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매 기
-이범선
파도 소리가 베개를 때린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여느 날 같으면 벌써 나갔을 전등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 아마 이 浦口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기쁜 일이나 그렇지 않으면 슬픈 일이.
섬 안은 그대로 한집안이다. 그러기 어느 집안에든지 잔치가 있거나 또는 喪事가 생기면 이렇게 밤새도록 전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상이군인이 새색시를 맞던 날도 그랬다. 읍장님의 어머니 진갑 날도 그랬다. 고아원에서 어린애가 죽던 날도 그랬고, 일전 파도가 세던 날 나갔던 어선 한 척이 돌아오지 않던 밤도 그랬다.
薰이 피난 내려왔던 부산서 중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이 섬으로 들어온 지가 벌서 칠 년이 된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퍽도 외로웠다. 조그마한 포구에 말려들어 왔다가는 또 말려 올라가곤 하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그저 졸리기만 했다.
그래도 섬에서는 도민증이나 병적계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좋았다. 당시 부산 등지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야말로 심장보다 더 소중하던 때였지만 어쩌다 하루 저녁 여인숙에서 묵고 가는 나그네까지도 해변가에서 쉬이 친구가 되어 버리는 이 포구에서는 그런 것은 있으나 없으나였다.
이제는 벌써 훈네도 피난민이 아니다. 아기를 안고 길가에 나와 섰던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제법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배에서 돌아오는 옥희 아버지와 이쁜이 오빠는,
“이거 참 오래간만에 잡은 도밉니다. 아직 살았어요.”
“꽤 큰 소라지요. 가을 들어 처음입니다.”
하며, 대바구니 속에서 도미나 소라를 집어내어 훈네 집 대문 옆에 누워 있는 소바우--그 모양이 꼭 누워 있는 소 잔등 같아서 그들은 그렇게 부른다--위에 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칠 년. 섬에서는 한 해가 하루처럼 흘러간다. 그야말로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아무런 사건도 없다. 마디가 없다.
“왜, 선생 보기엔 좀 깨끗지 않아 보이재? 그래도 이 짠물이 이게 좋은 게라이.”
바닷가에서 맛조개를 캐던 옆집 할머니가 바닷물에 손을 씻고 들어와 받아 준 어린애가 벌서 다섯 살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활.
아침 자리에 일어나 앉으면 안개 낀 포구가 유리창에 그대로 한 폭의 墨畵다. 칫솔을 물고 마당으로 내려간다.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바둑이가 신고 설 그의 흰 고무신 뒤축을 질근질근 씹어 본다. 뒷산 동백나무잎이 아침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어디선가 까치가 운다. 마당 한 구석에 돌각담을 지고 코스모스가 상냥스레 피어 웃는다. 추석도 멀지 않은 거기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세 개, 다섯 개, 네 개 탐스럽게 달렸다. 빨갛게 열매를 흉내낸 감나무 잎이 하나, 누가 손끝으로 튀기기나 한 것처럼 툭 가지 끝에서 튀어 난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허공에 원을 그리고 사뿐히 방바닥에 내려 앉는다. 부엌문 앞을 돌아 나오던 흰 암탉이 쭈루루 달려온다. 쿡하고 지금 떨어진 감나무 잎을 쪼아 본다. 핏빛 면두가 흰 머리 위에서 흔들거린다.
조반이 끝나면 훈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국민학교 이 학년인 딸의 손목을 끌며 대문을 나선다.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들길이다. 오른편은 발 밑이 그래도 바다이고 왼편은 깎아진 벼랑이다. 그들은 바위틈에 핀 들국화가 내려다보이는 밑을 천천히 걷는다. 바둑이가 따라오며 흰 수건에 싸든 딸애 도시락을 킁킁 맡아본다. 아내와 다섯 살 짜리 아들 종(鍾)은 대문 옆 소 바위 잔등에 서 있다. 꼬불꼬불 돌길을 더듬어 가는 그들은 C자형으로 된 포구 중앙에 다 가도록 빤히 보인다. 그러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하자면 그들이 포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동안을 거기 그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아내와 아들 종이 사이에는 말없는 가운데 약속이 생겼다. 그들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 돌길을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오면 아내와 종은 바둑이를 앞세우고 문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침마다 그들을 따라나서는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은 정해져 있다.
훈네 집에서 거리에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쯤에 단 한 채 아주 초라한 오막살이가 있을 뿐이다. 그 오막살이에는 노인 거지가 세 사람 살고 있다. 훈네는 그들을 神仙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느 여름 방학에 서울서 놀러 왔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훈의 동생이 지어 주고 간 이름이다.
이들 세 노인은 할 일이 없다.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지낸다. 그래 신선이다. 나이는 육십이 거의 다 되었을 듯한 동년배들인데 그 인상은 각각이다.
신선 일호라는 徐 노인. 머리칼, 눈썹 그리고 긴 수염 할 것 없이 은빛으로 센 노인이 키가 크다. 신선들 중에서 제일 풍채가 좋다. 그리고 신선 이호, 朴 노인. 이 노인은 머리를 중모양 박박 깎았다. 얼굴이 둥근 이 박 노인은 항상 군복을 걸치고 있다. 신선 삼호, 金 노인. 신선 중에서는 제일 인품이 떨어진다. 곰보다. 턱에 꼭 염소 같은 수염이 난 이 신선 삼호는 구제품 회색 신사복 저고리를 입었다.
인상은 어쨌든 그들은 다 신선 별호를 탈 만한 데가 있다. 걸식은 해도 그들은 결코 떼를 쓰는 법이 없다. 또 자기네 사이에 무슨 정해진 바가 있는 듯 같은 집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법도 없다.
훈네 집에 늘 오는 것은 신선 일호 서 노인이다. 아침에 오는 수도 있고 저녁에 들르는 날도 있다. 이즈음 훈의 아내는 서 노인을 위하여 밥을 넉넉히 짓지는 않았지만 줄 밥이 남지 않는 날이면 걱정을 하게쯤은 되어 있다. 그런데 바둑이도 이 서 노인을 알아본다. 청결 검사를 나왔던 순경이 총을 멘 채 질겁을 해 달아날 만큼 사나운 바둑이면서도 서 노인은 짓지 않는다.
아침마다 훈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이 바로 이 신선들이 살고 있는 오막살이 앞이다. 앞을 지나다 서 노인에게 목도리를 한번 내보이곤 돌아선다.
서 노인은 바둑이와만 사귄 것이 아니다.
언젠가 사흘 동안이나 서 노인이 들르지 않은 때가 있다. 이상하다고들 했다. 그 날은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막살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 노인 다 있었다. 신선 삼호 김 노인은 윗목에 벽을 향하고 앉아 거기 기둥에 박힌 못에다 실코를 걸어 놓고 무엇에 쓰자는 것인지 그물을 뜨고 있고, 신선 이호 박 노인은 문께로 나앉아 고무신 뒤축을 깁고 있고, 서 노인은 아랫목에 벽을 향해 누워 있다. 서서 다닐 때보다도 더 큰 키다. 죽은 사람처럼 뻗친 그의 무릎 위에서 다람쥐가 한 놈 앞발로 얼굴을 닦고 있다.
“서 노인이 어디 편찮은 모양이군요.”
그제야 박 노인이 늙은 호박 같은 머리를 든다.
“네, 체해 가지고 한 사날.”
그는 한 번 서 노인을 돌아본다.
그날 저녁 국민 학교 이 학년인 딸과 종과 바둑이가 우유죽 그릇을 들고 오막살이로 갔다.
“불쌍하더라!”
돌아온 딸애가 제법 국민 학교 이 학년답게 낯을 찌푸린다.
“불쌍하더라!”
꼭 같은 어조로 종이 따라 한다.
다음 날이다.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종이 마루로 달려나와,
“아버지, 아버지, 나 다람쥐 있다.”
하며, 구두도 미처 벗기 전에 훈의 손을 끈다.
낮에 서 노인이 오래간만에 집에 들렀더란다. 한 손에는 언제나 끌고 다니는 꼬불꼬불한 가무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또 한 손에는 예쁜 다람쥐를 한 마리 쥐고.
“이거나 애길 줄라고.”
서 노인이 일 년을 방안에서 키웠다는 다람쥐는 아주 길이 잘 들어 있다. 놓아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구 사람의 목덜미로 기어올라서는 오물오물 가슴패기로 파고든다.
그로부터 종은 훈의 방에서 부지런히 꽁초를 까서 빈 캐러맬 갑에 넣었고, 그런 다음날 저녁이면 서 노인이 그 캐러맬 갑을 도토리로 가득히 채워다 종에게 돌린다.
“먹진 못하는 거야. 다람쥐 주란 말이야.”
이 조그마한 포구에도 다방이 한 집 있다. 이름이 <갈매기>다.
다방 이레야 왜인이 살다 간 목조 건물 이층을, 피난 온 젊은 부부가 약간 뜯어고친 것이다.
훈은 때때로 이 다방을 들른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훈이 선 지점은 바로 정확하게 포구 중앙 점인 것이다. 거기서 훈은 한참 바다를 바라본다. 호수처럼 둥글한 포구 한가운데서는 경찰서 수상 경비선이 하얀 선체를 한가히 띄우고 있고, 왼쪽 시장 앞에는 돛대 끝에 빨간 헝겊을 단 어선이 네 척 어깨를 비비고 머물렀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두 대의 흰 등대. 그 등대 허리에 가는 수평선이 죽 가로 그어졌다. 바로 그의 발 밑에서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을 폈고, 그 선에서 다시 또 하나의 바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찔하니 높이 피어올랐다.
훈은 오른편으로 눈을 돌린다. 벼랑 밑 들길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포구를 엇비슷이 가로 건너 거기 빤히 집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반짝거리는 산을 지고 바로 물가에 선 아담한 기와집, 선생들이 감나무 장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마당에는 흰 빨래가 걸렸고, 돌감담 밖에 채소밭 가운데는 쭈그리고 앉은 아내 앞에 선 종의 빨간 스웨터가 빤히 보인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보는 날이면 훈은 곧잘 집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집엘 다녀서 나오는 것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우체국 앞을 지난다. 빨간 포스터를 보면 새삼스레 편지를 띄워 보고 싶어진다. 중국집을 지나 여인숙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다방 <갈매기>가 있다.
장기판 만한 널쪽에 흰 페인트로 쓴 <갈매기>라는 서투른 간판 밑을 끼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층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거기 베니야판으로 만든 문을 득 연다. 대개 다방 문은 밀거나 당기게 되어 있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다방 <갈매기>의 문은 왜식 그대로 옆으로 열게 되어 있다.
다방 안은 대개 비어 있다. 손님이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주인마저 없는 때가 많다.
훈은 언제나 오면 정해 두고 앉은 창가로 가 앉는다. 그래도 테이블 위에는 仙人掌이 놓여 있고, 창에는 푸른색 커어튼이 드리워 있다. 창 밑이 곧 한길이고 그 길 가장자리가 바로 바다다. 훈은 멀리 맞은편으로 눈을 띄운다. 그의 집 자기 방 유리문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벌써 채소밭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의 집 대문 앞을 어떤 부인이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지나간다. <갈매기>가 한 마리 펄럭 다방 창문을 스치고 지나간다. 팔만 내밀면 잡힐 것도 같다. 그래 다방 이틈이 <갈매기>인지도 모른다. 별로 그러자는 것도 아닌데 눈은 자연히 갈매기의 뒤를 따라 허공에 어지러운 불규칙 선을 긋는다.
안방 문이 열리고 주인 여자가 나온다. 그녀의 나이를 딱히 알 까닭도 없지만 보기에는 이제 겨우 삼십을 하나 둘 넘었을까 말까 한 젊은 부인이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반짝 밝은 그녀는 키가 날씬하니 큰 게 연분홍 치마가 분명히 예쁘다.
“아이, 오신 지 오랬어요?”
약간 코가 멘 귀여운 음성이다.
“네, 서너 시간 됩니다.”
“아무리, 선생님두.”
여인은 웃으며 돌아선다.
“여보, 저 건너 이 선생님이 오셨어요.” 그녀는 안방 문을 열고 소리친다. 그리고 거기 뒤로 난 창문턱을 훌쩍 넘어 나간다. 아마 왜인이 살고 있을 때는 그게 이층 빨래를 너는 곳이었을 게다. 그곳이 지금은 이 다방의 주방인 것이다.
훈은 이제 나올 다방 주인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본다. 제법 이 다방에는 별실이 하나 있다. 화장실로 가는 문 옆에 발가벗은 어린애들이 하나는 서고 하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그 밑이 바로 그 별실이다. 그런데 그 별실이란 게 아주 걸작이다. 옛날 왜인의 소위 오시이레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테이블과 걸상을 들여놓고 그 앞을 노랑색 커어튼으로 가린 것이다. 훈은 맞은쪽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초상으로 눈을 옮기며 피식 웃는다.
뒤 창문 밖에서 부채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풍로에 불을 피워 가지고 코오피를 끓일 판이다.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안방 문이 조용히 열린다. 주인이 나온다.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이리로 걸어온다.
그는 눈을 못 보는 것이다.
“이 선생님이슈?”
그는 훈의 테이블 가까이 까지 와서 서며 두 손을 내밀어 불안스레 허공을 더듬는다. 훈은 얼른 그의 한 쪽 손을 잡는다. 여자의 손처럼 연한 손이다.
가락가락 긴 손끝에 뾰족한 손톱이 곱기까지 하다.
“오래간만에 오셨군요.”
“앉으슈.”
훈은 새삼스레 주인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반듯한 이마에 두서너 오라기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 내렸다. 까만 눈썹 밑에 사뿐히 감은 두 눈의 긴 살눈썹이 슬프다. 쪽 곧은 콧날에 조각처럼 단정한 입술, 표정을 잃은 그 입술은 결코 웃어 본 일이 없는 입술 같다.
“별일 없지요?”
“그저 그렇게.”
그가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훈도 안다. 그 어떤 추억을 약처럼 갈아 마시며 외롭고 슬프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부부.
훈은 어제 저녁에도 그 <집시의 달>을 들었다.
두 등대에 불이 들어와 靑紅의 물댕기를 길게 수면에 드리울 때, 고요한 밤하늘에 水紋처럼 번져 나가는 색스폰 소리, 자꾸 자꾸 그의 상념을 옛날로 옛날로 밀어 세우는 들으면 누가 부는 것인지도 모르는 대로 그는 자기 방 마루 기둥에 기대앉은 채 별이 뿌려진 밤하늘을 우러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은 다방 한구석 자리에 은빛 색스폰을 어루만지고 있는 장님을 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다방 주인이었다. 훈은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둘이는 가까와졌다.
그러게 훈이 때때로 이 허술한 다방을 찾아오는 것은 그 여인이 풍로에 부채질을 해 가며 끓여다 주는 사탕물 같은 코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이제 칠 년 섬 생활에 완전히 표백된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어쩌다 추억의 그늘이 스며들 때면 왜 그런지 지금 그의 앞에 고요히 감은 그 슬픈 긴 속눈썹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붕부웅.
멀리서 기적 소리가 솜처럼 부드럽게 들려 온다.
“벌써 저녁때군요.”
엷은 회색 스웨터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앉은 주인이 가만히 얼굴을 든다.
“그렇군요.”
훈도 따라서 눈을 든다. 아직 연락선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은 저 앞의 벼랑 밑을 돌고 있을 게다. 퉁퉁퉁퉁 기관 소리가 포구의 맑은 공기를 흔든다.
훈은 건너편 자기 집으로 멀리 시선을 돌린다.
과연 그의 집 대문 옆 소 바우 위에는 빨간 스웨터가 앉았다.
종은 배를 참 좋아한다. 아침에 연락선이 떠날 때나 저녁에 이렇게 연락선이 돌아 들어올 때면 종의 위치는 언제나 그렇게 소 바우 잔등으로 정해진다. 방안에 앉아서도 창문으로 빤히 보이는 것이었지만 부우웅 하고 고동이 울리기만 하면 밥을 먹다가도 술을 던지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는 소 바우 위에 가 다섯 살 짜리 치고는 너무나 조속한 포우즈로 앉았다. 두 무릎을 앞에서 세워 가슴에 안고 그 두 무릎 위에 턱을 딱 올려놓고, 고렇게 얄미운 자세로 종은 눈도 깜짝 않고 연락선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침에 연락선이 육지를 향해 떠날 때면, 붕 소리를 지르며 부두를 밀고 나온 배가 포구 한가운데를 돌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선체를 바로잡아 가지고 두 등대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 저만치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 흰 파도가 항상 그 발부리를 씻고 있는 벼랑 밑을 돌아 배꼬리에 달린 태극기가 감실감실 사라지고 또 한번 꿈속에서처럼 멀리 고동소리만이 돌려올 때까지.
또 오후 네 시 반이면 돌아 들어오는 배가 아침에 사라지던 그 벼랑 밑으로 코를 쓱 내밀며 붕하고 고동을 울린다. 그러면 종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곧 수평선을 향해 선다. 잠깐 동안 귀를 기울인다. 쿵쿵쿵쿵 기관소리가 간지럽게 들린다. 종의 두 눈은 반짝 빛을 발한다. 그리고는 무슨 마술이나 걸린 애처럼 달린다. 소 바우 잔등에 가 앉는다. 언제나 똑같은 자세로.
연락선이 두 등대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와서 종의 앞에서 크게 원을 그으며 손님을 맞을 사람들은 빨리 부두로 모이라고 이르기나 하듯 감나무 잎이 파르르 떨도록 한번 더 크게 고동을 울린다.
배가 흠씬 부두에 가 멎자 밧줄이 부두에 던져지고 널판이 배 옆구리에 걸쳐지고 그 위를 제법 파랗고 빨갛고 한 새 옷자락에 육지의 냄새를 묻혀 온 선객들이 섬에 내려선다. 짐짝들이 굴러 떨어진다. 한참 복작거리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간 뒤 빈 부두에 갈매기만이 너더댓 마리 깩깩 외마디 소리로 흠실흠실 아직 숨이 덜 가라앉은 연락선 굴뚝을 날아들고 있을 때까지 종은 꼼짝도 않고 어느 동화 속의 소년처럼 꿈을 보는 것이다.
연락선이 부두에 닿자 제법 기쁨 같은 것이 흥청거린다.
훈은 물끄러미 부두를 내려다보고 앉았고, 그의 앞에 앉은 다방 주인은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자세로 감은 눈 속에 그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다. 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선생님 아드님은 여전하군요. 고것 봐. 얄미워.”
코오피잔을 받쳐들고 온 여인이 창 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훈은 다시 건너편으로 눈을 돌린다. 빨간 점 옆에 꺼먼 점이 하나 늘었다. 종이 바둑이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마 바둑이는 지금 그 보기에만도 징그러운 하얀 이빨로 종의 조그마한 손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게다. 그건,
“아버지, 입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
하며 신기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늘 어떤 불신을 손끝에 모으며 오랫동안 시험해 온 뒤에 비로소 맺어진 그들 둘만의 우의니까.
“저도 봅니다.”
“……?”
“연락선의 고동소리를 들으면 저도 저 바위 위에 두 무릎을 딱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다방 주인은 그 유난히 긴 손가락으로 창 밖을 멀리 가리킨다. 그의 손끝은 마치 눈뜬 사람의 그것처럼 정확히 맞은편 강점을 지시하고 있다. 훈과 여인의 눈이 잠깐 서로 부딪친다.
“그 놈은 배를 참 좋아합니다.”
“배를요? 제가 색소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무언가 그리운 게 아닌가요?”
“이 섬에서 나온 이 섬에서 자란 앤걸요 뭐.”
“그렇지만 저 코롬부스같이.”
“코롬부스같이.”
여인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스푸운으로 남편의 찻잔을 젖고 있다. 포동한 손이 여윈 손을 들어다 찻잔을 쥐어준다.
나흘 있으면 추석이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거세다. 집채같은 파도가 와와 소리를 지르며 밀려든다. 방파제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가 허옇게 거품이 되어 등대 꼭대기를 넘는다. 훈네 집 앞 들길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겼다. 포구 안에는 쫓겨 들어온 어선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다. 포구 가장자리에도 파도가 한길은 넘게 한길 위로 추어 오른다.
이틀 후에야 파도는 갔다. 수평선이 더 가깝다. 지구가 그 회전을 멈추기나 한 것 같이 고요하다.
훈은 학교로 나갔다. 파도로 해서 돌길이 말이 아니다. 소방서 앞 한길 가운데 떡돌만큼이나 큰 바위가 밀려 올라와 있다. 포구 가장자리의 큰길은 홍수를 치르고 난 뒤 같다.
훈은 학교 사환애에게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다방 <갈매기>의 부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파도가 무섭던 날 밤 밖에 나왔던 다방 주인이 잘못하여 물에 휩쓸려 들어가자 그를 구한다는 게 그만 부인마저 빠졌단다. 훈은 수업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눈을 창 밖의 바다로 띄었다. 그때마다 훈은 꼭 껴안고 물로 뛰어드는 젊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던 것처럼 또 이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의 진상을 모른다.
추석날 오후다. 훈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일찍 서 노인이 들렀다. 새 옥양목 적삼을 입었다.
“선생님, 아들이 왔습네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다. 훈은 통 알 수가 없다.
“아들이 왔습네다!”
재차 아들이 왔노라고 하는 서 노인의 늘어진 눈시울에 눈물이 글썽 괸다.
“아들이라니요?”
“네, 아들이 있습네다.”
훈은 서 노인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 젊은 군인이 군모를 벗어 들고 서 있다. 눈이 서글서글 큰 군인은 발을 모두어 서며 꾸벅 절을 한다.
작업복 깃에 육군 대위 계급이 빤짝한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훈은 그저 서 노인과 군인의 얼굴만 번갈아 본다.
“전연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것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면목없다는 듯이 또 한 번 머리를 숙인다.
단 둘이 살다 아들이 국민 방위군에 소집되어 나갔더란다. 후에 돌아가 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아무도 서 노인의 행방은 모르더란다. 그후 찾기도 무척 찾았단다. 그러나 그건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적이 바로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섬의 경비를 맡아 파견된 아들이 배에서 내려 지이프차를 타고 시장 앞 다리를 건너던 배란다. 길에 사람들이 꽉 모여 섰더란다. 차를 세웠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졌다는 것이다. 아들은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어쩐지 횡사한 시체를 꼭 들여다보게 된 그였다. 그런데 그건 젊은 부부의 시체더란다. 그는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그 어떤 엷은 실망을 느끼며 돌아섰단다. 그때 바로 옆에 그는 기적과 마주섰더란다.
“참 잘 됐습니다. 잘 됐습니다.”
훈은 그저 잘 됐다고만 한다.
그 길로 서 노인은 떠났다. 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의 부대로 가는 것이다.
큰 길에까지 배웅을 나간 훈과 종과 또 박 노인과 김 노인이 늘어 선 앞에 지이프차 뒷자리에 올라앉은 서 노인은 얼빠진 사람모양 말이 없다.
“그럼, 또 곧 찾아뵙겠습니다.”
군인이 거수 경례를 한다. 영문을 모르는 종은 아까부터 군인만 빤히 쳐다본다. 부르릉 엔진이 걸린다. 군인이 운전수 옆자리에 올랐다. 마악 차가 움직이는 때다. 서 노인이 황급히 목을 차 밖으로 내민다.
“선생님! 애기 잘 있어라. 다람쥐 도토리는 뒷 산에……아니 산엔 가지 마. 그러구 박 노인, 김 노인……”
지이프가 언덕길을 넘어간다. 돌아서는 종의 스웨터 양 호주머니엔 정말 알이 든 캐러멜이 한 갑씩 꽂혀 있다.
땅거미가 내리 깔리자 등대에 불이 켜졌다. 오른쪽에는 빨간 등, 왼쪽에는 파란 등. 긴 물댕기가 가물가물 움직인다. 달이 뜬다. 그 청홍 두 개의 등 바로 가운데로 수평선에 달이 끓어오른다. 멀리 아주 멀리 금빛 파도가 훈의 가슴을 향해 달을 굴려 온다.
딸애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넣었다 보다. 무슨 드라마의 끝인가 기차가 들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 누나, 이것 기차지?”
“그래.”
“기차는 배보다 커?”
“그럼, 바보.”
“배보다 빨라?”
“그럼!”
“연락선보다도?”
“그럼!”
“경비선보다도?”
“그럼! 바보야.”
“누난 기차 타 봤어?”
“그럼!”
두 살 때 피난길에 화물차 꼭대기를 탄 제가 무슨 그때 기억이 있다고 그래도 뽐낸다.
“나도 기차 타 봤음!”
밖에 어두운 마루에 앉아 애들의 대화를 꺼내 문다.
“코롬부스같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바둑이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다. 어느새 달은 꽤 높이 솟아올랐다. 가는 구름이 둥근 추석 달에 가로 걸렸다. 어디선가 색소폰의 그 목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집시의 달.
훈은 맞은 쪽을 건너다본다. 언제나 빤히 불이 켜져 있던 그 이층 창문은 캄캄하다. 어쩐지 이제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다시 달을 향해 선다. 밤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갈매기가 두 마리 훨훨 달을 향해 저 앞으로 날아간다.
고장난 문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 여덟 살 만덕이에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대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습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새끼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그 새까만 손톱을 가리켜 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글세, 그러니까 한 번 더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
수사관은 담배를 붙여 물며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뻔한 사건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그런 눈치였다.
「나 정말 미치겠네요! 억울합니다, 정말!」
만덕이란 그 눈이 커다란 소년은 벌써 얼마든지 울었던 모양으로 형편없이 얼룩이 진 얼굴을 또 한 번 시꺼먼 작업복 소매로 문질렀다.
「이 녀석아,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수사관은 꽤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내려놓으며 한 번 수사관을 쳐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법 맑은 음성에 시고 무식한 소년치고는 이야기가 또박또박 조리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아침이죠. 그게 아마 열 시쯤이었을 겁니다. 읍내의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한 통 배달해 주고 갔어요.
「그때 너는 펌프에서 밥그릇을 씻고 있었고.」
수사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다 알고 있구먼요.」
「이 녀석아, 그걸 모르면 어떡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 다 조사했으니까.」
「아 그럼요.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뿌렁을 합니까. 좋아요, 형사 아저씨가 그렇게 다 알고 있으니까 정말 마음이 턱 놓이 누만요.」
이번에는 만덕이 그 얼룩진 얼굴에 히죽이 웃음을 담아 보였다. 수사관이 귀신처럼 죄다 알고 있으니 자기의 죄 없음도 알 것이고 진범도 쉬 붙들릴 테니까.
그래 난 그 편지를 들고 선생님 화실로 갔죠. 화실은 내가있는 별채와 따로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선생님, 편지 왔습니다.」
나는 문을 두어 번 두들겼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기척이 들리며 문 손잡이를 덜컥거리더군요.
「문이 잠겼구먼.」
안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밖에서 한 번 더 동고란 손잡이를 쥐고 돌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공연한 짓이죠. 그 출입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거든요. 또 한 번 손잡이가 안에서 덜컥거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문이 안 열리지 않아.」
선생님의 음성이 새어 나왔어요.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나로선 그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죠.
「밖에가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아닙니다, 밖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글쎄요.」
「이상하군.」
사실 그랬습니다. 그 선생님 화실 문이란 동고란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그 손잡이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배꼽 같은 단추를 꼭 눌러서 잠그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구 안에서 열 때는 그저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되고, 밖에서 열 때는 열쇠를 넣고 돌려야 열리게 되어 있죠. 참 신통한 손잡이예요. 그런데 그게 선생님이 안에서 손잡이를 돌렸는데도 열리지 않거든요.
「이상한데…… 이봐 만덕이.」
「예.」
「밖에서 열쇠로 한 번 열어 봐.」
「열쇠가 제겐 없는데요.」
「저리 앞 창문으로 돌아와. 열쇠를 내보내 줄 테니까.」
나는 곧 화실 모서리를 돌아 나갔죠. 포도송이 같은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잇는 등나무 시렁 밑으로 해서 창문 앞으로 갔어요. 선생님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열쇠를 내밀어 주시더군요.
나도 역시 쇠창살 사이로 편지를 선생님께 건네고 열쇠를 받았죠. 조그마한 방울이 하나 끈에 달린 하얀 열쇠였어요. ……예, 바로 형사 아저씨 앞에 있는 그 열쇱니다. 방울이 달렸지 않아요.
「응, 은방울인데.」
수사관이 책상 모서리에서 열쇠를 집어들어 끈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보았다. 딸랑딸랑 아주 맑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선생님은 화실에 들어가실 때면 저만치 사립문에서부터 열쇠를 꺼내어 딸랑딸랑 흔들며 들어오시곤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별채 방안이나 뒤뜰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앞에서 인기척이 나도 그 방 울 소리만 나면 나가 볼 필요가 없었죠. 그건 선생님이 화실로 들어가시는 거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인정 있는 좋은 분이었어요. 개가 무슨 일을 하다가 공연히 나올까 봐서 일부러 그렇게 방울 을 흔드시는 거였죠.」
나는 그 열쇠를 들고 문으로 갔어요. 쇠를 넣고 비틀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은 안 열렸어요.
「선생님, 안 되는데요.」
「그래 …… 하기야 안에서 비틀어서 안 열리니까.」
선생님은 심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잠잠했습니다. 아마 방금 전해 드린 편지라도 읽고 있나 보다 하고 나는 그냥 앞뜰로 돌아 나오고 말았죠. 열쇠는 그냥 내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되었을까요. 앞뜰에서 장미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노라니까,
「만덕아!」
하고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네.」
나는 삽을 던져두고 화실 앞으로 달려갔죠.
「이 녀석아, 문을 열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이 창문 안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열쇠로도 안 열리는걸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창살 안에 가 뒤 둘 작정이냐?」
언제나 그림 그릴 때 입고 있는 그 누렁 샤쓰를 헐렁하니 걸친 선생님은 쇠창살을 친 창문 안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선생님, 지금 밖으로 나오실려구요?」
「나갈 일은 별로 없지만 …… 그렇다고 이 녀석아……」
「아무래도 문이 고장이 난 모양인데요.」
「어떻게 해 봐!」
나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들로 딸랑딸랑 출입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손잡이 열쇠를 거기 꽂아 둔 채 다시 앞뜰로 나와 버렸죠.
사실 선생님 화실 안에는 모든 시설 ―수도, 가스, 냉장고, 그 속에 빵, 우유, 과일, 그리고 화장실, 욕실까지 다 있거든요. 전혀 아무 불편도 없죠. 그러니까 뭐 문이 당장 안 열린대도 별 볼일 없으리라고 생각했었죠. 사실 선생님은 그전에도 며칠씩 꼼짝 않고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적이 흔히 있었거든요. 그런 때면 난 될 수 있는 대로 화실 가까이는 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딴 사림이 화실 안에 들어가는 걸 아주 실어 했거든요.
