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한 늙은 사내를 알고 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루하루를 그 열악한 생의 참호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마치 병든 세계를 치유하듯 더럽혀지고 망가진 구두를 빛나고 온전케 한다. 내가 과음을 한 다음 날이면 구두를 닦는 버릇이 생긴 데에는 이 사람의 소박한 요술을 조용히 감상하기를 즐기게 된 까닭이 크다. 전날 밤 어지러운 술집 골목들을 비틀비틀 누비며 엉망이 돼 버린 구두가 그의 손길에 의해 거듭나는 과정과 그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내 전생의 모든 과오가 청산되는 것만 같은 기분에 젖어드는 것이고, 무엇보다, 크든 작든 근본적으로, 숙달된 장인의 능숙한 기예는 유쾌한 엄숙을 준다. 탕아의 더럽혀지고 망가진 구두를 빛나고 온전케 하는 것을 별 일 아니라며 폄하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 위인이신지는 모르겠으되 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송두리째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소위 ‘구두병원’이라 써 붙여져 있기 마련인 요즘의 구둣방이 몰락하는 직종이 된 지 오래인 것은, 나와 같이 반성과 명상을 목적으로 구두를 맡기러 가는 은밀한 괴짜는 물론이요 평범한 필요에 따라 구두를 닦는 이들이 많이 줄었고, 값싸고 질 좋은 기성품 구두들이 대량 생산되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버리고 새것을 사지 굳이 고쳐 신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홀아비 처지는 과부가 걱정해준다고 했던가. 구두병원 원장님과 문인인 나 사이의 각별한 친분은 우리 둘이 공히 치명적인 사양산업(?)에 종사한다는 공통점에서 기인한 서글프고 착잡한 연대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어느덧 환갑에 가까운 그는 고아로 자라서 올해 전문대학에 들어간 아들과 단 둘이 산다. 얼마 전에는 동네 교회 첨탑에 있던 철제 십자가와 그것을 받치고 있던 구조물이 부서지면서 떨어져 끔찍한 참사가 날 뻔했는데 하필 그때 그가 그 아래를 지나가다가 구사일생으로 피해 타고 있던 자전거만 박살이 난 사건이 있었다. 십자가에 깔려서 죽을 뻔하다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게 차라리 낫지 말이다. 사뭇 극도로 불운하고 추레하다. 내게는 이것이 그와 나 같은 이들의 우울한 상징처럼 여겨졌다.
만물만사의 흥망성쇠란 어찌해 볼 것도 없는 당연한 이치이다. 가령 컴퓨터가 나오면서 타자기와 타자수가 사라지고, 핸드폰이 생기면서 전화교환수가 사라진다. 대형마트들의 혁신적인 유통과정으로 인해 재래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메이지유신 때문에 백주대낮에 칼 찬 사무라이가 거리에서 사라져 검도 도장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이십 년 간처럼 세상 문물의 뿌리가 거의 싹 다 뒤바뀌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누구는 이런 것들을 두고 타락이라고 욕하고 싶겠으나 실상 이러한 것들은 ‘변화’이어서, 변하는 세상 따라 적절히 변화하지 못하면 긴 현실 속에서는 마침 그게 타락일 게다.
이는 남의 흉이 아니라 내 딱한 처지다. 이제는 순수문학을 하는 한국작가라는 존재는 웃기지도 못하는 코미디언에 불과하다. 나로서는 그런 실존적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문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인내와 결기에 못지않게 공부가 요구됐다. 천만다행으로 펜을 놓지 않으며 새로운 꿈을 꾸고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게 상처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득 굉장한 무기력이 찾아오고 그 낙담의 끝은 한 인간을 스스로 죽일 정도로 무섭다.
