시러 나가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써버렸고, 누이동생이 찾아오면 용돈을 듬뿍 쥐어 주거나 누이동생의 전실아이들 몫으로 비싼 옷을 선물하곤 했다. 점원 아이가 그때마다 은밀히 알려주곤 했다.
시누이는 용돈을 얻어가거나 전실자식들을 끌고 와 옷을 한 벌씩 얻어가면서
"오빠, 올케한테 말하지 말아요."
이렇게 꼭 다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남숙은 꾹 참고 시기를 기다렸다.
남숙이 새벽시장 보러 가는 일을 남편의 손에서 넘겨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남편이 점심을 하러 들어온 동안 가게에 나간 남숙에게 점원아이가 귀띔했다,
"쥔아저씨 친구분 조 근식씨라구 있잖아요? 쥔아저씨 한테서 백만 원 꾸어 갔어요."
백만 원이라면 예금통장에 들어 있는 돈의 삼분의 일 액수였다.
남편과 교대해 집에 들어간 남숙은 장롱 속에서 예금통장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그 날짜로 백만 원이 인출되어 있었다. 대뜸 찾을 수 없는 돈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에서 백만 원이 빠져나갔으니 어떻게 된 노릇이지요?"
그날 밤 남숙이 캐물었다.
"통장은 왜 뒤지구 야단이야?"
남편의 대답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통장 꺼내 보는 게 내 취미예요. 돈 가져간 사람이 시누이에요? 조 근식씨예요?"
"한 달이면 갚는댔어."
남편이 얘기를 털어놓았다.
조 근식씨 부인이 유명한 화장품회사의 지정 소매점 경영권을 얻는데 백만 원이 필요하다면서 조 근식씨에게 돈을 변통해다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경영권만 따내면 자본주나 동업자는 쉽사리 찾을 수 있어서 넉넉잡고 한 달만에 돈을 갚을 수 있으니 한 달 동안만 쓸 돈 백만 원을 수단껏 변통해 오랬다는 것이다.
"남편 체면 애비 체면이 최종적으루 걸려 있는 일이야. 편의 좀 봐 주게."
조근식씨가 남편에게 했다는 말이었다.
"그 돈 잃어버린 돈이에요."
남숙이 말했다.
"사람을 너무 못 믿어두 못써."
남편이 책망하듯 대꾸했다.
"두구보세요. 우리한테 백만 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서 그렇게 가볍게 다루세요? 그 돈은 돌아오지 않아요."
남숙은 단언했다. 남숙의 말대로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박 성출씨는 보험을 들어 달라고 추근추근 찾아오는 조 근식씨 부인을 유력하다는 어떤 사람에게 소개해 주었다. 조 근식씨 부인은 박 성출씨가 소개해 준 그 유력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당신 마음대루 하두룩 가게를 맡길 수가 없어요. 이제부터 돈은 내가 관리하겠어요. 그리구 당신 몹시 피로하신 거 같아요. 당분간 쉬도록 하세요. "
남숙이 남편에게 보낸 최후통첩이었다.
"남쪽이나 동쪽 바다가에 가서 한 일주일 시원한 바람이나 쏘이다가 오세요. "
아내가 한 말이었다, 남편을 시험하는 장난을 벌이려고 밤중에 집을 뛰쳐나온 순애를 호통쳐 돌려보낸 순구의 용기 있는 행동의 대가로 아내가 보내 주는 여행이 아니라 순구 스스로 결정해 떠나온 여행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증거로 그는 동쪽이나 남쪽의 바닷가가 아니라 북쪽 내륙지방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아내는 그가 북쪽으로 여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북쪽은 그의 고향이 있는 방향이었고. 그가 북쪽으로 향하는 것은 고향을 의식한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순애와 조 근식을 여전히 마음속에 담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순구가 여행을 사고 있는 동안 아내는 그들의 거처를 옮겨 놓을 것이다. 순애와 조 근식이 찾아오기 어렵도록 하기 위한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감으로서 순구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정리되고 처리된 사람들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자는 의도가 배어 들어 있었다.
"시누이와 아주 절연하자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 시누이의 분방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누이가 깨달아 알 때까지, 시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체념으로 안정을 얻을 때까지, 그렇게 해서 오빠와 누이동생 사이에 정상적인 예절의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얼마동안 관계를 보류하자는 것뿐이에요. 더 늦어지기 전에 시누이를 제 분수를 알고 혼자 힘으로 서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으루 훈련시키자는 거예요."
아내가 말했다.
순구의 호통을 받고 노여워 허둥지둥 뛰어 달아난 순애가 그 길로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가기는 했을까. 실의에 잠겨 도시의 거리를, 또는 낯선 시골의 들판을 헤매다니는 순애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라 보였다.
버스는 포천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순애의 모습을 지워내며 창 밖을 내다보는 눈에 (삼팔선)의 표석이 걸려 들어왔다. 버스가 삼팔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삼팔선-순구는 별다른 감회에 젖어드는 자신을 느꼈다.
걸어서 넘나들던 삼팔선이었다, 해방 이듬해 어머니와 순애를 고향에 남겨두고 아버지를 따라 남쪽에 넘어온 순구는 방학을 이용해 일 년에 두 세 번 삼팔선을 넘어 어머니와 순애를 보러가곤 했었다
1946년만 해도 삼팔선 넘기가 수월했었다, 미아리 고개에는 북으로 가는 사람들을 삼팔선까지 실어다 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화물자동차가 늘 손님을 기다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차삯이 얼마였던가.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운 화물자동차는 의정부를 지나 포천읍에 이르러 사람들을 내려놓고는 북에서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태우고 되돌아가곤 했다,
포천읍에 내린 사람들은 삼팔선까지 걸어야 했다. 남쪽에서 삼팔선 넘나드는 사람을 검색하지 않았지만, 북쪽 경계선에서는 소련병정들이 따발총을 메고 서서 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몸을 뒤지곤 했다. 양담배 한두 갑이면 소련 병정들은 선선히 길을 틔어주곤 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엄하게 다스려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대강대강 넘겨주곤 했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면 여성동맹위원장 일을 보며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북에서도 출신성분이니 하는 것들을 요란하게 따지지 않았었다. 물론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짓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한 그 짓이 아버지의 병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왜정 때 고향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면서 땅도 수수하게 장만해 놓았는데, 해방이 되고 공산천하가 되면서 정미소와 땅을 몰수당해 살고 있는 집 한 채 이외에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한데 이상한 노릇은 공산주의자들이 소규모이긴 했지만 -자본가와 지주-로 주목해 재산을 몰수한 사람의 부인을 여성동맹위원장 자리에 앉힌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죄질이 가벼워 정미소와 땅을 몰수당한 것으로 죄 갚음이 끝나 살던 집 한 채를 그냥 남겨 주었을 정도이니 그 부인이 여성동맹위원장이 되었기로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공산당들이 일부러 어머니를 끌어 내 아버지를 더욱 모욕 주려고 꾸민 노릇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아직 공산체계가 틀이 잡히지 않은 과도기여서 어머니의 지식을 공산주의자들이 잠시 이용해먹은 데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의처증이 발병한 것은 어머니가 여성동맹위원장이 되어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부터였다. 어머니가 여성동맹 일을 봐주고 벌어오는 곡식으로 밥을 지어먹으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정을 통하고 있는 어떤 자와 짜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밥에 독약을 뿌렸을 거라며 어머니에게 아버지 밥을 먼저 먹어보게 하곤 했다. 어느 날은 폭약이 밥그릇 맨 아래쪽에 들었을 거라며 밥그릇 맨 아래쪽의 밥을 어머니에게 먹어 보도록 하기도 했다.
이윽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혼을 강요했고, 어머니는 부득이 응하고 말았다.
순구가 삼팔선을 넘어 고향에 가 어머니를 만나면
"느이 아부지가 가보라구 하던?"
어머니는 묻곤 했다. 어머니는 그동안 아버지 병이 나아 어머니를 다시 불러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을까.
1947년부터는 삼팔선의 경계태세가 엄해져 숨어서 산길로 넘어 다녀야 했고, 1948년에는 경비가 더욱 심해져 순구는 이윽고 삼팔선 넘나드는 일을 단념해야 했다.
순구가 다시 어머니를 만난 것은 6.25전쟁이 나던 해였다. 공산군이 남침했다가 패퇴하고 국군이 삼팔선을 돌파해 북쪽 땅을 수복하던 그 가을 순구는 지체 않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순구를 안았다.
"느이 아부지가 가보라구 하던?
어머니는 몇 해 전에 했던 똑같은 말을 맨 먼저 꺼냈다. 어머니는 몸이 병들어 있는 것 같았다. 얼굴에 병색이 짙었다. 이제는 아버지를 버리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서 살리라.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먹으며 어머니 곁에서 몇 해만의 귀향을 만끽했다.
하지만 고향에 머물러 있던 기간은 기껏 한달 남짓이었다. 중공군의 침입으로 유엔군이 후퇴하면서 순구도 다시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함께 남쪽으로 가시지요. "
순구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듭 간청해도 어머니는 번번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정 그렇거든 순애나 데려가려므나. 난 몸이 아파서 순애를 돌봐 주기가 힘들 것 같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내년 봄에는 다시 고향에 오게 될 거예요."
순구는 순애를 업고 고향을 떠났다. 혼자 사는 갓났을 적 순애 유모가 순구와 순애의 뒤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에게 순애가 아버지 딸임을 설득하고야 말리라. 그래야 어머니고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순애의 나이 아홉 살 순구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아버지가 순애를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모가 순애를 데리고 눈에 띄지 않게 주위를 빙빙 돌았다. 피난도 그렇게 떠났다가 돌아왔다.
유모가 개가를 하자 순애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순애를 고아원에서 래차온 것은 순구가 군에서 제대하고 나와 취직을 하고서였다. 순구는 방 한 칸을 얻어 순애를 자취하도록 했다. 순애는 사무실 사환, 상점 점원, 공장 직공 노릇을 하며 다른 도시로 가 살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길고 긴 순애의 외롭고 아픈 방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는가. 아직도 순애는 방황하고 있으니 말이었다.
버스가 와수리에 닿은 것은 일곱 시였다. 예상보다 번화한 거리가 눈앞에 황혼을 맞으며 펼쳐져 있었다. 휴전선을 지척에 둔 곳에 이만한 거리가 세워져 있다니. 불이 켜지고 있는 거리를 놀라운 눈으로 둘러보던 순구는 거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 안 가 거리는 끝나고 눈앞에 산이 막아 서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고향 땅에 가까이 와 있었지만 객수(客愁)가 진하게 몸을 휘감아 뫘다. 너무 오래 고향에서 떨어져 살아온 때문일까. 아니면 바람 속에 풍겨오는 고향 냄새가 그 동안 억눌려 있던 객수를 풀어놓은 것일까.
날이 저물고 북녘 하늘이 '어둠에 묻혀가고 있었다. 순구는 뒤돌아 서서 여관을 찾아 걸음을 옮겨 놓았다. 불켜진 아크릴 여관 간판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뿌옇게 떠올라 있었다.
우선 좀 쉬자. 그리고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순구는 여관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며 생각했다.
어머니의 기일(忌日)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을 때에야 나는 걱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고소에 가 볼 생각을 했다.
"샘골을 떠나오구 나서 한 번두 내 친정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지를 못했구나."
돌아가실 무렵해서 어머니는 자주 이런 말을 했었다. 그 일이 마음에 걸리고 맺히는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내년부터는 계가 한식하구 추석 성모를 꼭꼭 하겠어요."
"올해는 추석이 지났구나. 산소에 제때 풀이나 깎아 주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추석이 지나고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해가 바뀌어 청명(淸明)을 맞게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 산소에는 가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는 가지 못했다. 지난 추석에도 그랬다.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는 성묘를 갔으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는 성모를 가지 못했다. 이백 리나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야말로 샘골을 떠나온 지 삼십 년이 가까운 세월에 단 한 해도 잊어버린 채
넘긴 적이 없으면서, 그렇게 잊지 못할 무엇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선뜻 샘골을 찾아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일주기가 다가오면서 나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하지 않고는 어머니 젯상 앞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강박 관념애 사로 잡혀갔다.
이윽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녀오자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차편을 알아보았다. 처음 외가애 갈 때는 기차를 이용했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애 가 내려, 수원과 여주 사이를 운행하는 기차로 갈아탔었다, 수원 여주 사이의 철로는 협궤여서 기차도 경부선이나 호남선 것보다 조그마했었다. 그 기차로 백 리쯤 달려가 이천 땅에 있는 간이역에 내려. 걸어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외가에 이르를 수 있었다. 그 수원 여주 사이의 협궤 철도가 철거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것도 아득한 옛일 같기만 했다.
동마장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오전에 한번토후에 한번 샘골 앞을 지나는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나는 술 한 병과 북어포를 싸들고 오전 버스에 올라탔다. 당일로 다녀올 생각이었다. 샘골에는 작은 외할아버지네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작은 외할아버지의 두 아들인 큰 외당숙과 작은 외당숙은 사변통에 집을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았고, 십여 년 전 작은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몇 다리 건너 전해 들은 이후 십여 년 전 샘골과는 소식이 끊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외당숙과 가족들이 살고 있지 않은 샘골을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샘골을 떠올릴 때면 그들이 함께 떠올라 보였다.
떠나온 지 삼십 년이 가깝도록 한번도 샘골에 다니러 가지 않았던 것은 따지고 보면 그들이 거기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낯익은 산천이 그리울 때면 샘골을 생각하곤 했지만 그들의 얼굴이 앞을 막아서곤 했다. 그들과 대하고 설 생각이 내 충동과 욕구를 꺾어 눕히는 것이었다. 지난 일들이 서로의 감정을 얼쑹덜쑹 물들이고 자극적으로 변한 감정의 색깔들이 잠든 옛찌꺼기들을 부글부글 끓어 일으키게 할 것 같았다. 열 오른 혐오감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죄의식은 또 무엇일까.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참견을 하며 끼어 드는 그 알 수 없는 사념의 꼬투리를 캐내려고 묵은 기억의 갈피들을 들쑤석거리곤 했었다.
두 시간 넘게 달려온 버스가 이윽고 샘골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자 내 가슴에는 초가을 살랑바람처럼 가벼운 설레임이 일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샘골을 떠나느라 넘었던 이 고개를 사십이 지나서야 찾아와 되넘는다. 차창 밖으로 수암산의 뒷모습이 낯설게 쳐다보였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어쩌다 쳐다보는 수암산 뒤통수는 낯설기만 했었다, 낯익은 산의 뒷모습은 어디서고 낯설게 마련인 모양이었다.