우리 선생님은 좀 이상한 분이었어요. 댁은 서울인데 선생님 혼자서만 서울서 이십 리나 떨어진 그 강가 언덕 위 별장 화실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형사 아저씨도 보셨죠. 그 언덕 위 밤나무 숲 사이의 화실. 밖에서 보기에는 별서 아닌 보통 기와집이지만 안은 참 멋집니다. 나는 그 화실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별채에 살고 있으면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또 선생님이 서울 올라가시면 집을 지키고 그랬죠. 선생님은 한 달에 한 열흘쯤만 서울에 가 계셨고 이십 일쯤은 여기 화실에서 혼자 지냈어요. 그렇다고 뭐 사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아니죠, 두 분은 아주 사이가 좋았어요. 예쁜 사모님은 대학에 다니는 역시 예쁜 따님과 같이 때때로 화실에 내려오곤 했어요. 선생님의 양식거리를 잔뜩 꾸려 들고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화실 안에서 혼자 손으로 끓여 잡숫곤 했어요. 그러니까 뭐 꼬박꼬박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세 때를 먹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생각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안 먹고 그래요. 선생님은 그저 그림밖에 몰랐어요. 그림에 미친 분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만 사시더군요.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그렇게 유명한 화가인가 봐요. 어찌 보면 꼭 어린애 같아요. 그야말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시는 분이었어요. 어떤 날은 한낮에 종일 주무시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또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속을 수산도 안 쓰고 산보를 하는가 하면 이틀 사흘 기척도 없이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하고요. 그런 땐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화실 창문으로 기웃거릴라치면 선생님은 막 야단을 치곤 했어요. 그래 그후로는 아무리 며칠씩 선생님이 안 보여도 그저 난 내 방에서 모른 체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멋대로 지내면서 남이 간섭하는 걸 아주 싫어했거든요. 정말 묘한 선생님이었어요. 안 그런 선생님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죠. 그러니까 선생님과 나는 화실과 별채에 따로따로 지내고 있는 거처럼, 한 집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 따로따로 였어요. 어쩌다 편지나 오면 그걸 전하러 화실엘 가는 정도였죠. 그 밖엔 내가 갈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부르는 일도 없었어요. 선생님과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간섭을 안하고 사니까 세상 편하고 좋던데요. 선생님도 언젠가 그러더군요. 그게 제일 잘 사는 거라구요.
「이 녀석아, 무슨 쓸데없는 군말이 그렇게 많아.」
수사관은 담뱃재를 떨며 지리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 이야길 하다 보니까 그만, 헤헤헤. 어디까지 말씀드렸더라…….」
「그래, 다시 앞뜰로 나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했어?」
예, 그랬죠. 앞뜰로 나가서 다시 장미나무에 거름 주기를 계속했죠 뭐. 열쇠로도 문이 안 열리는 걸 어떡헐 도리 있나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또 선생님이 부르잖아요. 이번엔 아까보다 크고 좀 화가 난 목소리였어요.
「야! 만덕아, 이리 와!」
「예!」
나는 또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선생님은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쥐고 서 있더군요. 나는 창문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야, 이 자식아!」
「……?」
나는 멈칫 섰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살폈죠. 커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선생님은 화가 몹시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지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자식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부르셨어요?」
하고, 나는 겁에 질려서 나직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선생님은,
「임아, 내가 뭐랬지?」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그저 멍멍히 서 있었죠.
「문을 열라고 하잖았어?」
「예……그런데 그 문이 열리질 않는걸요.」
「그렇다고 그냥 가만 두면 열리니?」
「……?」
「가만 둬도 생각해 가면 혼자 열리냐 말이다! 문이 살았니?」
딴은 그럴 리는 없죠. 문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얼마큼 곯리다가 적당히 열러 줄 턱은 없죠.
「어떻게 열어 봐얄 게 아냐.」
「네 힘으로 안 되면 읍내 목수한테라도 가서 열어 달래야잖아.」
「예, 그럼 곧…….」
「바보 같은 녀석, 사람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고 태평으로 딴 짓만 하고 있어!」
나는 돌아서 나오며 등뒤에 선생님의 역정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기야 갇혔다면 분명히 갇혔지만, 그렇다고 여느 때는 곧잘 며칠씩 꼼짝도 않고 화실 안에서 잘도 지내면서 막상 문이 고장이 나 안 열리니까 그 날 따라 그렇게 화를 내는 선생님이 이상도 하고 고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진작 읍내 목수한테 나가서 부탁할 생각을 못했던가 하고 정말 멍충이인 나를 탓하면서 그 달음으로 곧 십리쯤 되는 읍내로 들어왔죠. 그런데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지 뭐예요. 어디 일 갔는데 저녁때에나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미안하지만 저녁 늦게라도 나와서 문을 좀 손 봐 달라고 부인한테 부탁을 하고 돌아왔죠. 바로 그 문을 단 목수 아저씨였거든요. 사실 문제는 그때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었던 데 있다구요. 목수 아저씨가 있기만 했더라면 같이 나가서 쉽게 문을 고칠 수 있었던 걸, 그날 저녁 늦게까지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가 들어오질 않았지 뭡니까.
「야 임마, 너 정말 목수한테 가긴 갔었어?」
선생님은 저녁 해가 떨어지자 역정을 내시더군요.
「아 그럼요. 제가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왜 아직 안 와!」
「글세 꼭 오라고 부탁을 했다니까요.」
「그런데 아직 안 오지 않아.」
「헤 참, 선생님도 급하시긴. 전에는 며칠씩도 문 밖에 안 나오시곤 했으면서 뭘 그러셔요.」
나는 화실 창문 밖 등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쇠창살 안의 선생님 말동무를 해 주며 그렇게 웃었죠. 그랬더니 창턱에 걸터앉은 선생님은 곰방대를 뻐끔뻐끔 빨면서,
「이 녀석 봐라! 그거야 내가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 거구 지금은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 아냐.」
하며 웃더군요.
「마찬가지죠 뭘. 안 나가나 못 나가나 화실 안에 있는 건 같지 않아요. 뭘 심부름시킬 일 있으면 시키셔요. 제가 다 해드릴께요.」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이 녀석아.」
「그럼 됐죠 뭐.」
「허 녀석.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구나, 넌.」
「어디 제 말이 틀렸어요. 뭐 불편하신 게 있어요, 서울 가실 일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듣기 싫다, 이 녀석아. 너하고 이야길 하느니 차라리 우리 안의 돼지하고 하겠다.」
「헤참 선생님도. 이제 목수 아저씨가 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그 동안 선생님 저녁이 나 드셔요. 전 식은 밥이라도 한술 먹어야겠어요.」
난 일어나 별채로 나왔어요. 선생님은 화실에 전등을 켤 생각도 않고 그대로 창턱에 걸터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야, 만덕아! 목수 정말 어찌 된 거냐!」
선생님은 내가 채 저녁밥을 다 먹기도 전에 또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창살을 안에서 쥐고 마구 흔들면서요.
「글쎄요, 꼭 와 달라고 단단히 부탁은 해놨다니까요.」
「한 번 더 열쇠로 열어 봐.」
「마찬가지죠 뭘. 문짝이 뭐 생각해 가며 열리고 안 열리고 하겠어요.」
「임마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아. 어서 한 번 더 열어 봐.」
나는 어둑한 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그대로 꽂힌 열쇠를 비틀어 보았습니다. 열릴 리가 없죠.
「안 열리냐?」
문안에서 선생님이 소리쳐 물었습니다.
「예, 마찬가집니다.」
「한 번 더 해 봐.」
「글세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러면서도 나는 또 열쇠를 넣고 비틀며 손잡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빌어먹을!」
하고 역정을 내며 선생님은 문을 걷어차는 모양이었어요. 쾅쾅 요란하게 문짝이 울리더군요. 나는 다시 앞 창문께로 돌아 나갔습니다.
「제길헐! 이거 어디…….」
선생님은 화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방으로 난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 젖히더군요. 전등도 켜고요.
「쇠창살은 또 뭣 때문에 이렇게 창문마다에 다 쳤어. 빌어먹을! 이거야 답답해서 견디겠나, 어디!」
난 밖에서 물끄러미 그런 선생님을― 나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점점 난폭해지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죠. 뭐가 어째서 그렇게도 답답해하시는지 도통 알 수 없더군요. 모든 시설이 안에 다 있고, 사방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여느 날처럼 그림이나 그리시지 않구요.」
난 그런 선생님이 참 딱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끔 내다보시더니 무슨 말을 할 듯 하다 말고 화실 한복판에 있는 걸상으로 가 쓰러지듯 털썩 주저 않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곰방대에 또 담배를 담으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꼭 어디 빠져나갈 틈새라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틈이 있을 리 없죠. 문은 그 모양으로 고장 났고, 사방에 창문은 있었지만 그 창문들에는 단단히 쇠창살이 쳐져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한참이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더군요.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나는 창문 밖에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한 번 힐끔 날 쳐다보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안 했어요.
「아 그거 왜 자꾸만 문 생각만 하시고 그러셔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편안히 계시지 않구. 그러면 이제 목수가 와서 고칠 텐데 참.」
「…….」
선생님은 또 힐끔 날 쳐다보았어요. 사실 그렇거든요. 보통날 선생님은 별로 문 밖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문이 고장이 나니까 그 날 따라 공연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꼭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불안해하더란 말입니다. 참 묘한 성격이죠. 나는 그런 선생님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슬그머니 창가에서 돌아섰죠. 그랬더니 와장창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군요. 난 깜짝 놀라서 다시 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뭔지 아세요? 걸상이 창문 쇠창살에 턱 하니 걸려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일어서며 깔고 앉았던 걸상을 냅다 던진 거죠. 난 어리둥절했죠.
「야 임마! 가면 어떡해! 어서 목수 못 불러 와!」
선생님은 창문으로 달려와 쇠창살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마구 흔들어 대며 소리소리 지르지 뭡니까. 그건 언제나 인자하시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웠어요. 난 전엔 그런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창에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뛰어넘어 나와서 날 박살을 냈을 겁니다. 정말 겁났어요. 이마엔 핏줄이 서고 입은 꽉 다물고. 선생님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두 손으로 그 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더군요.
「야! 빨리 문 열어!」
갑자기 선생님이 미친 것이나 아닌가 했다니까요.
「예, 목수 아저씨한테 또 갔다올께요, 선생님!」
나는 겁이 나서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읍내로 달렸습니다. 그땐 벌써 밤이 꽤 깊었죠. 캄캄한 길을 나는 거의 단숨에 읍내에까지 달렸어요. 그런데 뭡니까. 목수 아저씨는 잔뜩 술에 취해서 자고 있지 뭡니까.
「아저씨, 빨리 좀 일어나세요. 문을 좀 열어 주어야 해요.」
「음, 문? …… 문 열면 되지 뭘 그래.」
목수 아저씨는 눈도 안 뜨고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일어나요. 우리 선생님 지금 잔뜩 화났단 말예요!」
「화가 나?…… 왜 화가 나…….」
목수 아저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취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죠.
「문이 고장이 나서 안 열린단 말예요!」
「문이…… 고장이 났다!」
「예, 그래요.」
「임마, 문이 무슨 고장이 나고 말고가 있어……열면 되지……문이란 임마, 열리게 돼 있는 거지, 임 마.」
목수 아저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쓱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누워 버렸어요.
「그게 아냐요. 아저씨가 달아 준 저의 선생님 화실 문 알잖아요.」
「에이, 시끄럽다! 걷어차라 걷어차! 그럼 제가 열리지 안 열려!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어, 임마.」
목수 아저씬 잔뜩 몸을 꼬부리며 좀처럼 깨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총각, 웬만하면 낼 아침 일찍 고치지. 저렇게 취했으니 뭐가 되겠어 어디.」
목수네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글세 그런데 그게 안 그렇단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지금 미칠 지경이거든요.」
「미쳐? 아니 문이 안 열린다고 미칠 거야 뭐 있어?」
「글쎄나 말이죠. 내 생각도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안 그런걸 어떡해요.」
「왜, 뒷간에라도 가고 싶은가?」
「뒷간엔요! 그런 건 다 안에 있죠.」
「그럼 배가 고픈가?」
「허참, 아주머니도. 먹을 건 얼마든지 안에 다 있다구요!」
「그런데 왜 그래. 먹을 것 있구 뒤볼 데 있으면 됐지, 그런데 미치긴 왜 미쳐? 오, 바람이 안 통해 서 숨이 답답한가 보구먼 그래.」
「허 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바람이 왜 안 통해요. 스무 평 방의 사방이 창문인데!」
「그럼 뭐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더구나 지금 밤인데, 열어 놓았던 문도 걸어 잠그고 잘 시간인 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발광이야 그래! 원 참 별난 양반 다 보겠네.」
「글세 그러니까 딱하죠. 낸들 알아요, 그러니 제발 좀 아저씰 깨워 주세요, 아주머니.」
「가만 둬요, 총각. 그런 일이라면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 보낼게. 그러니까 총각, 그만 돌아가서 그 선생님께 말하지 그래. 문을 열 게 아니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무시라고.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원!」
목수네 아주머니까지 이젠 상대를 안 해 주더군요. 그러니 어떡해요. 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요. 밤길을 다시 걸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죠. 선생님의 짜증이 두려워서 될수록 천천히 걸어서 집에까지 갔어요. 조심조심 화실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앞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한 발을 창턱에다 올려 디디고 금세라도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 몸짓으로 서 있더군요.
「야 임마! 빨리빨리 좀 못 다니냐. 사람이 지금 죽을 지경인데…… 그래 목수는 데리고 왔어?」
「그게, 그…… 취해서 자던걸요.」
「뭐라구! 취해서 자! 그래 혼자 왔단 말야?」
선생님은 꽥 소리를 지르며 창살을 마구 흔들어 대었습니다. 우적우적 금시 쇠창살이 비틀려 떨어질 것 같았어요.
「암만 흔들어도 안 깨던데요. 낼 아침 일찍 온대요.」
「무슨 개소리야! 낼이 아니라 이 밤이 당장 문제란 말이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주먹으로 쇠창살을 두들겨댔어요.
「그러니 선생님, 이 밤은 그냥 주무셔요. 어차피 밤이니까 문을 잠가얄 게 아냐요. 그냥 주무셔요, 선생님.」
나는 달래듯이 말했죠. 그랬더니 그 말이 선생님을 더욱 흥분시켰던가 봐요.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네가 뭘 안다고 주절거리냐! 누가 밤인 줄 몰라서 안 자는 줄 아냐!」
선생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 상말로 욕지거리를 퍼붓더군요. 그러나 난 조금도 어떻게 안 생각했어요.
「도끼 가져와!」
「도끼가 어디 있어요, 선생님.」
「그럼 무슨 망치라도 가져와!」
「망치는 또 어디 있어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밤새도록 가둬 두겠단 말야!」
「가두긴요…… 아 이제 주무시면 되지 않아요. 밤도 깊었는데요.」
「이 새끼가 누굴 약을 올리나. 응, 너 날 약올리는 거야! 이 죽일 놈의 새끼가!」
선생님은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화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침내 발작을 하더군요. 걸상을 둘러메고 가서 문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안 하고 걸상이 부서져 나갔죠. 그러자 이번엔 커다란 액자를 문을 향해 던졌습니다. 역시 산산조각이 났죠. 선생님은 이제 정말 자기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서 문에다 던졌습니다. 물통, 그림붓, 이젤, 캔버스. 나는 창 밖에서 정말 겁이 났습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그렇게 발광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저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한바탕 던지던 선생님이 이제 던질 것도 없었던지 제풀에 축 어깨를 떨구며 화실 마룻바닥 한복판에 가 턱하니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더군요. 숨이 차서 가슴을 들먹거리면서요, 창문 밖의 나를 노려보겠죠.
「나쁜 새끼! 네가 문을 망가뜨렸지.」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왜……전 정말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럼 누가 그랬단 말야!」
「글세 누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전 정말 모릅니다.」
「가라, 나쁜 새끼!」
「아닙니다, 정말!」
「안 갈 테야!」
선생님은 앉은 채 마룻바닥에서 무엇인가 더듬어 창문 밖의 나를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름통이었어요. 빗맞긴 했지만 난 얼굴에 기름을 함빡 뒤집어썼죠.
「빨리 꺼져!」
선생님은 또 다시 무엇인가 던질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난 재빨리 도망쳤죠. 내 방으로요. 정말입니다. 그리고 자 버렸어요. 선생님은 차라리 혼자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화실 안은 아무 불편도 없거든요. 그랬다가 다음날 아침에 조심조심 창 밖으로 가서 안을 살펴보았더니 선생님은 화실 한켠 벽에 붙여 놓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지 않겠어요. 참 어린애 같은 분예요. 나는 그 길로 읍내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잠들어 있을 때 아침 일찍 목수 아저씨를 불러다가 문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읍내 길 중간쯤에서 목수 아저씰 만났어요.
「엊저녁엔 내가 취했어. 그래 이렇게 일찍 오는 길이지.」
목수 아저씨는 미안해하더군요. 그래 우린 화실로 돌아왔죠. 선생님은 아직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있었습니다. 목수 아저씨는 연장을 내려놓고 문 손잡이를 몇 번 돌려보더군요. 열릴 리가 있나요. 결국 끌을 가지고 문설주를 도려냈죠. 그렇게 만 하루만에 문이 열렸어요. 아닌게아니라 밖에 있던 나까지도 숨통이 확 틔는 것 같데요. 그거 참 묘하죠. 뭐 별 답답한 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막상 문이 활짝 열리니까 정말 가슴이 다 시원하던데요. 난 확 열어 젖혀진 문으로 단번에 몰려들어가는 바람에 빨려 들어가기나 하듯이 화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요. 의자다 액자다 캔버스 따위가 마구 흐트러진 위를 넘어서요.
「선생님! 선생님, 문이 열렸어요!」
소리 질렀죠. 그래도 선생님은 침대에 엎드린 채 꿈쩍도 안 하더군요.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어요.
「선생님 문이 열렸다니까요! 어서 밖에 나가 보셔요.」
나는 침대 곁으로 가서 엎드린 선생님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죽어서 몸이 굳어 있더란 말이지?」
수사관이 느릿한 몸짓으로 걸상 등받이에서 등을 펴며 책상 위의 조서를 집어 올려 폈다.
「정말입니다. 목수 아저씨도 다 보았습니다!」
만덕은 안타까운 눈으로 수사관을 쳐다보았다.
「물론 목수 아저씨도 보았지.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를 불러 갔으니까. 그러나 목수 아저씨가 본 건 죽은 시체였지 그가 죽는 광경은 아니었지 않아!」
「형사 아저씨! 제 말을 믿어 주십쇼. 정말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모두 사실입니다. 억울합니다. 제가 왜 우리 선생님의 목을 누릅니까. 또 그리구, 목수 아저씨도 잘 압니다. 우리가 갔을 때까지도 문은 그대로 고장 나 잠겨 있었거든요. 그래 그걸 뜯고야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야 그랬지. 그런데 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단 말야. 안 그래?」
수사관은 열쇠를 집어들어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허지만 아저씨! 문은 고장이었습니다요! 그걸 목수 아저씨가 뜯고야 들어갔다니까요!」
「거짓말 마!」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수사관을 노려보는 채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임마! 그럼 네 말대로 이십 평 화실에 사방의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는데 그 속에서 혼자 숨이 막혀 죽었단 말야!」
「글세 그거야…….」
「거짓말도 씨가 먹어야지! …… 김순경, 이 자식 끌어다 수감해!」
옆방에서 순경이 들어왔다. 만덕의 죽지를 붙들어 끌고 나갔다. 만덕은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수사관은 거기 조서 밑의 의사의 검안서(檢案書)를 슬쩍 들쳐 보았다.
<질식사.>
「돌팔이 같은……사방의 창문이 활짝 열린 방안에서 질식해 죽어!」
수사관은 코방귀를 뀌며 걸상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쳐들고 기지개를 켰다.
살 모 사
삐걱삐걱 차체를 뒤틀며 종로 네거리를 을지로 입구 쪽으로 돌고 있는 전차 창문에 붙어 서서, 더위에 축 늘어진 거리를 막연히 내다보고 있던 나는 흠칫 놀랐다. 거기, 건너는 길목에 서서 신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분명 살모사(殺母蛇)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섬뜩하였다. 나는 얼른 뒷창문께로 다가갔다.
신호가 열린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서 있던 사람들이 양편에서 와르르 차도를 들어섰다. 나는 그 사람들 틈에서 다시 살모사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미처 살모사를 찾아 내기 전에 전차는 이미 을지로 입구 쪽으로 쑥돌아 나와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강파른 몸매하며, 재푸른 미간에 독살스레 곤두세운 세모진 눈하며, 매부리코 밑에 꼭 악물은 유난히 얇은 입술은 틀림없는 살모사였다.
다만 의심하자면, 그 살모사가 어찌하여 이 서울에, 그도 종로 네거리에 있는가 하는 그 점뿐이었다.
나의 기억은 3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열 세 살 소년인 나는 이북에 있는 내 고향 보통학교(지금은 공산 치하에서 인민학교로 그 명칭이 변했겠지만) 6 학년 교실에 가 섰다. 같은 또래의 애들이 한 60명 모여 서서 떠들고들있다. 나는 한 반이던 그 애들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친하던 순서대로 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세 층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얼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친하던 몇몇 애들. 그리고 다음은 메기, 도깨비, 염소, 미친개 따위 기괴한 별명과 함께, 마치 그 별명에 맞추어서 태어나기나 한 것 같은 인상만이 선히 남고 막상 중요한 그 본명은 어디론가 빠져 버린 애들. 그리고 맨 끝으로는 그 이름도 또 별명도 모습도 모두 잃어버린 채 그저 의미 없는 웃음만을 헤헤헤 웃고 있는, 말하자면 그림의 배경(背景) 같은 많은 애들.
그런데 그 중에 꼭 한 애, 예외가 있었다.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니 친하기는커녕 가장 싫어하고 꺼리던 애면서 아직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인상이 너무나 똑똑히 기억 나는 애. 그 애가 바로 본명이 궁 남(弓男)이고 별명이 살모사였다.
우선 그 성부터가 전교 내에 단 하나인 궁(弓)가였던 그는 정말 괴팍스러운 애였다.
그의 세모진 두 눈에 항상 독기가 가득 차 있었고, 칼로 쪽 금만 짼 것 같은 얇은 입술은 꼭 악물어 살기가 싸늘하게 서려 있었다.
어쩌다 누가 한 마디 뭐라고 하기만 하면, 과히 거슬리는 말도 아닌데 그는 팩 하고 성이 나 마주 돌아서서는,
「뭐? 뭐야 이 쌔끼야!」
하며,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모든 애들을 그저 적대시하려고만 드는 그를 좋아하는 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 누가 맨 처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살모사라는 별명 그대로 정말 뱀을 대하듯이 모든 애들이 그를 꺼렸고 따라서 그는 점점 더 배틀려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그 살모사와 한 책상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6학년 초였다.
선생님은 전반 애들을 키 순서대로 운동장에 세우고 번호를 부른 다음 우향 우, 하고 이열 종대를 만들었다. 그때 내 오른쪽으로 쓱 나선 애가 바로 살모사였고 그것이 바로 둘씩 앉게된 책상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 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정한 첫 시간이었다. 살모사는 선생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책상 까만 판을 요리조리 재더니 꼭 반에다 금을 재는 것이었다. 아니 금을 째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가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서 거기 아주 도랑을 팠다. 그러자 그는 나의 팔꿈치를 툭 건드리고,
「야, 이거 알디. 절대로 넘디 않기다.」
낮은 소리로 경고하며 책상 밑에서 칼을 한 번 세워 보였다.
나는 그보다 키는 크면서도 나이는 한 살 아래였다. 그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도무지 그와 뭐라고 마주 다툴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영악한 애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책 상 밑에서 세워 보이는 그 칼만 해도 그랬다. 그 칼은 연필을 깎기 위한 어린애들의 칼치고는 너무나 새파랗게 날이 서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도 그는 칼로,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진, 반에서 셋째로 큰 애의 어깨를 찌른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만 해도 따지고 보면 잘못은 살모사에게 있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이었다. 살모사가 지나가며 도깨비의 책상을 건드렸다. 그러자 책상 속에 들어 있던 도시락이 떨렁 하고 마룻바닥에 떨어지며 장아찌와 조밥이 몽탕 쏟아졌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고 핼끔 돌아보아다. 도깨비라는 큰 애는 어쩌나 보자는 듯이 살모사를 넌지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살모사의 얼굴에는 일순 당황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순간이었고,
「이 쌔끼가. 와 보니?」
하며, 도리어 도깨비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분명 속으로는 잘못했다 하면서도 입으로는 그 소리를 못 하는 살모사였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요 쌔끼가, 요거 정말……」
체통이 커다란 도깨비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어느새 쥐어박았는지 살모사는 거기 책상 사이에 쓰러졌다. 그렇게 그가 돌아서서 자기 책상 쪽으로 한 걸음을 걸어갈 때였다. 모여 섰던 애들이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살모사의 칼이 도깨비의 왼쪽 어깨에 꽂혀 있었다. 도깨비는 어깨를 움켜주고 주저앉았고, 그 등뒤에서 살모사는 얇은 입술을 꼭 악물고 아드득 어금니를 갈고 있었다.
그런 애가 살모사이고 보니, 그야말로 정말 살모사를 다루듯이 아주 그것을 때려서 죽여 버리지 못할 바에는 그저 적당히 지나쳐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나는 제법 슬기로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뭐 나만의 슬기가 아니라 그때 그 6학년 애들 전원의 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와 살모사의 그 책상 경계선에서는 거의 매시간 사소한 충돌 사건이 발생하곤 하였다.
어쩌다 내 고과서의 한 모서리가 그 경계선을 조금 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살모사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나의 책을 획 밀어 치우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책상에만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을 허공으로 연장하여 나의 몸과 살모사의 몸과의 사이에까지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옷자락이나 물팍이 어쩌다 그 허공에 연장된 경계선을 조금이라도 넘었다고 생각되면, 그는 연필이나 콤파스나 삼각자 같은 것으로 사정없이 콕 내리찍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 시간에 무의식 중으로 아야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 싸우지를 않았다. 아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싸운다면 힘은 거의 비등한 판이니까 때리고 맞고 피장파장일지는 모르나, 내가 이길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아주 없애 버리지 못하는 한 그는 반드시 나의 어깨에 칼을 꽂고야 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그렇게 철저한 데 비하여 도저히 그를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쳐 놓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반대로 아주 그를 너그럽게 대해 주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는 또 그렇게 매사에 져 주기만 하는 내 태도에 이번에는 도리어 어떤 경멸 같은 것을 느꼈던 모양으로 더욱더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나의 표정과 말투까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산수 시간이었다. 쓰다 놓은 내 연필이 또르르 굴러갔다. 소위 경계선의 3 분의 2나 넘었다. 나의 손과 살모사의 손이 거의 동시에 그 연필을 한 끝씩 덮쳤다. 그러니까 경계선을 가운데로 하고, 나는 고무가 달린 쪽을 손으로 눌렀고, 그는 또 딴 쪽을 덮쳤다. 나는 그렇게 손으로는 연필을 누른 채 우선 선생님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런데 살모사는 한 손에 어느새 칼을 펴 들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연필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연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살모사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연필의 거의 3분의 2였고, 내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겨우 고무가 달린 부분이었으니까 힘써 쥐어지지를 않았던 것이다.
살모사는 파랗게 날이 선 칼을 나의 손끝으로 가져 왔다. 그리고는 경계선에서 연필을 자를 작정이었다. 그는 칼을 연필에 가져다 대고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때의 웃음. 어린애답지 않게 눈꼬리와 입 가장자리에 잔주름을 지으며 소리 없이 웃던, 그때의 그 살모사의 야릇한 미소를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의 그런 미소에서 얼음을 만진 때처럼 선뜻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연필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그는 다시 연필로 얼굴을 돌렸다. 칼날을 경계선과 정확하니 맞추었다. 이제 그 산 지 얼마 안 되는 파란 연필을 고무가 달린 바로 밑에서 두 동강으로 자를 판인 것이다.
「그냥 너 가져.」
나는 어쩐지 그 연필을 마치 목을 자르듯이 고무 밑에서 싹 자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살모사는 연필 모가지에 칼날을 댄 채로 빤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결심한 듯이 그 얇은 입술을 악물면서 싹둑 연필을 자르고 야 말았다. 정말 싹둑 잘랐다. 그렇게 그의 칼은 잘 들었다. 나는 때구르르 나의 공책 모서리로 굴러오는 그 연필 모가지를 보는 순간 어쩐지 내 손가락 끝에 따가운 통증을 느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에 쥐었던 연필 동강을 이번에는 한 치만큼씩 짧게 몇 동강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이었다. 싹둑싹둑. 정말 잘 드는 칼이었다. 그렇게 한 동강을 자를 때마다 그의 입술과 칼끝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런 그가 겁이 났다.
수업이 끝났다. 반장의 구령에 의하여 모두 일어서서 선생님께 경례를 하였다. 그런데 살모사만은 일어서질 않았다. 그는 앉은 채 그 조그마한 연필 동강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궁 남.」
선생님이 반 애들을 세워 둔 채 그렇게 불렀다. 그는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궁 남. 왜 안 일어나지?」
그래도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일어나. 그리고 선생님한테 인살 해야지.」
사십이 넘으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부드러웠다. 그래도 그는 꼼짝도 안 했다. 그저 책상 위의 연필 동강들만 응시하고 있었다.
「궁 남. 일어나 !」
선생님의 목소리는 좀더 커졌다.
「안 일어나 !」
선생님의 음성이 약간 노기를 띠었다. 그러니까 비로소 그는 마지 못하는 태도로 일어나 섰다.
「인사해 봐.」
일어서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또 그대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는 채 인사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인사 안 해?」
「……」
「인살 해!」
또 선생님의 음성이 커졌다. 그러자 그는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 경례가 보통 경례가 아니라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 최경례(最敬禮)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렇게 구십 도로 굽히는 경례를 꾸벅꾸벅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반 애들이 와하하 웃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분명 노기가 솟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역시 능란하신 분이었다.
「그래. 그렇게 내가 다음 시간에 들어올 때까지 인살 계속하고 있어.」
하고, 쓰게 웃으며 교실을 나가셨다.
딴 애들은 그때 살모사가 왜 그랬는지를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뒤로 나는 점점 더 그를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너그럽게 져 주면 져 주는 대로 그렇고, 그렇다고 그의 잔인도(殘忍度)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고. 그래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절대로 그와의 경계선을 건드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와 말을 주고 받고가 필요가 없을 것이고, 말을 하지 않고 지내면 따라서 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과연 그것은 현명한 방안이었다. 한 달쯤은 정말 말 한 마디 없이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어떤 날 기어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날은 나흘째 계속되는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교실 안은 습기찬 애들의 몸 냄새로 퀴퀴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애들은 즐거웠다. 쉬는 시간이면 조그만 청개구리를 잡아서 여학생 애들의 책상에 올려놓아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다들 자기 좌석으로 달려가 앉았다. 그런데 난처한 것은 청개구리들이었다. 청개구리는 애들의 책상 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 내 무릎 위에 조그마한 청개구리가 한 마리 올라왔다. 나는 선생님 모르게 그 놈을 잡았다. 책상 위의 국어 책을 병풍처럼 세웠다. 청개구리를 그 안에 살며시 놓았다. 파란 놈이 하얀 배를 할딱할딱하며 두 눈을 뒤룩뒤룩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간 귀엽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그놈을 필통에라도 넣어 두고 싶었다. 책상 모서리에 있는 필통을 살며시 당겼다. 그러나 세워 놓은 책을 건드렸다. 병풍처럼 막아 서 있던 책이 넘어졌다. 다행히 책은 경계선을 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놀란 청개구리란 놈이 홀짝 뛰었다. 경계선을 넘어 살모사의 공책 위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얼른 살모사의 얼굴부터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살모사의 입술이 꼭 아물어지며 어금니가 아드득 소리를 내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 조그마한 개구리를 덮쳤다. 그리고 마치 무슨 발작처럼 칠판을 향하여 자기 힘껏 그 청개구리를 두들겨 던졌다. 정말 어찌나 악을 쓰고 힘껏 던졌던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청개구리는 그대로 납작하니 되어 칠판에 찰싹 달라붙어 버렸다.