그러나 그 굉장한 무기력이 찾아왔던 것처럼 문득, 지금으로부터 어언 삼십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스무 살 즈음에 썼던 어떤 시 몇 편을 지금의 이십 대가 읽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는 그야말로 탕아의 더럽혀지고 망가진 구두가 어느 사내의 손길에 의해 빛나고 온전케 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더 놀라게 되는 때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내가 아직도 시라는 것을 쓰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하루의 일을 마친 늙은 구두수선공이 저녁 무렵 자신의 작은 컨테이너 박스, 그 비좁은 생의 참호 속에서 걸어 나와 가방을 둘러멘 채 어딘가에 있을 집으로 돌아가는 그 야윈 등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누군가는 내 어린 시절의 시를 읽어 주고 있고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의 모독 속에서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 도대체 얼마나 큰 판을 벌려야 행복할 것인가? 소원대로 큰 판이 좌지우지되면 행복할 자신이 있는가? 무기력이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작은 ‘신비’를 잃어버렸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무자비하게 변해 가는 세상 속에서 잃은 것은 실용이나 보람이 아니라 바로 이 ‘신비’다. 허황되지 않은 알찬 신비. 실체인 신비. 그것을 과연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단연코 하나이며 그것이 없는 인생은 생기와 빛을 잃어버린 인생이다. 원래 희망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큰 게 아니다. 자꾸 사랑과 희망을 과장 선전하지 말라. 작은 희망과 작은 사랑을 찾는 자가 종국엔 큰 희망과 큰 사랑을 얻는다는 입바른 소리도 말짱 거짓이다. 인생은 원래 허무하고 인생은 작다. 인간도 작다. 작은 것을 작다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각자가 진리를 잃지 않는다. 내가 스무 살에 썼던 시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다만 몇 명이라도 요즘의 스무 살들이 돌려 읽는다는 것, 이것보다 더 신비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비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한 늙은 사내를 알고 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루하루를 그 비좁은 생의 참호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무슨 병든 세계를 치유하듯 더럽혀지고 망가진 구두를 빛나고 온전케 한다. 저녁 무렵 붉게 물드는 그의 야윈 등은 우리의 서글프고 착잡한 연대가 아니다. 나의 작은 신비다.
죽음에 관한 소견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다름이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른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과 죽은 사람의 말이 다름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냐고? 무슨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시나. 기실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말보다는 죽은 사람들의 말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도서관에 한번 가보라. 그 수많은 온갖 책들 가운데 대부분은 고인(故人)이 쓴 것들이 아닌가 말이다. 이쯤 되면 더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문명이라는 것 자체가 가히 죽은 이들이 건설한 은하계라고 할 만한다. 다만 우리는 오늘도 또 다른 은하계를 개척해 가는 새로운 인간이 되고자 노력할 뿐이다. 명심할 바는, 죽어서도 살아 있는 자가 있고 살아 있음에도 죽은 자가 있다는 점일 터이다. 시간이 곧 신이고, 죽음이 없었다면 종교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직접 겪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아버지의 유언일지도 모르는 유언이 바로 그러하다. 그것이 확실히 유언이 아니라 ‘유언일지도 모르는 유언’인 까닭은, 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어릴 적 술에 얼큰하게 취하신 채 딱 한 번 남긴 말이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무지 아리송해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첫째, 절대로 보증을 서지 마라. 둘째, 절대로 의형제를 맺지 마라. 셋째, 절대로 몸에 문신을 새기지 마라. 어떤가. 첫 번째 사항은 경제적으로 망하지 말라는 것, 두 번째 사항은 우정에 있어서 객기 부리지 말라는 것, 세 번째 사항은 부모가 주신 몸 정갈하게 간수하라는 뜻 정도로 받아들이면 대강 무리가 없을 듯싶은데, 하여간 아버지는 생전에 이것 말고는 ‘유언’이라는 단어까지 써 가면서 내게 무언가를 당부한 바가 없으니 더욱 헛갈릴 밖에. 민법학자인 내 아버지는 태권도 7단의 무도인(武道人)이었고, 무엇보다 묘한 괴짜였다. 저 유언일지도 모르는 유언은 받는 이보다는 내려준 이에게 더 어울리는 셈이다.
저 유언일지도 모르는 유언을 이제부터 무조건 유언이라고 쳐도, 내가 요즘 들어 내 아버지의 저 유언을 문득문득 자주 떠올리는 것이 그가 죽음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죽은 이에 대한 어떤 것과 모든 것들을 환기시키고 변화시킨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살아 있는 자들을 훨씬 더 잘 설득한다. 훨씬 더 잘 홀린다.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에게 훨씬 더 관대하다. 훨씬 더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죽음은 힘이 세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살아 있는 이가 죽어서야 죽음일 뿐일까? 죽음은 산 자의 무기(武器)이자 부적(符籍)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우리는 삶에서 못해낼 일이 없다. 그 어떤 적도 멸망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재앙도 씹어 먹어 완전히 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한 뒤에도 당당히 죽을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기가 막힌 무기이자 부적을 공평하게 하나씩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인생은 후진이 없다.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풍랑이 없어도 우리는 배 위에 앉아 서서히 조용히 수평선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 낭떠러지가 있다. 웃자. 번뇌와 억압에 비한다면 외로움이야말로 해맑고 상쾌한 것이다. 나는 내가 소심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사실은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대범함이라는 게, ‘어쩔 수 없었다는 것’과는 한참 다르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비교적 대범한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면 된다. 항상 죽음을 종달새처럼 제 어깨 위에 얹고 있으면 된다. 병으로든 사고로든 ‘일부러’가 아니라 ‘저절로’ 죽을 때까지. 죽음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들고 있어야 훨씬 더 빛난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가지 않자 전 세계적으로 항의가 일었던 1899년생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유전적 질병으로 거의 장님이었는데, 자신의 「1983년 8월 25일」이라는 단편소설에서 바로 그날 자살할 거라고 공언을 했더랬다. 보르헤스가 8월 25일을 고른 것은 그의 생일이 8월 24일이어서 생일보다는 하루를 더 산 다음 죽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살을 하지 않았다. 한 기자가, 왜 자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못 했어. 겁이 나서.