칭얼거리며 비탈길을 굽이굽이 휘어 오르던 완행 버스가 고개 마루에 이르러 쉬어가려는 듯 멈춰 섰다. 시야가 탁 트이며 저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건너 장벽처럼 막아선 팔봉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옛모습 그대로 하늘을 찌르며 솟아 있었다, 넋을 잃은 듯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듯 정신을 차렸다.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 질러 차를 세웠다. 투덜거리는 차장에게 멋 적은 웃음을 만들어 보내며 뛰어내리듯 버스에서 내렸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산소가 수암산 등성이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지나쳐 갈 뻔했던 것이다. 산등성이 너머란 샘골에서 하는 소리였다. 수암산 봉우리에서 가파르게 처져 내리던 등성이 줄기가 고개 가까이 이르러 비탈이 확 건이며 평지처럼 밋밋해지는데 그 밋밋해진 등성이를 넘어서면서부터 고개 가까이 까지의 내리막 두 정보가 외할아버지네 산이었다. 객사한 시신은 집안에 들이는 법이 아니래서 대문 밖 타작 마당 한 옆에 차려 놓은 빈소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먼저 간 외할머니의 뒤를 따라 이 고갯길을 오르던 외할아버지의 상여 모습이 떠올라 보였다.
샘골에서부터 외할아버지의 산소에 오르기로 한다면 고갯마루는 반을 훨씬 못 올라와 있는 자리였다. 샘골에 들릴 것도 없이 혼자 산에 올라 외할아버지 내외분 산소에 절을 하고 슬그머니 되돌아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고개 길을 벗어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메마르고 서늘한 바람이 풀섶을 헤치고 돌며 물기와 푸른색을 야금야금 걷어 가고 있었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기름기가 빠져 버스럭거렸다. 산은 삼십 년 전의 민둥산이 아니고 비탈마다 몇 길 되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더욱 후미져 보이는 골짜기를 타고 비탈을 오르며 휘휘한 느낌마저 들었다. 샘골을 떠나기 전 외할아버지 산소에 하직 인사를 드리겠다며 나를 앞세워 이 골짜기 길을 오르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산소에 정성 들여 절을 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도 이제 고인이 되어 땅에 묻혔다. 허지만 생전에 그토록 친정 부모를 못 잊어 했으니 땅애 묻힌 지금도 그리움은 풀리지 않고 한으로 맺혀 허공을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정착한 십 년 동안 어머니는 겨우 세 번 친정에 다니러 갔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누워지내다시피 했다. 가슴이 뛰고 숨이 차다든가, 사지 끝에 맥이 탁 풀려 온몸이 나른하다든가, 먹은 것이 체했다든가 해서 늘 앓고 있는 빛이었다. 겨울이면 감기가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몸이 좀체로 병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까닭이 몸에 맞지 않는 기후와 토질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내 고향은 겨울이 긴 고장이었다. 십일월에 접어들면 벌써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 일쑤였다. 어머니는 이마가 시리고 뒷골이 싸늘하다면서 융 수건으로 이마와 머 리를 감싸 두르고 칩거(蟄居)하듯 겨울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랫목에는 두툼한 솜이불이 늘 깔려 있고, 어머니는 선뜩하도록 찬 손으로 이불 속 방바닥을 더듬어 보면서
"방바닥이 뜨겁지를 않구 미지근하다. 아궁지에 불 많이 지펴라."
수양딸애한테 이렇게 이르곤 했다. 뒤란에서는 힘을 주느라 쉿! 쉿! 하며 장작 뻐개는 소리가 들리고, 방 윗목 전기 곤로 위의 물주전자 뚜껑이 증기를 뿜어내느라 픽픽 소리내며 들썩거렸다. 어머니는 속이 써늘하다면서 끓는 물로 가끔가끔 꿀물을 타 후룩후룩 들여 마시곤 했다, 그러고서도 어머니는 두 겹으로 문풍지를 해 붙인 문틈으로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성화였다.
겨우 내내 어머니는 남쪽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높고 가파른 산들이 눈앞을 막아 바싹바싹 다가서 있는 그 고장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내려 덮인 눈 위로 칼날 같은 눈보라를 일으키며 휘몰아치는 바람이 매서웠다. 추위가 밀어닥친 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입에서는
"영하 이십 오도야."
하는 말이 뿜어져 나오는 입김처럼 허옇게 얼었다가 부서지며 흩어졌다.
"난 남쪽에 가서 살아야지 이 고장에서 뭉기적거리다가는 제 명대루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어머니는 호소하듯 아버지에게 말했다.
"흥, 남쪽 사람이 북쪽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소리 못 들었네. 여기서 제 명까지 못 사는 사람이면 다른 고장에 가서두 똑같이 제 명까지 못사는 법이야."
아버지는 오랜 객지 생활 끝에 돌아와 정착한 고향에서 떠나 살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
"그럼 말이우, 겨울 동안만이라두 남쪽에 가서 지내두룩 합시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 어디 간들 내집처럼 편한 데가 있을 줄 알아! "
"그럼 애들 데리구 나 혼자 친정 가서 겨울 나구 올께요."
"그 말 같지두 않은 소리는 인제 그만두자구."
아버지는 높고 가파른 고향 산들처럼 앞을 막아서서 어머니의 호소를 넘겨 냈다.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내고, 한숨을 쉬곤 하다가 남쪽 고장 이야기를 꺼내 놓곤 했다. 어느 해 봄인가 친정에 다니러 갔었는데, 떠날 때 이 고장에는 아직 산 눈도 다 녹지 않은 것을 보았는데. 이튿날 그 고장에 닿아 보니 펀한 들판에 봄 풀이 담요처럼 깔리고. 밭에는 푸성귀가 자라고 있더라는 것이다.
"여기하고 거기는 딴 세상이더라니까."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 남쪽 고장과 친정이 연관되어 떠오르다가 이윽고 동의어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상 어머니가 남쪽 고장을 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오랜 기간 친정에 다니러 가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라기보다는 고된 여행을 감당하기 어려운 어머니의 약한 몸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고향은 함경도 가까운 강원도 북쪽이었고, 어머니의 친정은 충청도에 가까운 경기도 남쪽이었다. 차를 네 번이나 타야 하고, 중간에서 하룻밤 자야 가 닿을 수 있고, 그래서 어머니가 여간해서 길 떠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육백 리 길 저쪽에 있는 외가집을 상상해 볼 때마다 어린 내 마음에도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을 일으켜 주어, 좀체로 가볼 수 없는 먼 외국이라도 되는 듯한 생각이 들곤 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둘째 딸인 내 여동생을 몇 해 동안 친정에 맡긴 일이 있었다. 그 애가 태어나고 나서 점을 쳐 보니 세살 이후 삼년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명이 길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댄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애를 보고 싶을 때 쉽사리 찾아가 보거나 데려다 볼 수 없는 먼 친정으로 굳이 보내 버린 것은 당신이 가지 못하는 친정에 당신을 대신해서 어린 딸이나마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삼팔선이 생겨 남북의 교통이 두절되기까지 수양딸 가운데 한 명은 꼭꼭 친정 어머니의 소개로 친정 근처에서 구해다가 두곤 한 것도 비슷한 심정에서였을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친정을 유별나게 못 잊어한 데는 북쪽의 추운 기후가 싫다거나 친정 부모를 향한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서서 죄스러운 마음이 스며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친정 아버지, 그러니까 내 외할아버지의 원 고향은 충청도인데 왜정 때에 보통학교 훈도(訓導)가 되어 경기도와 황해도의 이 고을 저 고을의 학교로 옮겨 다니다가 은퇴하여 땅을 장만하고 정착한 곳이 충청도에 가까운 경기도 땅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슬하에 단지 남매를 두었다가 다 키운 아들을 병으로 잃어버리고, 하나 있는 딸을 북쪽 강원도로 시집 보낸 뒤로 두 내외분만이 호젓하게 살아 왔다는 것이다. 아들도 없이 두 내외분만 살아가는 친정 부모를 가끔 찾아 뵙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어머니는 늘 마음에 걸려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틈 있을 적마다 우리들에게도 따뜻한 남쪽 고장과 외가집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때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웃음이 피어나 번지고, 눈은 먼 나라를 꿈꾸는 듯 몽롱하게 빛났다, 어느덧 나도 따뜻한 남쪽 고장과 외가집을 그리워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마치 내가 직접 가서 보고 오기라도 한 듯 따뜻한 남쪽 고장과 외가집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며 남쪽으로 눈길을 보내면 높고 가파른 산이 내 눈길을 막아서서 솟아 있곤 했다.
우리 집과 외가 사이 육백 리 길을 편지만 오고 갔다. 내 기억에 단지 두 번, 어머니가 마치 엄두를 못 내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 길을 거슬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우리 고향집을 찾아왔었다, 딸네 집에 다니러 올 겸 금강산 구경도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땐가 어머니가 누워 앓고 있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뭐라고 아버지를 일러 바쳤다. 외할머니는 대뜸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뒷잔등을 주먹으로 두서너 번 후려치며 호령을 했다. 아버지가 장모한테 얻어맞으며 겸연쩍게 웃던 일이 생각난다.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막히자 우리 고향집과 외가 사이에는 사람의 왕래도 편지 왕래도 끊어지고 말았다. 얼마 동안 서로 소식이 끊어진 채 지내야 했었다. 그 사이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고향에서 쫓겨나 삼팔선을 넘어와 보니 외할머니는 안 계시고 대신 대청마루 안침 구석에 궤연만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가 궤연 앞에 엎드려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마루를 두드리며 몸부림쳐 울었다.
산등성이 가까이 올라 외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을 법한 곳을 바라보니 윗 쪽에 둘 아랫쪽에 둘 봉분이 넷이 있었다. 비석도 세워지지 않은 봉분들이었다. 어느 쪽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봉분일까. 하지만 나는 봉분 둘은 작은 외할아버지와 작은 외할머니가 그 밑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윗쪽에 있는 것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봉분일 것이었다. 빈 자리가 많은 터에 아우의 산소를 형의 산소 이마 위에 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가가면서 보니 산소에는 풀이 수부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통분에도 그 주위에도 풀이 엉망으로 자라 있었다. 잔디뿐이 아니었다. 아니 잡풀들이 잔디 틈을 비집고 파고들어 잔디를 짓누르고 밀어내며 저희끼리, 헝크러져, 번성하고 있었다, 임자 없이 버려진 무덤의 꼬락서니였다. 지난 여름뿐만 아니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몇 년 내내 찾아온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윗쪽 무덤, 아랫쪽 무덤, 외할아버지 두 형제 내외분들의 무덤이 하나같이 버려져 있었다. 외당숙네 식구들이 샘골을 떠나 버렸구나, 그것도 멀리 떠나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왔다.
삼십 년이 가깝도록 내가 외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지 않은 까닭의 하나는 산소를 돌봐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샘골을 떠날 때 산과 집과 텃밭을 비롯해서 집에 딸린 넓은 터를 큰외당숙의 둘째아들 앞으로 물려주었었다. 이름이 수환이라고 했던가, 주환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떠날 때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이었으니까 지금은 서른 대여섯 살의 장년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수환이가 외할아버지의 양손이 되어 외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 쪽에서 스스로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양할아버지의 산소뿐만 아니라 친할아버지의 산소도 버려 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나는 샘골로 내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외당숙네 소식을 알아보는 일이 아니라도 일꾼을 사서 산소의 풀을 베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일꾼을 구할 수가 없다면 낫을 빌려다가 나라도 금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외할아버지 형제 내외분들 무덤에 세 번 반씩 절을 하고는 올라오던 길로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개 마루에서 잠시 멈춰 서서 들 건너 팔봉산 봉우리들을 바라본 뒤 걸음을 옮겨 고갯길을 내려갔다.
외할아버지네 집은 수암산 오른쪽 산부리가 뻗어내려 이룬 산자락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동네 어귀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빤히 올려다 보이는 자리였지만 그 전이나 지금이나 텃밭가로 촘촘하게 둘러서 있는 무성한 과일나무 잎에 가려져 집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려져서 바깥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집이 좋다더구만."
외할아버지라든가 작은 외할아버지가 한 말이었다. 어떻게 좋은가요?
"이런 집이 복 있는 집이래여.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일 테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집에 살았대서 복을 받은 집안은 없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그 집에서 살았고, 작은 외할아버지와 큰 외당숙이 그 집에서 살았다. 그 어느 집안도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복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 집이 사시장철 가려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뭇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겨울이면 그 집은 몸뚱이를 밖으로 온통 드러내 보이곤 했다.
동네 우물도 제 자리에 있었다. 나는 우물 옆을 지나 낯익은 비탈길을 걸어 을라갔다. 집 앞에 서거 나를 쳐다보는 사람, 나와 엇갈려 지나가는 사람. 누구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 동안 너무 긴 세월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마음은 개운했다. 나를 알아보는 동네 사람이 있다면
"여긴 뭣하러 왔오? 외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한 번 안 오던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이윽고 낯익은 갈림길이 나섰다. 나는 방향을 꺾었다. 이제 모퉁이 하나만 돌아가면 그 집이었다. 나는 빗을 꺼내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모퉁이를 돌아갔다. 눈앞이 트이고 그 집이 보였다. 나는 우뚝 멈춰 섰다,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시 그 집을 바라보았다. 사랑채가 있던 자리에 마른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내 마음 한 모퉁이를 버터 주던 축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하는 듯. 나는 지금 엉뚱한 장소에 와 있는 거야, 하고 중얼거려 보았다. 낯익은 텃밭에는 김장 채소가 자라고, 텃밭 둘레에도 그 시절 그 모습대로 감나무와 대추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없어진 것은 집의 바깥채뿐이었다. 집의 원 모습은 ㄴ자로 된 건물 두 채가 각각 두 끝을 마주댈 듯 대각선으로 마주서서 집 한 채를 이룩해 놓은, 그러니까 두 귀퉁이가 트인 입구자 집이었다. 터를 돋우어 높직하게 세워놓은 안채는 부엌과 안방과 대청과 건넌방으로 되어 있고, 안채에 비해 나직한 사랑채는 문간방과 대문간과 사랑방으로, 그리고 거기 꺾여 잇대어 외양간, 헛간. 광, 디딜방아간으로 되어 있었다. 그 바깥채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엉성한 마른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는 것이다. 사랑채에 격식 갖춰 달아 놓은 대문 대신 사립문이 울타리에 달랑 붙은 채 반쯤 열려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은퇴하고 여생을 보낼 집을 물색할 때 필수 조건이 사랑채 달린 집이었댄다. 외할아버지는 늘그막에 사랑방 차지하고, 친구를 맞아들여 글 짓고, 시 옳고, 술잔 권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삼팔선을 넘어 외가에 와 보니 외할아버지는 안채를 쓰고, 작은 외할아버지는 사랑채를 쓰고, 이렇게 형제분이 한집에서 딴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형제분이 이렇게 한집에서 살아가기는 해방 전 왜정 말기부터였다고 했다.