놀란 것은 생도들보다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무참히 학살되어 칠판에 착 달라붙은 청개구리를 본 선생님은 천천히 애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누구지? 이처럼 잔인한 짓을 한 것은.」
선생님의 음성은 지극히 부드럽고 낮았다. 그러나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잠깐 잠잠하였다. 선생님은 교실 안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아무도 일어서질 않았다.
「좋다. 일어서지 마라. 차라리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 것이 좋겠다……무서운 일이다.!」
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그렇게 한숨처럼 말씀하시고, 끝나는 종도 나기 전에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렸다. 정말 살모사는 무서운 애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살모사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역시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었다. 그러나 기실 살모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의 아버지를 분명히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처럼 살모사의 출생은 그 잉태부터가 기구한 것이었다.
살모사의 어머니는 중농가(中農家)의 딸로서 꽤 예쁘게 생긴 여인이었다. 열 여덟 살 나던 해에 그녀는 궁(弓)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다. 궁씨네는 그 조상에 꽤 높은 벼슬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하여 고을 안에서는 제법 양반으로 행세하는 가문이었다. 재산으로 말하자면 과수원과 논밭이 약간 남아 있을 뿐 벌써 몰락한 양반의 궁씨 집안이었으나, 평생 지체가 낮은 것이 한이던 살모사 어머니의 집으로서는 양반집과 혼사를 지낸다는 것만이 만족스러워 딸을 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어린애가 없었다.
본시 궁씨네가 자손이 바튼 씨족이라 그렇다고도 하였고, 남편의 폐병이 있어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 그들 젊은 부부는 남편의 폐병에 좋다 하여 마을 뒤 과수원으로 옮아 살았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오래간만에 부부 사이의 뜨거운 애무를 치른 그들은 녹아들 듯이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여인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불을 끈 방 안은 캄캄한데 사나이의 가슴이 또 콱콱 젓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 두 번씩 이러믄 어떡카우. 몸을 돌봐야디 ……」
그렇게 걱정은 하면서도 그녀는 사나이의 허리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나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욕정은 차츰 더 끓어오르는 듯 미친 듯이 여인의 온몸을 짓이겨 왔다. 그렇게 약한 남편의 몸에서 이런 폭포 같은 정열이 어떻게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인도 차츰 불이 타올랐다. 이윽고 사나이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은 황홀한 허탈 상태 속에서도 남편의 건강을 위한 후회로 한숨을 쉬며 머리맡의 성냥갑을 더듬었다.
「불 케디 말라!」
그 소리에 여인은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건 남편의 목소리와는 너무나 다른 굵고 거친 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 하였으나 목이 깍 말라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사나이는 문으로 나가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떨고만 있던 여인은 간신히 성냥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 든 성냥불 밑에 그녀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목에 노끈을 감은 남편이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난 애가 바로 살모사였던 깃이다. 궁씨 문중에서는 그날 밤 이야기를 여인에게서 자세히 들은 후 그 애를 호적에 넣었다. 물론 여인은 그 정체 모를 사나이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인은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고 앉기만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랑인가 원수인가?
그러나 점점 자라는 애에게서는 무어 하나 남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였다. 어린애가 차츰 하나의 개체(個體)로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던, 다섯 여섯 살 무렵부터, 그 애를 바라보는 그녀의 심정이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져 갔다. 남편을 죽인 자의 씨로서의 증오와, 또 하나는 자기의 뱃속에서 자기의 피를 빨고 자랐다는, 그 어쩔 수 없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오는 애정과.
남편이 그 지경을 당하고 난 후, 거의 절대(絶對)되다시피 사그라진 시가에서 과수원을 팔아 받아 가지고, 읍 가까운 어느 언덕 밑 초가를 사 들고 살던 그녀는 문득문득 공포를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깊은 밤에 등잔불 밑에서 잠든 애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그날 밤, 그 사나이의,
「불 케디 말라 !」
하던, 굵은 음성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휩싸여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으레 그녀는,
「보면 알 테디. 그런들 개새끼야 모를라구.」
하고, 중얼거리며 잠든 애의 얼굴을 밀어내듯이 노려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여러 애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매우 섭섭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 애들과 헤어지는 섭섭함보다도, 살모사 한 애와 이제 떨어질 수 있다는 시원함이 더 컸다.
나는 평양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렇게 첫 번 여름 방학에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역 플랫포옴에서 살모사를 보았다. 커다란 빨강 모자를 헐렁하니 쓰고 앞에는 도시락과 보리차 병이 가득히 담긴 목판을 한쪽 어깨에 끈으로 해 멘 그는,
「벤또, 벤또, 오쨔(도시락 차), 오쨔.」
하며, 기차 창문 밑으로 분주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렇게도 미워하던 그가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궁 남이 !」
나는 그를 불렀다. 저만큼 걸어가던 그는 얼른 돌아섰다. 그러나 부른 것이 나라는 걸 알자 그는,
「쳇!」
하고, 다시 돌아서 어른 같은 목소리로 벤또, 벤또, 오쨔, 오쨔, 소리 지르며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그를 잊어 버려 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그가 광산에서 싸움 끝에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문과 그와는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또 거의 미치도록 기독교에 열심히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들 모자의 소문을 듣던 내 눈앞에는 까만 칠판에 네다리를 짝 벌리고 배를 깔고 붙어 죽은 청개구리와,
「……무서운 일이다!」
하며, 한숨을 쉬던 선생님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그 다음, 소문이 아니고 정말 살모사를 본 것은 해방되던 해 겨울이었다.
공산당들은 5 정보 이상의 토지를 가지고 있던 지주들의 토지를 전부 몰수하고, 그 집에서마저 추방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나의 집에도 읍내의 민청원(民靑員)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낫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그들 민청원을 지휘하고 있는 자가 바로 살모사라는 점이었다. 내가 스물넷 이었으니까 아마 스물 다섯 살이었을 그는, 어디서 얻어 쓴 것인지, 캡의 앞단추를 뜯어서 쓱 뒤로 밀어젖혀 쓰고 나의 집 안뜰 한가운데 있는 우물 턱에 걸터앉아 언젠가 어려서 한 번 본 일이 있다고 기억되는 그 야릇한 웃음을 입 가장자리 잔주름에 띠며 마루 위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길로 나의 집 식구들은 삼팔선을 넘어오고 말았다.
그 후에 나는 남한으로 넘어온 고향 사람들을 통하여 살모사의 소식을 들었다.
그 고향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방이 되자 숨어살던 만주에서 돌아온 살모사가 그때 그렇게 공산당에게 중히 쓰이게 된 이유는 그가 해방 전에 탄광에서 투전 끝에 죽인 사람이 광부가 아니라 사무 직원이었다는 데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착취 분자를 죽였으니 그건 노동자의 영웅이 아니겠는가 하는 논법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 고향 사람은,
「아 그뿐인 줄 아나?」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지주 추방에 열성이던 그는 어떤 날 민청원들을 끌고 기어이 자기의 외할아버지 집엘 갔다.
「네, 이놈! 그런들 네놈이 이 외할아빌 몽둥이로 쫓아내 !」
그의 늙은 외할아버지는 도리깨를 들고 그에게 다려들며,
「이놈! 나는 이 땅들을 땀흘려 일하고 샀다. 이놈! 난 달밤에도 김매서 이 땅을 샀다. 이 날도둑놈들. 이 할애비도 모르는 빨갱이놈아.」
하고. 외손자의 멱살에 매달려 기절을 했다. 그러나 살모사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동무들.」
살모사는 자기의 멱살을 쥔 채 기절한 노인의 손을 떼어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민청원들은 흙발 그대로 방에 들어가 세간들을 마구 밖으로 내동댕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마당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한창 세간들이 굴러 나오는데 그 집 머슴인 최(崔)서방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여보게 남이, 이러지 말게. 그런들 이럴 수야 있나. 내 낯을 봐선들 이래서야 쓰겠나.」
최서방은 살모사 앞으로 다가가며 그렇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뭐라구? 이 머슴 동무가 미쳤나? 여보 동무. 동문 그래 평생을 남의 집에서 이렇게 머슴살이를 하구두 분하디두 않우 ?」
살모사의 말이었다.
「아니래두. 여보게 남이. 날 좀 보이. 날 좀 보라구. 내가 자네 애빌세. 애비야!」
「……?」
살모사는 세모진 눈을 더욱 곤두세웠다.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같이 온 민청원들은 모두 세간을 내던지기에 바빴고, 외갓집 식구들은 저만큼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고 웅성거리고들 있었다.
「이너무 영감이 미쳤나. 정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야. 아니래두. 분명히 네 애빈 나라니까. 그러니까 넌 최가야. 네 어머니한테 가서……」
최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면상을 주먹으로 쳤다. 아이구 하고 거꾸러지는 최서방의 코에서 금시 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동무들. 이제 그쯤 하구 갑시다.」
살모사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먼저 대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읍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모사는 몹시 불쾌하였다.
그는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자기 아버지가 어떤 날 밤 괴한에게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최서방의 말에 의하면 그가 자기의 아버지노라 하니. 그는 도무지 어떻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서방이 혹 자기 아버지를 죽인 괴한이 아닐까?
아버지의 원수.
아니 그렇지도 않지. 최서방의 말이 사실이라면 죽은 건 아버지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
살모사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그 문제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어쩐지 최(崔)가 자기 성이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가 싫었다.
「미친 영감쟁이.」
살모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날 그 일은 그것으로 머리에서 떨어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살모사가 외할아버지까지도 상관 않고 당과업(黨課業)에 열성적이었다는 공으로 읍 인민 위원회는 그를 정식 당원으로 가입시켜 주도록 상부에 추천했다.
살모사는 만족하였다. 이제 정식 당원이 되기만 하면 무슨 뚜렷한 자리가 하나 주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더욱더 열성을 내어, 꼭 출세를 하고야 말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부에 제출되었던 추천서는 뜻밖의 종이꼬리를 달고 돌아 내려오고 말았다.
출신 성분(出身成分)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런대로 중농 출신이니 어찌어찌 됐다 치더라도 아버지가 소위 양반이란 집안에 태어난 유한 계급이었으니, 좀더 두고 그의 열성도를 시험하라는 것이었다.
인민 위원회 간부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살모사는 정말 실망하였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딴 일이라면 어떤 잔인한 짓이건 다 해낼 열의와 자신이 있는 살모사였으나, 출신 성분만은 그의 힘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어떤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날 저녁 살모사는 식사를 마치자 예배당으로 가려는 그의 어머니를 붙들고 들었다.
「어머니.」
「…… ?」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외갓집에 있는 최서방 알디요 ?」
「그래서 ?」
「그가 누구디요 ?」
「누구라니?」
「내 아버지라면서요?」
살모사는 거의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들이대었다. 순간 그의 어머니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녀는 한참이나 잠잠하였다. 그녀로서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그날 밤에 들은 음성은 겁결에 들은 것이니 그만두고라도, 아들의 모습이 자랄수록 누군가 낯익은 사람을 닮아 간다고 생각하였다. 낯익은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그녀는 아들의 그 매부리코와 유난히 얇은 입술에서 자기 집 머슴을 보았던 것이었다. 더구나 그날 밤 나가면서,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하던, 그 말로 미루어 그 사나이가 어려서부터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고, 이런 점 저런 점으로 보아 그것은 자기 집 머슴 최서방이었으리라는 것을 거의 단정한 지도 오래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사실화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들이 그렇게 들이대는 마당에야 굳이 아니라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디도 모른다니요?」
그녀는 그 이상 더 아들과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고 성경책을 집어들며 일어났다.
살모사는 그 달음으로 최서방을 찾아갔다. 그렇게 최서방을 찾아보고 밤 늦게야 집에 돌아온 그는 이미 궁 남이 아니라 최남(崔男)으로 성을 갈고 있었다.
다음날, 머슴 최서방은 읍 인민 위원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25년 전의 살인 강간을 자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가 되기 전에
「궁(弓)동무. 아니 참, 최(崔)동무. 동무는 참 훌륭한 아바질 가젯수다.」
하고, 인민 위원장으로 하여금 살모사의 어깨를 두들기게 하였으며, 며칠 후에 살모사는 당당한 공산당원으로 당원증을 목에 걸고, 민주 청년 동맹 위원장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살모사를 거의 잊어버린 채 지났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25 사변이 일어났다.
공산군이 불의에 밀고 내려왔었으나 9월28일에는 다시 서울을 탈환한 국군은 적을 몰고 북한으로 진격하였다.
나는 종군 기자(從軍記者)의 자격으로 국군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갔다. 10 월 중순께 나는 고향 읍엘 갈 수 있었다. 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트럭에서 내렸을 때에 고향 읍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학살된 읍민들의 시체를 끌러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경찰서 뒷마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온통 울음 바다였다. 마치 타다 남은 장작개비처럼 시꺼멓게 썩은 시체가 주르르 줄을 지어 누워 있고, 그 시체 머리맡과 발끝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부녀자들은 반 미쳐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돌아서는 나의 팔꿈치를 툭 지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 이게, 누구야 ! 도깨비 아니야 ?」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역시 틀림없구나. 야 반갑다. 정말.」
오랫동안 굴속에 숨어 있었노라는 그 도깨비란 별명의 옛친구는, 얼굴이 누렇게 부었고 머리카락이 거의 귀를 덮었으며 입고 있는 옥양목 바지저고리에는 여기저기 진흙 물이 들어 있었다.
「데거 봤디 ?」
그는 턱으로 시체를 가리켰다. 나는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고 쌔끼 정말 잡으면 각을 떠서 죽여야 할 텐데 !」
도깨비는 흥분한 어조였다.
「누구 ?」
나는 도깨비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아 고 살모사 말이야 !」
「살모사?」
「그래. 고 살모사너무 새끼 짓 아닌가. 서른 네 명이나 된단 말이야.」
도깨비는 또 한 번 시체를 돌아보며 분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서 앞마당으로 돌아 나오며 도깨비에게서 살모사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살모사의 잔인한 짓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국군이 평양을 점령한 다음날이었다. 살모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민청에 비밀 지령이 내렸다. 수감중인 소위 반동 분자들과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리고 곧 북쪽으로 후퇴할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갈았다.
그는 몇 명의 민청원을 거느리고, 반동 분자들을 수감해 둔 창고로 갔다. 두 사람씩 두 사람씩 전기 줄로 묶어서 창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 길로 그들은 경찰서 뒷마당에 있는 방공호로 끌려갔다. 그렇게 서른 네 명의 남녀가 팔을 뒤로 묶인 채 경찰서 뒷마당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 소위 반동 분자 대열 속에서
「이봐. 얘, 나 좀 봐.」
하며,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허름한 사나이가, 거기 문 옆에 서 있는 살모사를 자꾸 부르는 것이었다. 최서방이었다.
살모사는 힐끔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싸늘한 표정 그대로 하나하나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후였다. 햇볕이 쟁쟁 내리쬐는 가을 오후였다.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네 발의 폭음이 들려 왔다.
「이젠 예수쟁이들만 처치하면 되디.」
방공호 속에 네 발의 수류탄을 던져 넣고, 뒤에 둘러서 있던 민청원들을 향하여 돌아서는 살모사의 혼잣말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도깨비란 친구는 손끝까지 탄 담배를 꼬집어 쥐며 한 번 더 깊이 빨았다.
「그런데 그 최서방은 자기 아버지라던데 어째서 ……」
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도깨비란 친구는 담배 꽁다리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끄면서,
「흥. 애비가 소용이 있나. 공출을 속인 반동 분잔걸…… 하기야 평생을 남의 집 머슴이었으니 아들 덕에 분배받은 주인집 논밭으로 좀 살아 보구 싶었겠지만.」
하고 껄걸 웃는 것이었다.
「그렇군, 살모산 도망쳤군.」
나는 도깨비란 친구의 우묵하니 들어간 두 눈에서 옛 모습을 더듬어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러구 곧 도망친 게 아니야. 그렇지, 그러구 곧 도망친 거군, 결국. 그렇게 도망치던 길에 살모사는 또 사람을 죽였지. 이번엔 오십 명도 더.」
도깨비란 그 친구는 쓱 돌아서며 읍 북쪽에 있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함석으로 지붕을 덮은 예배당 종각이 서있었다.
그렇게 방공호를 폭파시킨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제 편에서 도리어 배신을 당하는 것 같은 그런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한 새끼도 없구나. 그렇다니까, 그 새끼들 다 반동이었던 걸 모르구……)
살모사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읍민들에 대한 강한 분노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누구든 자기 눈에 얼핏 띄기만 하면 그저 단방에 갈겨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읍 북쪽 언덕길 위에까지 올라갔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대원들도 따라갔다. 살모사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사방은 여전히 괴괴하였다. 어느 집에서 기어 나온 것인지 까만 고양이가 한 마리 살모사의 발부리를 지나, 가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길을 가로질러 갔다.
「분명히 예수쟁이들이 예배당에 모여 있다고 그랬디?」
살모사는 대원들을 향하여, 정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듯이 그렇게 다져 붇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살기 띤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 전에 확인한 상황에 비하면 위기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약 10미터쯤 골목길에 들어간 곳에 있는 예배당에는 조금 전까지 5, 60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도 고요했던 것이다.
「도와,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
살모사는 따발총을 옆구리로 끌어올려 끼며 골목길을 걸어 들어갔다.
예배당 안에는 과연 교인들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입 속으로 뭐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열려 있는 예배당 문턱에 왼쪽 발을 하나 올려놓고, 그 무르팍에 따발총을 걸치고, 한 바퀴 예배당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자기의 어머니도 어디 앉아 있으리란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 엎드려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살모사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다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 앞쪽 단 위에 쭈그리고 돌아앉아서 기도를 하던 목사가 일어섰다. 교인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자 그럼, 찬송가 사백 육십 이 장, 다 같이……」
늦은 목사는 말을 뚝 끊쳤다. 거기 문에 버티고 서 있는 살모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의 머리가 목사의 시선을 따라 등 뒤 문께로 일제히 돌아왔다.
아! 누군가 여자의 비명이 날카롭게 예배당 안을 흔들었다. 그것은 살모사의 어머니였다. 머리카락이 희뜩희뜩 센 살모사의 어머니는, 저 앞에, 강대 바로 밑에서부터 앉아 있는 교인들을 헤치며 뒷문께로 허둥허둥 달려나오고 있었다.
「궁 남아! 애야 ! ……하나님이……」
살모사의 어머니가 그렇게 소리치는 바람에 교인들도 와르르 일어섰다. 그렇게 교인들이 모두 일어선 것과 따발총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을 뿜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내가 살모사에 관하여 들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나는 살모사를 종로 네거리에서 분명히 본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람이 두서너 명만 모인 곳이면 반드시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혹 거기 살모사가 끼어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나는 결코 살모사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그들 또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자꾸만 그렇게 주변을 살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불안이 거의 병적인 데까지 이르러 버렸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대문 안에 떨어진 조간 신문을 줍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꼭 그 신문지 아래 살모사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바로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책을 보고 앉아 있는 내 걸상 밑에서, 대가리가 삼각형인 살모사가 그 바늘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르르 기어 나와 산뜻한 몸뚱아리로 나의 벗은 발목을 감으며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은 것이다. 아니, 벽에 세워 놓은 책장 밑으로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건축 밑에서도, 차의 커어튼 뒤에서도, 심지어는 천장의 형광등 위에서도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이대로는 정말 잠시도 안정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눈을 비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편에서 먼저 살모사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다. 기어이 그를 찾아내어서 그 정체를 밝혀야겠다. 먹살을 쥐고 따져야겠다.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갈 매 기
-이범선
파도 소리가 베개를 때린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여느 날 같으면 벌써 나갔을 전등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 아마 이 浦口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기쁜 일이나 그렇지 않으면 슬픈 일이.
섬 안은 그대로 한집안이다. 그러기 어느 집안에든지 잔치가 있거나 또는 喪事가 생기면 이렇게 밤새도록 전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상이군인이 새색시를 맞던 날도 그랬다. 읍장님의 어머니 진갑 날도 그랬다. 고아원에서 어린애가 죽던 날도 그랬고, 일전 파도가 세던 날 나갔던 어선 한 척이 돌아오지 않던 밤도 그랬다.
薰이 피난 내려왔던 부산서 중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이 섬으로 들어온 지가 벌서 칠 년이 된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퍽도 외로웠다. 조그마한 포구에 말려들어 왔다가는 또 말려 올라가곤 하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그저 졸리기만 했다.
그래도 섬에서는 도민증이나 병적계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좋았다. 당시 부산 등지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야말로 심장보다 더 소중하던 때였지만 어쩌다 하루 저녁 여인숙에서 묵고 가는 나그네까지도 해변가에서 쉬이 친구가 되어 버리는 이 포구에서는 그런 것은 있으나 없으나였다.
이제는 벌써 훈네도 피난민이 아니다. 아기를 안고 길가에 나와 섰던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제법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배에서 돌아오는 옥희 아버지와 이쁜이 오빠는,
“이거 참 오래간만에 잡은 도밉니다. 아직 살았어요.”
“꽤 큰 소라지요. 가을 들어 처음입니다.”
하며, 대바구니 속에서 도미나 소라를 집어내어 훈네 집 대문 옆에 누워 있는 소바우--그 모양이 꼭 누워 있는 소 잔등 같아서 그들은 그렇게 부른다--위에 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칠 년. 섬에서는 한 해가 하루처럼 흘러간다. 그야말로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아무런 사건도 없다. 마디가 없다.
“왜, 선생 보기엔 좀 깨끗지 않아 보이재? 그래도 이 짠물이 이게 좋은 게라이.”
바닷가에서 맛조개를 캐던 옆집 할머니가 바닷물에 손을 씻고 들어와 받아 준 어린애가 벌서 다섯 살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활.
아침 자리에 일어나 앉으면 안개 낀 포구가 유리창에 그대로 한 폭의 墨畵다. 칫솔을 물고 마당으로 내려간다.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바둑이가 신고 설 그의 흰 고무신 뒤축을 질근질근 씹어 본다. 뒷산 동백나무잎이 아침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어디선가 까치가 운다. 마당 한 구석에 돌각담을 지고 코스모스가 상냥스레 피어 웃는다. 추석도 멀지 않은 거기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세 개, 다섯 개, 네 개 탐스럽게 달렸다. 빨갛게 열매를 흉내낸 감나무 잎이 하나, 누가 손끝으로 튀기기나 한 것처럼 툭 가지 끝에서 튀어 난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허공에 원을 그리고 사뿐히 방바닥에 내려 앉는다. 부엌문 앞을 돌아 나오던 흰 암탉이 쭈루루 달려온다. 쿡하고 지금 떨어진 감나무 잎을 쪼아 본다. 핏빛 면두가 흰 머리 위에서 흔들거린다.
조반이 끝나면 훈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국민학교 이 학년인 딸의 손목을 끌며 대문을 나선다.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들길이다. 오른편은 발 밑이 그래도 바다이고 왼편은 깎아진 벼랑이다. 그들은 바위틈에 핀 들국화가 내려다보이는 밑을 천천히 걷는다. 바둑이가 따라오며 흰 수건에 싸든 딸애 도시락을 킁킁 맡아본다. 아내와 다섯 살 짜리 아들 종(鍾)은 대문 옆 소 바위 잔등에 서 있다. 꼬불꼬불 돌길을 더듬어 가는 그들은 C자형으로 된 포구 중앙에 다 가도록 빤히 보인다. 그러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하자면 그들이 포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동안을 거기 그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아내와 아들 종이 사이에는 말없는 가운데 약속이 생겼다. 그들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 돌길을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오면 아내와 종은 바둑이를 앞세우고 문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침마다 그들을 따라나서는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은 정해져 있다.
훈네 집에서 거리에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쯤에 단 한 채 아주 초라한 오막살이가 있을 뿐이다. 그 오막살이에는 노인 거지가 세 사람 살고 있다. 훈네는 그들을 神仙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느 여름 방학에 서울서 놀러 왔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훈의 동생이 지어 주고 간 이름이다.
이들 세 노인은 할 일이 없다.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지낸다. 그래 신선이다. 나이는 육십이 거의 다 되었을 듯한 동년배들인데 그 인상은 각각이다.
신선 일호라는 徐 노인. 머리칼, 눈썹 그리고 긴 수염 할 것 없이 은빛으로 센 노인이 키가 크다. 신선들 중에서 제일 풍채가 좋다. 그리고 신선 이호, 朴 노인. 이 노인은 머리를 중모양 박박 깎았다. 얼굴이 둥근 이 박 노인은 항상 군복을 걸치고 있다. 신선 삼호, 金 노인. 신선 중에서는 제일 인품이 떨어진다. 곰보다. 턱에 꼭 염소 같은 수염이 난 이 신선 삼호는 구제품 회색 신사복 저고리를 입었다.
인상은 어쨌든 그들은 다 신선 별호를 탈 만한 데가 있다. 걸식은 해도 그들은 결코 떼를 쓰는 법이 없다. 또 자기네 사이에 무슨 정해진 바가 있는 듯 같은 집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법도 없다.
훈네 집에 늘 오는 것은 신선 일호 서 노인이다. 아침에 오는 수도 있고 저녁에 들르는 날도 있다. 이즈음 훈의 아내는 서 노인을 위하여 밥을 넉넉히 짓지는 않았지만 줄 밥이 남지 않는 날이면 걱정을 하게쯤은 되어 있다. 그런데 바둑이도 이 서 노인을 알아본다. 청결 검사를 나왔던 순경이 총을 멘 채 질겁을 해 달아날 만큼 사나운 바둑이면서도 서 노인은 짓지 않는다.
아침마다 훈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이 바로 이 신선들이 살고 있는 오막살이 앞이다. 앞을 지나다 서 노인에게 목도리를 한번 내보이곤 돌아선다.
서 노인은 바둑이와만 사귄 것이 아니다.
언젠가 사흘 동안이나 서 노인이 들르지 않은 때가 있다. 이상하다고들 했다. 그 날은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막살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 노인 다 있었다. 신선 삼호 김 노인은 윗목에 벽을 향하고 앉아 거기 기둥에 박힌 못에다 실코를 걸어 놓고 무엇에 쓰자는 것인지 그물을 뜨고 있고, 신선 이호 박 노인은 문께로 나앉아 고무신 뒤축을 깁고 있고, 서 노인은 아랫목에 벽을 향해 누워 있다. 서서 다닐 때보다도 더 큰 키다. 죽은 사람처럼 뻗친 그의 무릎 위에서 다람쥐가 한 놈 앞발로 얼굴을 닦고 있다.
“서 노인이 어디 편찮은 모양이군요.”
그제야 박 노인이 늙은 호박 같은 머리를 든다.
“네, 체해 가지고 한 사날.”
그는 한 번 서 노인을 돌아본다.
그날 저녁 국민 학교 이 학년인 딸과 종과 바둑이가 우유죽 그릇을 들고 오막살이로 갔다.
“불쌍하더라!”
돌아온 딸애가 제법 국민 학교 이 학년답게 낯을 찌푸린다.
“불쌍하더라!”
꼭 같은 어조로 종이 따라 한다.
다음 날이다.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종이 마루로 달려나와,
“아버지, 아버지, 나 다람쥐 있다.”
하며, 구두도 미처 벗기 전에 훈의 손을 끈다.
낮에 서 노인이 오래간만에 집에 들렀더란다. 한 손에는 언제나 끌고 다니는 꼬불꼬불한 가무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또 한 손에는 예쁜 다람쥐를 한 마리 쥐고.
“이거나 애길 줄라고.”
서 노인이 일 년을 방안에서 키웠다는 다람쥐는 아주 길이 잘 들어 있다. 놓아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구 사람의 목덜미로 기어올라서는 오물오물 가슴패기로 파고든다.
그로부터 종은 훈의 방에서 부지런히 꽁초를 까서 빈 캐러맬 갑에 넣었고, 그런 다음날 저녁이면 서 노인이 그 캐러맬 갑을 도토리로 가득히 채워다 종에게 돌린다.
“먹진 못하는 거야. 다람쥐 주란 말이야.”
이 조그마한 포구에도 다방이 한 집 있다. 이름이 <갈매기>다.
다방 이레야 왜인이 살다 간 목조 건물 이층을, 피난 온 젊은 부부가 약간 뜯어고친 것이다.
훈은 때때로 이 다방을 들른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훈이 선 지점은 바로 정확하게 포구 중앙 점인 것이다. 거기서 훈은 한참 바다를 바라본다. 호수처럼 둥글한 포구 한가운데서는 경찰서 수상 경비선이 하얀 선체를 한가히 띄우고 있고, 왼쪽 시장 앞에는 돛대 끝에 빨간 헝겊을 단 어선이 네 척 어깨를 비비고 머물렀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두 대의 흰 등대. 그 등대 허리에 가는 수평선이 죽 가로 그어졌다. 바로 그의 발 밑에서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을 폈고, 그 선에서 다시 또 하나의 바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찔하니 높이 피어올랐다.
훈은 오른편으로 눈을 돌린다. 벼랑 밑 들길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포구를 엇비슷이 가로 건너 거기 빤히 집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반짝거리는 산을 지고 바로 물가에 선 아담한 기와집, 선생들이 감나무 장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마당에는 흰 빨래가 걸렸고, 돌감담 밖에 채소밭 가운데는 쭈그리고 앉은 아내 앞에 선 종의 빨간 스웨터가 빤히 보인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보는 날이면 훈은 곧잘 집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집엘 다녀서 나오는 것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우체국 앞을 지난다. 빨간 포스터를 보면 새삼스레 편지를 띄워 보고 싶어진다. 중국집을 지나 여인숙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다방 <갈매기>가 있다.
장기판 만한 널쪽에 흰 페인트로 쓴 <갈매기>라는 서투른 간판 밑을 끼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층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거기 베니야판으로 만든 문을 득 연다. 대개 다방 문은 밀거나 당기게 되어 있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다방 <갈매기>의 문은 왜식 그대로 옆으로 열게 되어 있다.
다방 안은 대개 비어 있다. 손님이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주인마저 없는 때가 많다.
훈은 언제나 오면 정해 두고 앉은 창가로 가 앉는다. 그래도 테이블 위에는 仙人掌이 놓여 있고, 창에는 푸른색 커어튼이 드리워 있다. 창 밑이 곧 한길이고 그 길 가장자리가 바로 바다다. 훈은 멀리 맞은편으로 눈을 띄운다. 그의 집 자기 방 유리문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벌써 채소밭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의 집 대문 앞을 어떤 부인이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지나간다. <갈매기>가 한 마리 펄럭 다방 창문을 스치고 지나간다. 팔만 내밀면 잡힐 것도 같다. 그래 다방 이틈이 <갈매기>인지도 모른다. 별로 그러자는 것도 아닌데 눈은 자연히 갈매기의 뒤를 따라 허공에 어지러운 불규칙 선을 긋는다.
안방 문이 열리고 주인 여자가 나온다. 그녀의 나이를 딱히 알 까닭도 없지만 보기에는 이제 겨우 삼십을 하나 둘 넘었을까 말까 한 젊은 부인이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반짝 밝은 그녀는 키가 날씬하니 큰 게 연분홍 치마가 분명히 예쁘다.
