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애주가들은 자주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지갑뿐만 아니라 핸드폰이나 열쇠 또는 가방 등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공휴일 전야였다. 보통의 예에 따랐다면 그냥 본래 생활하던 곳에서 지냈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것이 주중에 끼여진 공휴일의 전야였던 것이 문제의 시발(始發)이 되었다. 직장의 야외에서 조그만 정자 하나를 옮겨놓고 현판식을 한다고 해서 간단한 행사가 있었다. 현판에는 항재농장(恒在農場)이라고 씌여졌다. 농업에 종사하는 분이 항상 농장(農場)에 머무르면서 농업에 전념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항존 전장(恒存戰場)이라는(恒存戰場) 것이 있는데 항상 군인은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매사를 조심하고 엄격하고 치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막걸리도 두어 순배 했던 터였다. 항시하던 버릇대로 바지 뒷주머니에 장지갑을 꽂아 넣었다. 사택에 가서 짐을 챙겨서는 바구니 같은 베로된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언제나 하던대로 습관처럼 지하철을 타고 귀갓길을 서둘렀다. 열심히 버스속이고 지하철 속에서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즐겼다. 무심결에 집에 도착한 순간 바지 뒷주머니가 허전하다고 느꼈고 아차 하는 느낌을 받았다. 부랴부랴 온길을 더듬어 지하철역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서 가보았다. 지나온 족적을 순식간에 되짚어 보았다. 특별히 일상적인 진행과정이었고 특별히 특이할만한 것은 없었다. 속된 말로 손을 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버스 지나간 뒤의 손을 흔드는 격이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지하철역무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유실물센터의 인터넷 주소를 받았다. 허망해진 심정으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울적한 기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카드의 분실신고부터 했다. 그리고 버스회사에 전화해서 사정 얘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혹시나 해서 버스터미널까지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헛수고일 듯해서 관두고 말았다. 이렇게 완벽하게 지갑을 잃어버린 것은 근래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택시를 타다 핸드폰을 간혹 떨어뜨려 잃어버린 적이 있기는 했어도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불행중 다행인지 착한 사람이 주웠던 행운으로 인해 연락을 받기도 하여 되찾기도 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운이 좋기를 기대했었다. 다행히 신분증과 교통카드가 겸용되는 카드 한장은 건진 셈이었다. 휴일을 보내고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아야 했다. 예전의 전례를 생각하면 정말 골치아플 것 같았고 하루를 완전히 소모해야 하는 번잡함이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절차를 알아보니 의외로 간단하게 접수가 되었다. 신분확인 등은 공인인증서가 다 해준 셈이 되었다. 어디를 번거롭게 왔다갔다해야 하는 것이 다 생략되고 재발급에 따른 결제대금을 결제한 후에는 바로 재발급 신청이 되었다. 공인인증서에 의해 비용을 결제하고 20여일 후에 주소지 관할 경찰서에서 찾아오기만 하면 되었다. 다시 전화로 문의해서 확인해 보니 수령도 필요하다면 위임장에 의해 대리인이 수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면허증 발급기관에 직접 출두해서 온종일 복잡한 수속과 절차를 거쳐야 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었다. 은행의 카드부문도 잃어버린 것이 여러장의 카드였는데 그것이 한 카드로 가능해져 버렸다니 날로 날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세상을 새삼스럽게 느껴볼 수 있었다. 한 장의 카드로 입출금거래도 가능하고 체크카드 기능도 있으며 거래통장도 3개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오히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잘되었다는 홀가분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보안카드였다. 인터넷뱅킹등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는데 그것도 바로 재발급이 가능하였다. 한번 지갑을 잃어버려 보니 지갑 간수를 얼마나 철저히 해야 하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지갑 속에 들어 있었던 약간의 현금으로 인해 속이 상하기는 했었다. 착한 사마리아인와 같은 선의의 습득자를 기다려 보기도 했다. 혹시나 누군가가 그것을 주워서 전화가 올지도 모를 일이고 신분증이나 카드 등은 우체국이나 파출소를 통해 혹시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해 보았지만 전혀 무의미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칠칠치 못한 처세와 몸간수로 인해 집사람에게 한소리를 듣기는 했었다. 제대로 차분히 귀로를 올랐다면 별일 없었을 텐데 엉뚱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얼씨구 나하고 지갑을 털어간 게 아니냐고 힐난(詰難)을 했었다. 요즘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두 그것에 빠져 있는 게 다반사인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항변도 해보았지만 힘없는 변명(辨明)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매사에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철두철미(徹頭徹尾)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만사에 불요튼튼이 최고라는 각오를 되새기게 되었다. 요즘 현대인에게 필수품은 세가지인 듯하다. 지갑과 열쇠와 핸드폰이다. 요즘세상에서 핸드폰은 거의 신줏단지(神主)(神主) 모시듯이 해야 한다.. 물과 공기 같은 필수품 세 가지는 항상 언제 어디에서든지 꼭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번의 실수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일상에서가 아닌 전쟁에서의 승패는 병가의 상사(勝敗兵家常事)라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리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라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잃어버림도 있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불교 말씀 중에 처처불상 사사 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이라는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 또는 우주 만물이 다 부처님이므로, 모든 일에 부처님께 불공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살아가자는 뜻이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 후 그런 실수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방비책을 강구하는 것이 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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