"어려서 느이 외할아버지는 공부를 좋아했는데 느이 작은 외할아버지는 죽어라 공부하기를 싫어했다는구나. 두 분의 아버님, 그러니까 내게는 할아버지가 되시지. 할아버지는 두 아드님한테 똑같이 공부를 시키시려구 하셨지만 작은 아드님은 막무가내루 공부를 안 했다지. 매를 때려 보기두 하구. 밥을 굶겨 보기두 하구, 골방에 가둬놔 보기두 하구. 대문 밖 나무 둥치에 묶어 밤을 새우게두 해 보구, 별별 노릇을 다했지만 작은 아드님한테 글을 가르치실 수가 없었다는 거야. 그렇다구 때려 내쫓을 수두 없는 노릇.
에따 모르겠다, 니 팔자대루 살아가거라. 하구는 농사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대지. 그제서야 느이 작은할아버지, 잔뜩 찌그려 붙이구 댕기던 얼굴이 펴지구 화색이 돌면서 산과 들을 지게 지구 훨훨 날아댕기더랜다."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였다.
"외할아버지는 서울에 올라가 우리 나라 최초의 한성 사범학교를 마치고 보통학교 훈도가 되어 제 식구 거느리고 객지 생활을 했고, 작은할아버지는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지었다. 한데 외할아버지의 아버님 되시는 분은 선비였지만 부모에게서 몰려 받은 재산도 별로 지니지 못했던 모양이어서. 농사를 배워 농사꾼 된 작은 아드님에게 농사지어 제 식구 거느리고 살림 꾸려 갈 만한 땅뙈기를 남겨 주지 못했던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보통학교 훈도 노릇을 하며 그 월급으로 저축을 시작했고, 은퇴할 때를 대비해 고향과 처가 동네의 중간쯤에 땅을 사 놓기 시작했다. 땅을 물색해 사 주고 관리하는 일을 처가에서 해 주었지만, 정착할 마을을 골라 집을 장만하게 되자 작은 외할아버지의 가족을 데려다가 그 집에 살게 하면서 땅의 일부를 테 주어 농사를 짓게 했다. 그때까지 작은 외할아버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던 집도 없애버리고 집 한 간 없이 남의 땅을 소작해 살아오고 있었다.
"남의 땅 소작하는 셈 치구, 도조 바치는 푼수루 곡식 떼내어 놓았다가 내가 그리루 들어가기 전에 집 하나 따루 마련하두룩 해."
외할아버지는 아우님과 거기 딸린 식솔을 불라들이며 이렇게 다짐했댄다. 외할아버지는 은퇴한 뒤 읍내에 집 하나를 얻어 따로 살다가 왜정 말 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하자 살림을 정리해 가지고 아우님한테 맡겼던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한데 그때까지 작은 외할아버지는 집을 따로 장만하지 못한 채였다.
"둘째 애 살림 내놨지유. 딸 셋 시집 보냈지유."
작은 외할아버지의 변명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슬하에 단지 두 남매를 두었다가 아드님을 잃어버린 데 반해 작은 외할아버지는 죽은 자식은 치지 않고라도 키워낸 자식만도 삼남 삼녀가 된댄다.
"느이 작은 아버진가 뭔가 하는 작자 말이여. 평생 집 한간 땅 한 뙈기 제 힘으루 장만해 보지두 못하구 형님한테 얹혀 지냈으면서두 슬금슬금 자식 자랑 늘어놓는 꼬락서니라니 눈꼴 시어 못 보겠어. 공부했네. 돈 모아 땅 샀네, 아무리 그래봐야 다 헛수고구. 짜장 열매 거둔 건 자식 낳아 길러 논거니라, 하구 껍쩍대는 꼴이란 말이여."
외할머니가 우리 고향집에 다니러 왔을 때 몇 번이고 되풀이 되풀이 어머니에게 들려 준 말이라고 했다. 낳아 보지도 못한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없는 외할머니가 아들을 셋씩이나 거느린 시동생과 동서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외할머니는 아들을 낳고 싶어 무던히 애를 썼지만 남매를 낳은 뒤로 태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에게 양자를 들이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자기 아들 셋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장손이었다. 장손의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자기 자신은 물론 이고, 고향의 일가 친척들을 움직여 외할아버지에게 양자 들이기를 간청했다. 이상한 짓거리도 아니었고, 억지도 아니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풍속이 그랬고, 집안의 법도가 그랬고, 또 의당히 그래야 할 도리이기도 했다.
그런 풍속과 법도와 자리를 거역하고 나선 사람이 외할머니였다. 하기는 시댁의 일가 친척들과 정면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마주선 것은 아니었다.
"즈이 쥔이 친자식을 보두룩 해 보는 데까지 해보구 정 안되걸랑 그때 가서 양자를 들이지유 뭐."
우선 외할머니가 일가친척 어른들에게 한 말이었댄다. 그리고는 친척을 보란 듯이 남편의 자식을 낳아 줄 여자를 사람 놓아 떠들썩하게 물색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떠들쌕한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는 정말로 아이를 낳을 법한 젊은 여자를 찾아 데려다가 외할아버지에게 첩살림을 차려 주었다.
"그 동간 즈이 힘으루 살아 보겠다구 바둥대는 낌새가 뵈나 하구 샛눈 뜨구 지켜봤지. 논 한 마지기나 밭 한 뙈기만 늘쿠는 걸 봤어두 내 두말 않구 그 사람 세 아들 가운데서 한 놈 쑥 뽑아 내가지구 내 아들 삼았구말구. 헌디 늘쿠기는커녕 있는 재산이라는 것두 즈이 힘으루 장만한 게 아니구 형님이 애써 사 모은 것 중에서 떼 준 게 아니냔 말이여? 그리구는 한다는 소리가 기껏 지 자식으로 양자 들여 노라는 게니, 한평생 얹혀 살다시피 한 주제에 인제는 남이 힘들여 마련한 재산 통째루 들어먹자는 속셈으루밲이 더 여겨지냔 말여."
외할머니는 시동생 하는 것 미워 시앗 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투였다.
첩 살림을 차려주고 일 년이 자나도록 태기가 없자 외할머니는 첩을 떼어버리고 새 여자를 몰색해 들여앉혔다. 두번째 여자도 태기가 없었다. 여섯 달이 지나자 돌려보내고 세 번째 여자를 들여앉혔다, 그렇게 여자를 다섯 명이나 갈아서 들여앉혔다. 다섯 여자가 모두 태기가 없었다. 일가 사람들은 외할아버지의 몸에 씨가 말라 버린가 보다고 말하기도 했고, 외할머니가 애 못 낳는 여자만 골라다가 들여앉힌가 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수근거림이 귀에 들려오자 다섯 번째 여자를 돌려보내 버린 뒤 외할머니는 양자를 맞아들이겠다는 말을 일가 사람들 귀에 흘려 넣었다.
"우리 쥔이나 내 팔자에 아들은 없는가 봐유. 그러니 양자라두 얻어 대를 이어야지유. 인제 양자를 얻어 대 잇겠다구 마음 먹었으니께 서둘지들랑은 마세유. 아무 때 들여두 들일 양자니께유."
끝엣말은 일가 사람들이나 시동생의 입에서 나을 법한 말을 미리 뒤져어 말막음으로 한 것이었다. 아무 때고 양자는 맞아들일 테니까 대신 시일 재촉은 하지 말아라. 그쯤에서 타합이 이루어진 것처럼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읍내 살림을 정리해 가지고 시골집으로 옮겨 앉은 것은 그렇게 타합 같은 것이 이루어진 얼마 뒤였다. 외할아버지 내외분이 안채를 차지하고, 그때까지 안채를 쓰고 있던 작은 외할아버지네 식구들은 사랑채로 밀려나 작은 외할아버지 내외분은 문간방에, 큰외당숙네 식구들은 사랑방에 기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 안팎이 조용했다. 해맑은 가을볕이 슬레이트로 바꿔 안채 지황 위에, 나무 울타리 위에. 바깥 마당 위에, 텃밭 위에 한가로운 느낌마저 일으키며 골고루 내려 비치고 있었다. 가을빛은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나날이 얼어져 가면서 아쉬움은 오히려 두터워지고 짙어지곤 했다. 바깥 마당은 추수 태는 타작 마당으로 쓰였었다. 추수 때가 가까우면 진흙으로 콘크리트하듯 마당을 싸 발라 고르곤 했었다. 편편하고 매끈한 타작 마당 위로 일꾼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윙윙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고, 곡식알이 떨어져 구르며 쌓여 가곤 했었다. 타작 마당 한 옆, 외할아버지의 빈소가 차려졌던 자리에는 살구나무 그림자가 뭉툭하게 떨어져 있었다. 외할아버지 빈소 앞에 멍석을 깔고, 작은 외할아버지는 그 서늘한 밤을 꼬막 앉아 새우며 쉴새없이 장죽을 빨았었다. 장죽 물부리를 입 안에 끼워 둔 채
"망했어. 망했다니께."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뭔가 어지러운 생각에 깊숙이 빠져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면 정신이 빠져나가 멍청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작은 외할아버지의 두 아들이 제가끔 집을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장성한 아들 셋이 모두 집을 떠나갔다. 아들 하나는 왜정 때 징용에 끌려간 뒤 해방이 되고 몇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죽었을 테지. 작은 외할아버지는 그 아들을 마음속에서 부스럼딱지 떼어버리듯 밀어내 버린 참이었다. 생각지도 않던 난리가 나머지 두 아들을 어디론가 데려가 버렸다.
"진중하덜 못하구 촐랑촐랑 까불어 쌓더니, 어디 낯선 고장에서 논두렁 비구 뒈져두 할말 읎지 싸지 싸."
작은 외할아버지는 울화가 치밀 때마다 없는 아들들을 향해 욕을 퍼부어 대곤 했지만, 들
판가로 뻗어나간 신작로 위로 늘 넋 잃은 눈길을 보내며 아들들을 기다리는 빛이었다.
아들들은 돌아오지 않고 객사한 형님의 시신이 돌아와 마당가에 누워 있었다,
"망했어. 망했다니께."
작은 외할아버지는 누가 가서 말을 걸어도 한 두 번 가지고는 알아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이 되자 작은 외할아버지는 밤을 새운 피로도 잊은 듯 상제 얘기를 들고 나와 떠들어댔다. 상여 뒤를 따라갈 상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인이 친자식 친손자는 두지 못했지만 친조카 몸에서 나온 손자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상여 뒤에 상제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여든 일가 친척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안 적두 양자를 안 들이셨던가? "
이렇게 놀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큰 외당숙네 네 살 짜리 둘째 아들 수환이한테 입힐 상제 옷을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했다. 수환이는 큰 외당숙이 벌써부터 양손을 삼으라고 외할아버지에게 청을 넣던 아이였다. 조카들은 처자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다 늙어 가는 처지, 기왕에 양자를 들였으면 모르거니와 이제 새삼스럽게 조카를 양자로 맞아들이려면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일이 따를 테니 양자는 집어치우고 양손을 들이라며 천거한 아이가 큰외당숙 자신의 둘째 아들 수환이었다.
우리 식구가 외가집에 와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죽음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외할머니가 앓아 누운 지 사흘만에 돌아가셨는데 공교롭게도 큰 외당숙이 지어 온 약을 대려 먹고 난 직후 피를 토하고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약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어차피 돌아가실 병이었는지도 조르고. 지어 온 약이 운수 나쁘게도 병에 맞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이, 목격한 사람이나 전해 들은 사람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 줄 만한 것이었다. 그런 의심은 이웃간에도 은은히 번지고 있었던 터여서 어머니에게 귀띔을 해주는 이웃 사람도 있었다.
"이상해유. 명대루 사시다가 돌아가신 건지 알 수 읎다는 생각이 들 때두 있다니께유."
큰외당숙 자신도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갔다.
"큰어무니 병환이 예사로운 몸살 감기려니 하구 첫날과 둘째 날은 인동덩굴을 데려다가 디렸지유. 헌디 차도가 읎으시더란 말이유. 아니 이틀째 밤이 되니께 차도는커녕 열이 올라 온몸이 불뎅이처럼 달아오르는디 이거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버쩍 들데유. 밤은 깊어가겠다, 비는 그 날 따라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디 참말이지 막막하드구만유 그러니 우짜겠시유? 삿갓 쓰구 도롱이 두루구, 호롱불 켜 들구설랑 집을 나섰네유. 몰아치는 비바람에 몇 발작 내디디지 못해 호롱불은 파닥대더니 짓이겨져 꺼져 뻐리데유. 호롱불을 던져 뻐리구설랑 장님 실 더듬듯 더듬어 나갔지유. 그럭저럭 뒷고개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는디 비바람띠 휘몰려와 이번에는 삿갓을 훌쩍 뻬껴 버리데유. 아무리 더듬어두 간 곳이 읎데유. 그러니 젠장할 것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읎는 행펜에 비바람에 날려간 삿갓을 찾아낼 재간이 있어야지유? 엣다 모르것다. 삿갓 읎이 고개길을 추어 올라갔네유. 산사태처럼 허무러져 내리는 비에 삿갓 읎는 도롱이는 아무짝에두 쓸모읎는 물건이데유. 목 줄기를 타구 등때기루 가슴팍으루 흘러든 빗물이 잠뱅이 가랭이루 도랑물 흘르듯 흘러내리덜 않겄이유? 그까짓 거야 기왕지사 약과라구 치구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이 콧구멍을 막아서 숨을 쉴 수가 읎어 입을 벌리믄 입을 틀어막을 듯이 몰아닥쳐 꼭 물에 바져 허비적거리듯 허푸허푸 숨을 몰아쉬며 물살 혜쳐가듯 걸었다니께유. 그렇기 고개를 넘어 박 주부네 한약방에 찾아 들어간 게 자정이 가차워서였지유. 문을 뚜들겨 곤히 잠든 박 주부를 깨워가지구서루 잠을 설 깨 하품을 씹어대는 박 주부를 재촉해 약을 짓기는 했는디 여전하게 억수로 퍼붓는 빗속에 약종지를 추켜들구 나갈 수가 있어야지유. 안절부절못하구 있이니께 뵈기 딱했던지 박 주부가 씨오쟁이를 떼다가 속을 비워 주데유, 씨오쟁이 속에 한약첩을 싸구 또 싸구 해 집어 넣어가지구설랑 고개를 넘어 갈 때처럼 헤엄치듯 더듬듯 넘어왔구먼유.
그때 고생한 일 생각하믄 지금두 아찔해져유. 우쨌던 집에 오마자마 약을 대려가지구 큰 어무니 잡숫두룩 해디렸는디 지 정성을 하늘이 받아 주질 않았구만유. 박 주부가 선잠을 깨 하품을 깨물며 약을 짓느라구 몰르는 새 약 기운이 과해졌는지두 몰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들더구만서두, 발써 끝난 노릇 우짜겠이유? 큰어무니 명이 그뿐이라구 치부할 수밖에 더 있이유?