“아이, 오신 지 오랬어요?”
약간 코가 멘 귀여운 음성이다.
“네, 서너 시간 됩니다.”
“아무리, 선생님두.”
여인은 웃으며 돌아선다.
“여보, 저 건너 이 선생님이 오셨어요.” 그녀는 안방 문을 열고 소리친다. 그리고 거기 뒤로 난 창문턱을 훌쩍 넘어 나간다. 아마 왜인이 살고 있을 때는 그게 이층 빨래를 너는 곳이었을 게다. 그곳이 지금은 이 다방의 주방인 것이다.
훈은 이제 나올 다방 주인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본다. 제법 이 다방에는 별실이 하나 있다. 화장실로 가는 문 옆에 발가벗은 어린애들이 하나는 서고 하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그 밑이 바로 그 별실이다. 그런데 그 별실이란 게 아주 걸작이다. 옛날 왜인의 소위 오시이레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테이블과 걸상을 들여놓고 그 앞을 노랑색 커어튼으로 가린 것이다. 훈은 맞은쪽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초상으로 눈을 옮기며 피식 웃는다.
뒤 창문 밖에서 부채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풍로에 불을 피워 가지고 코오피를 끓일 판이다.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안방 문이 조용히 열린다. 주인이 나온다.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이리로 걸어온다.
그는 눈을 못 보는 것이다.
“이 선생님이슈?”
그는 훈의 테이블 가까이 까지 와서 서며 두 손을 내밀어 불안스레 허공을 더듬는다. 훈은 얼른 그의 한 쪽 손을 잡는다. 여자의 손처럼 연한 손이다.
가락가락 긴 손끝에 뾰족한 손톱이 곱기까지 하다.
“오래간만에 오셨군요.”
“앉으슈.”
훈은 새삼스레 주인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반듯한 이마에 두서너 오라기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 내렸다. 까만 눈썹 밑에 사뿐히 감은 두 눈의 긴 살눈썹이 슬프다. 쪽 곧은 콧날에 조각처럼 단정한 입술, 표정을 잃은 그 입술은 결코 웃어 본 일이 없는 입술 같다.
“별일 없지요?”
“그저 그렇게.”
그가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훈도 안다. 그 어떤 추억을 약처럼 갈아 마시며 외롭고 슬프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부부.
훈은 어제 저녁에도 그 <집시의 달>을 들었다.
두 등대에 불이 들어와 靑紅의 물댕기를 길게 수면에 드리울 때, 고요한 밤하늘에 水紋처럼 번져 나가는 색스폰 소리, 자꾸 자꾸 그의 상념을 옛날로 옛날로 밀어 세우는 들으면 누가 부는 것인지도 모르는 대로 그는 자기 방 마루 기둥에 기대앉은 채 별이 뿌려진 밤하늘을 우러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은 다방 한구석 자리에 은빛 색스폰을 어루만지고 있는 장님을 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다방 주인이었다. 훈은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둘이는 가까와졌다.
그러게 훈이 때때로 이 허술한 다방을 찾아오는 것은 그 여인이 풍로에 부채질을 해 가며 끓여다 주는 사탕물 같은 코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이제 칠 년 섬 생활에 완전히 표백된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어쩌다 추억의 그늘이 스며들 때면 왜 그런지 지금 그의 앞에 고요히 감은 그 슬픈 긴 속눈썹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붕부웅.
멀리서 기적 소리가 솜처럼 부드럽게 들려 온다.
“벌써 저녁때군요.”
엷은 회색 스웨터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앉은 주인이 가만히 얼굴을 든다.
“그렇군요.”
훈도 따라서 눈을 든다. 아직 연락선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은 저 앞의 벼랑 밑을 돌고 있을 게다. 퉁퉁퉁퉁 기관 소리가 포구의 맑은 공기를 흔든다.
훈은 건너편 자기 집으로 멀리 시선을 돌린다.
과연 그의 집 대문 옆 소 바우 위에는 빨간 스웨터가 앉았다.
종은 배를 참 좋아한다. 아침에 연락선이 떠날 때나 저녁에 이렇게 연락선이 돌아 들어올 때면 종의 위치는 언제나 그렇게 소 바우 잔등으로 정해진다. 방안에 앉아서도 창문으로 빤히 보이는 것이었지만 부우웅 하고 고동이 울리기만 하면 밥을 먹다가도 술을 던지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는 소 바우 위에 가 다섯 살 짜리 치고는 너무나 조속한 포우즈로 앉았다. 두 무릎을 앞에서 세워 가슴에 안고 그 두 무릎 위에 턱을 딱 올려놓고, 고렇게 얄미운 자세로 종은 눈도 깜짝 않고 연락선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침에 연락선이 육지를 향해 떠날 때면, 붕 소리를 지르며 부두를 밀고 나온 배가 포구 한가운데를 돌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선체를 바로잡아 가지고 두 등대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 저만치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 흰 파도가 항상 그 발부리를 씻고 있는 벼랑 밑을 돌아 배꼬리에 달린 태극기가 감실감실 사라지고 또 한번 꿈속에서처럼 멀리 고동소리만이 돌려올 때까지.
또 오후 네 시 반이면 돌아 들어오는 배가 아침에 사라지던 그 벼랑 밑으로 코를 쓱 내밀며 붕하고 고동을 울린다. 그러면 종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곧 수평선을 향해 선다. 잠깐 동안 귀를 기울인다. 쿵쿵쿵쿵 기관소리가 간지럽게 들린다. 종의 두 눈은 반짝 빛을 발한다. 그리고는 무슨 마술이나 걸린 애처럼 달린다. 소 바우 잔등에 가 앉는다. 언제나 똑같은 자세로.
연락선이 두 등대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와서 종의 앞에서 크게 원을 그으며 손님을 맞을 사람들은 빨리 부두로 모이라고 이르기나 하듯 감나무 잎이 파르르 떨도록 한번 더 크게 고동을 울린다.
배가 흠씬 부두에 가 멎자 밧줄이 부두에 던져지고 널판이 배 옆구리에 걸쳐지고 그 위를 제법 파랗고 빨갛고 한 새 옷자락에 육지의 냄새를 묻혀 온 선객들이 섬에 내려선다. 짐짝들이 굴러 떨어진다. 한참 복작거리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간 뒤 빈 부두에 갈매기만이 너더댓 마리 깩깩 외마디 소리로 흠실흠실 아직 숨이 덜 가라앉은 연락선 굴뚝을 날아들고 있을 때까지 종은 꼼짝도 않고 어느 동화 속의 소년처럼 꿈을 보는 것이다.
연락선이 부두에 닿자 제법 기쁨 같은 것이 흥청거린다.
훈은 물끄러미 부두를 내려다보고 앉았고, 그의 앞에 앉은 다방 주인은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자세로 감은 눈 속에 그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다. 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선생님 아드님은 여전하군요. 고것 봐. 얄미워.”
코오피잔을 받쳐들고 온 여인이 창 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훈은 다시 건너편으로 눈을 돌린다. 빨간 점 옆에 꺼먼 점이 하나 늘었다. 종이 바둑이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마 바둑이는 지금 그 보기에만도 징그러운 하얀 이빨로 종의 조그마한 손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게다. 그건,
“아버지, 입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
하며 신기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늘 어떤 불신을 손끝에 모으며 오랫동안 시험해 온 뒤에 비로소 맺어진 그들 둘만의 우의니까.
“저도 봅니다.”
“……?”
“연락선의 고동소리를 들으면 저도 저 바위 위에 두 무릎을 딱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다방 주인은 그 유난히 긴 손가락으로 창 밖을 멀리 가리킨다. 그의 손끝은 마치 눈뜬 사람의 그것처럼 정확히 맞은편 강점을 지시하고 있다. 훈과 여인의 눈이 잠깐 서로 부딪친다.
“그 놈은 배를 참 좋아합니다.”
“배를요? 제가 색소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무언가 그리운 게 아닌가요?”
“이 섬에서 나온 이 섬에서 자란 앤걸요 뭐.”
“그렇지만 저 코롬부스같이.”
“코롬부스같이.”
여인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스푸운으로 남편의 찻잔을 젖고 있다. 포동한 손이 여윈 손을 들어다 찻잔을 쥐어준다.
나흘 있으면 추석이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거세다. 집채같은 파도가 와와 소리를 지르며 밀려든다. 방파제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가 허옇게 거품이 되어 등대 꼭대기를 넘는다. 훈네 집 앞 들길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겼다. 포구 안에는 쫓겨 들어온 어선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다. 포구 가장자리에도 파도가 한길은 넘게 한길 위로 추어 오른다.
이틀 후에야 파도는 갔다. 수평선이 더 가깝다. 지구가 그 회전을 멈추기나 한 것 같이 고요하다.
훈은 학교로 나갔다. 파도로 해서 돌길이 말이 아니다. 소방서 앞 한길 가운데 떡돌만큼이나 큰 바위가 밀려 올라와 있다. 포구 가장자리의 큰길은 홍수를 치르고 난 뒤 같다.
훈은 학교 사환애에게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다방 <갈매기>의 부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파도가 무섭던 날 밤 밖에 나왔던 다방 주인이 잘못하여 물에 휩쓸려 들어가자 그를 구한다는 게 그만 부인마저 빠졌단다. 훈은 수업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눈을 창 밖의 바다로 띄었다. 그때마다 훈은 꼭 껴안고 물로 뛰어드는 젊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던 것처럼 또 이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의 진상을 모른다.
추석날 오후다. 훈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일찍 서 노인이 들렀다. 새 옥양목 적삼을 입었다.
“선생님, 아들이 왔습네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다. 훈은 통 알 수가 없다.
“아들이 왔습네다!”
재차 아들이 왔노라고 하는 서 노인의 늘어진 눈시울에 눈물이 글썽 괸다.
“아들이라니요?”
“네, 아들이 있습네다.”
훈은 서 노인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 젊은 군인이 군모를 벗어 들고 서 있다. 눈이 서글서글 큰 군인은 발을 모두어 서며 꾸벅 절을 한다.
작업복 깃에 육군 대위 계급이 빤짝한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훈은 그저 서 노인과 군인의 얼굴만 번갈아 본다.
“전연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것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면목없다는 듯이 또 한 번 머리를 숙인다.
단 둘이 살다 아들이 국민 방위군에 소집되어 나갔더란다. 후에 돌아가 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아무도 서 노인의 행방은 모르더란다. 그후 찾기도 무척 찾았단다. 그러나 그건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적이 바로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섬의 경비를 맡아 파견된 아들이 배에서 내려 지이프차를 타고 시장 앞 다리를 건너던 배란다. 길에 사람들이 꽉 모여 섰더란다. 차를 세웠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졌다는 것이다. 아들은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어쩐지 횡사한 시체를 꼭 들여다보게 된 그였다. 그런데 그건 젊은 부부의 시체더란다. 그는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그 어떤 엷은 실망을 느끼며 돌아섰단다. 그때 바로 옆에 그는 기적과 마주섰더란다.
“참 잘 됐습니다. 잘 됐습니다.”
훈은 그저 잘 됐다고만 한다.
그 길로 서 노인은 떠났다. 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의 부대로 가는 것이다.
큰 길에까지 배웅을 나간 훈과 종과 또 박 노인과 김 노인이 늘어 선 앞에 지이프차 뒷자리에 올라앉은 서 노인은 얼빠진 사람모양 말이 없다.
“그럼, 또 곧 찾아뵙겠습니다.”
군인이 거수 경례를 한다. 영문을 모르는 종은 아까부터 군인만 빤히 쳐다본다. 부르릉 엔진이 걸린다. 군인이 운전수 옆자리에 올랐다. 마악 차가 움직이는 때다. 서 노인이 황급히 목을 차 밖으로 내민다.
“선생님! 애기 잘 있어라. 다람쥐 도토리는 뒷 산에……아니 산엔 가지 마. 그러구 박 노인, 김 노인……”
지이프가 언덕길을 넘어간다. 돌아서는 종의 스웨터 양 호주머니엔 정말 알이 든 캐러멜이 한 갑씩 꽂혀 있다.
땅거미가 내리 깔리자 등대에 불이 켜졌다. 오른쪽에는 빨간 등, 왼쪽에는 파란 등. 긴 물댕기가 가물가물 움직인다. 달이 뜬다. 그 청홍 두 개의 등 바로 가운데로 수평선에 달이 끓어오른다. 멀리 아주 멀리 금빛 파도가 훈의 가슴을 향해 달을 굴려 온다.
딸애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넣었다 보다. 무슨 드라마의 끝인가 기차가 들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 누나, 이것 기차지?”
“그래.”
“기차는 배보다 커?”
“그럼, 바보.”
“배보다 빨라?”
“그럼!”
“연락선보다도?”
“그럼!”
“경비선보다도?”
“그럼! 바보야.”
“누난 기차 타 봤어?”
“그럼!”
두 살 때 피난길에 화물차 꼭대기를 탄 제가 무슨 그때 기억이 있다고 그래도 뽐낸다.
“나도 기차 타 봤음!”
밖에 어두운 마루에 앉아 애들의 대화를 꺼내 문다.
“코롬부스같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바둑이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다. 어느새 달은 꽤 높이 솟아올랐다. 가는 구름이 둥근 추석 달에 가로 걸렸다. 어디선가 색소폰의 그 목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집시의 달.
훈은 맞은 쪽을 건너다본다. 언제나 빤히 불이 켜져 있던 그 이층 창문은 캄캄하다. 어쩐지 이제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다시 달을 향해 선다. 밤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갈매기가 두 마리 훨훨 달을 향해 저 앞으로 날아간다.
고장난 문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 여덟 살 만덕이에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대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습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새끼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그 새까만 손톱을 가리켜 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글세, 그러니까 한 번 더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
수사관은 담배를 붙여 물며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뻔한 사건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그런 눈치였다.
「나 정말 미치겠네요! 억울합니다, 정말!」
만덕이란 그 눈이 커다란 소년은 벌써 얼마든지 울었던 모양으로 형편없이 얼룩이 진 얼굴을 또 한 번 시꺼먼 작업복 소매로 문질렀다.
「이 녀석아,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수사관은 꽤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내려놓으며 한 번 수사관을 쳐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법 맑은 음성에 시고 무식한 소년치고는 이야기가 또박또박 조리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아침이죠. 그게 아마 열 시쯤이었을 겁니다. 읍내의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한 통 배달해 주고 갔어요.
「그때 너는 펌프에서 밥그릇을 씻고 있었고.」
수사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다 알고 있구먼요.」
「이 녀석아, 그걸 모르면 어떡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 다 조사했으니까.」
「아 그럼요.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뿌렁을 합니까. 좋아요, 형사 아저씨가 그렇게 다 알고 있으니까 정말 마음이 턱 놓이 누만요.」
이번에는 만덕이 그 얼룩진 얼굴에 히죽이 웃음을 담아 보였다. 수사관이 귀신처럼 죄다 알고 있으니 자기의 죄 없음도 알 것이고 진범도 쉬 붙들릴 테니까.
그래 난 그 편지를 들고 선생님 화실로 갔죠. 화실은 내가있는 별채와 따로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선생님, 편지 왔습니다.」
나는 문을 두어 번 두들겼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기척이 들리며 문 손잡이를 덜컥거리더군요.
「문이 잠겼구먼.」
안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밖에서 한 번 더 동고란 손잡이를 쥐고 돌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공연한 짓이죠. 그 출입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거든요. 또 한 번 손잡이가 안에서 덜컥거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문이 안 열리지 않아.」
선생님의 음성이 새어 나왔어요.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나로선 그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죠.
「밖에가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아닙니다, 밖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글쎄요.」
「이상하군.」
사실 그랬습니다. 그 선생님 화실 문이란 동고란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그 손잡이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배꼽 같은 단추를 꼭 눌러서 잠그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구 안에서 열 때는 그저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되고, 밖에서 열 때는 열쇠를 넣고 돌려야 열리게 되어 있죠. 참 신통한 손잡이예요. 그런데 그게 선생님이 안에서 손잡이를 돌렸는데도 열리지 않거든요.
「이상한데…… 이봐 만덕이.」
「예.」
「밖에서 열쇠로 한 번 열어 봐.」
「열쇠가 제겐 없는데요.」
「저리 앞 창문으로 돌아와. 열쇠를 내보내 줄 테니까.」
나는 곧 화실 모서리를 돌아 나갔죠. 포도송이 같은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잇는 등나무 시렁 밑으로 해서 창문 앞으로 갔어요. 선생님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열쇠를 내밀어 주시더군요.
나도 역시 쇠창살 사이로 편지를 선생님께 건네고 열쇠를 받았죠. 조그마한 방울이 하나 끈에 달린 하얀 열쇠였어요. ……예, 바로 형사 아저씨 앞에 있는 그 열쇱니다. 방울이 달렸지 않아요.
「응, 은방울인데.」
수사관이 책상 모서리에서 열쇠를 집어들어 끈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보았다. 딸랑딸랑 아주 맑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선생님은 화실에 들어가실 때면 저만치 사립문에서부터 열쇠를 꺼내어 딸랑딸랑 흔들며 들어오시곤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별채 방안이나 뒤뜰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앞에서 인기척이 나도 그 방 울 소리만 나면 나가 볼 필요가 없었죠. 그건 선생님이 화실로 들어가시는 거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인정 있는 좋은 분이었어요. 개가 무슨 일을 하다가 공연히 나올까 봐서 일부러 그렇게 방울 을 흔드시는 거였죠.」
나는 그 열쇠를 들고 문으로 갔어요. 쇠를 넣고 비틀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은 안 열렸어요.
「선생님, 안 되는데요.」
「그래 …… 하기야 안에서 비틀어서 안 열리니까.」
선생님은 심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잠잠했습니다. 아마 방금 전해 드린 편지라도 읽고 있나 보다 하고 나는 그냥 앞뜰로 돌아 나오고 말았죠. 열쇠는 그냥 내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되었을까요. 앞뜰에서 장미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노라니까,
「만덕아!」
하고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네.」
나는 삽을 던져두고 화실 앞으로 달려갔죠.
「이 녀석아, 문을 열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이 창문 안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열쇠로도 안 열리는걸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창살 안에 가 뒤 둘 작정이냐?」
언제나 그림 그릴 때 입고 있는 그 누렁 샤쓰를 헐렁하니 걸친 선생님은 쇠창살을 친 창문 안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선생님, 지금 밖으로 나오실려구요?」
「나갈 일은 별로 없지만 …… 그렇다고 이 녀석아……」
「아무래도 문이 고장이 난 모양인데요.」
「어떻게 해 봐!」
나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들로 딸랑딸랑 출입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손잡이 열쇠를 거기 꽂아 둔 채 다시 앞뜰로 나와 버렸죠.
사실 선생님 화실 안에는 모든 시설 ―수도, 가스, 냉장고, 그 속에 빵, 우유, 과일, 그리고 화장실, 욕실까지 다 있거든요. 전혀 아무 불편도 없죠. 그러니까 뭐 문이 당장 안 열린대도 별 볼일 없으리라고 생각했었죠. 사실 선생님은 그전에도 며칠씩 꼼짝 않고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적이 흔히 있었거든요. 그런 때면 난 될 수 있는 대로 화실 가까이는 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딴 사림이 화실 안에 들어가는 걸 아주 실어 했거든요.
우리 선생님은 좀 이상한 분이었어요. 댁은 서울인데 선생님 혼자서만 서울서 이십 리나 떨어진 그 강가 언덕 위 별장 화실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형사 아저씨도 보셨죠. 그 언덕 위 밤나무 숲 사이의 화실. 밖에서 보기에는 별서 아닌 보통 기와집이지만 안은 참 멋집니다. 나는 그 화실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별채에 살고 있으면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또 선생님이 서울 올라가시면 집을 지키고 그랬죠. 선생님은 한 달에 한 열흘쯤만 서울에 가 계셨고 이십 일쯤은 여기 화실에서 혼자 지냈어요. 그렇다고 뭐 사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아니죠, 두 분은 아주 사이가 좋았어요. 예쁜 사모님은 대학에 다니는 역시 예쁜 따님과 같이 때때로 화실에 내려오곤 했어요. 선생님의 양식거리를 잔뜩 꾸려 들고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화실 안에서 혼자 손으로 끓여 잡숫곤 했어요. 그러니까 뭐 꼬박꼬박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세 때를 먹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생각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안 먹고 그래요. 선생님은 그저 그림밖에 몰랐어요. 그림에 미친 분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만 사시더군요.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그렇게 유명한 화가인가 봐요. 어찌 보면 꼭 어린애 같아요. 그야말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시는 분이었어요. 어떤 날은 한낮에 종일 주무시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또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속을 수산도 안 쓰고 산보를 하는가 하면 이틀 사흘 기척도 없이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하고요. 그런 땐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화실 창문으로 기웃거릴라치면 선생님은 막 야단을 치곤 했어요. 그래 그후로는 아무리 며칠씩 선생님이 안 보여도 그저 난 내 방에서 모른 체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멋대로 지내면서 남이 간섭하는 걸 아주 싫어했거든요. 정말 묘한 선생님이었어요. 안 그런 선생님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죠. 그러니까 선생님과 나는 화실과 별채에 따로따로 지내고 있는 거처럼, 한 집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 따로따로 였어요. 어쩌다 편지나 오면 그걸 전하러 화실엘 가는 정도였죠. 그 밖엔 내가 갈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부르는 일도 없었어요. 선생님과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간섭을 안하고 사니까 세상 편하고 좋던데요. 선생님도 언젠가 그러더군요. 그게 제일 잘 사는 거라구요.
「이 녀석아, 무슨 쓸데없는 군말이 그렇게 많아.」
수사관은 담뱃재를 떨며 지리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 이야길 하다 보니까 그만, 헤헤헤. 어디까지 말씀드렸더라…….」
「그래, 다시 앞뜰로 나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했어?」
예, 그랬죠. 앞뜰로 나가서 다시 장미나무에 거름 주기를 계속했죠 뭐. 열쇠로도 문이 안 열리는 걸 어떡헐 도리 있나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또 선생님이 부르잖아요. 이번엔 아까보다 크고 좀 화가 난 목소리였어요.
「야! 만덕아, 이리 와!」
「예!」
나는 또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선생님은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쥐고 서 있더군요. 나는 창문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야, 이 자식아!」
「……?」
나는 멈칫 섰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살폈죠. 커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선생님은 화가 몹시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지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자식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부르셨어요?」
하고, 나는 겁에 질려서 나직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선생님은,
「임아, 내가 뭐랬지?」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그저 멍멍히 서 있었죠.
「문을 열라고 하잖았어?」
「예……그런데 그 문이 열리질 않는걸요.」
「그렇다고 그냥 가만 두면 열리니?」
「……?」
「가만 둬도 생각해 가면 혼자 열리냐 말이다! 문이 살았니?」
딴은 그럴 리는 없죠. 문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얼마큼 곯리다가 적당히 열러 줄 턱은 없죠.
「어떻게 열어 봐얄 게 아냐.」
「네 힘으로 안 되면 읍내 목수한테라도 가서 열어 달래야잖아.」
「예, 그럼 곧…….」
「바보 같은 녀석, 사람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고 태평으로 딴 짓만 하고 있어!」
나는 돌아서 나오며 등뒤에 선생님의 역정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기야 갇혔다면 분명히 갇혔지만, 그렇다고 여느 때는 곧잘 며칠씩 꼼짝도 않고 화실 안에서 잘도 지내면서 막상 문이 고장이 나 안 열리니까 그 날 따라 그렇게 화를 내는 선생님이 이상도 하고 고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진작 읍내 목수한테 나가서 부탁할 생각을 못했던가 하고 정말 멍충이인 나를 탓하면서 그 달음으로 곧 십리쯤 되는 읍내로 들어왔죠. 그런데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지 뭐예요. 어디 일 갔는데 저녁때에나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미안하지만 저녁 늦게라도 나와서 문을 좀 손 봐 달라고 부인한테 부탁을 하고 돌아왔죠. 바로 그 문을 단 목수 아저씨였거든요. 사실 문제는 그때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었던 데 있다구요. 목수 아저씨가 있기만 했더라면 같이 나가서 쉽게 문을 고칠 수 있었던 걸, 그날 저녁 늦게까지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가 들어오질 않았지 뭡니까.
「야 임마, 너 정말 목수한테 가긴 갔었어?」
선생님은 저녁 해가 떨어지자 역정을 내시더군요.
「아 그럼요. 제가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왜 아직 안 와!」
「글세 꼭 오라고 부탁을 했다니까요.」
「그런데 아직 안 오지 않아.」
「헤 참, 선생님도 급하시긴. 전에는 며칠씩도 문 밖에 안 나오시곤 했으면서 뭘 그러셔요.」
나는 화실 창문 밖 등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쇠창살 안의 선생님 말동무를 해 주며 그렇게 웃었죠. 그랬더니 창턱에 걸터앉은 선생님은 곰방대를 뻐끔뻐끔 빨면서,
「이 녀석 봐라! 그거야 내가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 거구 지금은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 아냐.」
하며 웃더군요.
「마찬가지죠 뭘. 안 나가나 못 나가나 화실 안에 있는 건 같지 않아요. 뭘 심부름시킬 일 있으면 시키셔요. 제가 다 해드릴께요.」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이 녀석아.」
「그럼 됐죠 뭐.」
「허 녀석.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구나, 넌.」
「어디 제 말이 틀렸어요. 뭐 불편하신 게 있어요, 서울 가실 일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듣기 싫다, 이 녀석아. 너하고 이야길 하느니 차라리 우리 안의 돼지하고 하겠다.」
「헤참 선생님도. 이제 목수 아저씨가 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그 동안 선생님 저녁이 나 드셔요. 전 식은 밥이라도 한술 먹어야겠어요.」
난 일어나 별채로 나왔어요. 선생님은 화실에 전등을 켤 생각도 않고 그대로 창턱에 걸터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야, 만덕아! 목수 정말 어찌 된 거냐!」
선생님은 내가 채 저녁밥을 다 먹기도 전에 또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창살을 안에서 쥐고 마구 흔들면서요.
「글쎄요, 꼭 와 달라고 단단히 부탁은 해놨다니까요.」
「한 번 더 열쇠로 열어 봐.」
「마찬가지죠 뭘. 문짝이 뭐 생각해 가며 열리고 안 열리고 하겠어요.」
「임마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아. 어서 한 번 더 열어 봐.」
나는 어둑한 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그대로 꽂힌 열쇠를 비틀어 보았습니다. 열릴 리가 없죠.
「안 열리냐?」
문안에서 선생님이 소리쳐 물었습니다.
「예, 마찬가집니다.」
「한 번 더 해 봐.」
「글세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러면서도 나는 또 열쇠를 넣고 비틀며 손잡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빌어먹을!」
하고 역정을 내며 선생님은 문을 걷어차는 모양이었어요. 쾅쾅 요란하게 문짝이 울리더군요. 나는 다시 앞 창문께로 돌아 나갔습니다.
「제길헐! 이거 어디…….」
선생님은 화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방으로 난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 젖히더군요. 전등도 켜고요.
「쇠창살은 또 뭣 때문에 이렇게 창문마다에 다 쳤어. 빌어먹을! 이거야 답답해서 견디겠나, 어디!」
난 밖에서 물끄러미 그런 선생님을― 나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점점 난폭해지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죠. 뭐가 어째서 그렇게도 답답해하시는지 도통 알 수 없더군요. 모든 시설이 안에 다 있고, 사방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여느 날처럼 그림이나 그리시지 않구요.」
난 그런 선생님이 참 딱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끔 내다보시더니 무슨 말을 할 듯 하다 말고 화실 한복판에 있는 걸상으로 가 쓰러지듯 털썩 주저 않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곰방대에 또 담배를 담으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꼭 어디 빠져나갈 틈새라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틈이 있을 리 없죠. 문은 그 모양으로 고장 났고, 사방에 창문은 있었지만 그 창문들에는 단단히 쇠창살이 쳐져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한참이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더군요.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나는 창문 밖에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한 번 힐끔 날 쳐다보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안 했어요.
「아 그거 왜 자꾸만 문 생각만 하시고 그러셔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편안히 계시지 않구. 그러면 이제 목수가 와서 고칠 텐데 참.」
「…….」
선생님은 또 힐끔 날 쳐다보았어요. 사실 그렇거든요. 보통날 선생님은 별로 문 밖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문이 고장이 나니까 그 날 따라 공연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꼭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불안해하더란 말입니다. 참 묘한 성격이죠. 나는 그런 선생님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슬그머니 창가에서 돌아섰죠. 그랬더니 와장창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군요. 난 깜짝 놀라서 다시 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뭔지 아세요? 걸상이 창문 쇠창살에 턱 하니 걸려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일어서며 깔고 앉았던 걸상을 냅다 던진 거죠. 난 어리둥절했죠.
「야 임마! 가면 어떡해! 어서 목수 못 불러 와!」
선생님은 창문으로 달려와 쇠창살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마구 흔들어 대며 소리소리 지르지 뭡니까. 그건 언제나 인자하시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웠어요. 난 전엔 그런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창에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뛰어넘어 나와서 날 박살을 냈을 겁니다. 정말 겁났어요. 이마엔 핏줄이 서고 입은 꽉 다물고. 선생님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두 손으로 그 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더군요.
「야! 빨리 문 열어!」
갑자기 선생님이 미친 것이나 아닌가 했다니까요.
「예, 목수 아저씨한테 또 갔다올께요, 선생님!」
나는 겁이 나서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읍내로 달렸습니다. 그땐 벌써 밤이 꽤 깊었죠. 캄캄한 길을 나는 거의 단숨에 읍내에까지 달렸어요. 그런데 뭡니까. 목수 아저씨는 잔뜩 술에 취해서 자고 있지 뭡니까.
「아저씨, 빨리 좀 일어나세요. 문을 좀 열어 주어야 해요.」
「음, 문? …… 문 열면 되지 뭘 그래.」
목수 아저씨는 눈도 안 뜨고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일어나요. 우리 선생님 지금 잔뜩 화났단 말예요!」
「화가 나?…… 왜 화가 나…….」
목수 아저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취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죠.
「문이 고장이 나서 안 열린단 말예요!」
「문이…… 고장이 났다!」
「예, 그래요.」
「임마, 문이 무슨 고장이 나고 말고가 있어……열면 되지……문이란 임마, 열리게 돼 있는 거지, 임 마.」
목수 아저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쓱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누워 버렸어요.
