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었다. 한 고매(高邁)한 철학자가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다. 그 철학자의 고민이자 화두(話頭)는 무엇인고 하니 “인생이란 무엇인가”였다고 한다. 그렇게 고민에 쌓여 한참 동안 궁리를 하며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은 계란이요’ 라고 외치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철학자는 무릎을 치며 삶이란 것은 계란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을 그렇게 인생이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인생이 가지는 의미를 캐고자 했고, 의문을 가졌고, 얘기를 들어보기도 했고, 질의를 던지기도 하였다. 세계적인 과학자 뉴턴이란 이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한참 연구에 몰두해 있던 차였다고 한다. 갑자기 하인을 불러서 ““난롯불이 너무 뜨거우니 난로를 좀 멀찌감치 치워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은 지시를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난로를 치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나 소파를 물려야 하는데도 그렇게 얘기를 하니 참 어이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어떤 이는 행복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건강이라 했다.. 또한 어떤 이는 생명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혹자는 의지, 목표, 인생의 지향점, 성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 명예라고도 하였다. 또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란 마지막 행에 보면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 ‘라고‘ 시구로 답하고 있기도 하다. 지천명(知天命)을 지난 시점에서 생이 가지는 의미는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의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임을 알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어쩌면 생의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도 의문인 채로 남겨져 있을 수도 있으리라. 한때 젊은 시절에는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도 있겠다고 했던 기개를 가지기도 했었으나 현실은 그런 무모함에 객기에 비웃음과 냉소만으로 되돌아왔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도 갈파한 바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던져버리고자 했으나 이론적 무장이나 정신적 바탕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조그만 기득권에 얽매여 곧바로 변절해 버린 행태에 황당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결국 현실과의 타협이었고 순종이었다. 통상적이고 피상적으로 살아지는 삶을 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삶은 안일함과 온전함에 더 이상의 역동성도 발휘하지 못하고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보통의 평범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형극(荊棘)의 길이었고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향하고자 했던 바를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며 뜻을 펼쳐야했던 것이 제대로 된 정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은 냉엄했고 또 다른 선택에 몸 바칠 수 없도록 운명 지워져 버린 것에 안타까움과 회한으로 남았다. 젊음은 한 때의 흐름이었고 한 아류였을지 모를 일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따라가는 피동적인 삶에 어색해하고 저항하고자 했지만 세월은 유수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흘러가버렸다. 이제 어느덧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바꾸고 싶어 했고 올곧음이 뭔가를 느끼게 하고 싶어 했었지만 기존 질서의 힘은 너무나 강대했고 철벽 같았음을 실감하고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물결이라는 것으로 체념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존속되었던 흐름과 질서와 체계는 그렇게 손쉽게 그 방향을 선회할 수 없을 만큼 뿌리 깊게 고착되어져 버린 것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가지못한 길은 아름다워 보이고 아쉬움이 무척 많이 남기도 한다. 그리움만으로도 파장을 만들 수 있으리라. 이제 나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워지고 싶어 진다.. 민주화를 열망했던 많은 이들의 소원대로 그렇게 정치는 흘러왔고 한때는 진보가 정권의 주류를 구축해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많은 무리수를 감행했었고 결국은 미완인 채 새로운 방향에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다. 인류 역사는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인 역사발전방향에 맞추어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충실하고 멋진 방향에로의 대안이 마련된 바람직한 방향에로의 모색이 필요한 것이지 않겠는가. 항상 진보만이 올바르고 진정성을 갖고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역사발전의 진행이 일방적으로 진보의 세상으로만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기 마련이다. 시련을 겪기도 하고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어려움이 있거나 기대한 결과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통상의 갑론을박의 주장을 하고 반박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상황과 조건과 환경 등의 차이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명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훌륭한 목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훌륭한 목수가 얘기하는 바는 자신의 기량과 능력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지 결코 연장이 잘못되어서 집을 잘못 지었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옛 예화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한 목수가 집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수년 후 다시 그 집을 찾아와 그 집의 잘못된 부분 등을 점검하고 체크해서 본래 자신이 예상했던 바와 대들보의 뒤틀림 등을 확인하고 갔다고 한다. 대들보의 뒤틀림은 없는가. 등에 대해 자신의 예상대로 되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그 예상이 그대로 적중하였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장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경이로움이 있다. 옛 속담에도 ‘잘되면 자기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모든 이들이 세상을 탓하고 조상을 핑계 삼는다 하더라도 진정한 됨됨이를 가진 이는 결코 주어진 조건과 상황 또는 환경에 의해 굴복되고 좌절된 것에 대하여 그 책임을 전가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목수는 잘 길들여진 자기만의 연장을 갖고 오랫동안 숙련을 통하여 제대로 된 명품을 만들어낼 조건과 상황 여건을 형성하고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훌륭하게 제기량을 발휘해내는 것이 명장의 진면목일 것이다. 자기가 수행한 작업에 대하여 나무라든가 연장이라든가 제반 상황(諸般狀況)의 탓을 핑계 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참인간 또는 군자라 일컫는 이가 존경과 흠모(欽慕)의 대상이 되고 멘토 일수 있는 것은 일반 범부가 따라갈 수 없는 높은 도덕률과 책임감 내지 빛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훌륭한 목수가 우리 생의 지향점(指向點)일 수는 없을지라도 그렇게 분명한 책임감을 갖는 부분에 대하여는 귀감이나 표상으로 삼아야 하리라.
작금의 우리 경제에 대하여 대외 의존적인 여건에 의해 불가피하게 초래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걸 탓하고 그것에 발목 잡히는 우를 범할 것이 아니라 이 역경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정도라 할 것이다. 지금 한참 미국과의 FTA의결로 인해 정국이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여당에 의한 독단적인 처리로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어버렸다. 개방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국력이 더 약해지고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듯하다. 이제는 보다 더 멀리 앞날을 예상하고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피해를 조정해나가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무역1조 달러를 달성한 세계 아홉 번째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피폐하고 전후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 이런 쾌거를 올린 것은 우리 국민의 저력이고 피와 땀의 결실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 정도 인생을 논할 나이는 되었다고 자부하며 시작된 나의 인생론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생의 본질과 의미를 깨우치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인생은 무상하다고도 하고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고 또한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아닌 만큼 뜻깊고 충실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있는 삶의 자세로 새벽을 맞이하고자 하는 겸손함과 담대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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