허기사 큰어무니 연세두 일흔이 넘으섯으니께 천수하신 거나 다름이 읎기두 하지만서두 말이유."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태워 없애려고 장롱 속에서 외할머니 옷을 꺼내는데 옷 갈피갈피마다 돈이 낑겨져 있었댄다. 장례비로 쓴 돈 메우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외할머니는 살림 규모가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다. 살림 규모뿐 아니라 집안의 어른 노릇도 외할아버지 제쳐놓고 도맡아해 외당숙들도 외할아버지보다 외할머니를 더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큰외당숙이 안전에서 술 주정을 가히 못 한 분이 외할머니 한 분뿐이었댄다. 외할머니는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작대기 집어들고 삼십 넘은 조카의 엉덩이고 장단지고 사정 두지 않고 후려쳤고, 시동생일지라도 촘촘히 따지고 들어 노랑이 형수로 불리웠다는 것이다.
큰 외당숙이 양자를 그만두고 양손을 들이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일 년쯤 전부터라고 했다. 처자식 주렁주렁 매달린 조카보다 어린아이를 양손으로 맞아들이는 쪽이 정도 더 가고 마음도 가볍지 않겠느냐는 큰 외당숙의 제의에
"기왕에 양자를 들여앉히는 일이라면 그쪽이 낫겠구만."
외할아버지가 이 정도로 찬성의 뜻을 표했댄다. 큰 외당숙은 외할아버지의 그 대답을 당장에 양손 맞아들이는 일을 허락한 것처럼 떠들어대려고 들었지만, 외할머니가 다시 가로막고 나섰다는 것이었다.
"안적 누구를 양손으루 삼겄다구 못 박을 건 읎어. 니 아들이 앞으루 몇이 더 태어날지 알 수 읎는 판에 누구를 들여 앉히겠다구 꼭 집어내 놀 게야 읎잖여?"
외할머니는 양손을 들인다면 큰외당숙의 자식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겠다는 얘기로도 알아들을 수 있을 법한 애매한 말로 장조카의 화살을 슬쩍 비껴가게 만들었다.
"큰아부지, 큰어무니. 그럼 양손은 지 자식 가운데서 하나를 맞아 들이시겠다구 승락하신 걸루 알겠이유."
큰 외당숙은 이렇게 다짐을 하고는 비껴 앉았다.
큰 외당숙과 작은 외숙당이 얼마 동안 서로 등을 돌리고 지낸 것도 그때부터였댄다. 하지만 큰 외당숙이 작은 외당숙을 무슨 소리로 구어 삶았는지 두 외당숙은 다시 화해를 했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뒤 어떻게 어떻게 나누어 가지자는 은밀한 약속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큰어무니가 우리 형제간에 쌈을 붙이셌지유. 지 앞에서 지 자식을 양손으루 들이겠노라구 말씸하시구는 지 아우 앞에서는 아우의 자식 가운디서 양손을 골라야 할 텐디 형이 지 자식을 꾸겨 박듯 디려민다구 하셌다는군유. 그 말씸을 들은 아우가 지 자식 몫을 내 자식이 억지루 뺏어 앉을란다구 생각하지 않겠처유? "
우리가 외가집에 온 뒤 큰외당숙이 외할아버지 양손 들이는 얘기를 어머니에게 하던 끝에 나온 말이었다.
외할머니의 애매한 태도에 잠시 비켜 앉았던 큰외당숙이 양손들이는 일을 가지고 다시 외할머니를 조르기 시작한 것은 삼팔선 북쪽에서 내노라 하고 지내던 사람들이 살던 고장에서 쫓겨나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부터였다. 외할머니는 잊었던 기억을 문득 되살려 내기라도 한 듯 딸네 가족의 월남을 기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이 갈수록 간절해 갔다.
"기차나 자동차가 통하는 것두 아니구, 걸어서 첩첩산을 넘구, 다리 걷어 붙이구 몇 번이구 강물을 건너야 한다는디 누님이 그 약한 몸을 해가지구설랑 삼팔선을 넘어오실 수 있을 것 같으세유? 누님은 통일돼서 기차 타구서야 넘어와두 넘어오실 테니께 통일될 때까장 잘 있으라구 빌기나 허세유. 큰어무니, "
큰외당숙이 되풀이해 말했댄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마음은 딸네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느라 나날이 목이 늘어가기만 했다, 외할머니가 병이 들어가지고 갑자기 세상 떠난 것이 공교롭게도 그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집 주위는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아이들도 어른거리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들로 새를 쫓으러 갔는지도 모른다. 문득
"우야-워-이"
하고 새 쫓는 소리가 들판 쪽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환청일지도 모른다. 복닥거리는 도시를 빠져 나와 별안간 시골의 고요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잡다한 환청이 귀를 농락하곤 했다, 햇볕 쏟아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올지도 모른다. 들려 오는 닭 울음소리도 환청일까. 환청은 아닐지라도 시골의 고요를 더욱 짙게 해 환청을 유발해 놓을 것 같았다.
나는 마른 나무울타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해맑은 가을볕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무 울타리가 사라지로 그 자리에 집이 서 있었다. 사랑 마루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큰외당숙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서 큰외당숙모는 맷돌질을 하고 있었고 아이를 업은 작은 외할머니가 대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다리에 앙상한 가슴에 머리통과 배만 큰 아이들도 보였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들에 일하러 나갔기 때문이리라. 소리가 들려 왔다. 맷돌질하는 소리, 아이를 잠재우는 노파의 자장가 소리, 머리통과 배만 큰 아이들이 칭얼거리는 소리, 큰외당숙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생각에 깊숙이 잠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집은 간 곳 없고, 가을볕을 받고 있는 마른나무 울타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았다. 또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았다. 바깥채는 사라지고 얼었오 마른나무 울타리가 되돌아와 마주선 현실인 양 초라하게 서 있었다. 마치 전생의 기억이 내 눈앞에서 비누 방울처럼 잠시 부풀어올랐다가 꺼져 버린 기분이었다. 무지룩한 아픔이 가슴속을 쓸며 지나갔다. 외가집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슬며시 고개를 쳐들곤 하던 막연한 죄의식의 정체란 바로 저 사라져 버린 바깥 왜였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떠을랐다. 나는 저 바깥채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저주한 적이 있었다. 그 저주가 광활한 우주의 허공 속으로 풀어져 녹아 없어지지를 않고 똘똘 뭉쳐 샘골의 좁은 하늘을 떠돌아다니다가 기어이 외가집 바깥채를 쳐 넘어뜨린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외가집에 와서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우리 식구가 남의 영역을 침입했을지도 모른다는 미묘한 갈등 속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형제분은 한집안에 살고는 있었지만 각기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사랑채서 큰 아들네 식솔을 거느리고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외할아버지는 안채에서 일꾼을 두고 별도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왜정 말기 읍내 살림을 정리해 가지고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놀고 지내기가 심심할 것 같아 소작인들에게 주었던 땅을 얼마쯤 돌려 받아 소 사고 일꾼 두어 농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물과 디딜방아와 대문과 타작 마당만 같이 샜을 뿐. 변소도 부엌도 텃밭도 닭의 우리도 따로따로였고. 과일나무까지도 몇 그루 사랑채 것으로 몫이 지어져 있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구분을 해 놓았댄다, 한집 울타리 안에서 아침 저녁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는 것뿐 제가끔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채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구분이 명확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서로의 경계가 뒤숭숭하게 헝크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누님네 식구들이 예서 아주 살려구 오신 겐가. 아니믄 임시루 묵다가 언제구 떠나가실 겐가? 이렇기 자꾸 동네 사람덜이 내게 무는 디 뭬라구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이유."
외가집에 온 지 한 달쯤되었을까, 어느 날 큰외당숙이 안채에 들어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던 끝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금세 흔적도 없이 날아갈 버릴 가벼운 말 한 마디 한다는 듯 입가에 반웃음 만들어 붙이고 꺼내 놓은 말이었다.
"고향에 대궐 같은 집에 벌판처럼 너른 땅이 있는 사람인데 남의 고향으루 아주 살러 오다니, 그 무슨 소린가? 동네 사람들이 또 묻거든 잠시 피난 와 묵구 있는 것뿐이라구 대답하게나."
아버지는 노 필요 이상으로 펄쩍 뛰듯 하며 말했다.
"허기사 큰아부지 재산이라야 매형님 재산에다 대믄 반의 반의 반두 왜 안 될 거예유. 그 많은 재산 고향에 놔두구설랑 처가살이 하실 매형님이 아니시쥬. "
큰외당숙은 마음이 얼마쯤 가벼워졌다는 듯 소리내어 해해거리며 웃고 나서,
"헌디 그눔의 삼팔선이 쉬 깨질라나유?
웃음을 걷으며 물었다.
"한 나라 한 백성을 두 쪼각으로 갈라 논게 삼팔선인데 그게 오래 갈 수가 있을 것 같은가?"
아버지는 희망과 자위와 사촌 처남에 대한 고려를 뒤섞여 말했다
"쏘련눔덜은 겨눔이나 왜놈들보담두 더 억시어빠졌다는디 입에 물었던 땅뗑이를 선선히 뱉아 놓구는 그렇게 문문하기 물러설라구 할까유? 모르겠네유."
큰외당숙은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기우뚱거리고 눈을 섬뻑거리며 물었다.
"미국은 원자탄을 가졌구 쏘련은 못 가졌어. 재 아무리 쏘련눔덜이 억세기루 원자탄 가진 미국을 당할 수가 있겠나?"
"그두 그렇구만유. 헌디 미국 사람덜은 승질이 너무 느긋한개비유. 쏘련 눔덜한티 느 나라 울타리 안으루 냉큼 물러가라구 꽝 호령을 치지 않구서리 마냥 내베려 두는 까닭을 모르겄구만유."
"원자탄을 가졌으니까 급할 게 없다구 생각하구 있는지두 모르지. "
"즈이덜 급할 기 읎다구 마냥 발뻗구 앉아만 있으믄 우떻기 히어? 이 나라 백성들 마음 급한 것두 생각해 주어야지. 원, 쯧쯧."
큰외당숙은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두 무릎을 발딱 일으켜 세워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일이 년 후면 되겠지. 나두 일이 년 후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게라구 맘 먹구 있으니까."
"일이 년 뒤면 짱말 그눔으 삼팔선이 터질래나유?"
"달근이,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나라 걱정을 하기 시작했나?"
어머니가 농담하듯 끼어 들었다.
"나라 걱정두 걱정이지만 그보담두 전 매형님이 그 많은 재산 팽개쳐 두구 오신 기 안타까붜서 그리유."
큰외당숙이 어머니한테 알랑거리듯 대꾸했다.
"어쨌든 고맙네. "
어머니의 말속에는 비꼬임이 숨겨져 있었다.
"일이 년 뒤 내 고향 돌아가 재산 되찾아 가지구 방석처럼 깔구 앉아있을 테니 자네 금강산 구경하러 오게나."
아버지가 말했다.
"금강산 구경 조오치유. 매형님 고향집 찾아가다마다유."
큰외당숙은 얼굴빛이 화락 풀려 뻘건 눈빛까지도 부드러워져 가지고는 새삼스럽게 객지에서 지내시기가 여러 가지로 고생스러우시겠다느니 어쩌시겠다느니 해해거리며 인사를 하고는 사랑채로 나갔다.
"당신 달근이한테 일이 년 뒤면 고향에 돌아가게 된다는 말 자꾸 되풀이하지 말아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말했다.
"그 말이 어때서?"
아버지는 영문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렇게 큰소리 치다가 일이 년 뒤에두 고향 가게 안 되면 어떻게 할려구 그래요?"
"무슨 소리야? 일이 년 뒤에는 고향 가게 돼야지 못 가게 된다는 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별안간 고향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는 듯 짜증 섞어 말했다.
"그러니 그런 일이 당신 맘대루 풀려요? 갈 전 가더라두 미리 말 앞세울 건 없단 얘기예요."
어머니가 타이르듯 말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큰외당숙은 사흘 뒤 고개를 외로 꼬았다 바로 꼬았다 하며 다시 안채로 들어 왔다.
"구장말유. 유식한데다 신문두 대놓구 보겟다. 집에 라지오두 있겟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일에 눈밝구 귀밝은 사람인디, 그 사람 말인즉슨 삼팔선이 그렇기 쉽게 터질 것 같덜 않다는디유?"
큰되당숙은 들어와 앉자마자 아버지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뜸 그렇게 물었다. 큰외당숙의 눈망울에는 드러나 보이는 데까지 잔 핏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눈빛이 늘 붉어 보였다. 게다가 그 눈빛에 날이 서 있어서 모를 세우고 히딱 쌔려볼 때는 섬찍한 느낌이 들곤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구장 말이 옳은지 내 말이 옳은지 좌우간 두고 보면 알 테지."
아버지는 큰외당숙의 눈길을 외면하며 대꾸했다.
"전 매형님 말씀이 옳다구 우겼지유. 일이 년 뒤엔 고향에 돌아가게 될게라는 매형님 말씸두 그 사람한티 전했지유. 그 사람 저한테 하는 소리가, 자네 매형님은 일이 년 뒤가 아니라 한두 달 뒤에 고향에 돌아가구 싶으실 거여. 처가집에 눌러앉구 싶은 생각 쬐꼼도 읎다는 자네 매형님 말씸이 거짓말이 아녀. 헌디, 만일에, 만일에 말여, 삼팔선이 십 년, 이십 년, 아니 자네 매형님 생전에 뚫리지 않는대믄 자네 매형님두 처가집에 눌러앉을 수 밲이 더 있겠냐 말여? 하구 묻데유. 이렇게 묻는디 갑재기 대답할 말이 생각나덜 않데유. 그래 한참 꾸물대다가 대답했지유. 우리 매형님은 설사 삼팔선이 생전에 뚫리지 않는다 하더래두 처가집에 눌러앉을 분이 아녀. 지가 대답 잘 했나유, 매형님 ?"
"잘했네."
아버지가 대답했다,
"달근이, 자네 나라 걱정 매형 걱정하랴, 걱정할 일 많아서 자네 일은 할 틈이 없겠네 그래?"
어머니가 툭 쏘듯하며 끼어 들었다.
"죄꼬만 동네에 사람 뫼믄 할 얘기 음이니 처가집에 피난 온 매형님 얘기 나오기 매련이구, 동네 사람덜이 매형님 얘기 입에 올리니 전 또 매형님께 전해드리는 기구, 그뿐이지유 뭐, 누님."
큰외당숙은 뒷걸음치듯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또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게, 삼팔선 뚫리면 고향으루 가구, 뚫리지 않으면 여기 눌러앉아 산다더라구. 형편 돌아가는 데루 할 테니까 궁금할 것 없다구 전해."
"누님 저러실 땐 꼭 돌아가신 큰어무니 같다니께. 그 비러먹을 삼팔선은 원제나 뚫린대여, 그래?"
큰외당숙은 샐쭉해져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큰외당숙은 인사도 않고 입안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사랑채로 나갔다.