「그게 아냐요. 아저씨가 달아 준 저의 선생님 화실 문 알잖아요.」
「에이, 시끄럽다! 걷어차라 걷어차! 그럼 제가 열리지 안 열려!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어, 임마.」
목수 아저씬 잔뜩 몸을 꼬부리며 좀처럼 깨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총각, 웬만하면 낼 아침 일찍 고치지. 저렇게 취했으니 뭐가 되겠어 어디.」
목수네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글세 그런데 그게 안 그렇단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지금 미칠 지경이거든요.」
「미쳐? 아니 문이 안 열린다고 미칠 거야 뭐 있어?」
「글쎄나 말이죠. 내 생각도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안 그런걸 어떡해요.」
「왜, 뒷간에라도 가고 싶은가?」
「뒷간엔요! 그런 건 다 안에 있죠.」
「그럼 배가 고픈가?」
「허참, 아주머니도. 먹을 건 얼마든지 안에 다 있다구요!」
「그런데 왜 그래. 먹을 것 있구 뒤볼 데 있으면 됐지, 그런데 미치긴 왜 미쳐? 오, 바람이 안 통해 서 숨이 답답한가 보구먼 그래.」
「허 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바람이 왜 안 통해요. 스무 평 방의 사방이 창문인데!」
「그럼 뭐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더구나 지금 밤인데, 열어 놓았던 문도 걸어 잠그고 잘 시간인 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발광이야 그래! 원 참 별난 양반 다 보겠네.」
「글세 그러니까 딱하죠. 낸들 알아요, 그러니 제발 좀 아저씰 깨워 주세요, 아주머니.」
「가만 둬요, 총각. 그런 일이라면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 보낼게. 그러니까 총각, 그만 돌아가서 그 선생님께 말하지 그래. 문을 열 게 아니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무시라고.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원!」
목수네 아주머니까지 이젠 상대를 안 해 주더군요. 그러니 어떡해요. 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요. 밤길을 다시 걸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죠. 선생님의 짜증이 두려워서 될수록 천천히 걸어서 집에까지 갔어요. 조심조심 화실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앞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한 발을 창턱에다 올려 디디고 금세라도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 몸짓으로 서 있더군요.
「야 임마! 빨리빨리 좀 못 다니냐. 사람이 지금 죽을 지경인데…… 그래 목수는 데리고 왔어?」
「그게, 그…… 취해서 자던걸요.」
「뭐라구! 취해서 자! 그래 혼자 왔단 말야?」
선생님은 꽥 소리를 지르며 창살을 마구 흔들어 대었습니다. 우적우적 금시 쇠창살이 비틀려 떨어질 것 같았어요.
「암만 흔들어도 안 깨던데요. 낼 아침 일찍 온대요.」
「무슨 개소리야! 낼이 아니라 이 밤이 당장 문제란 말이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주먹으로 쇠창살을 두들겨댔어요.
「그러니 선생님, 이 밤은 그냥 주무셔요. 어차피 밤이니까 문을 잠가얄 게 아냐요. 그냥 주무셔요, 선생님.」
나는 달래듯이 말했죠. 그랬더니 그 말이 선생님을 더욱 흥분시켰던가 봐요.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네가 뭘 안다고 주절거리냐! 누가 밤인 줄 몰라서 안 자는 줄 아냐!」
선생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 상말로 욕지거리를 퍼붓더군요. 그러나 난 조금도 어떻게 안 생각했어요.
「도끼 가져와!」
「도끼가 어디 있어요, 선생님.」
「그럼 무슨 망치라도 가져와!」
「망치는 또 어디 있어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밤새도록 가둬 두겠단 말야!」
「가두긴요…… 아 이제 주무시면 되지 않아요. 밤도 깊었는데요.」
「이 새끼가 누굴 약을 올리나. 응, 너 날 약올리는 거야! 이 죽일 놈의 새끼가!」
선생님은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화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침내 발작을 하더군요. 걸상을 둘러메고 가서 문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안 하고 걸상이 부서져 나갔죠. 그러자 이번엔 커다란 액자를 문을 향해 던졌습니다. 역시 산산조각이 났죠. 선생님은 이제 정말 자기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서 문에다 던졌습니다. 물통, 그림붓, 이젤, 캔버스. 나는 창 밖에서 정말 겁이 났습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그렇게 발광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저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한바탕 던지던 선생님이 이제 던질 것도 없었던지 제풀에 축 어깨를 떨구며 화실 마룻바닥 한복판에 가 턱하니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더군요. 숨이 차서 가슴을 들먹거리면서요, 창문 밖의 나를 노려보겠죠.
「나쁜 새끼! 네가 문을 망가뜨렸지.」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왜……전 정말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럼 누가 그랬단 말야!」
「글세 누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전 정말 모릅니다.」
「가라, 나쁜 새끼!」
「아닙니다, 정말!」
「안 갈 테야!」
선생님은 앉은 채 마룻바닥에서 무엇인가 더듬어 창문 밖의 나를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름통이었어요. 빗맞긴 했지만 난 얼굴에 기름을 함빡 뒤집어썼죠.
「빨리 꺼져!」
선생님은 또 다시 무엇인가 던질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난 재빨리 도망쳤죠. 내 방으로요. 정말입니다. 그리고 자 버렸어요. 선생님은 차라리 혼자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화실 안은 아무 불편도 없거든요. 그랬다가 다음날 아침에 조심조심 창 밖으로 가서 안을 살펴보았더니 선생님은 화실 한켠 벽에 붙여 놓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지 않겠어요. 참 어린애 같은 분예요. 나는 그 길로 읍내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잠들어 있을 때 아침 일찍 목수 아저씨를 불러다가 문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읍내 길 중간쯤에서 목수 아저씰 만났어요.
「엊저녁엔 내가 취했어. 그래 이렇게 일찍 오는 길이지.」
목수 아저씨는 미안해하더군요. 그래 우린 화실로 돌아왔죠. 선생님은 아직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있었습니다. 목수 아저씨는 연장을 내려놓고 문 손잡이를 몇 번 돌려보더군요. 열릴 리가 있나요. 결국 끌을 가지고 문설주를 도려냈죠. 그렇게 만 하루만에 문이 열렸어요. 아닌게아니라 밖에 있던 나까지도 숨통이 확 틔는 것 같데요. 그거 참 묘하죠. 뭐 별 답답한 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막상 문이 활짝 열리니까 정말 가슴이 다 시원하던데요. 난 확 열어 젖혀진 문으로 단번에 몰려들어가는 바람에 빨려 들어가기나 하듯이 화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요. 의자다 액자다 캔버스 따위가 마구 흐트러진 위를 넘어서요.
「선생님! 선생님, 문이 열렸어요!」
소리 질렀죠. 그래도 선생님은 침대에 엎드린 채 꿈쩍도 안 하더군요.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어요.
「선생님 문이 열렸다니까요! 어서 밖에 나가 보셔요.」
나는 침대 곁으로 가서 엎드린 선생님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죽어서 몸이 굳어 있더란 말이지?」
수사관이 느릿한 몸짓으로 걸상 등받이에서 등을 펴며 책상 위의 조서를 집어 올려 폈다.
「정말입니다. 목수 아저씨도 다 보았습니다!」
만덕은 안타까운 눈으로 수사관을 쳐다보았다.
「물론 목수 아저씨도 보았지.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를 불러 갔으니까. 그러나 목수 아저씨가 본 건 죽은 시체였지 그가 죽는 광경은 아니었지 않아!」
「형사 아저씨! 제 말을 믿어 주십쇼. 정말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모두 사실입니다. 억울합니다. 제가 왜 우리 선생님의 목을 누릅니까. 또 그리구, 목수 아저씨도 잘 압니다. 우리가 갔을 때까지도 문은 그대로 고장 나 잠겨 있었거든요. 그래 그걸 뜯고야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야 그랬지. 그런데 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단 말야. 안 그래?」
수사관은 열쇠를 집어들어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허지만 아저씨! 문은 고장이었습니다요! 그걸 목수 아저씨가 뜯고야 들어갔다니까요!」
「거짓말 마!」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수사관을 노려보는 채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임마! 그럼 네 말대로 이십 평 화실에 사방의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는데 그 속에서 혼자 숨이 막혀 죽었단 말야!」
「글세 그거야…….」
「거짓말도 씨가 먹어야지! …… 김순경, 이 자식 끌어다 수감해!」
옆방에서 순경이 들어왔다. 만덕의 죽지를 붙들어 끌고 나갔다. 만덕은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수사관은 거기 조서 밑의 의사의 검안서(檢案書)를 슬쩍 들쳐 보았다.
<질식사.>
「돌팔이 같은……사방의 창문이 활짝 열린 방안에서 질식해 죽어!」
수사관은 코방귀를 뀌며 걸상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쳐들고 기지개를 켰다.
살 모 사
삐걱삐걱 차체를 뒤틀며 종로 네거리를 을지로 입구 쪽으로 돌고 있는 전차 창문에 붙어 서서, 더위에 축 늘어진 거리를 막연히 내다보고 있던 나는 흠칫 놀랐다. 거기, 건너는 길목에 서서 신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분명 살모사(殺母蛇)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섬뜩하였다. 나는 얼른 뒷창문께로 다가갔다.
신호가 열린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서 있던 사람들이 양편에서 와르르 차도를 들어섰다. 나는 그 사람들 틈에서 다시 살모사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미처 살모사를 찾아 내기 전에 전차는 이미 을지로 입구 쪽으로 쑥돌아 나와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강파른 몸매하며, 재푸른 미간에 독살스레 곤두세운 세모진 눈하며, 매부리코 밑에 꼭 악물은 유난히 얇은 입술은 틀림없는 살모사였다.
다만 의심하자면, 그 살모사가 어찌하여 이 서울에, 그도 종로 네거리에 있는가 하는 그 점뿐이었다.
나의 기억은 3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열 세 살 소년인 나는 이북에 있는 내 고향 보통학교(지금은 공산 치하에서 인민학교로 그 명칭이 변했겠지만) 6 학년 교실에 가 섰다. 같은 또래의 애들이 한 60명 모여 서서 떠들고들있다. 나는 한 반이던 그 애들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친하던 순서대로 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세 층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얼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친하던 몇몇 애들. 그리고 다음은 메기, 도깨비, 염소, 미친개 따위 기괴한 별명과 함께, 마치 그 별명에 맞추어서 태어나기나 한 것 같은 인상만이 선히 남고 막상 중요한 그 본명은 어디론가 빠져 버린 애들. 그리고 맨 끝으로는 그 이름도 또 별명도 모습도 모두 잃어버린 채 그저 의미 없는 웃음만을 헤헤헤 웃고 있는, 말하자면 그림의 배경(背景) 같은 많은 애들.
그런데 그 중에 꼭 한 애, 예외가 있었다.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니 친하기는커녕 가장 싫어하고 꺼리던 애면서 아직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인상이 너무나 똑똑히 기억 나는 애. 그 애가 바로 본명이 궁 남(弓男)이고 별명이 살모사였다.
우선 그 성부터가 전교 내에 단 하나인 궁(弓)가였던 그는 정말 괴팍스러운 애였다.
그의 세모진 두 눈에 항상 독기가 가득 차 있었고, 칼로 쪽 금만 짼 것 같은 얇은 입술은 꼭 악물어 살기가 싸늘하게 서려 있었다.
어쩌다 누가 한 마디 뭐라고 하기만 하면, 과히 거슬리는 말도 아닌데 그는 팩 하고 성이 나 마주 돌아서서는,
「뭐? 뭐야 이 쌔끼야!」
하며,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모든 애들을 그저 적대시하려고만 드는 그를 좋아하는 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 누가 맨 처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살모사라는 별명 그대로 정말 뱀을 대하듯이 모든 애들이 그를 꺼렸고 따라서 그는 점점 더 배틀려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그 살모사와 한 책상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6학년 초였다.
선생님은 전반 애들을 키 순서대로 운동장에 세우고 번호를 부른 다음 우향 우, 하고 이열 종대를 만들었다. 그때 내 오른쪽으로 쓱 나선 애가 바로 살모사였고 그것이 바로 둘씩 앉게된 책상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 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정한 첫 시간이었다. 살모사는 선생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책상 까만 판을 요리조리 재더니 꼭 반에다 금을 재는 것이었다. 아니 금을 째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가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서 거기 아주 도랑을 팠다. 그러자 그는 나의 팔꿈치를 툭 건드리고,
「야, 이거 알디. 절대로 넘디 않기다.」
낮은 소리로 경고하며 책상 밑에서 칼을 한 번 세워 보였다.
나는 그보다 키는 크면서도 나이는 한 살 아래였다. 그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도무지 그와 뭐라고 마주 다툴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영악한 애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책 상 밑에서 세워 보이는 그 칼만 해도 그랬다. 그 칼은 연필을 깎기 위한 어린애들의 칼치고는 너무나 새파랗게 날이 서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도 그는 칼로,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진, 반에서 셋째로 큰 애의 어깨를 찌른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만 해도 따지고 보면 잘못은 살모사에게 있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이었다. 살모사가 지나가며 도깨비의 책상을 건드렸다. 그러자 책상 속에 들어 있던 도시락이 떨렁 하고 마룻바닥에 떨어지며 장아찌와 조밥이 몽탕 쏟아졌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고 핼끔 돌아보아다. 도깨비라는 큰 애는 어쩌나 보자는 듯이 살모사를 넌지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살모사의 얼굴에는 일순 당황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순간이었고,
「이 쌔끼가. 와 보니?」
하며, 도리어 도깨비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분명 속으로는 잘못했다 하면서도 입으로는 그 소리를 못 하는 살모사였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요 쌔끼가, 요거 정말……」
체통이 커다란 도깨비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어느새 쥐어박았는지 살모사는 거기 책상 사이에 쓰러졌다. 그렇게 그가 돌아서서 자기 책상 쪽으로 한 걸음을 걸어갈 때였다. 모여 섰던 애들이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살모사의 칼이 도깨비의 왼쪽 어깨에 꽂혀 있었다. 도깨비는 어깨를 움켜주고 주저앉았고, 그 등뒤에서 살모사는 얇은 입술을 꼭 악물고 아드득 어금니를 갈고 있었다.
그런 애가 살모사이고 보니, 그야말로 정말 살모사를 다루듯이 아주 그것을 때려서 죽여 버리지 못할 바에는 그저 적당히 지나쳐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나는 제법 슬기로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뭐 나만의 슬기가 아니라 그때 그 6학년 애들 전원의 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와 살모사의 그 책상 경계선에서는 거의 매시간 사소한 충돌 사건이 발생하곤 하였다.
어쩌다 내 고과서의 한 모서리가 그 경계선을 조금 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살모사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나의 책을 획 밀어 치우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책상에만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을 허공으로 연장하여 나의 몸과 살모사의 몸과의 사이에까지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옷자락이나 물팍이 어쩌다 그 허공에 연장된 경계선을 조금이라도 넘었다고 생각되면, 그는 연필이나 콤파스나 삼각자 같은 것으로 사정없이 콕 내리찍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 시간에 무의식 중으로 아야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 싸우지를 않았다. 아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싸운다면 힘은 거의 비등한 판이니까 때리고 맞고 피장파장일지는 모르나, 내가 이길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아주 없애 버리지 못하는 한 그는 반드시 나의 어깨에 칼을 꽂고야 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그렇게 철저한 데 비하여 도저히 그를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쳐 놓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반대로 아주 그를 너그럽게 대해 주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는 또 그렇게 매사에 져 주기만 하는 내 태도에 이번에는 도리어 어떤 경멸 같은 것을 느꼈던 모양으로 더욱더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나의 표정과 말투까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산수 시간이었다. 쓰다 놓은 내 연필이 또르르 굴러갔다. 소위 경계선의 3 분의 2나 넘었다. 나의 손과 살모사의 손이 거의 동시에 그 연필을 한 끝씩 덮쳤다. 그러니까 경계선을 가운데로 하고, 나는 고무가 달린 쪽을 손으로 눌렀고, 그는 또 딴 쪽을 덮쳤다. 나는 그렇게 손으로는 연필을 누른 채 우선 선생님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런데 살모사는 한 손에 어느새 칼을 펴 들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연필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연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살모사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연필의 거의 3분의 2였고, 내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겨우 고무가 달린 부분이었으니까 힘써 쥐어지지를 않았던 것이다.
살모사는 파랗게 날이 선 칼을 나의 손끝으로 가져 왔다. 그리고는 경계선에서 연필을 자를 작정이었다. 그는 칼을 연필에 가져다 대고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때의 웃음. 어린애답지 않게 눈꼬리와 입 가장자리에 잔주름을 지으며 소리 없이 웃던, 그때의 그 살모사의 야릇한 미소를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의 그런 미소에서 얼음을 만진 때처럼 선뜻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연필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그는 다시 연필로 얼굴을 돌렸다. 칼날을 경계선과 정확하니 맞추었다. 이제 그 산 지 얼마 안 되는 파란 연필을 고무가 달린 바로 밑에서 두 동강으로 자를 판인 것이다.
「그냥 너 가져.」
나는 어쩐지 그 연필을 마치 목을 자르듯이 고무 밑에서 싹 자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살모사는 연필 모가지에 칼날을 댄 채로 빤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결심한 듯이 그 얇은 입술을 악물면서 싹둑 연필을 자르고 야 말았다. 정말 싹둑 잘랐다. 그렇게 그의 칼은 잘 들었다. 나는 때구르르 나의 공책 모서리로 굴러오는 그 연필 모가지를 보는 순간 어쩐지 내 손가락 끝에 따가운 통증을 느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에 쥐었던 연필 동강을 이번에는 한 치만큼씩 짧게 몇 동강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이었다. 싹둑싹둑. 정말 잘 드는 칼이었다. 그렇게 한 동강을 자를 때마다 그의 입술과 칼끝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런 그가 겁이 났다.
수업이 끝났다. 반장의 구령에 의하여 모두 일어서서 선생님께 경례를 하였다. 그런데 살모사만은 일어서질 않았다. 그는 앉은 채 그 조그마한 연필 동강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궁 남.」
선생님이 반 애들을 세워 둔 채 그렇게 불렀다. 그는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궁 남. 왜 안 일어나지?」
그래도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일어나. 그리고 선생님한테 인살 해야지.」
사십이 넘으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부드러웠다. 그래도 그는 꼼짝도 안 했다. 그저 책상 위의 연필 동강들만 응시하고 있었다.
「궁 남. 일어나 !」
선생님의 목소리는 좀더 커졌다.
「안 일어나 !」
선생님의 음성이 약간 노기를 띠었다. 그러니까 비로소 그는 마지 못하는 태도로 일어나 섰다.
「인사해 봐.」
일어서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또 그대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는 채 인사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인사 안 해?」
「……」
「인살 해!」
또 선생님의 음성이 커졌다. 그러자 그는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 경례가 보통 경례가 아니라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 최경례(最敬禮)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렇게 구십 도로 굽히는 경례를 꾸벅꾸벅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반 애들이 와하하 웃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분명 노기가 솟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역시 능란하신 분이었다.
「그래. 그렇게 내가 다음 시간에 들어올 때까지 인살 계속하고 있어.」
하고, 쓰게 웃으며 교실을 나가셨다.
딴 애들은 그때 살모사가 왜 그랬는지를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뒤로 나는 점점 더 그를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너그럽게 져 주면 져 주는 대로 그렇고, 그렇다고 그의 잔인도(殘忍度)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고. 그래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절대로 그와의 경계선을 건드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와 말을 주고 받고가 필요가 없을 것이고, 말을 하지 않고 지내면 따라서 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과연 그것은 현명한 방안이었다. 한 달쯤은 정말 말 한 마디 없이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어떤 날 기어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날은 나흘째 계속되는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교실 안은 습기찬 애들의 몸 냄새로 퀴퀴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애들은 즐거웠다. 쉬는 시간이면 조그만 청개구리를 잡아서 여학생 애들의 책상에 올려놓아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다들 자기 좌석으로 달려가 앉았다. 그런데 난처한 것은 청개구리들이었다. 청개구리는 애들의 책상 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 내 무릎 위에 조그마한 청개구리가 한 마리 올라왔다. 나는 선생님 모르게 그 놈을 잡았다. 책상 위의 국어 책을 병풍처럼 세웠다. 청개구리를 그 안에 살며시 놓았다. 파란 놈이 하얀 배를 할딱할딱하며 두 눈을 뒤룩뒤룩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간 귀엽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그놈을 필통에라도 넣어 두고 싶었다. 책상 모서리에 있는 필통을 살며시 당겼다. 그러나 세워 놓은 책을 건드렸다. 병풍처럼 막아 서 있던 책이 넘어졌다. 다행히 책은 경계선을 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놀란 청개구리란 놈이 홀짝 뛰었다. 경계선을 넘어 살모사의 공책 위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얼른 살모사의 얼굴부터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살모사의 입술이 꼭 아물어지며 어금니가 아드득 소리를 내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 조그마한 개구리를 덮쳤다. 그리고 마치 무슨 발작처럼 칠판을 향하여 자기 힘껏 그 청개구리를 두들겨 던졌다. 정말 어찌나 악을 쓰고 힘껏 던졌던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청개구리는 그대로 납작하니 되어 칠판에 찰싹 달라붙어 버렸다.
놀란 것은 생도들보다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무참히 학살되어 칠판에 착 달라붙은 청개구리를 본 선생님은 천천히 애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누구지? 이처럼 잔인한 짓을 한 것은.」
선생님의 음성은 지극히 부드럽고 낮았다. 그러나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잠깐 잠잠하였다. 선생님은 교실 안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아무도 일어서질 않았다.
「좋다. 일어서지 마라. 차라리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 것이 좋겠다……무서운 일이다.!」
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그렇게 한숨처럼 말씀하시고, 끝나는 종도 나기 전에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렸다. 정말 살모사는 무서운 애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살모사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역시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었다. 그러나 기실 살모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의 아버지를 분명히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처럼 살모사의 출생은 그 잉태부터가 기구한 것이었다.
살모사의 어머니는 중농가(中農家)의 딸로서 꽤 예쁘게 생긴 여인이었다. 열 여덟 살 나던 해에 그녀는 궁(弓)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다. 궁씨네는 그 조상에 꽤 높은 벼슬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하여 고을 안에서는 제법 양반으로 행세하는 가문이었다. 재산으로 말하자면 과수원과 논밭이 약간 남아 있을 뿐 벌써 몰락한 양반의 궁씨 집안이었으나, 평생 지체가 낮은 것이 한이던 살모사 어머니의 집으로서는 양반집과 혼사를 지낸다는 것만이 만족스러워 딸을 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어린애가 없었다.
본시 궁씨네가 자손이 바튼 씨족이라 그렇다고도 하였고, 남편의 폐병이 있어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 그들 젊은 부부는 남편의 폐병에 좋다 하여 마을 뒤 과수원으로 옮아 살았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오래간만에 부부 사이의 뜨거운 애무를 치른 그들은 녹아들 듯이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여인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불을 끈 방 안은 캄캄한데 사나이의 가슴이 또 콱콱 젓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 두 번씩 이러믄 어떡카우. 몸을 돌봐야디 ……」
그렇게 걱정은 하면서도 그녀는 사나이의 허리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나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욕정은 차츰 더 끓어오르는 듯 미친 듯이 여인의 온몸을 짓이겨 왔다. 그렇게 약한 남편의 몸에서 이런 폭포 같은 정열이 어떻게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인도 차츰 불이 타올랐다. 이윽고 사나이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은 황홀한 허탈 상태 속에서도 남편의 건강을 위한 후회로 한숨을 쉬며 머리맡의 성냥갑을 더듬었다.
「불 케디 말라!」
그 소리에 여인은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건 남편의 목소리와는 너무나 다른 굵고 거친 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 하였으나 목이 깍 말라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사나이는 문으로 나가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떨고만 있던 여인은 간신히 성냥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 든 성냥불 밑에 그녀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목에 노끈을 감은 남편이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난 애가 바로 살모사였던 깃이다. 궁씨 문중에서는 그날 밤 이야기를 여인에게서 자세히 들은 후 그 애를 호적에 넣었다. 물론 여인은 그 정체 모를 사나이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인은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고 앉기만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랑인가 원수인가?
그러나 점점 자라는 애에게서는 무어 하나 남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였다. 어린애가 차츰 하나의 개체(個體)로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던, 다섯 여섯 살 무렵부터, 그 애를 바라보는 그녀의 심정이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져 갔다. 남편을 죽인 자의 씨로서의 증오와, 또 하나는 자기의 뱃속에서 자기의 피를 빨고 자랐다는, 그 어쩔 수 없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오는 애정과.
남편이 그 지경을 당하고 난 후, 거의 절대(絶對)되다시피 사그라진 시가에서 과수원을 팔아 받아 가지고, 읍 가까운 어느 언덕 밑 초가를 사 들고 살던 그녀는 문득문득 공포를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깊은 밤에 등잔불 밑에서 잠든 애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그날 밤, 그 사나이의,
「불 케디 말라 !」
하던, 굵은 음성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휩싸여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으레 그녀는,
「보면 알 테디. 그런들 개새끼야 모를라구.」
하고, 중얼거리며 잠든 애의 얼굴을 밀어내듯이 노려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여러 애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매우 섭섭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 애들과 헤어지는 섭섭함보다도, 살모사 한 애와 이제 떨어질 수 있다는 시원함이 더 컸다.
나는 평양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렇게 첫 번 여름 방학에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역 플랫포옴에서 살모사를 보았다. 커다란 빨강 모자를 헐렁하니 쓰고 앞에는 도시락과 보리차 병이 가득히 담긴 목판을 한쪽 어깨에 끈으로 해 멘 그는,
「벤또, 벤또, 오쨔(도시락 차), 오쨔.」
하며, 기차 창문 밑으로 분주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렇게도 미워하던 그가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궁 남이 !」
나는 그를 불렀다. 저만큼 걸어가던 그는 얼른 돌아섰다. 그러나 부른 것이 나라는 걸 알자 그는,
「쳇!」
하고, 다시 돌아서 어른 같은 목소리로 벤또, 벤또, 오쨔, 오쨔, 소리 지르며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그를 잊어 버려 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그가 광산에서 싸움 끝에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문과 그와는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또 거의 미치도록 기독교에 열심히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들 모자의 소문을 듣던 내 눈앞에는 까만 칠판에 네다리를 짝 벌리고 배를 깔고 붙어 죽은 청개구리와,
「……무서운 일이다!」
하며, 한숨을 쉬던 선생님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그 다음, 소문이 아니고 정말 살모사를 본 것은 해방되던 해 겨울이었다.
공산당들은 5 정보 이상의 토지를 가지고 있던 지주들의 토지를 전부 몰수하고, 그 집에서마저 추방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나의 집에도 읍내의 민청원(民靑員)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낫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그들 민청원을 지휘하고 있는 자가 바로 살모사라는 점이었다. 내가 스물넷 이었으니까 아마 스물 다섯 살이었을 그는, 어디서 얻어 쓴 것인지, 캡의 앞단추를 뜯어서 쓱 뒤로 밀어젖혀 쓰고 나의 집 안뜰 한가운데 있는 우물 턱에 걸터앉아 언젠가 어려서 한 번 본 일이 있다고 기억되는 그 야릇한 웃음을 입 가장자리 잔주름에 띠며 마루 위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길로 나의 집 식구들은 삼팔선을 넘어오고 말았다.
그 후에 나는 남한으로 넘어온 고향 사람들을 통하여 살모사의 소식을 들었다.
그 고향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방이 되자 숨어살던 만주에서 돌아온 살모사가 그때 그렇게 공산당에게 중히 쓰이게 된 이유는 그가 해방 전에 탄광에서 투전 끝에 죽인 사람이 광부가 아니라 사무 직원이었다는 데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착취 분자를 죽였으니 그건 노동자의 영웅이 아니겠는가 하는 논법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 고향 사람은,
「아 그뿐인 줄 아나?」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지주 추방에 열성이던 그는 어떤 날 민청원들을 끌고 기어이 자기의 외할아버지 집엘 갔다.
「네, 이놈! 그런들 네놈이 이 외할아빌 몽둥이로 쫓아내 !」
그의 늙은 외할아버지는 도리깨를 들고 그에게 다려들며,
「이놈! 나는 이 땅들을 땀흘려 일하고 샀다. 이놈! 난 달밤에도 김매서 이 땅을 샀다. 이 날도둑놈들. 이 할애비도 모르는 빨갱이놈아.」
하고. 외손자의 멱살에 매달려 기절을 했다. 그러나 살모사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동무들.」
살모사는 자기의 멱살을 쥔 채 기절한 노인의 손을 떼어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민청원들은 흙발 그대로 방에 들어가 세간들을 마구 밖으로 내동댕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마당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한창 세간들이 굴러 나오는데 그 집 머슴인 최(崔)서방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여보게 남이, 이러지 말게. 그런들 이럴 수야 있나. 내 낯을 봐선들 이래서야 쓰겠나.」
최서방은 살모사 앞으로 다가가며 그렇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뭐라구? 이 머슴 동무가 미쳤나? 여보 동무. 동문 그래 평생을 남의 집에서 이렇게 머슴살이를 하구두 분하디두 않우 ?」
살모사의 말이었다.
「아니래두. 여보게 남이. 날 좀 보이. 날 좀 보라구. 내가 자네 애빌세. 애비야!」
「……?」
살모사는 세모진 눈을 더욱 곤두세웠다.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같이 온 민청원들은 모두 세간을 내던지기에 바빴고, 외갓집 식구들은 저만큼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고 웅성거리고들 있었다.
「이너무 영감이 미쳤나. 정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야. 아니래두. 분명히 네 애빈 나라니까. 그러니까 넌 최가야. 네 어머니한테 가서……」
최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면상을 주먹으로 쳤다. 아이구 하고 거꾸러지는 최서방의 코에서 금시 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동무들. 이제 그쯤 하구 갑시다.」
살모사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먼저 대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읍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모사는 몹시 불쾌하였다.
그는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자기 아버지가 어떤 날 밤 괴한에게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최서방의 말에 의하면 그가 자기의 아버지노라 하니. 그는 도무지 어떻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서방이 혹 자기 아버지를 죽인 괴한이 아닐까?
아버지의 원수.
아니 그렇지도 않지. 최서방의 말이 사실이라면 죽은 건 아버지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
살모사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그 문제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어쩐지 최(崔)가 자기 성이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가 싫었다.
「미친 영감쟁이.」
살모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날 그 일은 그것으로 머리에서 떨어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살모사가 외할아버지까지도 상관 않고 당과업(黨課業)에 열성적이었다는 공으로 읍 인민 위원회는 그를 정식 당원으로 가입시켜 주도록 상부에 추천했다.
살모사는 만족하였다. 이제 정식 당원이 되기만 하면 무슨 뚜렷한 자리가 하나 주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더욱더 열성을 내어, 꼭 출세를 하고야 말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부에 제출되었던 추천서는 뜻밖의 종이꼬리를 달고 돌아 내려오고 말았다.
출신 성분(出身成分)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런대로 중농 출신이니 어찌어찌 됐다 치더라도 아버지가 소위 양반이란 집안에 태어난 유한 계급이었으니, 좀더 두고 그의 열성도를 시험하라는 것이었다.
인민 위원회 간부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살모사는 정말 실망하였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딴 일이라면 어떤 잔인한 짓이건 다 해낼 열의와 자신이 있는 살모사였으나, 출신 성분만은 그의 힘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어떤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날 저녁 살모사는 식사를 마치자 예배당으로 가려는 그의 어머니를 붙들고 들었다.
「어머니.」
「…… ?」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외갓집에 있는 최서방 알디요 ?」
「그래서 ?」
「그가 누구디요 ?」
「누구라니?」
「내 아버지라면서요?」
살모사는 거의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들이대었다. 순간 그의 어머니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녀는 한참이나 잠잠하였다. 그녀로서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그날 밤에 들은 음성은 겁결에 들은 것이니 그만두고라도, 아들의 모습이 자랄수록 누군가 낯익은 사람을 닮아 간다고 생각하였다. 낯익은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그녀는 아들의 그 매부리코와 유난히 얇은 입술에서 자기 집 머슴을 보았던 것이었다. 더구나 그날 밤 나가면서,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하던, 그 말로 미루어 그 사나이가 어려서부터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고, 이런 점 저런 점으로 보아 그것은 자기 집 머슴 최서방이었으리라는 것을 거의 단정한 지도 오래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사실화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들이 그렇게 들이대는 마당에야 굳이 아니라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디도 모른다니요?」
그녀는 그 이상 더 아들과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고 성경책을 집어들며 일어났다.