그러고 나서. 보르헤스는 1986년도에 죽었다. 거의 두 달 모자라는 3년 뒤에. 간암으로. 그 두 달 전쯤에는 결혼까지 해놓고.
내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는 판국에, 남의 인생 나는 별로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고. 다만. 인간이란 어차피 가만히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알아서 죽여주게 돼 있는 거다. 그걸 일부러 앞당길 필요는 없다는 얘기. 게다가, 굳이 스스로 죽은 바로 그다음 날,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좋은 구경을 왜 포기하는가? 나는 묘한 괴짜였던 내 아버지의 아들이 맞는가 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 또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자신에게도 엄격하고 타인에게도 엄격하라.”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인간은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자신에게도 관대한 것이 좋다.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해 자신을 망치고 주변을 망치는 게 인생이다. 앞날을 근심하지 마라. 타인을 걱정하지도 마라. 앞날의 근심은 어리석고 타인을 걱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혁명은 인생이라는 혼돈 속에서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기도와 행동이다. 성공하건 성공하지 못하건 간에 늙고 병들고 죽으리라. 그래서 ‘지금’을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는 망상이고 미래는 몽상일 뿐인 것이다. 깨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죄 때문에 신이라는 물음표를 만들고 경배했고, 그 경배 없이는 불안해서 괴로웠다면, 예술은 바로 그 불안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기한이 하루 지난 바나나 한 다발을 그냥 가져시겠냐 그래서 토토랑 나눠 먹으려고 가지고 왔다. 요즘 들어 이런 신비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사실은 어젯밤에도 다른 편의점에서 내가 먹으려고 했던 냉동편육이 기한이 반나절 지나 못 판다고 하여 냉동 함박스테이크를 샀는데, 계산을 할 적에 냉동편육을 그냥 가져가시라고 그러는 거다. 나는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오늘밤 또 이 ‘바나나미라클’‘바나나 미라클’이 일어난 것이고. 요즘은 길을 가면 그렇게 많은 할머니들이 물수건도 주고 녹차도 주면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은 내 편이신 것이다.
다시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묘한 괴짜 아버지의 유언 중에 중요한 것은 대강 해석되는 그 내용들이 아니라 세 가지 사항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절대로’인 듯싶다. 그 ‘절대로’가 아버지가 내게 남기신 유언의 핵심이고, 그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아들아. 이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죽어서도 영원히 너를 사랑할 거야. 세상에 무너지지 마라, 내 아들.
내 아버지가 일생 스스로 강조한 덕목은 ‘인내’와 ‘용기’ 이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이 밤과 새벽 사이 내게 묻는다. 너는 인내와 용기가 한 몸인 자인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가운데는 아무래도 예민한 예술가들이어서 그런지 자살한 이들이 좀 되지만, 내가 그들은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자살했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작가였기 때문이고, 어쩐지 만약 보르헤스가 자살했더라면 나는 보르헤스를 지금처럼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고아가 되었으며 사실상 일가친척조차 하나 없는 완전한 혼자가 되었고, 식구라고는 개 한 마리뿐이다. 아버지의 저 유언이 진짜 유언인지 장난이었는지는 이제 와 중요치 않다. 살아 있는 나는 죽은 자인 그가 오로지 그리운 것이다. 제 아픈 삶을 끝까지 상대하다가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 한 인간의 실존적 무도(武道)가 존경스러운 것이다. 나는 나의 슬픔 앞에 스스로 관대하고 싶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가 나를 사랑했던 마지막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아버지도 없는데,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문신이나 한 번 새겨볼까?
죽음은 삶보다 위대하지 않다. 죽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그의 삶이다.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위대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