"뱃속에 들어 있는 거라구는 똥하구 공꺼 바라는 생각밖에 없는 녀석이 삼팔선 걱정은 혼자 다하는 것처럼 툭하면 입에 올리네."
큰외당숙 뒤통수에 주먹질이 라도 하듯 어머니가 말했다.
왜정 때 보통학교를 나온 큰외당숙 박 달근씨는 농사일을 배울 생각도 않고, 그렇다고 윗학교에 가 공부를 계속해 볼 생각도 없이 시골 저회집과 큰집을 일없이 왔다갔다 하며 빈들빈들 노는 것으로 세월을 보냈단다. 외삼촌이 전문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서울에 조그만 집 한 채를 장만했는데, 그것을 기화로 큰외당숙은 집 봐주고 잔심부름해 준답시고 아주 서울집에 와 살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잔심부름이라야 시켜두 고만 안 시켜두 고만 별루 할 일이 없었어. 일하기 싫으니까 핑계김에 서울 와서 공밥이나 먹구 거리 구경 댕기는 걸루 일을 삼았지 뭐."
그때부터 큰외당숙은 자기를 시골 사람 아닌 서울 사람으로 자처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서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시골 사람도 아니고 서울 사람도 아니고, 농사꾼도 못되고 월급쟁이도 못 되는 어중간한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전문학교에 다니던 외삼촌이 병들어 죽으면서 큰외당숙이 가슴에 엉뚱한 기대가 뿌리도 없이 싹터 자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즈이 아부지 어무니는 농사 짓는 동생이 뫼실테니께 전 큰아버지 큰어무니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믄서 살까벼유."
큰외당숙이 이러는 것을 서울 집 팔아버리고는 시골로 내려보냈댄다.
"시굴 내려가 장가 들었다기에 정신 차릴 테지 했더니 여전히 제 버릇 개 못 주구 농사일이구 여편네구 팽개쳐 두구 큰집 찾아와 열흘이구 보름이구 들엎드려서 빈들거리다가 내려가군 한다기에 더 두구 볼 것 없는 녀석이라구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 와서 보니 정말 한심스럽다. 저는 여편네 하구 아이나 만들고 자빠졌구, 숱한 식구 먹여 살리는 건 늙은 아버지한테 맡겨놓구,,,,,, 전에 우리 아버지가 가끔 말씀하셨었지. 너 공부하고 싶으면 해라. 학비는 대 주마. 그때 공부해 가지구 제 구실하게 됐으면 어머니 말씀마따나 아들 삼아 데리구 기시구 싶은 생각두 나셨을 테지. 일두 싫구, 공부도 싫구, 공밥이나 얻어먹으면서 노라리루 세월 보낼 생각만 하구 있었으니 누구 눈엔들 이뻐 보이겠어 ? 그것두 타고난 팔자라구 여지껏은 늙은 아버지가 일해 먹여 살렸지만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구 나면 자식들하구 어떻게 할 거야? 머슴 사경 주구 농사 지을 만큼 땅이 많은가, 늙은 아버지 대신 일해 줄 장성한 아들이 있기를 한가? 흥, 구데기두 생각은 있다구 달근이 녀석 그래서 큰아버지 재산을 노리는 모양인데 안 되지, 어림두 없지. 그 녀석 죽을 때까지 놀구 먹으라구 애써 모은 우리 아버지 재산을 넘겨 줘? 안될 소리지."
어머니는 마음속에 다짐하듯 고개를 홰홰 내둘렀다.
어머니 얘기를 듣고 주의해 보니 정말이지 농사일을 환갑 진갑 다 지난 작은 외할아버지가 도맡아했고, 큰 외당숙은 늘 빈들거리며 노는 빛이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공부를 안한 탓에 자식을 저 꼴로 만들었다고나 생각하는 것일까. 놀고 먹는 자식을 나무랄 생각도 않고 묵묵히 일만 했다.
큰 외당숙은 낮이면 방구석에 누워 지내다시피 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수건으로 이마를 동이고 있기도 했고, 허리가 아프다며 아이들에게 허리를 밟게 하기도 했다.
"우리 형님 병은 봄서부텀 가을까지 도졌다가 겨울 되은 나아유. 허리 병 같은 건 겨울에 도지는 법인디 우리 형님 허리 병은 거꾸루 겨울 되믄 멀쩡해진단 말여유."
작은 외당숙이 언젠가 한 말이었다. 겨울이 아니라도 저녁 때면 사랑 마루에 나와 앉았기도 하고 동네 길을 천천히 산책하기도 했다. 그럴 때 큰 외당숙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는 땅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 얼굴에 웃음이 비시시 번지기도 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도리질을 하며 입맛을 쩝쩝 다시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든 듯 다시 걸음을 옮겨 놓곤 했다. 일하지 않고 혼자 빈들거리는 시간에 큰 외당숙의 머리 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잦아들고 할 것이고, 스스로 이런저런 생각을 얽어 엮었다 풀어 해쳤다 하기도 할 것이다. 큰 외당숙은 밤중에도 마당을 거닐곤 했다. 낮 내내 방구석에 누워 있었으니 잠이 오지 않을 것이었다, 남 다 자는 시간이었지만 이 사람 저 사람의 눈에 그 모습이 잡혀 이 사람 저 사람의 귀로 전해졌다.
"자정두 지난 시간에 혼자서 무엇땀새 캄캄한 마당은 왔다갔다 하는겨? 귀신인 줄 알았다니께."
그 시간에도 큰 외당숙의 머리 속에는 무수한 생각이 서로 랍허고 짓이겨지며 들락거릴 것이었다. 자정이 지난 그 시간에 큰 외당숙의 머리 속을 들락거리는 생각들이란 어떤 것일까.
"방문 고리 단단히 걸구 자야겠어.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아버지가 대꾸하고 혀를 찼다.
"아무리 낮잠을 자기루 날마다 밤중만 되면 마당을 어정거리는 녀석이 올바르게 정신 백힌 녀석이우? 밤중애만 미치는 사람두 있답디다. 미쳐서 제 정신 아닌 게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요?"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들려오는 소문이 정말안가 해서 변소에 들어가 창처럼 터놓은 구멍으로 바깥 마당을 엿보았댄다. 세상이 잠들어 사위가 조용한데 정말이지 바깥 마당의 어둠 속을 희끗회끗한 그림자 같은 것이 때때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움직여 다니고 있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일어서는 것 같아 도망치듯 변소를 빠져 나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방문마다 문고리를 걸고는 잘 걸렸나 해서 문을 밀어 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내 눈앞에도 큰 외당숙의 날선 붉은 눈빛이 떠올라 보였다. 대문간. 사랑방, 여물 가마 걸린 부뚜막 옆에 서서 무슨 생각에 잠겨 안채를 들여다보던 그 붉은 눈빛, 멋모르고 대청마루로 나가며 사랑채 대문간 쪽을 바라보다가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왠지 흠칫 놀라며 눈길을 돌리고 방안으로 되들어 왔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문간에서, 외양간 앞에서, 광 앞에서. 우물 옆에서, 무슨 생각에 잠긴 채 안채를 한참씩 바라보고 있던 붉은 눈, 나와 눈길이 마주칠 때 나는 얼결에 웃어 보이지만 내 웃음을 묵살하며 생전 처음 만난 아이를 보듯 생소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었다.
어느 날 큰 외당숙은 술기운이 얼근해 가지고 안채로 들어왔다. 큰 외당숙 목구멍 속으로 넘어간 술은 주사로 변해 다시 목구멍 밖으로 넘어온다는 얘기를 들은 우리는 잔뜩 긴장을 했다.
"누님, 지 여편네는 절더러 일 안 하구 날마다 자라져만 있다구 지랄을 하는디 말유. 저라구 좋아서 자빠져 있겠이유? 전 더 울화통이 터진다구유."
큰 외당숙온 속사정이라도 털어놓듯 조용조용 말을 꺼내 놓았다.
"뭐가 그렇게 울화통이 터지나? "
어머니가 눈치를 살피며 말대꾸했다.
"사십 살이 가깝두룩 뭐 한 가지 맘 먹은 대루 술술 풀리는 일이 읎단 말이예유."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마음 먹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가 안 풀린다던가, 세 가지 중에서 두 가지가 안 풀린다던가 해야지 열 가지은 열 가지가 번번이 안 풀리는 사람이 워디 있이유? 워떤 때는 큰아부지 큰어무니 원망스러운 생각이 다 난다니깨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뚱단지 같이."
"큰 아부지가 애초부터 절 받자하지 마시던가 받자하실 바에야 끝까지 받자하시던가 하실 일이지 이것두 저것두 아니게 미지근하니 받아 주세서 지가 지금 이 모냥 이 꼴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유."
나는 외할아버지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외할아버지는 들은 듯 못 들은 듯 표정 없이 장죽만 빨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자네 공부하겠다면 학비 대 주시겠다구 하셨는데 자네가 공부하기 싫어 마다하구는 이재 와서 무슨 소린가?"
어머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로 잠시 큰 외당숙을 건너다보았다.
"허기사 지가 큰아부지 큰어무니 신네를 모르는 게 아니유. 큰아부지 큰어무니를 친부모루 뫼시는 게 지 마지막 소원이었으니께유. 헌디 저를 친 아들루 삼아 주십사구 말씸 올릴 적마다 큰어무니는 알겠다 알겠다 하시믄서 차일피일 미루셨지유. 그러다가 덜컥 돌아가셨잖아유. 두 분 함께 뫼셔 보긴 틀렸지만서두 이제 큰아부지 한 분만이라두 뫼실 수 있게 됐구다 했는더, 아 이번엔 누님이 넘어오세서 그 일을 가루 막아 베리시네유."
큰 외당숙의 주사가 드디어 시작됐구나 생각하며 나는 마음을 졸였다
"자네 술 취했구만."
어머니가 말했다.
"누님 저 정신 말짱해유. 술 취했느니 우짜니 하구 서루 얼부무리지 마세유. 마침 큰아부지두 기시겠다 오늘은 아주 담판을 지어야 겠이유 "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하는 듯 큰 외당숙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담판을 짓다니?"
어머니가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외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듣기만 하고 있었고 어머니 혼자 도맡아 말대꾸를 했다.
"누님한티두 멘 번 말셈 디렸으니까 아시겠지만, 큰아부지 연세 높으신디 안적 대 이을 양손을 정하지 않았거던유? 아니 양손은 정한 거나 마찬가진디 안적 호적에 올리지를 않았거던유. 낼이래두 호적에 올려야겠이유."
큰 외당숙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얘긴가? 생각해 보겠네."
어머니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누님이 생각하시구 마시구 할 거 음이유. 큰어무니 살아 기실 때 큰아버지 큰어무니 하구 약정이 된 얘기니께 누님은 그대루 따라가시기만 하믄 돼유 "
큰 외당숙은 윽박지르듯 말했다.
"이 사람 말투 보게. 꼭 상전이 종 나무라듯 하는군 그래?"
어머니도 언성을 높였다.
"종한티 존대말 쓰는 상전 보섯이유? 누님은 출가외인이니께 밀양 박씨 집안 일은 밀양 박씨 문중 풍속이나 법도에 따라 하두룩 맽기시란 말유."
"나두 밀양 박씨야. 하지만 밀양 박씨에 앞서 내 친아버지 일이야.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아버지 일을 누구한테 맡기라는 얘긴가?"
어머니는 한 발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누님, 정 이러시기유? 전에는 큰어무니가 큰아부지 앞을 막아서 훼방을 놀더니 인제는 누님이 큰 아부지 앞을 막아서 훼방을 노시는 구랴?"
큰 외당숙의 눈빛이 증오를 담고는 빛났다.
"아버지 여기 기신데 속 시원하게 여쭤보자구. 아버지 양손 맞아 들이시겠다구 약속하셨어요?"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글쎄"
외할아버지는 장죽 돌부리를 입안에 꽃은 채 말했다. 외할아버지의 대답은 늘 그랬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로 잡숫는 게 부실해진 데다가 조카한테 시달림을 당해 얼이 빠지다시피 했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큰아부지가 말씸하셌잖아유 ? 저 둘쨋눔 수환이를 양손으루 호적에 올려 주시겠다구유."
이번에는 큰 외당숙이 외할아버지 쪽으로 목을 뽑아내며 말했다.
"글--"
외할아버지 입술 사이에서 담배 연기 핫 오리가 새어나와 허공으로 피어 올라갔다.
"아 큰아부지 입으루 그러셌잖아유? 잘 생각해 보세유."
"아버지 마음 속에 품구 기신 생각을 그대루만 말좀하세요. 약속하셨여요?"
"글세, 양자를 들이더라두 천천히 들이자구만 했지."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말씸 하신 게 이삼 년 전 일인디 이삼 년 기달렸으믄 천천히지 게서 워떻기 더 천천히 한단 말이예유? 큰아부지 연세가 올해 워떻게 되시는지나 알구 기세유?"
큰 외당숙은 씨근덕거렸다.
"아버지, 누가 뭐라던 마음 속 생각 그대두만 말씀하세요."
어머니가 말했다.
"글세, 양자라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죽은 담에 들여 앉혀두 늦지 않은 게여. 서두를 것 읍이 천천히 해여."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큰아부지 맘 변하신 거 보니께 누가 꼬드겼군 그랴. 즈이들 뱃속 욕심 채우자구 큰아부지를 살살 꼬드겼어, 흥 잘들 논다. 잘들 놀아."
큰 외당숙은 약이 오른 듯 갈쿠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처가집 재산 털끝만큼 건드릴 마음 없으니까, 처가집에서 얻아 먹구는 있지만 장인 재산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두 없으니까 "
아버지가 불쑥 튀어나오듯 말했다.
"흥. 매형님두 괜히 겉 다르구 속 다른 말씀 마슈. 한 사람은 뺨치구, 한 사람은 쓰다듬는 척하구, 그러지들 마슈."
“난 내가 번 돈 아니면 축내지 않는 사람이야. 먹구 자는 것 외에 처가 재산에 결코 손 안 댈테니 두구보게나."
아버지는 내 진정 알아달라는 투로 말했다.
"그렇다믄 워째서 양손을 호적에 올리자는 디 반대하시우? 처가집 재산에 털끝만큼두 욕심 음는 양반이 워째서 양손을 못 들이게 하느냐 말이우?"
"난 양손 맞아들이는 일 반대한 적두 없거니와 참견할 권리두 없네."
"흥. 말은 야금야금 잘하시우. 친정 재산 처가 재산 얼매나 잘 먹나 두구 봅시다."
"저 사람 말버릇,,,,,"
어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외당숙은 발딱 몸을 일으켜 세워 방을 나갔다.
"당신 달근이 듣는 데서 왜 자꾸 처가집 재산에 욕심이 없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로 화살 끝을 돌렸다.
"정말 욕심이 없어서 없다는데 어쩌라는 게야."