살모사는 그 달음으로 최서방을 찾아갔다. 그렇게 최서방을 찾아보고 밤 늦게야 집에 돌아온 그는 이미 궁 남이 아니라 최남(崔男)으로 성을 갈고 있었다.
다음날, 머슴 최서방은 읍 인민 위원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25년 전의 살인 강간을 자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가 되기 전에
「궁(弓)동무. 아니 참, 최(崔)동무. 동무는 참 훌륭한 아바질 가젯수다.」
하고, 인민 위원장으로 하여금 살모사의 어깨를 두들기게 하였으며, 며칠 후에 살모사는 당당한 공산당원으로 당원증을 목에 걸고, 민주 청년 동맹 위원장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살모사를 거의 잊어버린 채 지났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25 사변이 일어났다.
공산군이 불의에 밀고 내려왔었으나 9월28일에는 다시 서울을 탈환한 국군은 적을 몰고 북한으로 진격하였다.
나는 종군 기자(從軍記者)의 자격으로 국군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갔다. 10 월 중순께 나는 고향 읍엘 갈 수 있었다. 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트럭에서 내렸을 때에 고향 읍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학살된 읍민들의 시체를 끌러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경찰서 뒷마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온통 울음 바다였다. 마치 타다 남은 장작개비처럼 시꺼멓게 썩은 시체가 주르르 줄을 지어 누워 있고, 그 시체 머리맡과 발끝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부녀자들은 반 미쳐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돌아서는 나의 팔꿈치를 툭 지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 이게, 누구야 ! 도깨비 아니야 ?」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역시 틀림없구나. 야 반갑다. 정말.」
오랫동안 굴속에 숨어 있었노라는 그 도깨비란 별명의 옛친구는, 얼굴이 누렇게 부었고 머리카락이 거의 귀를 덮었으며 입고 있는 옥양목 바지저고리에는 여기저기 진흙 물이 들어 있었다.
「데거 봤디 ?」
그는 턱으로 시체를 가리켰다. 나는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고 쌔끼 정말 잡으면 각을 떠서 죽여야 할 텐데 !」
도깨비는 흥분한 어조였다.
「누구 ?」
나는 도깨비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아 고 살모사 말이야 !」
「살모사?」
「그래. 고 살모사너무 새끼 짓 아닌가. 서른 네 명이나 된단 말이야.」
도깨비는 또 한 번 시체를 돌아보며 분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서 앞마당으로 돌아 나오며 도깨비에게서 살모사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살모사의 잔인한 짓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국군이 평양을 점령한 다음날이었다. 살모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민청에 비밀 지령이 내렸다. 수감중인 소위 반동 분자들과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리고 곧 북쪽으로 후퇴할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갈았다.
그는 몇 명의 민청원을 거느리고, 반동 분자들을 수감해 둔 창고로 갔다. 두 사람씩 두 사람씩 전기 줄로 묶어서 창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 길로 그들은 경찰서 뒷마당에 있는 방공호로 끌려갔다. 그렇게 서른 네 명의 남녀가 팔을 뒤로 묶인 채 경찰서 뒷마당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 소위 반동 분자 대열 속에서
「이봐. 얘, 나 좀 봐.」
하며,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허름한 사나이가, 거기 문 옆에 서 있는 살모사를 자꾸 부르는 것이었다. 최서방이었다.
살모사는 힐끔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싸늘한 표정 그대로 하나하나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후였다. 햇볕이 쟁쟁 내리쬐는 가을 오후였다.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네 발의 폭음이 들려 왔다.
「이젠 예수쟁이들만 처치하면 되디.」
방공호 속에 네 발의 수류탄을 던져 넣고, 뒤에 둘러서 있던 민청원들을 향하여 돌아서는 살모사의 혼잣말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도깨비란 친구는 손끝까지 탄 담배를 꼬집어 쥐며 한 번 더 깊이 빨았다.
「그런데 그 최서방은 자기 아버지라던데 어째서 ……」
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도깨비란 친구는 담배 꽁다리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끄면서,
「흥. 애비가 소용이 있나. 공출을 속인 반동 분잔걸…… 하기야 평생을 남의 집 머슴이었으니 아들 덕에 분배받은 주인집 논밭으로 좀 살아 보구 싶었겠지만.」
하고 껄걸 웃는 것이었다.
「그렇군, 살모산 도망쳤군.」
나는 도깨비란 친구의 우묵하니 들어간 두 눈에서 옛 모습을 더듬어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러구 곧 도망친 게 아니야. 그렇지, 그러구 곧 도망친 거군, 결국. 그렇게 도망치던 길에 살모사는 또 사람을 죽였지. 이번엔 오십 명도 더.」
도깨비란 그 친구는 쓱 돌아서며 읍 북쪽에 있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함석으로 지붕을 덮은 예배당 종각이 서있었다.
그렇게 방공호를 폭파시킨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제 편에서 도리어 배신을 당하는 것 같은 그런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한 새끼도 없구나. 그렇다니까, 그 새끼들 다 반동이었던 걸 모르구……)
살모사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읍민들에 대한 강한 분노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누구든 자기 눈에 얼핏 띄기만 하면 그저 단방에 갈겨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읍 북쪽 언덕길 위에까지 올라갔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대원들도 따라갔다. 살모사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사방은 여전히 괴괴하였다. 어느 집에서 기어 나온 것인지 까만 고양이가 한 마리 살모사의 발부리를 지나, 가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길을 가로질러 갔다.
「분명히 예수쟁이들이 예배당에 모여 있다고 그랬디?」
살모사는 대원들을 향하여, 정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듯이 그렇게 다져 붇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살기 띤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 전에 확인한 상황에 비하면 위기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약 10미터쯤 골목길에 들어간 곳에 있는 예배당에는 조금 전까지 5, 60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도 고요했던 것이다.
「도와,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
살모사는 따발총을 옆구리로 끌어올려 끼며 골목길을 걸어 들어갔다.
예배당 안에는 과연 교인들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입 속으로 뭐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열려 있는 예배당 문턱에 왼쪽 발을 하나 올려놓고, 그 무르팍에 따발총을 걸치고, 한 바퀴 예배당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자기의 어머니도 어디 앉아 있으리란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 엎드려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살모사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다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 앞쪽 단 위에 쭈그리고 돌아앉아서 기도를 하던 목사가 일어섰다. 교인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자 그럼, 찬송가 사백 육십 이 장, 다 같이……」
늦은 목사는 말을 뚝 끊쳤다. 거기 문에 버티고 서 있는 살모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의 머리가 목사의 시선을 따라 등 뒤 문께로 일제히 돌아왔다.
아! 누군가 여자의 비명이 날카롭게 예배당 안을 흔들었다. 그것은 살모사의 어머니였다. 머리카락이 희뜩희뜩 센 살모사의 어머니는, 저 앞에, 강대 바로 밑에서부터 앉아 있는 교인들을 헤치며 뒷문께로 허둥허둥 달려나오고 있었다.
「궁 남아! 애야 ! ……하나님이……」
살모사의 어머니가 그렇게 소리치는 바람에 교인들도 와르르 일어섰다. 그렇게 교인들이 모두 일어선 것과 따발총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을 뿜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내가 살모사에 관하여 들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나는 살모사를 종로 네거리에서 분명히 본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람이 두서너 명만 모인 곳이면 반드시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혹 거기 살모사가 끼어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나는 결코 살모사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그들 또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자꾸만 그렇게 주변을 살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불안이 거의 병적인 데까지 이르러 버렸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대문 안에 떨어진 조간 신문을 줍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꼭 그 신문지 아래 살모사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바로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책을 보고 앉아 있는 내 걸상 밑에서, 대가리가 삼각형인 살모사가 그 바늘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르르 기어 나와 산뜻한 몸뚱아리로 나의 벗은 발목을 감으며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은 것이다. 아니, 벽에 세워 놓은 책장 밑으로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건축 밑에서도, 차의 커어튼 뒤에서도, 심지어는 천장의 형광등 위에서도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이대로는 정말 잠시도 안정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눈을 비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편에서 먼저 살모사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다. 기어이 그를 찾아내어서 그 정체를 밝혀야겠다. 먹살을 쥐고 따져야겠다.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파도 소리가 베개를 때린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여느 날 같으면 벌써 나갔을 전등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 아마 이 浦口에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기쁜 일이나 그렇지 않으면 슬픈 일이.
섬 안은 그대로 한집안이다. 그러기 어느 집안에든지 잔치가 있거나 또는 喪事가 생기면 이렇게 밤새도록 전등이 들어오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상이군인이 새색시를 맞던 날도 그랬다. 읍장님의 어머니 진갑 날도 그랬다. 고아원에서 어린애가 죽던 날도 그랬고, 일전 파도가 세던 날 나갔던 어선 한 척이 돌아오지 않던 밤도 그랬다.
薰이 피난 내려왔던 부산서 중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이 섬으로 들어온 지가 벌서 칠 년이 된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퍽도 외로웠다. 조그마한 포구에 말려들어 왔다가는 또 말려 올라가곤 하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가 그저 졸리기만 했다.
그래도 섬에서는 도민증이나 병적계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 좋았다. 당시 부산 등지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야말로 심장보다 더 소중하던 때였지만 어쩌다 하루 저녁 여인숙에서 묵고 가는 나그네까지도 해변가에서 쉬이 친구가 되어 버리는 이 포구에서는 그런 것은 있으나 없으나였다.
이제는 벌써 훈네도 피난민이 아니다. 아기를 안고 길가에 나와 섰던 이웃집 아주머니들도 제법 그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배에서 돌아오는 옥희 아버지와 이쁜이 오빠는,
“이거 참 오래간만에 잡은 도밉니다. 아직 살았어요.”
“꽤 큰 소라지요. 가을 들어 처음입니다.”
하며, 대바구니 속에서 도미나 소라를 집어내어 훈네 집 대문 옆에 누워 있는 소바우--그 모양이 꼭 누워 있는 소 잔등 같아서 그들은 그렇게 부른다--위에 놓고 지나가는 것이다.
칠 년. 섬에서는 한 해가 하루처럼 흘러간다. 그야말로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아무런 사건도 없다. 마디가 없다.
“왜, 선생 보기엔 좀 깨끗지 않아 보이재? 그래도 이 짠물이 이게 좋은 게라이.”
바닷가에서 맛조개를 캐던 옆집 할머니가 바닷물에 손을 씻고 들어와 받아 준 어린애가 벌서 다섯 살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활.
아침 자리에 일어나 앉으면 안개 낀 포구가 유리창에 그대로 한 폭의 墨畵다. 칫솔을 물고 마당으로 내려간다.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 바둑이가 신고 설 그의 흰 고무신 뒤축을 질근질근 씹어 본다. 뒷산 동백나무잎이 아침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린다. 어디선가 까치가 운다. 마당 한 구석에 돌각담을 지고 코스모스가 상냥스레 피어 웃는다. 추석도 멀지 않은 거기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세 개, 다섯 개, 네 개 탐스럽게 달렸다. 빨갛게 열매를 흉내낸 감나무 잎이 하나, 누가 손끝으로 튀기기나 한 것처럼 툭 가지 끝에서 튀어 난다. 팽글팽글 팽글팽글 허공에 원을 그리고 사뿐히 방바닥에 내려 앉는다. 부엌문 앞을 돌아 나오던 흰 암탉이 쭈루루 달려온다. 쿡하고 지금 떨어진 감나무 잎을 쪼아 본다. 핏빛 면두가 흰 머리 위에서 흔들거린다.
조반이 끝나면 훈은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에는 국민학교 이 학년인 딸의 손목을 끌며 대문을 나선다. 겨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들길이다. 오른편은 발 밑이 그래도 바다이고 왼편은 깎아진 벼랑이다. 그들은 바위틈에 핀 들국화가 내려다보이는 밑을 천천히 걷는다. 바둑이가 따라오며 흰 수건에 싸든 딸애 도시락을 킁킁 맡아본다. 아내와 다섯 살 짜리 아들 종(鍾)은 대문 옆 소 바위 잔등에 서 있다. 꼬불꼬불 돌길을 더듬어 가는 그들은 C자형으로 된 포구 중앙에 다 가도록 빤히 보인다. 그러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하자면 그들이 포구를 반 바퀴 돌아가는 동안을 거기 그렇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아내와 아들 종이 사이에는 말없는 가운데 약속이 생겼다. 그들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 돌길을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오면 아내와 종은 바둑이를 앞세우고 문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침마다 그들을 따라나서는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은 정해져 있다.
훈네 집에서 거리에까지 가는 도중에는 중간쯤에 단 한 채 아주 초라한 오막살이가 있을 뿐이다. 그 오막살이에는 노인 거지가 세 사람 살고 있다. 훈네는 그들을 神仙이라고 부른다. 그건 어느 여름 방학에 서울서 놀러 왔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훈의 동생이 지어 주고 간 이름이다.
이들 세 노인은 할 일이 없다.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지낸다. 그래 신선이다. 나이는 육십이 거의 다 되었을 듯한 동년배들인데 그 인상은 각각이다.
신선 일호라는 徐 노인. 머리칼, 눈썹 그리고 긴 수염 할 것 없이 은빛으로 센 노인이 키가 크다. 신선들 중에서 제일 풍채가 좋다. 그리고 신선 이호, 朴 노인. 이 노인은 머리를 중모양 박박 깎았다. 얼굴이 둥근 이 박 노인은 항상 군복을 걸치고 있다. 신선 삼호, 金 노인. 신선 중에서는 제일 인품이 떨어진다. 곰보다. 턱에 꼭 염소 같은 수염이 난 이 신선 삼호는 구제품 회색 신사복 저고리를 입었다.
인상은 어쨌든 그들은 다 신선 별호를 탈 만한 데가 있다. 걸식은 해도 그들은 결코 떼를 쓰는 법이 없다. 또 자기네 사이에 무슨 정해진 바가 있는 듯 같은 집에 두 사람이 들어가는 법도 없다.
훈네 집에 늘 오는 것은 신선 일호 서 노인이다. 아침에 오는 수도 있고 저녁에 들르는 날도 있다. 이즈음 훈의 아내는 서 노인을 위하여 밥을 넉넉히 짓지는 않았지만 줄 밥이 남지 않는 날이면 걱정을 하게쯤은 되어 있다. 그런데 바둑이도 이 서 노인을 알아본다. 청결 검사를 나왔던 순경이 총을 멘 채 질겁을 해 달아날 만큼 사나운 바둑이면서도 서 노인은 짓지 않는다.
아침마다 훈을 따라가던 바둑이가 돌아서는 지점이 바로 이 신선들이 살고 있는 오막살이 앞이다. 앞을 지나다 서 노인에게 목도리를 한번 내보이곤 돌아선다.
서 노인은 바둑이와만 사귄 것이 아니다.
언젠가 사흘 동안이나 서 노인이 들르지 않은 때가 있다. 이상하다고들 했다. 그 날은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막살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 노인 다 있었다. 신선 삼호 김 노인은 윗목에 벽을 향하고 앉아 거기 기둥에 박힌 못에다 실코를 걸어 놓고 무엇에 쓰자는 것인지 그물을 뜨고 있고, 신선 이호 박 노인은 문께로 나앉아 고무신 뒤축을 깁고 있고, 서 노인은 아랫목에 벽을 향해 누워 있다. 서서 다닐 때보다도 더 큰 키다. 죽은 사람처럼 뻗친 그의 무릎 위에서 다람쥐가 한 놈 앞발로 얼굴을 닦고 있다.
“서 노인이 어디 편찮은 모양이군요.”
그제야 박 노인이 늙은 호박 같은 머리를 든다.
“네, 체해 가지고 한 사날.”
그는 한 번 서 노인을 돌아본다.
그날 저녁 국민 학교 이 학년인 딸과 종과 바둑이가 우유죽 그릇을 들고 오막살이로 갔다.
“불쌍하더라!”
돌아온 딸애가 제법 국민 학교 이 학년답게 낯을 찌푸린다.
“불쌍하더라!”
꼭 같은 어조로 종이 따라 한다.
다음 날이다.
훈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종이 마루로 달려나와,
“아버지, 아버지, 나 다람쥐 있다.”
하며, 구두도 미처 벗기 전에 훈의 손을 끈다.
낮에 서 노인이 오래간만에 집에 들렀더란다. 한 손에는 언제나 끌고 다니는 꼬불꼬불한 가무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또 한 손에는 예쁜 다람쥐를 한 마리 쥐고.
“이거나 애길 줄라고.”
서 노인이 일 년을 방안에서 키웠다는 다람쥐는 아주 길이 잘 들어 있다. 놓아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구 사람의 목덜미로 기어올라서는 오물오물 가슴패기로 파고든다.
그로부터 종은 훈의 방에서 부지런히 꽁초를 까서 빈 캐러맬 갑에 넣었고, 그런 다음날 저녁이면 서 노인이 그 캐러맬 갑을 도토리로 가득히 채워다 종에게 돌린다.
“먹진 못하는 거야. 다람쥐 주란 말이야.”
이 조그마한 포구에도 다방이 한 집 있다. 이름이 <갈매기>다.
다방 이레야 왜인이 살다 간 목조 건물 이층을, 피난 온 젊은 부부가 약간 뜯어고친 것이다.
훈은 때때로 이 다방을 들른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훈이 선 지점은 바로 정확하게 포구 중앙 점인 것이다. 거기서 훈은 한참 바다를 바라본다. 호수처럼 둥글한 포구 한가운데서는 경찰서 수상 경비선이 하얀 선체를 한가히 띄우고 있고, 왼쪽 시장 앞에는 돛대 끝에 빨간 헝겊을 단 어선이 네 척 어깨를 비비고 머물렀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두 대의 흰 등대. 그 등대 허리에 가는 수평선이 죽 가로 그어졌다. 바로 그의 발 밑에서 넘실거리는 바다가 아득히 수평선을 폈고, 그 선에서 다시 또 하나의 바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찔하니 높이 피어올랐다.
훈은 오른편으로 눈을 돌린다. 벼랑 밑 들길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포구를 엇비슷이 가로 건너 거기 빤히 집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반짝거리는 산을 지고 바로 물가에 선 아담한 기와집, 선생들이 감나무 장이라고 부르는 집이다. 마당에는 흰 빨래가 걸렸고, 돌감담 밖에 채소밭 가운데는 쭈그리고 앉은 아내 앞에 선 종의 빨간 스웨터가 빤히 보인다.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식구들을 보는 날이면 훈은 곧잘 집과는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곤 한다. 집엘 다녀서 나오는 것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우체국 앞을 지난다. 빨간 포스터를 보면 새삼스레 편지를 띄워 보고 싶어진다. 중국집을 지나 여인숙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다방 <갈매기>가 있다.
장기판 만한 널쪽에 흰 페인트로 쓴 <갈매기>라는 서투른 간판 밑을 끼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층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거기 베니야판으로 만든 문을 득 연다. 대개 다방 문은 밀거나 당기게 되어 있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다방 <갈매기>의 문은 왜식 그대로 옆으로 열게 되어 있다.
다방 안은 대개 비어 있다. 손님이 없다는 뜻만은 아니다. 주인마저 없는 때가 많다.
훈은 언제나 오면 정해 두고 앉은 창가로 가 앉는다. 그래도 테이블 위에는 仙人掌이 놓여 있고, 창에는 푸른색 커어튼이 드리워 있다. 창 밑이 곧 한길이고 그 길 가장자리가 바로 바다다. 훈은 멀리 맞은편으로 눈을 띄운다. 그의 집 자기 방 유리문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벌써 채소밭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의 집 대문 앞을 어떤 부인이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지나간다. <갈매기>가 한 마리 펄럭 다방 창문을 스치고 지나간다. 팔만 내밀면 잡힐 것도 같다. 그래 다방 이틈이 <갈매기>인지도 모른다. 별로 그러자는 것도 아닌데 눈은 자연히 갈매기의 뒤를 따라 허공에 어지러운 불규칙 선을 긋는다.
안방 문이 열리고 주인 여자가 나온다. 그녀의 나이를 딱히 알 까닭도 없지만 보기에는 이제 겨우 삼십을 하나 둘 넘었을까 말까 한 젊은 부인이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반짝 밝은 그녀는 키가 날씬하니 큰 게 연분홍 치마가 분명히 예쁘다.
“아이, 오신 지 오랬어요?”
약간 코가 멘 귀여운 음성이다.
“네, 서너 시간 됩니다.”
“아무리, 선생님두.”
여인은 웃으며 돌아선다.
“여보, 저 건너 이 선생님이 오셨어요.” 그녀는 안방 문을 열고 소리친다. 그리고 거기 뒤로 난 창문턱을 훌쩍 넘어 나간다. 아마 왜인이 살고 있을 때는 그게 이층 빨래를 너는 곳이었을 게다. 그곳이 지금은 이 다방의 주방인 것이다.
훈은 이제 나올 다방 주인을 기다리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바라본다. 제법 이 다방에는 별실이 하나 있다. 화장실로 가는 문 옆에 발가벗은 어린애들이 하나는 서고 하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그 밑이 바로 그 별실이다. 그런데 그 별실이란 게 아주 걸작이다. 옛날 왜인의 소위 오시이레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테이블과 걸상을 들여놓고 그 앞을 노랑색 커어튼으로 가린 것이다. 훈은 맞은쪽 벽에 걸린 모나리자의 초상으로 눈을 옮기며 피식 웃는다.
뒤 창문 밖에서 부채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풍로에 불을 피워 가지고 코오피를 끓일 판이다.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안방 문이 조용히 열린다. 주인이 나온다. 마룻바닥에 발을 질질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이리로 걸어온다.
그는 눈을 못 보는 것이다.
“이 선생님이슈?”
그는 훈의 테이블 가까이 까지 와서 서며 두 손을 내밀어 불안스레 허공을 더듬는다. 훈은 얼른 그의 한 쪽 손을 잡는다. 여자의 손처럼 연한 손이다.
가락가락 긴 손끝에 뾰족한 손톱이 곱기까지 하다.
“오래간만에 오셨군요.”
“앉으슈.”
훈은 새삼스레 주인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반듯한 이마에 두서너 오라기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 내렸다. 까만 눈썹 밑에 사뿐히 감은 두 눈의 긴 살눈썹이 슬프다. 쪽 곧은 콧날에 조각처럼 단정한 입술, 표정을 잃은 그 입술은 결코 웃어 본 일이 없는 입술 같다.
“별일 없지요?”
“그저 그렇게.”
그가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은 훈도 안다. 그 어떤 추억을 약처럼 갈아 마시며 외롭고 슬프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부부.
훈은 어제 저녁에도 그 <집시의 달>을 들었다.
두 등대에 불이 들어와 靑紅의 물댕기를 길게 수면에 드리울 때, 고요한 밤하늘에 水紋처럼 번져 나가는 색스폰 소리, 자꾸 자꾸 그의 상념을 옛날로 옛날로 밀어 세우는 들으면 누가 부는 것인지도 모르는 대로 그는 자기 방 마루 기둥에 기대앉은 채 별이 뿌려진 밤하늘을 우러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훈은 다방 한구석 자리에 은빛 색스폰을 어루만지고 있는 장님을 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다방 주인이었다. 훈은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둘이는 가까와졌다.
그러게 훈이 때때로 이 허술한 다방을 찾아오는 것은 그 여인이 풍로에 부채질을 해 가며 끓여다 주는 사탕물 같은 코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이제 칠 년 섬 생활에 완전히 표백된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어쩌다 추억의 그늘이 스며들 때면 왜 그런지 지금 그의 앞에 고요히 감은 그 슬픈 긴 속눈썹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붕부웅.
멀리서 기적 소리가 솜처럼 부드럽게 들려 온다.
“벌써 저녁때군요.”
엷은 회색 스웨터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앉은 주인이 가만히 얼굴을 든다.
“그렇군요.”
훈도 따라서 눈을 든다. 아직 연락선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은 저 앞의 벼랑 밑을 돌고 있을 게다. 퉁퉁퉁퉁 기관 소리가 포구의 맑은 공기를 흔든다.
훈은 건너편 자기 집으로 멀리 시선을 돌린다.
과연 그의 집 대문 옆 소 바우 위에는 빨간 스웨터가 앉았다.
종은 배를 참 좋아한다. 아침에 연락선이 떠날 때나 저녁에 이렇게 연락선이 돌아 들어올 때면 종의 위치는 언제나 그렇게 소 바우 잔등으로 정해진다. 방안에 앉아서도 창문으로 빤히 보이는 것이었지만 부우웅 하고 고동이 울리기만 하면 밥을 먹다가도 술을 던지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는 소 바우 위에 가 다섯 살 짜리 치고는 너무나 조속한 포우즈로 앉았다. 두 무릎을 앞에서 세워 가슴에 안고 그 두 무릎 위에 턱을 딱 올려놓고, 고렇게 얄미운 자세로 종은 눈도 깜짝 않고 연락선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침에 연락선이 육지를 향해 떠날 때면, 붕 소리를 지르며 부두를 밀고 나온 배가 포구 한가운데를 돌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선체를 바로잡아 가지고 두 등대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 저만치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 흰 파도가 항상 그 발부리를 씻고 있는 벼랑 밑을 돌아 배꼬리에 달린 태극기가 감실감실 사라지고 또 한번 꿈속에서처럼 멀리 고동소리만이 돌려올 때까지.
또 오후 네 시 반이면 돌아 들어오는 배가 아침에 사라지던 그 벼랑 밑으로 코를 쓱 내밀며 붕하고 고동을 울린다. 그러면 종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곧 수평선을 향해 선다. 잠깐 동안 귀를 기울인다. 쿵쿵쿵쿵 기관소리가 간지럽게 들린다. 종의 두 눈은 반짝 빛을 발한다. 그리고는 무슨 마술이나 걸린 애처럼 달린다. 소 바우 잔등에 가 앉는다. 언제나 똑같은 자세로.
연락선이 두 등대 사이를 미끄러져 들어와서 종의 앞에서 크게 원을 그으며 손님을 맞을 사람들은 빨리 부두로 모이라고 이르기나 하듯 감나무 잎이 파르르 떨도록 한번 더 크게 고동을 울린다.
배가 흠씬 부두에 가 멎자 밧줄이 부두에 던져지고 널판이 배 옆구리에 걸쳐지고 그 위를 제법 파랗고 빨갛고 한 새 옷자락에 육지의 냄새를 묻혀 온 선객들이 섬에 내려선다. 짐짝들이 굴러 떨어진다. 한참 복작거리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간 뒤 빈 부두에 갈매기만이 너더댓 마리 깩깩 외마디 소리로 흠실흠실 아직 숨이 덜 가라앉은 연락선 굴뚝을 날아들고 있을 때까지 종은 꼼짝도 않고 어느 동화 속의 소년처럼 꿈을 보는 것이다.
연락선이 부두에 닿자 제법 기쁨 같은 것이 흥청거린다.
훈은 물끄러미 부두를 내려다보고 앉았고, 그의 앞에 앉은 다방 주인은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자세로 감은 눈 속에 그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다. 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선생님 아드님은 여전하군요. 고것 봐. 얄미워.”
코오피잔을 받쳐들고 온 여인이 창 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훈은 다시 건너편으로 눈을 돌린다. 빨간 점 옆에 꺼먼 점이 하나 늘었다. 종이 바둑이를 안고 있는 것이다. 아마 바둑이는 지금 그 보기에만도 징그러운 하얀 이빨로 종의 조그마한 손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게다. 그건,
“아버지, 입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
하며 신기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늘 어떤 불신을 손끝에 모으며 오랫동안 시험해 온 뒤에 비로소 맺어진 그들 둘만의 우의니까.
“저도 봅니다.”
“……?”
“연락선의 고동소리를 들으면 저도 저 바위 위에 두 무릎을 딱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다방 주인은 그 유난히 긴 손가락으로 창 밖을 멀리 가리킨다. 그의 손끝은 마치 눈뜬 사람의 그것처럼 정확히 맞은편 강점을 지시하고 있다. 훈과 여인의 눈이 잠깐 서로 부딪친다.
“그 놈은 배를 참 좋아합니다.”
“배를요? 제가 색소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무언가 그리운 게 아닌가요?”
“이 섬에서 나온 이 섬에서 자란 앤걸요 뭐.”
“그렇지만 저 코롬부스같이.”
“코롬부스같이.”
여인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스푸운으로 남편의 찻잔을 젖고 있다. 포동한 손이 여윈 손을 들어다 찻잔을 쥐어준다.
나흘 있으면 추석이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거세다. 집채같은 파도가 와와 소리를 지르며 밀려든다. 방파제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가 허옇게 거품이 되어 등대 꼭대기를 넘는다. 훈네 집 앞 들길은 완전히 바다 속에 잠겼다. 포구 안에는 쫓겨 들어온 어선들이 서로 어깨를 비비고 있다. 포구 가장자리에도 파도가 한길은 넘게 한길 위로 추어 오른다.
이틀 후에야 파도는 갔다. 수평선이 더 가깝다. 지구가 그 회전을 멈추기나 한 것 같이 고요하다.
훈은 학교로 나갔다. 파도로 해서 돌길이 말이 아니다. 소방서 앞 한길 가운데 떡돌만큼이나 큰 바위가 밀려 올라와 있다. 포구 가장자리의 큰길은 홍수를 치르고 난 뒤 같다.
훈은 학교 사환애에게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다방 <갈매기>의 부부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 파도가 무섭던 날 밤 밖에 나왔던 다방 주인이 잘못하여 물에 휩쓸려 들어가자 그를 구한다는 게 그만 부인마저 빠졌단다. 훈은 수업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눈을 창 밖의 바다로 띄었다. 그때마다 훈은 꼭 껴안고 물로 뛰어드는 젊은 부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던 것처럼 또 이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의 진상을 모른다.
추석날 오후다. 훈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느 날보다 일찍 서 노인이 들렀다. 새 옥양목 적삼을 입었다.
“선생님, 아들이 왔습네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다. 훈은 통 알 수가 없다.
“아들이 왔습네다!”
재차 아들이 왔노라고 하는 서 노인의 늘어진 눈시울에 눈물이 글썽 괸다.
“아들이라니요?”
“네, 아들이 있습네다.”
훈은 서 노인을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 젊은 군인이 군모를 벗어 들고 서 있다. 눈이 서글서글 큰 군인은 발을 모두어 서며 꾸벅 절을 한다.
작업복 깃에 육군 대위 계급이 빤짝한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훈은 그저 서 노인과 군인의 얼굴만 번갈아 본다.
“전연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것만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면목없다는 듯이 또 한 번 머리를 숙인다.
단 둘이 살다 아들이 국민 방위군에 소집되어 나갔더란다. 후에 돌아가 보니 집은 잿더미가 되었고 아무도 서 노인의 행방은 모르더란다. 그후 찾기도 무척 찾았단다. 그러나 그건 그저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적이 바로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섬의 경비를 맡아 파견된 아들이 배에서 내려 지이프차를 타고 시장 앞 다리를 건너던 배란다. 길에 사람들이 꽉 모여 섰더란다. 차를 세웠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건졌다는 것이다. 아들은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어쩐지 횡사한 시체를 꼭 들여다보게 된 그였다. 그런데 그건 젊은 부부의 시체더란다. 그는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그 어떤 엷은 실망을 느끼며 돌아섰단다. 그때 바로 옆에 그는 기적과 마주섰더란다.