아버지가 대꾸했다.
“당신 욕심 없는 거 달근이가 알아 줄 것 같아요? 욕심 없으면 양자들이라구 내대잖아요?"
"양자 들여서 나쁠 것두 없지.
아버지가 천연스럽게 말했다.
“생각해 보구 하는 소리유? 양자 들여 호적에 올려 놓구 나면, 그 담에는 달근이 녀석 우리를 쫓아내려구 할 거예요. 당신, 식구들 벌어 먹일 힘 있으면 희떠운 소리 하시우. 우리가 못 올 데를 왔수? 내 아버지 집이에요. 달근이 녀석한테 미안할 거 조금두 없어요. 미안하기루 치면 오히려 달근이 녀석이 미안할 노릇이지."
"어쨌든 나는 처가집 재산에 욕심 없으니까 "
아버지는 어깃장 놓듯 말했다.
"그러니까 잠자쿠 있어요. 당신이야말루 얻어먹는 처진데 왜 자꾸 참견을 하구 나서는 거예요? 잠자쿠 있으라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날 밤부터 어머니는 방문 단속, 물독 단속, 음식 그릇 단속을 강화했다. 마치 전쟁 준비라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낮에도 사랑채 사람들과 얼굴 마주치게 될 때 빚어질 어색함이 싫어서 바깥에 나갈 생각도 않고 방구석에서 뒹굴었다. 사랑채가 없어졌으면, 차라리 사랑채가 불타 없어지거나 무너져 버리기라도 했으면, 그때 주문 외우듯 마음 속으로 되풀이해 뇌이던 생각이었다.
남아 있는 안채도 이엉을 벗겨내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어 옛 모습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다가가서 열린 사립문을 통해 안채를 들여다보았다. 안마당 가운데 있는 우물, 높직하게 축대처럼 쌓아을린 퇴방, 퇴방으로 오르는 세 계단의 돌층계, 건너방 아궁지와 넓직한 대청 마루,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띄며 그리움처럼 안겨왔다.
"어떻게 오셨이유?"
안방 부엌에서 서른 살쯤 보이는 여자가 몸을 내놓으며 물었다. 아까부터 부엌문 안에서 나를 살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수환이 라는 사람을 찾아 왔는데요."
나는 당황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런 사람 읎는데유."
여자가 댓돌 층계를 내려와 마당 가운데로 나오며 대답했다.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인데 이사를 갔나부군요?"
"즈이가 이리로 온 지두 삼 년이나 되는데유."
그토록 오랫동안 소식을 끊고 있었으면서 이제 새삼스럽게 나타나 그런 말들을 물을 자격이 있느냐는 투로 들렸다.
"실례지만 이 집으루 이사 오시기 전에 이 동네서 사셨었나요?"
"아니유. 다른 동네 살다가 왔이유."
"전에 살던 사람들 어디루 이사했는지 모르시겠지요? "
"잘모르겄는디유 도회지루 살러 말두있구, 충청도 촌으로 갔대는 말두 있는디유."
"실례했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려다가
"저 그전에는 이 울타리 서 있는 자리에두 집이 서 있었는데 아주머니네가 이사 오실 때두 헐리구 없었나요?"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었다는 투로 물었다,
"예, 사랑채하구 헛간채가 있었대더군유. 허지만 즈이가 이사오기 이 년 전에 헐렸대나봐유."
여자는 물을 것이 있으면 더 물으라는 듯 다소곳하게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 동네 토박이를 만나서 외당숙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외당숙네 식구들은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안채를 차지하게 되자 그들이 살던 사랑채를 헐어 없애고, 그 자리에 마른 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만들어 세웠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일까. 과연 그들의 자의로 바깥채를 없애 버린 것일까.
큰 외당숙은 차츰 술주정이 잦아졌다. 술집에 가서 외상 술을 먹는다기도 했고, 식구들 알지 못하게 마련한 푼돈으로 큰길 가 구멍 가게에서 막 소주 한 사발을 받아 안주 없이 들여 마신다고도 했다. 술을 마셨다 하면 우선 어린 자식들이나 마누라를 두들겨 패 소란을 일으켜 놓았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마누라가 죽는다고 악을 샜다. 어머니는 말로만 두둘겨 패는 거지 기껏 종아리 몇 번 아플싸하게 꼬집고, 머리끄덩이 두어 번 꺼들리는 척하다가 마는 것일 게라고 했다. 진짜 술 주정에 앞서 하는 준비 운동 겸 자기 식구들에게 술주정 말리지 않아도 될 핑계를 마련해 주는 것이
라고 콧방귀를 뀌어 보이곤 했다.
처자식을 그렇게 두들겨 패 놓은 큰외당숙은 이윽고 안채로 들이 닥쳤다
"누님, 전 기집이구 새끼구 다 죽여 읎애구 나서 저두 죽구 싶어유."
이렇게 말을 껴내 놓았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나? 어려운 일이 있어두 참구 살아야지."
어머니가 마지 못해 말을 받으면
"누님, 이렇게 살아서 뭐한대유? 이렇게 사는가 싶던 않게 살믄서 목심이나 붙여 가믄 뭐하냐 말예유? 안 그래유? 누님 못 살아유. 전 못 산다니께유."
큰 외당숙은 징징 울다가 몸을 누여 뒹굴기 시작했다. 안마당이고 퇴방이고 부엌이고 대청이고 방이고 가리지 않고 뒹굴었지만, 어디서 시작했건 대청이나 방안에까지 들어오고야 말았다. 섣불리 말리다가 사정없이 휘저어대는 손짓 발짓에 얻어맞아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인지 확 빠져나가는 것인지 얼른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화끈하니 아팠다.
저 녀석이 맞대 놓구 때릴 수는 없으니까 저렇게 해서 우리 식구를 때릴려구 하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알리지 말아. 말리는 척두 하지 말아. 뒈지거나 지랄을 하거나 모른 척하구 멀찌감치 피해 가거라.
뒹구는 것이 먹혀 들어가지 않자 큰 외당숙은 이윽고 육탄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 대상은 주로 아버지였다. 어느 날 나는 텃밭에 김을 매고 있는 아버지를 투우처럼 공격해 들어가는 큰 외당숙의 모습을 보았다. 저녁 무렵이었다. 얼굴이 벌개가지고 타작 마당 어귀에 들어서던 큰 외당숙의 더욱 붉어진 눈길이 채마밭에 허리를 꾸부리고 섰는 아버지에게로 옮겨갔다고 생각되는 순간 큰 외당숙은 발작이라도 일으킨 듯 아버지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가까이 이르자 큰 외당숙은 아버지처럼 허리를 꾸부리면서 머리로 아버지의 엉덩이를 받아 넘겼다. 채마밭 위로 고꾸라졌던 아버지가 어리둥절해서 몸을 일켜 세우자 큰 외당숙이 다시 달려들어 머리로 받아 넘겼다. 정신 차릴 틈도 얼이 큰 외당숙의 머리에 받쳐 채마밭 위로 엉덩방아를 쪘던 아버지는 드디어 사태를 파악한 듯 호미 날을 비껴 들고 큰 외당숙과 마주섰다. 하지만 아버지는 호미 날로 내려치지는 않고 추켜 든 채 달려드는 큰 외당숙을 퍼하기만 했다. 손발을 쓰지 않고 머리통만 앞세우고 끈질기게 달려드는 큰 외당숙과 호미 날을 비껴 든 채 참을성 있게 피해 다니기만 하는 아버지의 싸움은 섬찍하고 가슴 조이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달려드는 기세가 차츰 눅어지면서 큰 외당숙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이 년만 살다가 떠나겠다구? 그 일이 년이 다 돼 가는디 왜 떠날 생각을 안혀 ? 입에 발린 소리루 살살 사람 속여 넹길 생각 말라구. 까놓구 처가집 재산 먹을란다구 말하는 기 워때? 허지만 안 되어. 최가가 박가 재산을 먹어? 천벌 받아, 나 당신 천벌 받는 거 보구 싶지 않다구. 헐말 있어? 헐 말 있으믄 히어 보라구. 허지만 헐 말 읎지? 헐 말 있으믄 진짜 도둑놈이지. 안 그려? 말해봐."
그렇게 술 주정을 하고 나면 큰 외당숙은 사나흘 밤낮으로 방구석에 틀어 박혀 두문불출했다. 집안에 이상한 정적이 내 마음에 미묘한 갈등을 빚어주곤 했다. 그것은 우리 식구가 정말 침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아내 주기도 했다.
큰 외당숙의 날선 붉은 눈빛과, 계속되는 술 주정과, 끈질긴 자기 주장에 내 사고가 세뇌되어 가는 것일까. 사랑채 사람들은 우리 식구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그들의 계획을 짓랍아 망가뜨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랑채 사람들의 그러한 주창을 어처구니없는 적반하징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다른 사람의 계획과 소망을 짓밟아 망가뜨린 쪽은 바로 사랑채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사랑방에 친구분들을 맞아들여 먹갈아 사군자 치고, 시조 읊고, 술잔 나누며 여생을 보내려던 외할아버지의 'd:을 짓밟아 깨드려 놓은 자가 바로 사랑채 사람들 아니냐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꿈이 부당하게 짓밟혀 깨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채 사람들은 외할아버지의 계획과 소원을 유린했고, 우리 식구들은 사랑채 사람들의 계획과 소원을 짓밟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정말 침입자일까. 사랑채 사람들은 우리 식구보다 훨씬 앞서서 이 집에서 살아왔고, 언젠가는 사랑채 살이에서 벗어나 안채를 차지할 꿈을 품고 살아왔다. 그들은 그들의 그러한 생각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한데 이 집에 와서 살게 뒬 아무런 예정도 계획도 없던 우리 식구들이 별안간 뛰어들어와 주인처럼 계승자처럼 안채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버지도 우리가 침입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아버지는 처가집 재산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되풀이해 선언해 온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꿈과 계획과 소망을 짓밟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꿈과 계획과 소망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짓밟혀 부서졌다. 아버지는 자신의 꿈이 다른 사람들에게 짓밟힌 쓰라림을 체험했기에 다른 사람의 룸을 짓밟는 일을 삼가는 일까. 그렇다면 외할아버지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머니의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어머니 친아버지의 집이다. 일부러 친정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 들이닥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법이 인정하는 상속자였다. 하지만 법의 힘을 빌어 사랑채 사람을 쫓아낼 수가 있을 것인가. 나는 외할아버지의 집과 산과 땅과 그 밖의 든 재산을 사랑채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외할아버지 모시고 이곳을 훌쩍 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채 사람들 활짝 열린 웃음으로 우리 식구들을 전송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후련할 것인가. 허지만 이러한 내 소망도 짓밟히고 있었다. 내 소망을 짓밟아 부수는 자는 누구일까.
"왜 그렇게 주눅이 들어 있어요? 고향 떠나왔다구 마음 약하게 먹지 마시우. 마음 단단히 먹어야 살아서 고향 돌아가게 돼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친정에 온 탓일까. 고향에서는 그토록 약하던 어머니가 눈이 휘등그래질 만큼 강해져 있었고 고향에서 그토록 당당했던 아버지는 보기 딱할 만큼 약해지고 의기 소침해져서 마음이 허공을 방황하고 있는 꼴이었다.
전쟁이 터졌다. 큰 외당숙이 첫 소식을 가지고 안채로 들어왔다.
"삼팔선에서 싸움이 벌어졌대유."
이렇게 말하는 큰 외당숙은 친근한 이웃에다가 다정한 친척이었다. 큼직한 소식을 먼저 알고 전해주는 자랑스러움도 드러나 있었다.
"무슨 싸움?"
아버지는 깔려들어 가기라도 하듯 대뜸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아버지는 삼팔선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솔깃하며 기대를 부풀렸었다. 그때마다 기대는 무위로 끝나 버리곤 했다.
"굉일날 새벽 이쪽 군사덜이 곤히 잠들어 있는 새에 저쪽 것덜이 땅크하구 대포를 앞세우구 마구 들어왔대유. 휴가 와서 쉬구 있던 웃말 오동나무 집 민석이두 군대에서 전보가 와서 부랴부랴 떠나갔대유."
큰 외당숙은 손짓까지 하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렇다면 됐네, 됐어!"
아버지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유? 저두 뭐가 되는가 싶어 헐레벌떡 뛰어왔구먼유."
"되구말구. 삼팔선이 뚫리게 됐다구."
"이번에는 이쪽에서두 가만히 내베려두지 않을 게라구 말들 하데요."
"아무렴, 여부가 있나? 이쪽에서는 저눔덜이 먼저 싸움 걸어오기를 기다리구 있었다구. 쳐 밀어 올릴 테지. 통일될 날 멀지 않았네. 나 고향 돌아갈 날 멀지 않았어."
아버지가 말을 끝내고 허허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큰 외당숙도 혜헤거리며 따라 웃었다. 언제 싸됐던가 싶었다. 마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
의 얼굴에는 화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매형님, 그 동안 고생 많으셌이유."
큰 외당숙이 웃음을 눌러 삼키며 우애가 듬뿍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은? 나만큼 피난살이 편하게 한 사람두 없을 게야 "
아버지와 큰 외당숙은 다시 허허, 해해, 웃어대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 못 해 쩔쩔 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밤 새워 소쩍새가 울어대곤 했다. 우울한 하루하루였다.
이윽고 우리 식구는 보따리를 싸들고 피난길에 올랐다. 놈들의 군대가 한강을 건너 내려와 수원을 점령했고, 어쩌면 삼십 리 밖 읍거리에까지도 들어와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샘골에도 어느 때 그놈들이 밀어올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난 떠나시는구먼유?"
큰 외당숙이 말했다. 큰 외당숙네 식구들이 구경꾼처럼 비켜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군 군대가 싸워 주러 왔다니까 놈들은 금세 쫓겨 올라갈 게야. 며칠 안에 되돌아오게 되겠지 ."
아버지가 말했다.
"고생고생 삼팔선 넘어 오셌는데 또 피난을 가시게 되는구먼유 "
큰 외당숙은 피난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자의 여유와 피난을 떠나보지 못한 자의 호기심을 지니고 물었다.
"내려치는 서슬은 피해 놓구 보라는 게니까. 다 무뎌진 호미 날에 두 사람이 상할 수가 있는 게거든. 허지만 저눔들 며칠 새에 쫓겨 올라갈 게야."
아버지는 차라리 자위하듯 말했다.
"그래 워디루 가시지유? "
큰 외당숙이 동정하는 투로 물었다.
"내 외가루나 가 봐야지 갈 데 있나? 며칠 동안이긴 하지만 큰아버지 적적하실 거야. 부엌일 하는 아이가 있긴 하지만 가끔가끔 돌봐 드리게 "
어머니가 말했다.
"염려마시구 잘 댕겨오시기나 허세유 "
큰외당숙이 선선하게 대답했다.
우리 식구는 외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고향 떠나을 때 생각이 났다.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서는 우리 식구들을 보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있었다.
"그예 떠나시는굼유?"
동네 사람이 말했었다.
"또 살러 오게 되겠지요 뭐."
어머니가 대답했었다.
"그래 어디루 떠나시지유?"
"원산 가서 자리 잡구 살아 볼까 해요."
"가서 자리 잡으시거든 댕길러 오세유. 댕길러 오실 수야 있겠지유."
"시어머님이 남아 기신 걸요. 일가분들두 기시구요. 댕길러 와야 하구 말구요."
치마폭으로 연방 눈물을 닦아내고 섰는 할머니한테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었다. 미국이 뒷받침해 주는 이승만 박사가 나라를 세우고. 이승만 박사는 곧 이어 남북을 통일할 것이다. 이삼 년 후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는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고향을 떠났었는데, 지금 다시 미국 군대가 싸워 주려고 왔으니 며칠 뒤면 놈들이 쫓겨 달아날 것이고. 우리는 쉽사리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샘골을 떠나가고 있었다.
동구 밖으로 나가지를 않고 샛길로 동네 뒷꼍을 돌아 산기슭으로 해서 신작로로 나섰다. 논에는 모가 뿌리를 내린 듯 벼 잎들이 검푸르게 물이 오르며 자라기 시작하고, 방죽을 따라 늘어선 키 큰 미류나무들이 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잎새를 흔들고 있었다. 초벌 논김을 매며 부르는 농부들의 구성진 노래 가락이 산들바람을 타고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 조각들이 한가롭게 떠 흐르고. 들판 가 여기저기 올망졸망 자리잡은 마을의 키 작은 초가지붕들이 욕심 없는 모습으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가 않았다. 고향을 떠날 때도 그랬었다, 집에서 역까지 가는 길가의 풍경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방석처럼 넓적하고 손뼉처럼 얇은 검은 돌들을 켜켜이 얹어 이어놓은 지붕들, 열어놓은 대문들, 돌멩이 투성이의 조붓한 골목들. 그 날 따라 소리 지르며 행진해 가는 대열도 없어 길 위에 한가롭게 짝지어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마을 어귀 양회다리 아래로는 개울물이 급하게 흐르고, 높고 가파르게 다가선 산봉우리들이 하늘가를 들쭉날쭉 가위질해 놓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옛 모습 그대로의 풍경 속을 우리들은 보따리를 꾸려 들고 어디론가 떠나가야
하곤 했다.
"어디루 가지요?"
내가 물었다.
내 외사춘네 집에나 가 봐야지."
어머니가 대답했다. 샘골에서 십여 리 떨어진 면소재지 진배미라는 동네 어머니의 친외가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외삼촌 되는 분은 돌아가셨고, 외사촌 동생 되는 분이 면장을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갔다. 햇볕이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신작로 위에 우리 여섯 식구가 걸어가는 발소리가 타박타박 울리고, 울리는 소리 따라 흙먼지가 풀석풀석 일고 있었다.
어머니는 외사촌 되는 분은 이미 남쪽으로 떠나가서 없었고, 그 부인되는 아주머니가 당혹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이렇게 가깝지두 않은 길 떠나오셨으니 우쨌던 이리 올라 앉으세유."
아주머니는 대청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쭈빗거리며 대청으로 올라서서 시키는 대로 아주머니한테 큰절을 했다.
"미군 군대가 싸우러 왔다니까 며칠 새에 저놈들 쫓겨 올라갈 거야. 샘골 동네에서는 우리가 이북에서 넘어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 우리가 이북에서 넘어왔다는 걸 모르는 동네에서 저눔들 쫓겨 달아날 때까지 피신해 있을까 해서 왔어."
어머니가 말했다.
"형님, 그렇다믄 즈이 집은 합당치가 못한 것 같아유 면장 노릇하다가 피신하려구 떠난 사람의 집에서 피신이 되겠이유?"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행랑살이하는 사람들처럼 문간방 차지하구 조용조용 지내 가면 되지 않을라나?"
어머니는 매달려 보듯 말했다.
"저눔덜이 들어오믄 면장집부터 뒤질 텐디 문간방이라구 무사하지는 못 할 거예유. 저눔들도 눈이 있는디 성님네 식구를 행랑살이하는 사람들이라구 보겠이유? 저야말루 이 집 식모살이하는 사람처럼 꾸미구 있을까 생각 중인디 저눔덜이 속아 줄는지 한 걱정이래유."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뿌리치듯 말했다.
"난 여기만 철석같이 생각하구 왔는데 ."
"그리구 이런 세상에서는 면장네 집 사람하구 이북에서 피난 나온 집안 사람하구 한 군데 모여 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애유. 서루 해가 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네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어머니는 눈길을 대문간 쪽으로 옮기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잠시 무지룩한 침묵이 흘렀다. 부채로 더위 쭌듯 침묵을 휘저어 헤치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성님네 딱한 사정 누구보담두 잘 아는 지가 어렵게 찾아오신 성님네 쫓아내자구 하는 말씀이 아니예유. 즈이나 성님네나 서루 이로울 방도를 찾자는 게지유."
"그야 그렇지 "
"예서 남쪽으루 십리 내려가믄 가래실이라는 동네가 있어유. 여기처럼 되발아지지두 않구, 깊숙하고 우묵한 동텐디 우리 쥔 팔춘 성님되는 분이 게서 살구 기세유. 성님네 게서 피난하시두룩 지가 사람 보내 시숙으른한티 말씀 디릴께유. 우리 쥔 힘을 여러 번 빌어 쓰신 분이니깨 성님네 식구 가 기세두 박대하진 않을 거예유."
"고맙네, 고마워."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한숨 쉬는 듯한 혼잣말과 맥풀린 어깨처럼 축 쳐져 내린 눈길이 마음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집 떠난 남편 처지를 우리 처지에 겹쳐놓고 생각해 본 것일까. 그렇게 되고서야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는 듯 얼굴을 활짝 폈다.
우리는 거기서 하룻밤을 묵었다. 잠자리가 서툴러서인가 잠이 안 와 뒤척이는 배갯머리로 소쩍새 울음 소리가 축축하고 끈끈하고 애련하게 파고들었다. 내가 소쩍새 울음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삼팔선을 걸어 넘을 때였다. 산 속을 숨어 걷다가 산자락 속에 숨어 앉은 낮선 동네 낮선 집에 들어가 저녁을 사먹고. 맨 바닥에 팔을 베고 누으면 이름 모를 새가 저렇게 애간장을 태우며 울어댔었다.
"저게 무슨 소리야?"
"두견새 울음소리다. 어서 자. 내일 또 산길 걸어야해."
두견새 울음소리는 꿈속에까지 파고들어 마음을 휘저어놓곤 했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스물 댓 살쯤 돼 보이든 장정 하나가 쌀 두세 말쯤 담겼을 쌀자루를 옆구리에 끼어 들고 앞장을 서서 걸어갔다. 가래실에 묵으며 우리 식구가 먹을 쌀이었다.
"그놈들이 발써 여기보담 훨씬 더 남쪽으루 내려가 있대유. 여기두 인제는 그놈들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래유. 면 사무소두 텅텅 비었지유. 그놈들이 안적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 동안 산 속에서 숨어 지내던 놈들이 산을 내려와서 동네마다 퍼지구 있대유."
앞서 가는 장정이 틈틈이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골짜기 같은 데를 걸어가고 있었다. 비탈이 지지는 않았다. 느리게 휘어진 평탄한 골짜기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를 뚫으며 걷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와는 달리 하늘이 흐려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왔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라 왔다. 짐꾼들을 앞세우고 삼팔선 골짜기 길을 걸을 때 짐꾼들이 하던 말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길을 걸을 수 없으니 안 되지만 부슬부슬 오는 비는 반갑지유. 덥지 않아서두 좋구, 무엇보다두 부슬부슬 비오는 날은 경비병이 잘 나돌아 댕기지를 않거든유."
골짜기 양편의 산비탈 숲 속에서 그 동안 숨어 지내던 그놈들이 걸어 내려와 앞을 막아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첨이신가부지유."
"피난 오셌나부지유?"
"워디서 오시나유?"
앞서 가는 장정들이 돌아보며 이런 말을 물을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지 않나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았고, 듣고 보는 사람이 없어도 우리는 무리들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장정이 돌아보며 말을 꺼내려 할 때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 소리를 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쉿! 잡히구 싶으믄 떠드시우. 경비병들한테 들키믄 난 당신들을 팽개쳐 두구 혼자 뛰어 달아날 테니까."
삼팔선을 넘을 때 안내인이 하던 말이었다. 쉿! 조용히, 앞서 가는 장정은 쉴새없이 말을 하고 싶어했지만 우리가 대꾸를 안 하자 할 수 없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리들은 묵묵히 골짜기를 따라 걸어갔다. 골짜기 길은 느리게 휘어지며 아직도 끝이 안 보이게 이어져 있었다.
가래실 아저씨는 어머니와도 팔촌간이었다. 어머니보다 두 살이 아래였다.
"이왕 예까장 오셨으니 기시는 데까장 기세 보시지유 뭐."
떫떠름한 표정으로 입맛 다시듯 우리 식구들을 받아들였다.
가래실에서도 소쩍새가 밤을 울어 새우고 있었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이틀 밤을 잠을 설치고 나니까 세상은 우리 식구들을 싸잡은 채 벌컥 뒤집혀 있었다. 뿜어 나온 피가 스며 번진 듯 얼쑹덜쑹 뻘건 물 들인 완장을 두른 사내들이 가래실 비좁은 바닥을 날세운 눈길로 쓰레질하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넓은 우리 속에 갇혀 있었고, 갇힌 우리 속에서 숨 죽이며 숨어 있는 꼴이었다.
"그냥 하는 일 읎이 방안에서 지내시는 것보담 호미자루나 낫자루를 쥐구 들이나 산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처럼 꾸며 뵈는 기 더 나을 것 같은 디유?"
가래실 아저씨가 넌지시 귀띔을 해 주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가 망해 가지고 내려온 가래실 아저씨의 먼 친척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호미를 들고 아저씨네 콩밭으로 나갔다.
"밭 매는 척하면서 그늘에 앉아 쉬다가 들어오세유."
아저씨가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정말로 콩밭을 매다가 들어오곤 했다.
"아 이렇기 고생을 하세서 우짜지유? 허지만 그쪽이 저눔들 눈을 속이기가 쉬을 것 같애유."
아버지와 나는 지게에 낫을 꽃아 지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 오기도 했다.
큰 외당숙이 우리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렇게 보름 동안을 지냈을 때였다. 진배미 면장집에 다녀온 가래실 아저씨가 우리에게 전해 준 소식이었다. 면장집 아주머니가 가래실 보낼 사람을 물색하고 있던 참이라고 말하더란다. 닷새 전 큰 외당숙이 뻘건 완장을 두르고 찾아와 우리 식구들이 와 있지 않느냐고 묻기에 하룻밤 묵고는 떠나갔다고 대답해 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방들을 뼈쭉삐쭉 들여다보고 나서 순순히 물러가기에 됐구나 했더니 이틀 후에 다시 찾아왔다. 샘골 인민위원회에서 우리 식구를 찾아오라고 야단을 한다면서 우리가 숨은 곳이나 가 있는 곳을 알려 팔라고 성화를 했다. 내 발에도 불이 떨어져 있는데 남의 걱정할 틈이 어디 있느냐며 도리질을 해 보였다. 큰 외당숙은 더 묻지 않고 돌아갔지만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였다. 면장집 아주머니는 우리 식구들이 가래실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큰 외당숙 혼자라면 얼마든지 따돌릴 수가 있지만 우리를 가래실로 데려다 준 그 장정이 요 며칠 사이 빨갱이 편에 휩쓸려 들어가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가래실을 떠났다, 가래실 아저씨가 오리 떨어진 어느 동네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가래실 아저씨가 오리라니까 우리가 오리 길을 걸어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방향도 모르는 채 야산을 넘고, 개울 징검다리를 더듬더듬 짚고 건너, 가래실 아저씨를 놓칠까 겁을 내며 어둠 속을 허덕허덕 걸었을 뿐이었다.
가래실 아저씨가 우리 식구들을 몰고 들어간 곳은 역시 어머니의 외가 성씨인 차씨 성 가진 사람의 집이었다. 가래실 아저씨는 우리를 집주인에게 소개하고 나서 넘기고 돌아가며
"누님, 그럼 여기서 메칠 동안 묵구 기세유. 무슨 일 있으면 지가 쫓아와서 알려 드릴테니께유."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새로 묵게 된 집 주인 아저씨는 우리 식구들이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꺼려해서 우리는 변소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건넌방 속에 죽치고 들어앉아 있었다. 싸워 주러 온다는 미국 군대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아니 정말 오기는 온 것일까.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우릉우릉 밀려들어와 방안을 가득 채웠다가,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뒤쫓아 방안을 비우며 빠져나가곤 했다.
사흘 뒤 가래실 아저씨가 심상치 않은 얼굴빛을 차고 나타났다.
"아침나절 누님 사춘 아우뻘 된다는 사람이 가래실루 저를 찾아왔다가 갔이유. 뻘건 헝겁을 팔뚝에 둘렀다구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진짜 빨갱인가부데유. 누님네 식구를 내노라구 땅땅거리던 걸유. 차씨 성 가진 사람의 집을 모조리 뒤져서라두 누님네 식구를 찾아내구야 말겠다구 뻥뻥거리데유."
우리는 어둡기를 기다려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가래실 아저씨가 아니라 지난 사흘 동안 우리가 묵었던 집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안내해 갔다. 한 시간쯤 걸었을 우리는 과히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 어느 마을에 이르렀고 우리를 데리고 온 아저씨는 차씨 성 가진 낮모르는 사람의 집에 우리를 짐짝 넘기듯 맡기고는 총총히 돌아갔다.
"여기서는 이틀만 묵구 떠납시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앉았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두 없는데 어디를 자꾸 가자는 거야? "
아버지가 불뚝 역정을 냈다.
"달근이 놈이 눈이 벌개서 우리를 뒤쫓는 모양인데 한 군데 오래 눌러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깐 눔으것 샘골루 돌아가자구. "
아버지가 당신의 몸이라도 팽개쳐 버리듯 말했다.
"뭐라구요? 당신 지금 뭐라구 그랬어요? 다시 한번 얘기해 봐요."
어머니는 벌려 뜬 눈에 분노를 가득 담고 다그쳤다.
"그럼 어린 것들을 데리구 길바라을 한없이 떠돌아 댕기자는 얘기야? "
아버지도 숙이지 않고 맞대거리했다. 여섯 식구가 이토록 많은 숫자로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한 무리가 떼지어 있는 느낌이었다. 열 살 짜리 막둥이와 열두 살 짜리 계집애 동생은 피곤한 듯 어느 새 떨어져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게 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이잖우?"