“참 잘 됐습니다. 잘 됐습니다.”
훈은 그저 잘 됐다고만 한다.
그 길로 서 노인은 떠났다. 한 십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의 부대로 가는 것이다.
큰 길에까지 배웅을 나간 훈과 종과 또 박 노인과 김 노인이 늘어 선 앞에 지이프차 뒷자리에 올라앉은 서 노인은 얼빠진 사람모양 말이 없다.
“그럼, 또 곧 찾아뵙겠습니다.”
군인이 거수 경례를 한다. 영문을 모르는 종은 아까부터 군인만 빤히 쳐다본다. 부르릉 엔진이 걸린다. 군인이 운전수 옆자리에 올랐다. 마악 차가 움직이는 때다. 서 노인이 황급히 목을 차 밖으로 내민다.
“선생님! 애기 잘 있어라. 다람쥐 도토리는 뒷 산에……아니 산엔 가지 마. 그러구 박 노인, 김 노인……”
지이프가 언덕길을 넘어간다. 돌아서는 종의 스웨터 양 호주머니엔 정말 알이 든 캐러멜이 한 갑씩 꽂혀 있다.
땅거미가 내리 깔리자 등대에 불이 켜졌다. 오른쪽에는 빨간 등, 왼쪽에는 파란 등. 긴 물댕기가 가물가물 움직인다. 달이 뜬다. 그 청홍 두 개의 등 바로 가운데로 수평선에 달이 끓어오른다. 멀리 아주 멀리 금빛 파도가 훈의 가슴을 향해 달을 굴려 온다.
딸애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넣었다 보다. 무슨 드라마의 끝인가 기차가 들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나, 누나, 이것 기차지?”
“그래.”
“기차는 배보다 커?”
“그럼, 바보.”
“배보다 빨라?”
“그럼!”
“연락선보다도?”
“그럼!”
“경비선보다도?”
“그럼! 바보야.”
“누난 기차 타 봤어?”
“그럼!”
두 살 때 피난길에 화물차 꼭대기를 탄 제가 무슨 그때 기억이 있다고 그래도 뽐낸다.
“나도 기차 타 봤음!”
밖에 어두운 마루에 앉아 애들의 대화를 꺼내 문다.
“코롬부스같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바둑이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온다. 어느새 달은 꽤 높이 솟아올랐다. 가는 구름이 둥근 추석 달에 가로 걸렸다. 어디선가 색소폰의 그 목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집시의 달.
훈은 맞은 쪽을 건너다본다. 언제나 빤히 불이 켜져 있던 그 이층 창문은 캄캄하다. 어쩐지 이제 자기도 이 포구를 떠나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다시 달을 향해 선다. 밤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갈매기가 두 마리 훨훨 달을 향해 저 앞으로 날아간다.
고장난 문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 여덟 살 만덕이에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대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습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새끼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그 새까만 손톱을 가리켜 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글세, 그러니까 한 번 더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
수사관은 담배를 붙여 물며 맞은편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뻔한 사건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그런 눈치였다.
「나 정말 미치겠네요! 억울합니다, 정말!」
만덕이란 그 눈이 커다란 소년은 벌써 얼마든지 울었던 모양으로 형편없이 얼룩이 진 얼굴을 또 한 번 시꺼먼 작업복 소매로 문질렀다.
「이 녀석아,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 보라는 거 아냐!」
수사관은 꽤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내려놓으며 한 번 수사관을 쳐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법 맑은 음성에 시고 무식한 소년치고는 이야기가 또박또박 조리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아침이죠. 그게 아마 열 시쯤이었을 겁니다. 읍내의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한 통 배달해 주고 갔어요.
「그때 너는 펌프에서 밥그릇을 씻고 있었고.」
수사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예, 다 알고 있구먼요.」
「이 녀석아, 그걸 모르면 어떡해! 그러니까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 다 조사했으니까.」
「아 그럼요.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뿌렁을 합니까. 좋아요, 형사 아저씨가 그렇게 다 알고 있으니까 정말 마음이 턱 놓이 누만요.」
이번에는 만덕이 그 얼룩진 얼굴에 히죽이 웃음을 담아 보였다. 수사관이 귀신처럼 죄다 알고 있으니 자기의 죄 없음도 알 것이고 진범도 쉬 붙들릴 테니까.
그래 난 그 편지를 들고 선생님 화실로 갔죠. 화실은 내가있는 별채와 따로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문이 잠겨 있더군요.
「선생님, 편지 왔습니다.」
나는 문을 두어 번 두들겼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기척이 들리며 문 손잡이를 덜컥거리더군요.
「문이 잠겼구먼.」
안에서 선생님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밖에서 한 번 더 동고란 손잡이를 쥐고 돌려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공연한 짓이죠. 그 출입문은 안에서 잠그게 되어 있거든요. 또 한 번 손잡이가 안에서 덜컥거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문이 안 열리지 않아.」
선생님의 음성이 새어 나왔어요. 그러나 밖에 서 있는 나로선 그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죠.
「밖에가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아닙니다, 밖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글쎄요.」
「이상하군.」
사실 그랬습니다. 그 선생님 화실 문이란 동고란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안에서 그 손잡이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배꼽 같은 단추를 꼭 눌러서 잠그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구 안에서 열 때는 그저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되고, 밖에서 열 때는 열쇠를 넣고 돌려야 열리게 되어 있죠. 참 신통한 손잡이예요. 그런데 그게 선생님이 안에서 손잡이를 돌렸는데도 열리지 않거든요.
「이상한데…… 이봐 만덕이.」
「예.」
「밖에서 열쇠로 한 번 열어 봐.」
「열쇠가 제겐 없는데요.」
「저리 앞 창문으로 돌아와. 열쇠를 내보내 줄 테니까.」
나는 곧 화실 모서리를 돌아 나갔죠. 포도송이 같은 꽃이 주렁주렁 달려 잇는 등나무 시렁 밑으로 해서 창문 앞으로 갔어요. 선생님이 창문 쇠창살 사이로 열쇠를 내밀어 주시더군요.
나도 역시 쇠창살 사이로 편지를 선생님께 건네고 열쇠를 받았죠. 조그마한 방울이 하나 끈에 달린 하얀 열쇠였어요. ……예, 바로 형사 아저씨 앞에 있는 그 열쇱니다. 방울이 달렸지 않아요.
「응, 은방울인데.」
수사관이 책상 모서리에서 열쇠를 집어들어 끈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보았다. 딸랑딸랑 아주 맑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선생님은 화실에 들어가실 때면 저만치 사립문에서부터 열쇠를 꺼내어 딸랑딸랑 흔들며 들어오시곤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별채 방안이나 뒤뜰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앞에서 인기척이 나도 그 방 울 소리만 나면 나가 볼 필요가 없었죠. 그건 선생님이 화실로 들어가시는 거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인정 있는 좋은 분이었어요. 개가 무슨 일을 하다가 공연히 나올까 봐서 일부러 그렇게 방울 을 흔드시는 거였죠.」
나는 그 열쇠를 들고 문으로 갔어요. 쇠를 넣고 비틀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은 안 열렸어요.
「선생님, 안 되는데요.」
「그래 …… 하기야 안에서 비틀어서 안 열리니까.」
선생님은 심상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잠잠했습니다. 아마 방금 전해 드린 편지라도 읽고 있나 보다 하고 나는 그냥 앞뜰로 돌아 나오고 말았죠. 열쇠는 그냥 내 호주머니에 넣은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되었을까요. 앞뜰에서 장미나무에 거름을 주고 있노라니까,
「만덕아!」
하고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네.」
나는 삽을 던져두고 화실 앞으로 달려갔죠.
「이 녀석아, 문을 열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선생님이 창문 안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열쇠로도 안 열리는걸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창살 안에 가 뒤 둘 작정이냐?」
언제나 그림 그릴 때 입고 있는 그 누렁 샤쓰를 헐렁하니 걸친 선생님은 쇠창살을 친 창문 안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선생님, 지금 밖으로 나오실려구요?」
「나갈 일은 별로 없지만 …… 그렇다고 이 녀석아……」
「아무래도 문이 고장이 난 모양인데요.」
「어떻게 해 봐!」
나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들로 딸랑딸랑 출입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손잡이 열쇠를 거기 꽂아 둔 채 다시 앞뜰로 나와 버렸죠.
사실 선생님 화실 안에는 모든 시설 ―수도, 가스, 냉장고, 그 속에 빵, 우유, 과일, 그리고 화장실, 욕실까지 다 있거든요. 전혀 아무 불편도 없죠. 그러니까 뭐 문이 당장 안 열린대도 별 볼일 없으리라고 생각했었죠. 사실 선생님은 그전에도 며칠씩 꼼짝 않고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적이 흔히 있었거든요. 그런 때면 난 될 수 있는 대로 화실 가까이는 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딴 사림이 화실 안에 들어가는 걸 아주 실어 했거든요.
우리 선생님은 좀 이상한 분이었어요. 댁은 서울인데 선생님 혼자서만 서울서 이십 리나 떨어진 그 강가 언덕 위 별장 화실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형사 아저씨도 보셨죠. 그 언덕 위 밤나무 숲 사이의 화실. 밖에서 보기에는 별서 아닌 보통 기와집이지만 안은 참 멋집니다. 나는 그 화실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별채에 살고 있으면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또 선생님이 서울 올라가시면 집을 지키고 그랬죠. 선생님은 한 달에 한 열흘쯤만 서울에 가 계셨고 이십 일쯤은 여기 화실에서 혼자 지냈어요. 그렇다고 뭐 사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아니죠, 두 분은 아주 사이가 좋았어요. 예쁜 사모님은 대학에 다니는 역시 예쁜 따님과 같이 때때로 화실에 내려오곤 했어요. 선생님의 양식거리를 잔뜩 꾸려 들고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화실 안에서 혼자 손으로 끓여 잡숫곤 했어요. 그러니까 뭐 꼬박꼬박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세 때를 먹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생각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안 먹고 그래요. 선생님은 그저 그림밖에 몰랐어요. 그림에 미친 분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만 사시더군요.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그렇게 유명한 화가인가 봐요. 어찌 보면 꼭 어린애 같아요. 그야말로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사시는 분이었어요. 어떤 날은 한낮에 종일 주무시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또 비가 억수로 내리는 속을 수산도 안 쓰고 산보를 하는가 하면 이틀 사흘 기척도 없이 화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도 하고요. 그런 땐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화실 창문으로 기웃거릴라치면 선생님은 막 야단을 치곤 했어요. 그래 그후로는 아무리 며칠씩 선생님이 안 보여도 그저 난 내 방에서 모른 체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멋대로 지내면서 남이 간섭하는 걸 아주 싫어했거든요. 정말 묘한 선생님이었어요. 안 그런 선생님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래 걸렸죠. 그러니까 선생님과 나는 화실과 별채에 따로따로 지내고 있는 거처럼, 한 집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 따로따로 였어요. 어쩌다 편지나 오면 그걸 전하러 화실엘 가는 정도였죠. 그 밖엔 내가 갈 필요도 없었고 또 별로 부르는 일도 없었어요. 선생님과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간섭을 안하고 사니까 세상 편하고 좋던데요. 선생님도 언젠가 그러더군요. 그게 제일 잘 사는 거라구요.
「이 녀석아, 무슨 쓸데없는 군말이 그렇게 많아.」
수사관은 담뱃재를 떨며 지리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 이야길 하다 보니까 그만, 헤헤헤. 어디까지 말씀드렸더라…….」
「그래, 다시 앞뜰로 나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했어?」
예, 그랬죠. 앞뜰로 나가서 다시 장미나무에 거름 주기를 계속했죠 뭐. 열쇠로도 문이 안 열리는 걸 어떡헐 도리 있나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또 선생님이 부르잖아요. 이번엔 아까보다 크고 좀 화가 난 목소리였어요.
「야! 만덕아, 이리 와!」
「예!」
나는 또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선생님은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쥐고 서 있더군요. 나는 창문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야, 이 자식아!」
「……?」
나는 멈칫 섰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을 살폈죠. 커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선생님은 화가 몹시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지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의 입에서 자식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부르셨어요?」
하고, 나는 겁에 질려서 나직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선생님은,
「임아, 내가 뭐랬지?」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그저 멍멍히 서 있었죠.
「문을 열라고 하잖았어?」
「예……그런데 그 문이 열리질 않는걸요.」
「그렇다고 그냥 가만 두면 열리니?」
「……?」
「가만 둬도 생각해 가면 혼자 열리냐 말이다! 문이 살았니?」
딴은 그럴 리는 없죠. 문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얼마큼 곯리다가 적당히 열러 줄 턱은 없죠.
「어떻게 열어 봐얄 게 아냐.」
「네 힘으로 안 되면 읍내 목수한테라도 가서 열어 달래야잖아.」
「예, 그럼 곧…….」
「바보 같은 녀석, 사람을 죄수처럼 철창 안에 가두어 놓고 태평으로 딴 짓만 하고 있어!」
나는 돌아서 나오며 등뒤에 선생님의 역정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기야 갇혔다면 분명히 갇혔지만, 그렇다고 여느 때는 곧잘 며칠씩 꼼짝도 않고 화실 안에서 잘도 지내면서 막상 문이 고장이 나 안 열리니까 그 날 따라 그렇게 화를 내는 선생님이 이상도 하고 고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진작 읍내 목수한테 나가서 부탁할 생각을 못했던가 하고 정말 멍충이인 나를 탓하면서 그 달음으로 곧 십리쯤 되는 읍내로 들어왔죠. 그런데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지 뭐예요. 어디 일 갔는데 저녁때에나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미안하지만 저녁 늦게라도 나와서 문을 좀 손 봐 달라고 부인한테 부탁을 하고 돌아왔죠. 바로 그 문을 단 목수 아저씨였거든요. 사실 문제는 그때 목수 아저씨가 집에 없었던 데 있다구요. 목수 아저씨가 있기만 했더라면 같이 나가서 쉽게 문을 고칠 수 있었던 걸, 그날 저녁 늦게까지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가 들어오질 않았지 뭡니까.
「야 임마, 너 정말 목수한테 가긴 갔었어?」
선생님은 저녁 해가 떨어지자 역정을 내시더군요.
「아 그럼요. 제가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왜 아직 안 와!」
「글세 꼭 오라고 부탁을 했다니까요.」
「그런데 아직 안 오지 않아.」
「헤 참, 선생님도 급하시긴. 전에는 며칠씩도 문 밖에 안 나오시곤 했으면서 뭘 그러셔요.」
나는 화실 창문 밖 등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쇠창살 안의 선생님 말동무를 해 주며 그렇게 웃었죠. 그랬더니 창턱에 걸터앉은 선생님은 곰방대를 뻐끔뻐끔 빨면서,
「이 녀석 봐라! 그거야 내가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나간 거구 지금은 내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못 나가는 거 아냐.」
하며 웃더군요.
「마찬가지죠 뭘. 안 나가나 못 나가나 화실 안에 있는 건 같지 않아요. 뭘 심부름시킬 일 있으면 시키셔요. 제가 다 해드릴께요.」
「일은 무슨 일이 있어, 이 녀석아.」
「그럼 됐죠 뭐.」
「허 녀석.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구나, 넌.」
「어디 제 말이 틀렸어요. 뭐 불편하신 게 있어요, 서울 가실 일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듣기 싫다, 이 녀석아. 너하고 이야길 하느니 차라리 우리 안의 돼지하고 하겠다.」
「헤참 선생님도. 이제 목수 아저씨가 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그 동안 선생님 저녁이 나 드셔요. 전 식은 밥이라도 한술 먹어야겠어요.」
난 일어나 별채로 나왔어요. 선생님은 화실에 전등을 켤 생각도 않고 그대로 창턱에 걸터앉아 있더군요.
그런데 기다려도 목수 아저씨는 오지 않았습니다.
「야, 만덕아! 목수 정말 어찌 된 거냐!」
선생님은 내가 채 저녁밥을 다 먹기도 전에 또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창살을 안에서 쥐고 마구 흔들면서요.
「글쎄요, 꼭 와 달라고 단단히 부탁은 해놨다니까요.」
「한 번 더 열쇠로 열어 봐.」
「마찬가지죠 뭘. 문짝이 뭐 생각해 가며 열리고 안 열리고 하겠어요.」
「임마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아. 어서 한 번 더 열어 봐.」
나는 어둑한 문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그대로 꽂힌 열쇠를 비틀어 보았습니다. 열릴 리가 없죠.
「안 열리냐?」
문안에서 선생님이 소리쳐 물었습니다.
「예, 마찬가집니다.」
「한 번 더 해 봐.」
「글세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러면서도 나는 또 열쇠를 넣고 비틀며 손잡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빌어먹을!」
하고 역정을 내며 선생님은 문을 걷어차는 모양이었어요. 쾅쾅 요란하게 문짝이 울리더군요. 나는 다시 앞 창문께로 돌아 나갔습니다.
「제길헐! 이거 어디…….」
선생님은 화실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방으로 난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 젖히더군요. 전등도 켜고요.
「쇠창살은 또 뭣 때문에 이렇게 창문마다에 다 쳤어. 빌어먹을! 이거야 답답해서 견디겠나, 어디!」
난 밖에서 물끄러미 그런 선생님을― 나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점점 난폭해지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죠. 뭐가 어째서 그렇게도 답답해하시는지 도통 알 수 없더군요. 모든 시설이 안에 다 있고, 사방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여느 날처럼 그림이나 그리시지 않구요.」
난 그런 선생님이 참 딱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끔 내다보시더니 무슨 말을 할 듯 하다 말고 화실 한복판에 있는 걸상으로 가 쓰러지듯 털썩 주저 않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곰방대에 또 담배를 담으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꼭 어디 빠져나갈 틈새라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틈이 있을 리 없죠. 문은 그 모양으로 고장 났고, 사방에 창문은 있었지만 그 창문들에는 단단히 쇠창살이 쳐져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한참이나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더군요.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나는 창문 밖에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한 번 힐끔 날 쳐다보았습니다. 아무 대꾸도 안 했어요.
「아 그거 왜 자꾸만 문 생각만 하시고 그러셔요?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편안히 계시지 않구. 그러면 이제 목수가 와서 고칠 텐데 참.」
「…….」
선생님은 또 힐끔 날 쳐다보았어요. 사실 그렇거든요. 보통날 선생님은 별로 문 밖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문이 고장이 나니까 그 날 따라 공연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꼭 동물원 철창 안에 갇힌 호랑이처럼 불안해하더란 말입니다. 참 묘한 성격이죠. 나는 그런 선생님이 우습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슬그머니 창가에서 돌아섰죠. 그랬더니 와장창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군요. 난 깜짝 놀라서 다시 창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뭔지 아세요? 걸상이 창문 쇠창살에 턱 하니 걸려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일어서며 깔고 앉았던 걸상을 냅다 던진 거죠. 난 어리둥절했죠.
「야 임마! 가면 어떡해! 어서 목수 못 불러 와!」
선생님은 창문으로 달려와 쇠창살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마구 흔들어 대며 소리소리 지르지 뭡니까. 그건 언제나 인자하시던 그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웠어요. 난 전엔 그런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창에 쇠창살이 없었더라면 뛰어넘어 나와서 날 박살을 냈을 겁니다. 정말 겁났어요. 이마엔 핏줄이 서고 입은 꽉 다물고. 선생님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두 손으로 그 긴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더군요.
「야! 빨리 문 열어!」
갑자기 선생님이 미친 것이나 아닌가 했다니까요.
「예, 목수 아저씨한테 또 갔다올께요, 선생님!」
나는 겁이 나서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읍내로 달렸습니다. 그땐 벌써 밤이 꽤 깊었죠. 캄캄한 길을 나는 거의 단숨에 읍내에까지 달렸어요. 그런데 뭡니까. 목수 아저씨는 잔뜩 술에 취해서 자고 있지 뭡니까.
「아저씨, 빨리 좀 일어나세요. 문을 좀 열어 주어야 해요.」
「음, 문? …… 문 열면 되지 뭘 그래.」
목수 아저씨는 눈도 안 뜨고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일어나요. 우리 선생님 지금 잔뜩 화났단 말예요!」
「화가 나?…… 왜 화가 나…….」
목수 아저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취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이죠.
「문이 고장이 나서 안 열린단 말예요!」
「문이…… 고장이 났다!」
「예, 그래요.」
「임마, 문이 무슨 고장이 나고 말고가 있어……열면 되지……문이란 임마, 열리게 돼 있는 거지, 임 마.」
목수 아저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쓱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돌아누워 버렸어요.
「그게 아냐요. 아저씨가 달아 준 저의 선생님 화실 문 알잖아요.」
「에이, 시끄럽다! 걷어차라 걷어차! 그럼 제가 열리지 안 열려! 열리지 않는 문이 어디 있어, 임마.」
목수 아저씬 잔뜩 몸을 꼬부리며 좀처럼 깨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총각, 웬만하면 낼 아침 일찍 고치지. 저렇게 취했으니 뭐가 되겠어 어디.」
목수네 아주머니가 말했어요.
「글세 그런데 그게 안 그렇단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지금 미칠 지경이거든요.」
「미쳐? 아니 문이 안 열린다고 미칠 거야 뭐 있어?」
「글쎄나 말이죠. 내 생각도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안 그런걸 어떡해요.」
「왜, 뒷간에라도 가고 싶은가?」
「뒷간엔요! 그런 건 다 안에 있죠.」
「그럼 배가 고픈가?」
「허참, 아주머니도. 먹을 건 얼마든지 안에 다 있다구요!」
「그런데 왜 그래. 먹을 것 있구 뒤볼 데 있으면 됐지, 그런데 미치긴 왜 미쳐? 오, 바람이 안 통해 서 숨이 답답한가 보구먼 그래.」
「허 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바람이 왜 안 통해요. 스무 평 방의 사방이 창문인데!」
「그럼 뭐야,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더구나 지금 밤인데, 열어 놓았던 문도 걸어 잠그고 잘 시간인 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발광이야 그래! 원 참 별난 양반 다 보겠네.」
「글세 그러니까 딱하죠. 낸들 알아요, 그러니 제발 좀 아저씰 깨워 주세요, 아주머니.」
「가만 둬요, 총각. 그런 일이라면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 보낼게. 그러니까 총각, 그만 돌아가서 그 선생님께 말하지 그래. 문을 열 게 아니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주무시라고.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원!」
목수네 아주머니까지 이젠 상대를 안 해 주더군요. 그러니 어떡해요. 난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요. 밤길을 다시 걸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죠. 선생님의 짜증이 두려워서 될수록 천천히 걸어서 집에까지 갔어요. 조심조심 화실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앞 창문의 쇠창살을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고 한 발을 창턱에다 올려 디디고 금세라도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 몸짓으로 서 있더군요.
「야 임마! 빨리빨리 좀 못 다니냐. 사람이 지금 죽을 지경인데…… 그래 목수는 데리고 왔어?」
「그게, 그…… 취해서 자던걸요.」
「뭐라구! 취해서 자! 그래 혼자 왔단 말야?」
선생님은 꽥 소리를 지르며 창살을 마구 흔들어 대었습니다. 우적우적 금시 쇠창살이 비틀려 떨어질 것 같았어요.
「암만 흔들어도 안 깨던데요. 낼 아침 일찍 온대요.」
「무슨 개소리야! 낼이 아니라 이 밤이 당장 문제란 말이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주먹으로 쇠창살을 두들겨댔어요.
「그러니 선생님, 이 밤은 그냥 주무셔요. 어차피 밤이니까 문을 잠가얄 게 아냐요. 그냥 주무셔요, 선생님.」
나는 달래듯이 말했죠. 그랬더니 그 말이 선생님을 더욱 흥분시켰던가 봐요.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네가 뭘 안다고 주절거리냐! 누가 밤인 줄 몰라서 안 자는 줄 아냐!」
선생님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마구 상말로 욕지거리를 퍼붓더군요. 그러나 난 조금도 어떻게 안 생각했어요.
「도끼 가져와!」
「도끼가 어디 있어요, 선생님.」
「그럼 무슨 망치라도 가져와!」
「망치는 또 어디 있어요!」
「임마, 그럼 날 이렇게 밤새도록 가둬 두겠단 말야!」
「가두긴요…… 아 이제 주무시면 되지 않아요. 밤도 깊었는데요.」
「이 새끼가 누굴 약을 올리나. 응, 너 날 약올리는 거야! 이 죽일 놈의 새끼가!」
선생님은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화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침내 발작을 하더군요. 걸상을 둘러메고 가서 문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안 하고 걸상이 부서져 나갔죠. 그러자 이번엔 커다란 액자를 문을 향해 던졌습니다. 역시 산산조각이 났죠. 선생님은 이제 정말 자기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집어서 문에다 던졌습니다. 물통, 그림붓, 이젤, 캔버스. 나는 창 밖에서 정말 겁이 났습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왜 그렇게 발광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저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한바탕 던지던 선생님이 이제 던질 것도 없었던지 제풀에 축 어깨를 떨구며 화실 마룻바닥 한복판에 가 턱하니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더군요. 숨이 차서 가슴을 들먹거리면서요, 창문 밖의 나를 노려보겠죠.
「나쁜 새끼! 네가 문을 망가뜨렸지.」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왜……전 정말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럼 누가 그랬단 말야!」
「글세 누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전 정말 모릅니다.」
「가라, 나쁜 새끼!」
「아닙니다, 정말!」
「안 갈 테야!」
선생님은 앉은 채 마룻바닥에서 무엇인가 더듬어 창문 밖의 나를 향해 냅다 던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기름통이었어요. 빗맞긴 했지만 난 얼굴에 기름을 함빡 뒤집어썼죠.
「빨리 꺼져!」
선생님은 또 다시 무엇인가 던질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난 재빨리 도망쳤죠. 내 방으로요. 정말입니다. 그리고 자 버렸어요. 선생님은 차라리 혼자 가만히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화실 안은 아무 불편도 없거든요. 그랬다가 다음날 아침에 조심조심 창 밖으로 가서 안을 살펴보았더니 선생님은 화실 한켠 벽에 붙여 놓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지 않겠어요. 참 어린애 같은 분예요. 나는 그 길로 읍내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이 잠들어 있을 때 아침 일찍 목수 아저씨를 불러다가 문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읍내 길 중간쯤에서 목수 아저씰 만났어요.
「엊저녁엔 내가 취했어. 그래 이렇게 일찍 오는 길이지.」
목수 아저씨는 미안해하더군요. 그래 우린 화실로 돌아왔죠. 선생님은 아직 그대로 엎드려 잠들어 있었습니다. 목수 아저씨는 연장을 내려놓고 문 손잡이를 몇 번 돌려보더군요. 열릴 리가 있나요. 결국 끌을 가지고 문설주를 도려냈죠. 그렇게 만 하루만에 문이 열렸어요. 아닌게아니라 밖에 있던 나까지도 숨통이 확 틔는 것 같데요. 그거 참 묘하죠. 뭐 별 답답한 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막상 문이 활짝 열리니까 정말 가슴이 다 시원하던데요. 난 확 열어 젖혀진 문으로 단번에 몰려들어가는 바람에 빨려 들어가기나 하듯이 화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요. 의자다 액자다 캔버스 따위가 마구 흐트러진 위를 넘어서요.
「선생님! 선생님, 문이 열렸어요!」
소리 질렀죠. 그래도 선생님은 침대에 엎드린 채 꿈쩍도 안 하더군요.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어요.
「선생님 문이 열렸다니까요! 어서 밖에 나가 보셔요.」
나는 침대 곁으로 가서 엎드린 선생님을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죽어서 몸이 굳어 있더란 말이지?」
수사관이 느릿한 몸짓으로 걸상 등받이에서 등을 펴며 책상 위의 조서를 집어 올려 폈다.
「정말입니다. 목수 아저씨도 다 보았습니다!」
만덕은 안타까운 눈으로 수사관을 쳐다보았다.
「물론 목수 아저씨도 보았지.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를 불러 갔으니까. 그러나 목수 아저씨가 본 건 죽은 시체였지 그가 죽는 광경은 아니었지 않아!」
「형사 아저씨! 제 말을 믿어 주십쇼. 정말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모두 사실입니다. 억울합니다. 제가 왜 우리 선생님의 목을 누릅니까. 또 그리구, 목수 아저씨도 잘 압니다. 우리가 갔을 때까지도 문은 그대로 고장 나 잠겨 있었거든요. 그래 그걸 뜯고야 들어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야 그랬지. 그런데 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단 말야. 안 그래?」
수사관은 열쇠를 집어들어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허지만 아저씨! 문은 고장이었습니다요! 그걸 목수 아저씨가 뜯고야 들어갔다니까요!」
「거짓말 마!」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고함을 질렀다. 만덕은 수사관을 노려보는 채 무릎 위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임마! 그럼 네 말대로 이십 평 화실에 사방의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는데 그 속에서 혼자 숨이 막혀 죽었단 말야!」
「글세 그거야…….」
「거짓말도 씨가 먹어야지! …… 김순경, 이 자식 끌어다 수감해!」
옆방에서 순경이 들어왔다. 만덕의 죽지를 붙들어 끌고 나갔다. 만덕은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걸었다. 수사관은 거기 조서 밑의 의사의 검안서(檢案書)를 슬쩍 들쳐 보았다.
<질식사.>
「돌팔이 같은……사방의 창문이 활짝 열린 방안에서 질식해 죽어!」
수사관은 코방귀를 뀌며 걸상에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쳐들고 기지개를 켰다.
살 모 사
삐걱삐걱 차체를 뒤틀며 종로 네거리를 을지로 입구 쪽으로 돌고 있는 전차 창문에 붙어 서서, 더위에 축 늘어진 거리를 막연히 내다보고 있던 나는 흠칫 놀랐다. 거기, 건너는 길목에 서서 신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나는 분명 살모사(殺母蛇)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섬뜩하였다. 나는 얼른 뒷창문께로 다가갔다.
신호가 열린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서 있던 사람들이 양편에서 와르르 차도를 들어섰다. 나는 그 사람들 틈에서 다시 살모사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미처 살모사를 찾아 내기 전에 전차는 이미 을지로 입구 쪽으로 쑥돌아 나와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이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강파른 몸매하며, 재푸른 미간에 독살스레 곤두세운 세모진 눈하며, 매부리코 밑에 꼭 악물은 유난히 얇은 입술은 틀림없는 살모사였다.
다만 의심하자면, 그 살모사가 어찌하여 이 서울에, 그도 종로 네거리에 있는가 하는 그 점뿐이었다.
나의 기억은 3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열 세 살 소년인 나는 이북에 있는 내 고향 보통학교(지금은 공산 치하에서 인민학교로 그 명칭이 변했겠지만) 6 학년 교실에 가 섰다. 같은 또래의 애들이 한 60명 모여 서서 떠들고들있다. 나는 한 반이던 그 애들의 얼굴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친하던 순서대로 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이 세 층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얼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친하던 몇몇 애들. 그리고 다음은 메기, 도깨비, 염소, 미친개 따위 기괴한 별명과 함께, 마치 그 별명에 맞추어서 태어나기나 한 것 같은 인상만이 선히 남고 막상 중요한 그 본명은 어디론가 빠져 버린 애들. 그리고 맨 끝으로는 그 이름도 또 별명도 모습도 모두 잃어버린 채 그저 의미 없는 웃음만을 헤헤헤 웃고 있는, 말하자면 그림의 배경(背景) 같은 많은 애들.
그런데 그 중에 꼭 한 애, 예외가 있었다.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아니 친하기는커녕 가장 싫어하고 꺼리던 애면서 아직 그 이름과 별명과 그리고 인상이 너무나 똑똑히 기억 나는 애. 그 애가 바로 본명이 궁 남(弓男)이고 별명이 살모사였다.
우선 그 성부터가 전교 내에 단 하나인 궁(弓)가였던 그는 정말 괴팍스러운 애였다.
그의 세모진 두 눈에 항상 독기가 가득 차 있었고, 칼로 쪽 금만 짼 것 같은 얇은 입술은 꼭 악물어 살기가 싸늘하게 서려 있었다.
어쩌다 누가 한 마디 뭐라고 하기만 하면, 과히 거슬리는 말도 아닌데 그는 팩 하고 성이 나 마주 돌아서서는,
「뭐? 뭐야 이 쌔끼야!」
하며,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모든 애들을 그저 적대시하려고만 드는 그를 좋아하는 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 누가 맨 처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살모사라는 별명 그대로 정말 뱀을 대하듯이 모든 애들이 그를 꺼렸고 따라서 그는 점점 더 배틀려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그 살모사와 한 책상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6학년 초였다.
선생님은 전반 애들을 키 순서대로 운동장에 세우고 번호를 부른 다음 우향 우, 하고 이열 종대를 만들었다. 그때 내 오른쪽으로 쓱 나선 애가 바로 살모사였고 그것이 바로 둘씩 앉게된 책상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 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정한 첫 시간이었다. 살모사는 선생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책상 까만 판을 요리조리 재더니 꼭 반에다 금을 재는 것이었다. 아니 금을 째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가며,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서 거기 아주 도랑을 팠다. 그러자 그는 나의 팔꿈치를 툭 건드리고,
「야, 이거 알디. 절대로 넘디 않기다.」
낮은 소리로 경고하며 책상 밑에서 칼을 한 번 세워 보였다.
나는 그보다 키는 크면서도 나이는 한 살 아래였다. 그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도무지 그와 뭐라고 마주 다툴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영악한 애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책 상 밑에서 세워 보이는 그 칼만 해도 그랬다. 그 칼은 연필을 깎기 위한 어린애들의 칼치고는 너무나 새파랗게 날이 서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도 그는 칼로,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진, 반에서 셋째로 큰 애의 어깨를 찌른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만 해도 따지고 보면 잘못은 살모사에게 있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이었다. 살모사가 지나가며 도깨비의 책상을 건드렸다. 그러자 책상 속에 들어 있던 도시락이 떨렁 하고 마룻바닥에 떨어지며 장아찌와 조밥이 몽탕 쏟아졌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고 핼끔 돌아보아다. 도깨비라는 큰 애는 어쩌나 보자는 듯이 살모사를 넌지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살모사의 얼굴에는 일순 당황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순간이었고,
「이 쌔끼가. 와 보니?」
하며, 도리어 도깨비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분명 속으로는 잘못했다 하면서도 입으로는 그 소리를 못 하는 살모사였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요 쌔끼가, 요거 정말……」
체통이 커다란 도깨비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어느새 쥐어박았는지 살모사는 거기 책상 사이에 쓰러졌다. 그렇게 그가 돌아서서 자기 책상 쪽으로 한 걸음을 걸어갈 때였다. 모여 섰던 애들이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살모사의 칼이 도깨비의 왼쪽 어깨에 꽂혀 있었다. 도깨비는 어깨를 움켜주고 주저앉았고, 그 등뒤에서 살모사는 얇은 입술을 꼭 악물고 아드득 어금니를 갈고 있었다.
그런 애가 살모사이고 보니, 그야말로 정말 살모사를 다루듯이 아주 그것을 때려서 죽여 버리지 못할 바에는 그저 적당히 지나쳐 버리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나는 제법 슬기로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뭐 나만의 슬기가 아니라 그때 그 6학년 애들 전원의 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와 살모사의 그 책상 경계선에서는 거의 매시간 사소한 충돌 사건이 발생하곤 하였다.
어쩌다 내 고과서의 한 모서리가 그 경계선을 조금 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살모사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나의 책을 획 밀어 치우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책상에만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을 허공으로 연장하여 나의 몸과 살모사의 몸과의 사이에까지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옷자락이나 물팍이 어쩌다 그 허공에 연장된 경계선을 조금이라도 넘었다고 생각되면, 그는 연필이나 콤파스나 삼각자 같은 것으로 사정없이 콕 내리찍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 시간에 무의식 중으로 아야 소리를 지르고는 당황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와 마주 싸우지를 않았다. 아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싸운다면 힘은 거의 비등한 판이니까 때리고 맞고 피장파장일지는 모르나, 내가 이길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아주 없애 버리지 못하는 한 그는 반드시 나의 어깨에 칼을 꽂고야 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가 그렇게 철저한 데 비하여 도저히 그를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쳐 놓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반대로 아주 그를 너그럽게 대해 주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는 또 그렇게 매사에 져 주기만 하는 내 태도에 이번에는 도리어 어떤 경멸 같은 것을 느꼈던 모양으로 더욱더 신경을 날카롭게 하여 나의 표정과 말투까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산수 시간이었다. 쓰다 놓은 내 연필이 또르르 굴러갔다. 소위 경계선의 3 분의 2나 넘었다. 나의 손과 살모사의 손이 거의 동시에 그 연필을 한 끝씩 덮쳤다. 그러니까 경계선을 가운데로 하고, 나는 고무가 달린 쪽을 손으로 눌렀고, 그는 또 딴 쪽을 덮쳤다. 나는 그렇게 손으로는 연필을 누른 채 우선 선생님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런데 살모사는 한 손에 어느새 칼을 펴 들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연필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연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살모사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연필의 거의 3분의 2였고, 내가 누르고 있는 부분은 겨우 고무가 달린 부분이었으니까 힘써 쥐어지지를 않았던 것이다.
살모사는 파랗게 날이 선 칼을 나의 손끝으로 가져 왔다. 그리고는 경계선에서 연필을 자를 작정이었다. 그는 칼을 연필에 가져다 대고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때의 웃음. 어린애답지 않게 눈꼬리와 입 가장자리에 잔주름을 지으며 소리 없이 웃던, 그때의 그 살모사의 야릇한 미소를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의 그런 미소에서 얼음을 만진 때처럼 선뜻함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연필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그는 다시 연필로 얼굴을 돌렸다. 칼날을 경계선과 정확하니 맞추었다. 이제 그 산 지 얼마 안 되는 파란 연필을 고무가 달린 바로 밑에서 두 동강으로 자를 판인 것이다.
「그냥 너 가져.」
나는 어쩐지 그 연필을 마치 목을 자르듯이 고무 밑에서 싹 자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살모사는 연필 모가지에 칼날을 댄 채로 빤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결심한 듯이 그 얇은 입술을 악물면서 싹둑 연필을 자르고 야 말았다. 정말 싹둑 잘랐다. 그렇게 그의 칼은 잘 들었다. 나는 때구르르 나의 공책 모서리로 굴러오는 그 연필 모가지를 보는 순간 어쩐지 내 손가락 끝에 따가운 통증을 느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에 쥐었던 연필 동강을 이번에는 한 치만큼씩 짧게 몇 동강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이었다. 싹둑싹둑. 정말 잘 드는 칼이었다. 그렇게 한 동강을 자를 때마다 그의 입술과 칼끝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런 그가 겁이 났다.
수업이 끝났다. 반장의 구령에 의하여 모두 일어서서 선생님께 경례를 하였다. 그런데 살모사만은 일어서질 않았다. 그는 앉은 채 그 조그마한 연필 동강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궁 남.」
선생님이 반 애들을 세워 둔 채 그렇게 불렀다. 그는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궁 남. 왜 안 일어나지?」
그래도 여전히 못 들은 체했다.
「일어나. 그리고 선생님한테 인살 해야지.」
사십이 넘으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부드러웠다. 그래도 그는 꼼짝도 안 했다. 그저 책상 위의 연필 동강들만 응시하고 있었다.
「궁 남. 일어나 !」
선생님의 목소리는 좀더 커졌다.
「안 일어나 !」
선생님의 음성이 약간 노기를 띠었다. 그러니까 비로소 그는 마지 못하는 태도로 일어나 섰다.
「인사해 봐.」
일어서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또 그대로 고개를 빳빳이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는 채 인사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인사 안 해?」
「……」
「인살 해!」
또 선생님의 음성이 커졌다. 그러자 그는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 경례가 보통 경례가 아니라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 최경례(最敬禮)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렇게 구십 도로 굽히는 경례를 꾸벅꾸벅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반 애들이 와하하 웃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분명 노기가 솟았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역시 능란하신 분이었다.
「그래. 그렇게 내가 다음 시간에 들어올 때까지 인살 계속하고 있어.」
하고, 쓰게 웃으며 교실을 나가셨다.
딴 애들은 그때 살모사가 왜 그랬는지를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뒤로 나는 점점 더 그를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너그럽게 져 주면 져 주는 대로 그렇고, 그렇다고 그의 잔인도(殘忍度)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고. 그래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절대로 그와의 경계선을 건드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와 말을 주고 받고가 필요가 없을 것이고, 말을 하지 않고 지내면 따라서 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과연 그것은 현명한 방안이었다. 한 달쯤은 정말 말 한 마디 없이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어떤 날 기어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날은 나흘째 계속되는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교실 안은 습기찬 애들의 몸 냄새로 퀴퀴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애들은 즐거웠다. 쉬는 시간이면 조그만 청개구리를 잡아서 여학생 애들의 책상에 올려놓아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다들 자기 좌석으로 달려가 앉았다. 그런데 난처한 것은 청개구리들이었다. 청개구리는 애들의 책상 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 내 무릎 위에 조그마한 청개구리가 한 마리 올라왔다. 나는 선생님 모르게 그 놈을 잡았다. 책상 위의 국어 책을 병풍처럼 세웠다. 청개구리를 그 안에 살며시 놓았다. 파란 놈이 하얀 배를 할딱할딱하며 두 눈을 뒤룩뒤룩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간 귀엽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그놈을 필통에라도 넣어 두고 싶었다. 책상 모서리에 있는 필통을 살며시 당겼다. 그러나 세워 놓은 책을 건드렸다. 병풍처럼 막아 서 있던 책이 넘어졌다. 다행히 책은 경계선을 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놀란 청개구리란 놈이 홀짝 뛰었다. 경계선을 넘어 살모사의 공책 위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얼른 살모사의 얼굴부터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살모사의 입술이 꼭 아물어지며 어금니가 아드득 소리를 내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 조그마한 개구리를 덮쳤다. 그리고 마치 무슨 발작처럼 칠판을 향하여 자기 힘껏 그 청개구리를 두들겨 던졌다. 정말 어찌나 악을 쓰고 힘껏 던졌던지,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청개구리는 그대로 납작하니 되어 칠판에 찰싹 달라붙어 버렸다.
놀란 것은 생도들보다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무참히 학살되어 칠판에 착 달라붙은 청개구리를 본 선생님은 천천히 애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누구지? 이처럼 잔인한 짓을 한 것은.」
선생님의 음성은 지극히 부드럽고 낮았다. 그러나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잠깐 잠잠하였다. 선생님은 교실 안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으로 더듬고 있었다. 아무도 일어서질 않았다.
「좋다. 일어서지 마라. 차라리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 것이 좋겠다……무서운 일이다.!」
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그렇게 한숨처럼 말씀하시고, 끝나는 종도 나기 전에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렸다. 정말 살모사는 무서운 애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살모사뿐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역시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는 듣고 있었다. 그러나 기실 살모사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그의 아버지를 분명히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처럼 살모사의 출생은 그 잉태부터가 기구한 것이었다.
살모사의 어머니는 중농가(中農家)의 딸로서 꽤 예쁘게 생긴 여인이었다. 열 여덟 살 나던 해에 그녀는 궁(弓)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다. 궁씨네는 그 조상에 꽤 높은 벼슬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하여 고을 안에서는 제법 양반으로 행세하는 가문이었다. 재산으로 말하자면 과수원과 논밭이 약간 남아 있을 뿐 벌써 몰락한 양반의 궁씨 집안이었으나, 평생 지체가 낮은 것이 한이던 살모사 어머니의 집으로서는 양반집과 혼사를 지낸다는 것만이 만족스러워 딸을 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어린애가 없었다.
본시 궁씨네가 자손이 바튼 씨족이라 그렇다고도 하였고, 남편의 폐병이 있어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 그들 젊은 부부는 남편의 폐병에 좋다 하여 마을 뒤 과수원으로 옮아 살았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오래간만에 부부 사이의 뜨거운 애무를 치른 그들은 녹아들 듯이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여인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불을 끈 방 안은 캄캄한데 사나이의 가슴이 또 콱콱 젓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 두 번씩 이러믄 어떡카우. 몸을 돌봐야디 ……」
그렇게 걱정은 하면서도 그녀는 사나이의 허리를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나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욕정은 차츰 더 끓어오르는 듯 미친 듯이 여인의 온몸을 짓이겨 왔다. 그렇게 약한 남편의 몸에서 이런 폭포 같은 정열이 어떻게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인도 차츰 불이 타올랐다. 이윽고 사나이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은 황홀한 허탈 상태 속에서도 남편의 건강을 위한 후회로 한숨을 쉬며 머리맡의 성냥갑을 더듬었다.
「불 케디 말라!」
그 소리에 여인은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건 남편의 목소리와는 너무나 다른 굵고 거친 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 하였으나 목이 깍 말라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사나이는 문으로 나가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떨고만 있던 여인은 간신히 성냥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 든 성냥불 밑에 그녀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목에 노끈을 감은 남편이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난 애가 바로 살모사였던 깃이다. 궁씨 문중에서는 그날 밤 이야기를 여인에게서 자세히 들은 후 그 애를 호적에 넣었다. 물론 여인은 그 정체 모를 사나이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인은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고 앉기만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랑인가 원수인가?
그러나 점점 자라는 애에게서는 무어 하나 남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였다. 어린애가 차츰 하나의 개체(個體)로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던, 다섯 여섯 살 무렵부터, 그 애를 바라보는 그녀의 심정이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져 갔다. 남편을 죽인 자의 씨로서의 증오와, 또 하나는 자기의 뱃속에서 자기의 피를 빨고 자랐다는, 그 어쩔 수 없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오는 애정과.
남편이 그 지경을 당하고 난 후, 거의 절대(絶對)되다시피 사그라진 시가에서 과수원을 팔아 받아 가지고, 읍 가까운 어느 언덕 밑 초가를 사 들고 살던 그녀는 문득문득 공포를 느끼곤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깊은 밤에 등잔불 밑에서 잠든 애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그날 밤, 그 사나이의,
「불 케디 말라 !」
하던, 굵은 음성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휩싸여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으레 그녀는,
「보면 알 테디. 그런들 개새끼야 모를라구.」
하고, 중얼거리며 잠든 애의 얼굴을 밀어내듯이 노려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여러 애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매우 섭섭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 애들과 헤어지는 섭섭함보다도, 살모사 한 애와 이제 떨어질 수 있다는 시원함이 더 컸다.
나는 평양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렇게 첫 번 여름 방학에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역 플랫포옴에서 살모사를 보았다. 커다란 빨강 모자를 헐렁하니 쓰고 앞에는 도시락과 보리차 병이 가득히 담긴 목판을 한쪽 어깨에 끈으로 해 멘 그는,
「벤또, 벤또, 오쨔(도시락 차), 오쨔.」
하며, 기차 창문 밑으로 분주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렇게도 미워하던 그가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궁 남이 !」
나는 그를 불렀다. 저만큼 걸어가던 그는 얼른 돌아섰다. 그러나 부른 것이 나라는 걸 알자 그는,
「쳇!」
하고, 다시 돌아서 어른 같은 목소리로 벤또, 벤또, 오쨔, 오쨔, 소리 지르며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그를 잊어 버려 가던 무렵이었다. 나는 그가 광산에서 싸움 끝에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문과 그와는 반대로 그의 어머니는 또 거의 미치도록 기독교에 열심히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들 모자의 소문을 듣던 내 눈앞에는 까만 칠판에 네다리를 짝 벌리고 배를 깔고 붙어 죽은 청개구리와,
「……무서운 일이다!」
하며, 한숨을 쉬던 선생님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그 다음, 소문이 아니고 정말 살모사를 본 것은 해방되던 해 겨울이었다.
공산당들은 5 정보 이상의 토지를 가지고 있던 지주들의 토지를 전부 몰수하고, 그 집에서마저 추방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나의 집에도 읍내의 민청원(民靑員)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낫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그들 민청원을 지휘하고 있는 자가 바로 살모사라는 점이었다. 내가 스물넷 이었으니까 아마 스물 다섯 살이었을 그는, 어디서 얻어 쓴 것인지, 캡의 앞단추를 뜯어서 쓱 뒤로 밀어젖혀 쓰고 나의 집 안뜰 한가운데 있는 우물 턱에 걸터앉아 언젠가 어려서 한 번 본 일이 있다고 기억되는 그 야릇한 웃음을 입 가장자리 잔주름에 띠며 마루 위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길로 나의 집 식구들은 삼팔선을 넘어오고 말았다.
그 후에 나는 남한으로 넘어온 고향 사람들을 통하여 살모사의 소식을 들었다.
그 고향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방이 되자 숨어살던 만주에서 돌아온 살모사가 그때 그렇게 공산당에게 중히 쓰이게 된 이유는 그가 해방 전에 탄광에서 투전 끝에 죽인 사람이 광부가 아니라 사무 직원이었다는 데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착취 분자를 죽였으니 그건 노동자의 영웅이 아니겠는가 하는 논법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 고향 사람은,
「아 그뿐인 줄 아나?」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지주 추방에 열성이던 그는 어떤 날 민청원들을 끌고 기어이 자기의 외할아버지 집엘 갔다.
「네, 이놈! 그런들 네놈이 이 외할아빌 몽둥이로 쫓아내 !」
그의 늙은 외할아버지는 도리깨를 들고 그에게 다려들며,
「이놈! 나는 이 땅들을 땀흘려 일하고 샀다. 이놈! 난 달밤에도 김매서 이 땅을 샀다. 이 날도둑놈들. 이 할애비도 모르는 빨갱이놈아.」
하고. 외손자의 멱살에 매달려 기절을 했다. 그러나 살모사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동무들.」
살모사는 자기의 멱살을 쥔 채 기절한 노인의 손을 떼어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민청원들은 흙발 그대로 방에 들어가 세간들을 마구 밖으로 내동댕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마당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한창 세간들이 굴러 나오는데 그 집 머슴인 최(崔)서방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여보게 남이, 이러지 말게. 그런들 이럴 수야 있나. 내 낯을 봐선들 이래서야 쓰겠나.」
최서방은 살모사 앞으로 다가가며 그렇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뭐라구? 이 머슴 동무가 미쳤나? 여보 동무. 동문 그래 평생을 남의 집에서 이렇게 머슴살이를 하구두 분하디두 않우 ?」
살모사의 말이었다.
「아니래두. 여보게 남이. 날 좀 보이. 날 좀 보라구. 내가 자네 애빌세. 애비야!」
「……?」
살모사는 세모진 눈을 더욱 곤두세웠다.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같이 온 민청원들은 모두 세간을 내던지기에 바빴고, 외갓집 식구들은 저만큼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고 웅성거리고들 있었다.
「이너무 영감이 미쳤나. 정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야. 아니래두. 분명히 네 애빈 나라니까. 그러니까 넌 최가야. 네 어머니한테 가서……」
최서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모사는 최서방의 면상을 주먹으로 쳤다. 아이구 하고 거꾸러지는 최서방의 코에서 금시 뻘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동무들. 이제 그쯤 하구 갑시다.」
살모사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먼저 대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읍으로 돌아오는 길에 살모사는 몹시 불쾌하였다.
그는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자기 아버지가 어떤 날 밤 괴한에게 살해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최서방의 말에 의하면 그가 자기의 아버지노라 하니. 그는 도무지 어떻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서방이 혹 자기 아버지를 죽인 괴한이 아닐까?
아버지의 원수.
아니 그렇지도 않지. 최서방의 말이 사실이라면 죽은 건 아버지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
살모사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그 문제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어쩐지 최(崔)가 자기 성이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가 싫었다.
「미친 영감쟁이.」
살모사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날 그 일은 그것으로 머리에서 떨어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살모사가 외할아버지까지도 상관 않고 당과업(黨課業)에 열성적이었다는 공으로 읍 인민 위원회는 그를 정식 당원으로 가입시켜 주도록 상부에 추천했다.
살모사는 만족하였다. 이제 정식 당원이 되기만 하면 무슨 뚜렷한 자리가 하나 주어질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더욱더 열성을 내어, 꼭 출세를 하고야 말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부에 제출되었던 추천서는 뜻밖의 종이꼬리를 달고 돌아 내려오고 말았다.
출신 성분(出身成分)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런대로 중농 출신이니 어찌어찌 됐다 치더라도 아버지가 소위 양반이란 집안에 태어난 유한 계급이었으니, 좀더 두고 그의 열성도를 시험하라는 것이었다.
인민 위원회 간부에게서 그 사실을 들은 살모사는 정말 실망하였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딴 일이라면 어떤 잔인한 짓이건 다 해낼 열의와 자신이 있는 살모사였으나, 출신 성분만은 그의 힘으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어떤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날 저녁 살모사는 식사를 마치자 예배당으로 가려는 그의 어머니를 붙들고 들었다.
「어머니.」
「…… ?」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외갓집에 있는 최서방 알디요 ?」
「그래서 ?」
「그가 누구디요 ?」
「누구라니?」
「내 아버지라면서요?」
살모사는 거의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들이대었다. 순간 그의 어머니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녀는 한참이나 잠잠하였다. 그녀로서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해 오던 일이었다. 그날 밤에 들은 음성은 겁결에 들은 것이니 그만두고라도, 아들의 모습이 자랄수록 누군가 낯익은 사람을 닮아 간다고 생각하였다. 낯익은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그녀는 아들의 그 매부리코와 유난히 얇은 입술에서 자기 집 머슴을 보았던 것이었다. 더구나 그날 밤 나가면서,
「네가 체네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하던, 그 말로 미루어 그 사나이가 어려서부터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고, 이런 점 저런 점으로 보아 그것은 자기 집 머슴 최서방이었으리라는 것을 거의 단정한 지도 오래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사실화하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들이 그렇게 들이대는 마당에야 굳이 아니라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디도 모른다니요?」
그녀는 그 이상 더 아들과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고 성경책을 집어들며 일어났다.
살모사는 그 달음으로 최서방을 찾아갔다. 그렇게 최서방을 찾아보고 밤 늦게야 집에 돌아온 그는 이미 궁 남이 아니라 최남(崔男)으로 성을 갈고 있었다.
다음날, 머슴 최서방은 읍 인민 위원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25년 전의 살인 강간을 자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가 되기 전에
「궁(弓)동무. 아니 참, 최(崔)동무. 동무는 참 훌륭한 아바질 가젯수다.」
하고, 인민 위원장으로 하여금 살모사의 어깨를 두들기게 하였으며, 며칠 후에 살모사는 당당한 공산당원으로 당원증을 목에 걸고, 민주 청년 동맹 위원장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살모사를 거의 잊어버린 채 지났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6.25 사변이 일어났다.
공산군이 불의에 밀고 내려왔었으나 9월28일에는 다시 서울을 탈환한 국군은 적을 몰고 북한으로 진격하였다.
나는 종군 기자(從軍記者)의 자격으로 국군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갔다. 10 월 중순께 나는 고향 읍엘 갈 수 있었다. 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트럭에서 내렸을 때에 고향 읍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학살된 읍민들의 시체를 끌러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경찰서 뒷마당으로 돌아가 보았다. 온통 울음 바다였다. 마치 타다 남은 장작개비처럼 시꺼멓게 썩은 시체가 주르르 줄을 지어 누워 있고, 그 시체 머리맡과 발끝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는 부녀자들은 반 미쳐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돌아서는 나의 팔꿈치를 툭 지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 이게, 누구야 ! 도깨비 아니야 ?」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역시 틀림없구나. 야 반갑다. 정말.」
오랫동안 굴속에 숨어 있었노라는 그 도깨비란 별명의 옛친구는, 얼굴이 누렇게 부었고 머리카락이 거의 귀를 덮었으며 입고 있는 옥양목 바지저고리에는 여기저기 진흙 물이 들어 있었다.
「데거 봤디 ?」
그는 턱으로 시체를 가리켰다. 나는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고 쌔끼 정말 잡으면 각을 떠서 죽여야 할 텐데 !」
도깨비는 흥분한 어조였다.
「누구 ?」
나는 도깨비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아 고 살모사 말이야 !」
「살모사?」
「그래. 고 살모사너무 새끼 짓 아닌가. 서른 네 명이나 된단 말이야.」
도깨비는 또 한 번 시체를 돌아보며 분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찰서 앞마당으로 돌아 나오며 도깨비에게서 살모사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살모사의 잔인한 짓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국군이 평양을 점령한 다음날이었다. 살모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민청에 비밀 지령이 내렸다. 수감중인 소위 반동 분자들과 그리고 기독교 신자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리고 곧 북쪽으로 후퇴할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입안에서 어금니를 아드득 갈았다.
그는 몇 명의 민청원을 거느리고, 반동 분자들을 수감해 둔 창고로 갔다. 두 사람씩 두 사람씩 전기 줄로 묶어서 창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 길로 그들은 경찰서 뒷마당에 있는 방공호로 끌려갔다. 그렇게 서른 네 명의 남녀가 팔을 뒤로 묶인 채 경찰서 뒷마당으로 들어갈 때였다.
그 소위 반동 분자 대열 속에서
「이봐. 얘, 나 좀 봐.」
하며,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허름한 사나이가, 거기 문 옆에 서 있는 살모사를 자꾸 부르는 것이었다. 최서방이었다.
살모사는 힐끔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싸늘한 표정 그대로 하나하나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쯤 후였다. 햇볕이 쟁쟁 내리쬐는 가을 오후였다. 경찰서 뒤 방공호 속에서는 네 발의 폭음이 들려 왔다.
「이젠 예수쟁이들만 처치하면 되디.」
방공호 속에 네 발의 수류탄을 던져 넣고, 뒤에 둘러서 있던 민청원들을 향하여 돌아서는 살모사의 혼잣말이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도깨비란 친구는 손끝까지 탄 담배를 꼬집어 쥐며 한 번 더 깊이 빨았다.
「그런데 그 최서방은 자기 아버지라던데 어째서 ……」
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도깨비란 친구는 담배 꽁다리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끄면서,
「흥. 애비가 소용이 있나. 공출을 속인 반동 분잔걸…… 하기야 평생을 남의 집 머슴이었으니 아들 덕에 분배받은 주인집 논밭으로 좀 살아 보구 싶었겠지만.」
하고 껄걸 웃는 것이었다.
「그렇군, 살모산 도망쳤군.」
나는 도깨비란 친구의 우묵하니 들어간 두 눈에서 옛 모습을 더듬어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러구 곧 도망친 게 아니야. 그렇지, 그러구 곧 도망친 거군, 결국. 그렇게 도망치던 길에 살모사는 또 사람을 죽였지. 이번엔 오십 명도 더.」
도깨비란 그 친구는 쓱 돌아서며 읍 북쪽에 있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함석으로 지붕을 덮은 예배당 종각이 서있었다.
그렇게 방공호를 폭파시킨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민청원들을 모아 거느리고 읍 북으로 난 큰길로 나갔다.
주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리는 그들 민청원의 신경을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였다. 아니 민청원들 행렬 맨 선두에 따발총을 거꾸로 매고 있던 살모사는 제 편에서 도리어 배신을 당하는 것 같은 그런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한 새끼도 없구나. 그렇다니까, 그 새끼들 다 반동이었던 걸 모르구……)
살모사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읍민들에 대한 강한 분노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누구든 자기 눈에 얼핏 띄기만 하면 그저 단방에 갈겨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읍 북쪽 언덕길 위에까지 올라갔다. 살모사는 걸음을 멈추었다. 대원들도 따라갔다. 살모사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사방은 여전히 괴괴하였다. 어느 집에서 기어 나온 것인지 까만 고양이가 한 마리 살모사의 발부리를 지나, 가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길을 가로질러 갔다.
「분명히 예수쟁이들이 예배당에 모여 있다고 그랬디?」
살모사는 대원들을 향하여, 정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듯이 그렇게 다져 붇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살기 띤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조금 전에 확인한 상황에 비하면 위기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약 10미터쯤 골목길에 들어간 곳에 있는 예배당에는 조금 전까지 5, 60명의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도 고요했던 것이다.
「도와,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
살모사는 따발총을 옆구리로 끌어올려 끼며 골목길을 걸어 들어갔다.
예배당 안에는 과연 교인들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입 속으로 뭐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모사는 열려 있는 예배당 문턱에 왼쪽 발을 하나 올려놓고, 그 무르팍에 따발총을 걸치고, 한 바퀴 예배당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자기의 어머니도 어디 앉아 있으리란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 엎드려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살모사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다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 앞쪽 단 위에 쭈그리고 돌아앉아서 기도를 하던 목사가 일어섰다. 교인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자 그럼, 찬송가 사백 육십 이 장, 다 같이……」
늦은 목사는 말을 뚝 끊쳤다. 거기 문에 버티고 서 있는 살모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의 머리가 목사의 시선을 따라 등 뒤 문께로 일제히 돌아왔다.
아! 누군가 여자의 비명이 날카롭게 예배당 안을 흔들었다. 그것은 살모사의 어머니였다. 머리카락이 희뜩희뜩 센 살모사의 어머니는, 저 앞에, 강대 바로 밑에서부터 앉아 있는 교인들을 헤치며 뒷문께로 허둥허둥 달려나오고 있었다.
「궁 남아! 애야 ! ……하나님이……」
살모사의 어머니가 그렇게 소리치는 바람에 교인들도 와르르 일어섰다. 그렇게 교인들이 모두 일어선 것과 따발총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을 뿜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내가 살모사에 관하여 들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나는 살모사를 종로 네거리에서 분명히 본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람이 두서너 명만 모인 곳이면 반드시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혹 거기 살모사가 끼어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나는 결코 살모사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그들 또 만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자꾸만 그렇게 주변을 살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불안이 거의 병적인 데까지 이르러 버렸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대문 안에 떨어진 조간 신문을 줍다가 나는 흠칫 놀랐다. 꼭 그 신문지 아래 살모사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바로 지금도 그렇다.
이렇게 책을 보고 앉아 있는 내 걸상 밑에서, 대가리가 삼각형인 살모사가 그 바늘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사르르 기어 나와 산뜻한 몸뚱아리로 나의 벗은 발목을 감으며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질 것만 같은 것이다. 아니, 벽에 세워 놓은 책장 밑으로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건축 밑에서도, 차의 커어튼 뒤에서도, 심지어는 천장의 형광등 위에서도 살모사가 기어 나오는 것이다. 이대로는 정말 잠시도 안정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눈을 비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편에서 먼저 살모사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다. 기어이 그를 찾아내어서 그 정체를 밝혀야겠다. 먹살을 쥐고 따져야겠다.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너는 정말 살모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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