어머니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잠든 어린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샘골루 들어가자구. 샘골 들어가서 죽을 운수라면 길바닥 떠돌아 댕긴다구 살아 남을 운수루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아버지는 어긋장이라도 놓듯 고집을 쎄웠다
"그렇다면 삼팔선은 왜 넘어왔우? 운수 믿구 고향땅에 눌러 앉아 있을 것이지."
어머니가 다시 말소리를 높였다,
"내가 고향 땅 떠나구 싶어 떠났나? 저눔덜이 떠나라구 쫓아내니까 떠났지. 실상 나는 죄가 없다구. 즈눔덜이 떠나라구 내쫓아서 할 수 없이 떠나왔는데 죄가 무슨 죄야? 따지구 보라지. 빨갱이눔덜두 할말이 없을 게야.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샘골루 돌아가자구."
"어린애 같은 소리 말아요. 빨갱이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이치를 잘 따졌답디카? 당신을 고향에서 쫓아낸 것두 그것들이 이치를 잘 따져서 한 짓이었우? 어린애 같은 생각 말구 내가 하자는 대루만 해요."
어머니가 단안을 내리듯 말했다.
"느이들 엄마 말대루 낯선 집 찾아 밤중에 길 떠나는 일 되풀이 할테냐, 내 말대루 샘골루 돌아갈 테냐?"
아버지는 돌연 누나와 내게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중대한 일로 의논을 해온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와 나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문 채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여러 식구가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낯선 집으로, 그것도 밤에 침입하듯 쑤시고 들어가 늘어붙듯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눕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못할 짓이었다. 핏발선 큰 외당숙의 눈을 떠올려 보았다. 섬찟해지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새처럼 날개를 달고 먼 나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정 샘골루 돌아가구 싶거든 당신 혼자 가시구려. 난 애들 데리구 내 생각대루 갈 테니까. 고향에서는 당신 고집 대루 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안 될 거유."
어머니는 이야기 끝났다는 듯 자리잡고 누워 눈을 감았다. 햇빛에 그슬려 검어진 얼굴이 거침없이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고향에서는 잠이 잘 안 온다고 성화를 하던 어머니. 고향에서는 늘 누워 앓던 어머니,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고향에서 쫓가나면서부터 병에서 놓여났다.
"그것이 바로 충격 요법의 원립니다."
언젠가 의사가 한 말이었다.
붉은 완장을 두른 큰 외당숙이 우리 눈앞에 불쑥 모습을 나타낼 것 같은 초조감으로 겨우 이틀 밤을 자고는 날이 밝자 새벽같이 길을 떠났다.
"조카네가 여기서 떠나게 될 때는 마땅한 집 골라서 데려다 주라구 하던디."
어머니에게 아저씨뻘 된다는 집주인이 엉거주춤 따라나서며 말했다.
"됐어요. 아저씨. 즈이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구 들어가세요. 그 동안 진 신세 세상 편안해지면 갚겠어요."
우리들은 인사를 하고는 아직 인적이 없는 동네길을 걸어나갔다.
"어디루 가는 게야?"
동구밖에 나서자 아버지가 물었다.
"박골이라는 데 내 막내 이모님이 살구 있어요. 면두 다른 데다가 이모부님은 차씨가 아니니까 달근이 놈두 거기 찾아갈 생각은 못 할 거예요. 궁하면 통하게 된다구 어제 낮에 박골 이모 생각이 나지뭐유? 어서 갑시다. 달근이 놈이 새벽부터 우리를 찾아 돌아 댕기지는 않을 테지."
어머니는 막내 동생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래 박골이 어디 붙었어?"
아버지가 툴툴대듯 물었다.
"저 팔봉산 뒷쪽이래요. 물으며 찾아갑시다."
"그집 사람덜이 생떼 만났다구 입을 딱 벌리겠구먼."
"이 판국에 두 손 벌려 반겨줄 집 골라서 찾아가시려구? 허지만 그 이모는 나하구 어릴 적 친구 같은 사이예요. 나이두 나보다 겨우 한 살 위구 ,,,,,, 찾아간 사람 몰아내기야 하겠우?"
"거기서 며칠 묵구 나서 다음 번에 또 어디루 가지?"
"거기서 얼마쯤 견디며 사느라면 저눔들이 좇겨갈 테지 뭐."
그놈들이 쫓기기는커녕 대전을 빼앗고는 대구를 바라보며 그냥 쳐내려가고 있다는 얘기를 어머니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었다. 벌써부터 푹푹 찌며 쏟아져 내리는 한여름 햇볕 속에서 배를 뒤집고 꾸불꾸불 몸을 뒤틀며 누운 시골길. 땡볕을 이겨내지 못해 트고 바스라져 푹숙푹석 먼지 이는 그 끝없는 시골길처럼 답답하고 아득한 느낌이었다. 미군의 제트기가 높이 떠 쇳소리를 내며 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장시 얼음을 멈추고 얼굴을 추켜들어 제트기를 바라보았다. 제트기가 아물아물 사라지고 웅웅 소리만 남은 길 위로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고개가 앞을 막아서 있었다.
박골에 가 닿기가 빠르게 큰 외당숙이 우리를 찾아 이틀 전 박골을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놈이 이모님 여기 사시는 걸 어떻게 알았지요? 아버지한테 캐물어 알았나?"
어머니는 맥이 탁 풀린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언니 살아 기실 적에 언니 심부름으루 두 번인가 우리 집에 왔었지."
이모 할머니가 대답했다. 이 세상에 마음놓고 숨어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구나.
"그래서요? 그 놈이 순순히 돌아갔나요? 뭐라구 안 그래요?"
어머니의 말속에는 분노와 절망감이 엇갈리며 부침하고 있었다.
"자네네 식구들이 오면 자수를 하라구 이르라던가? 또 오겠대믄서 자전거를 타구는 신이 나서 달려가더군"
"즈이 아버지는요? 안녕하시대요?"
"지금은 안녕하신디 자네네 식구가 빨리 돌아오지를 않으믄 해를 입으실지두 모른다구 뻘건 눈깔을 디굴디굴 굴리더군."
"나쁜 새끼, 배은망덕한 개 같은 새끼!"
어머니는 입을 다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튿날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열 살 짜리 막내 동생의 잠을 깨우느라 어린 뺨을 세 번이나 후려쳐야 했다. 잠이 덜 깨 칭얼거리는 막내의 손목을 아버지가 잡아 끌며 마을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길잡이가 되어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 뒤로 늘어서서 따라갔다. 동쪽 산허리의 하늘은 희뿌염하게 바래지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별무리가 온 하늘을 뒤덮고 한밤중처럼 짙은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삼팔선을 걸어 넘던 첫날도 사람의 눈을 피해 한밤중 선잠을 깨어 일어나서는 길잡이를 앞세우고 한 줄로 늘어서서 어두운 산길을 걸었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을 퍼해 한밤중의 산길을 걷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문득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인 듯 우러났다. 삼팔선을 넘기 훨씬 이전 아득한 옛날부터 수없이 려어 왔던 일인 것처럼 몸과 마음과 발에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버지도 어렸을 때 난리를 피해 밤중에 산길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처녀적 난리를 피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닐 때 겁탈 당할까 두려워 떠꺼머리 총각 행세를 했었다고 했다. 외할머니 피난 다닐 때도 한밤중 산길을 걷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아니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며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난리를 피해 한밤중 산길을 숨죽여 걷던 체험이 내 기억 속에 몰려져, 한밤중 뿜죽이며 산길을 걷고 있는 지금 내 의식의 표면에 불쑥 떠올라온 것은 아닐까.
우리들은 제각기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산 중턱에 이르자 날이 밝기 시작했다. 별들은 빛을 잃고 훤히 트여가는 하늘 속으로 재빨리 숨어들고 있었다. 산 아래 들판과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자 안개가 서려 땅 위를 기며 퍼지며 기어올라 들판과 마을과 산골짜기를 뒤덮어 갔다, 세상은 안개의 바다였다. 마치 구름 위의 딴 세상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풀섶에 이슬이 맺혀 바지 밑이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산 위에 오르니 동쪽 산봉우리 위로 해가 떠올랐다. 안개 덮인 대지 위로 폭넓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낙타등 같은 봉우리를 셋이나 넘었다. 이윽고 이모할아버지는 방향을 산 뒤쪽 비탈로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작별이라도 하듯 멈춰 서서 걸어온 산길과 그 아래 안개 덮인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쏟아져 내리는 햇볕에 녹아 안개의 막이 없어지며 여기저기 망사처럼 구멍이 퉁려 검붉은 땅과 초록빛 옷의 모습이 얼찐얼찐 드러나 모였다, 나는 몸을 돌려 일행을 뒤쫓아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토리 나무 숲이 하늘을 가려 다시 새벽 속으로 뒷걸음질치는 느낌이었다. 몇 해 동안이나 떨어져 쌓인 가랑잎인지 썩으며 흙으로 돌아가며 내뿜는 축축하고 텁텁한 냄새가 숲 속에 안개처럼 괴어 떠돌고 있었다. 도토리 나무 숲을 헤치며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얼마쯤 비탈을 내려가니까 비탈이 누그러져 편편해지며 낡은 통나무집 앞에 걸음을 멈추고 다 왔다는 듯 우리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집을 찾아 들어갔다. 지붕만 빼고는 낯익은 집이었다. 그래 생각난다. 아들 형제를 두었었지. 그때 이미 이십이 넘은 장정들이었다. 큰아들은 국군에 입대해 전쟁 중에 전사했고, 작은 아들은 징집이 면제되어 서둘러 장가를 들였었다.
칠십이 잘 돼 보이는 할아버지가 찾아간 나를 맞았다. 그 시절 지게 짐을 태산같이 크게 지고 다니던 그 꺽진 장년의 농부가 지금 이렇게 허리 바스러진 노인으로 변해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히 뜯어보니 그 시절 얼굴 모습이 안개 속에서 고목 드러나듯 드러나 보였다.
"뉘신지?"
"생각 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삼십 년 전 저 뒷집에 사시던 박 창선 노인 아시겠습니까?"
"박 창선 노인?"
"사랑채에 살던 박 달근씨 큰아버님 되시는 분 말씀입니다."
"오, 달근이 큰아버님 말씸이로구만. 그려, 그 노인 성함이 박 창선씨였지. 그런디, 댁에선 그 집 사람덜을 찾아왔우?"
노인은 비로소 정다움을 지니고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제가 바루 박 창선 노인의 외손자 되는 사람입니다. "
"뭐여 ? 그럼 난리 임시해서 이북에서 넘어와 안채에서 친정 아부님 모시구 지내던 박 창선 노인 따님의 아들 되는 사람이란 말이우? 몰라보겠구만
노인은 반색을 하며 놀래 보였다.
"네, 외할아버지 산소에 성묘 왔다가......"
"외손자 듣기에는 안 됐네만, 결국은 망한 집안이여, 남은 거라군 묘 자리 몇 평 뿐이터께."
“산두 팔렸습니까?"
“산이구 집이구 집터구 다 팔아먹구 떠났지. 자네 어머니두 친정 아부님 땅 왜 많이 팔아 버렸지 아마?"
노인은 마치 힐책하듯 나를 쏘아보았다,
"산소에 금초가 돼 있지 않더군요."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 양손이라는 사람, 아마 수환이라구 달근이 둘째아들 알 테지? 그 사람 양할아버지 친할아버지 내외분 묘 자리 몇 평만 마당만큼 냉기구는 산 다 팔아 버리구 떠나 버린 뒤 찾아오덜 않는구만. 여기 떠나간 지 여러 해 됐지, 아마."
"바깥채두 헐리구 없더군요."
“팔다팔다 집까지 헐어 재목으루 팔아먹었지. 재목이 여간 좋은가? 밤골 사는 사람이 헐어다가 집을 지었다지."
"그래 어디루들 떠나갔나요?"
“모르지. 서울루 갔다는 도리두 있구. 충청도루 살러 갔다구두 하니께. 망한 집안이여, 자네 외가는 망한 집안이네."
멀리 들판으로 옮겨가는 노인의 눈길에는 분노와 허무감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해 가을 박골 이모할머니네 낡은 산막에서 내려와 샘골로 돌아와 보니 외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큰 외당숙은 짐작대로 빨갱이 앞잡이가 되어 날뛰다가 국군이 쳐올라 오자 막판에 허겁지겁 동네를 떠나 버렸고, 작은 외당숙은 의용군에 나가고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외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이었다. 저놈들이 쫓겨가기 직전 면 보안서에서 사람이 와 알아볼 일이 있다며 외할아버지를 데려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고향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버지는 고향에 가 볼 생각도 못 하고 외할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한 달 뒤 면 소재지가 있는 진배미에서 읍으로 가는 중간 구름고개 골짜기에서 알아보기 힘들만큼 부패한 시신으로 변해 가지고 외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달근이 그 사람이 마음 쓰는 데 따라 얼매든지 사실 수가 있었지."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장례식을 치루고 난 뒤 어머니는 고향에서처럼 다시 골을 싸매고 누워 눈물을 흘리다가 이를 갈다가 했다.
중공군이 쳐내려와 다시 피난을 나갔다가 돌아온 그해 가을부터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논밭을 야금야금 팔기 시작했다.
"내가 이것들한테 땅 한 평 집 한 칸 물려주나 봐라. 어림두 없지."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이를 악물곤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유일한 상속자인 어머니의 재산이었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의 재산을 팔면서 원수를 갚는 행위로 생각하곤 했다. 내버려두었더라면 어머니는 정말이지 집까지 남김없이 팔아 없앴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땅을 괄아 가지고 한 일은 단지 앉아서 먹어 없앤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말렸다. 누나와 나도 어머니를 말렸다. 이윽고 산과 집과 딸린 터만 남았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누나와 나의 성화에 못이긴 듯 물러앉고 말았다. 큰 외당숙의 둘째아들 수환이를 외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적시키고 우리 식구가 샘골을 떠난 것은 외할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룬 직후였다.
나는 노인에게 낫을 빌려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외할아버지 산소의 풀을 깎으며 아랫골 작은 외할아버지의 산소에 눈을 주곤했다. 외할아버지 산소에 풀을 다 깎으면 이어서 작온 외할아버지 산소의 풀도 깎으리라. 외할아버지 형제 내외분의 산소는 예전에는 자기 것이었다가 지금은 남의 것이 되어버린 산에 둘러 싸여 말없이 동쪽을 향해 누워 있었다. 옛날 두 아드님을 함께 공부시키려고 무던히 애쓰시던 외할아버지 형제분의 아버님께서는 지금 이렇게 같은 장소에 위아래로 나란히 묻힌 두 아드님의 산소를 보시고 흐뭇해 하실는지.
나는 산소의 풀을 깎으면서 한 집안의 몰락을 내 눈으로 지켜보았고. 그 몰락에 나 자신도 가담했었다는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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