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서의 질병이여, 사막과 별들의 바다여
손오공은 내 친구다. 한국 나이로 이제 서른한 살이니, 정확히 젊은 사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손오공’은 손오공 군의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주변사람들이 그를 부를 적에 사용하는 별명도 아니다. 오공은 자신을 누가 손오공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아무도 몰래 나 혼자 속으로만 그를 손오공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지인들 가운데 저팔계도 있고 사오정도 있고 삼장법사도 있는 까닭은 그래서다. 이 작은 글에서 오공 군의 리얼 네임을 밝히지는 않겠다. 세상 모두가 남의 책에 자기 이름이 박히는 것을 무조건 좋아는 ‘관심종자’라는 보장이 없는 법이고, 차라리 안 하고 말지 이런 일을 두고서 당사자에게 일부러 허락을 구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짜 요술쟁이 원숭이 손오공도 아닌 그는 무슨 유명인도 못되며, 그와 내가 함께 알고 지내는 사람 역시 없다. 설마 하는 노파심을 못 이겨 못 박아두는 건데, 성씨에 주목해 내 주변에 손아무개가 있나 수소문하는 위인이 있다면, 타인도 자신처럼 상상력이 빈곤할 수 있으리라는 그 황당한 자만심을 빛의 속도로 불살라버리길 강력히 권고하는 바이다. 그래야 남은 인생 사회생활이 기적같이 편해질 테니 손해날 게 뭐며 안 그럴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하물며 비록 내가 재능과 인기가 미천한 3류 작가일지언정 작가인 게 분명한데, 이런 쪽에서 머리 돌아가는 게 그대 같아서야 되겠느냔 말이지. 무엇보다, 나의 모든 글들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결국 다 내 얘기다. 나를 스쳐간 모든 인생들이 내 인생의 일부분인 것처럼. 그렇지 않은 글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내게 가치가 없는 글은 남에게도 필요치 않다. 이게 내 믿음이다.
진리가 아닐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대체로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내 경험상 그렇고, 요즘의 오공에게도 그러하다. 그는 7년 남짓의 깊은 연애가 부서졌고,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어떤 질병에 걸렸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함께 털어놓은 것은 내 앞에서가 처음이라고 그는 조용히 말하였다. 그의 부모님조차 그가 그녀와 헤어진 사실만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몸이 아픈데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나 싶었지만, 나는 관두듯 놔두었다. 나는 죽음을 모르고 삶은 더 모른다. 내가 나 자신도 모르는데 남의 아픔을 어찌 안다고 감히 뭘 말리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때에 누군가에게는, 이런 묘하고 쓸쓸한 생각이 진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간의 나이를 정신적 실존이 아니라 육체적인 상태로만 감안할 적에, 아직 나는 노인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되 청년은 이미 먼 추억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은 남자건 젊은 여자건 간에 그들의 젊음을 질투한 적이 추호도 없다. 이것은 비관이 아니며 비정상적인 생각은 더 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들은 흘러가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기란 불가능하다.”라고 설교했으나,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고 한들, 여러 끔찍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내 생을 되돌리기가 싫고 그중 특히 청춘의 혜택과 장점 들을 돌려받기 위해 또다시 청춘을 견뎌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다. 누군가는 이런 내게 아직 더 늙어 보지를 않아서 그 따위 소리를 하고 앉아 있다며 핀잔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숙고대로 솔직하건대,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골백번 반복한들 똑같을 것이다. 당장 폭삭 늙은이가 돼 버린다고 하더라도, 노환이 고통스럽고 임박한 죽음이 두렵기는 하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인생이 아무리 후회로 가득 찬 것이라고는 해도, 당연히 내 인생 역시 후회로 가득 찬 것이지만, 내게 인생은 두 번 필요치 않다. 이러한 입장은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담담하게 대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나가 버린 청춘, 나는 있는 대로 어리석었고 있는 대로 상처주고 상처받았고 있는 대로 방황했고 있는 대로 무언가가 되기 위해 치열했으며 결국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내가 되었다. 물론 나의 청춘에도 아름다움은 있었고 좋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지했다. 나는 어두웠고, 내 사랑에게 나는 어둠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러한 내가 바로 내 청춘의 재이다. 재에서는 재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재에서 나는 것은 죽은 불의 냄새인 것이다. 내가 왜 또다시 그 사정없는 불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수도 없지만, 시켜줘도 나는 싫다. 철학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사는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이고 종교란 죽음을 도구로 삼아 생의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고 이념이란 고통과 죄를 감수하고서 분노해 이루려는 것일진대 그 어느 것 하나 나는 서툴지 않은 게 없었다.
그사이, 오공은 많이 겸손해져 있었다. “아직 비극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 그래서 비극을 비극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청춘”이라고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설명했지만, 비극이 시련이 아닌 사람이 남녀노소 인간이라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성자(聖者)가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만화주인공 같은 그의 순수함과 야심이 좋았고 그의 재능과 열정을 사랑했다. 아마도 그래서 그가 나의 손오공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그는 늘 위태로워 보였고, 다분히 이기적이었다. 그가 예의 바르게 행동할수록 또 쿨하게 말할수록 그는 점점 더 정교한 이기주의자가 되어갔다. 그랬던 그가 오늘 겸손해진 것은 잔인한 말이지만, 그의 몸과 마음의 병 때문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병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과정이라 믿고 싶다. 몸이든 마음이든 삶의 부상은 누구나 당한다. 회복하고 재활해, 하나하나 기록은 다시 세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불쌍하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는 병이든 보이지 않는 병이든 병이 있어야 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 수가 없다. 아픈 만큼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이해는 깊고 넓어진다. 아프지 않은 자는, 아파본 적이 없는 자는, 죄의 진실을 모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라나 지금에 이르렀다.
─ 나쁜 마음이 죄를 저지른다.
이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못된 앎이 죄를 저지른다. 작은 죄부터 어마어마한 죄까지 거의 다. 사도 바울이 해석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건’의 의미를 대중적으로, 현세적으로 정리한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 죄인인 너희는 남의 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인간에게는 나의 죄가 있어야 하고 나의 병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어리석음 앞에서, 자신이라는 어둠 앞에서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흔들리는 청년들이 좋다. 그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갓 이십 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백 살을 먹어 버린 것처럼 영혼이 썩어 버린 괴물들을 도처에서 많이 본다. 그들의 삶은 능수능란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나는 사랑으로서의 질병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 밤 나는 그와 어두워진 골목에서 헤어지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가 눈물 비슷한 것을 흘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에게도 나처럼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그의 웃옷 안주머니에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씨앗처럼 작은 여의봉 하나를 몰래 넣어 준 사실 말이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날에 그가 그 여의봉을 커다랗게 만들어 휘두르며 온갖 요괴들을 물리치는 것을, 사막과 별들의 바다를 건너 가치 있는 말씀들을 얻으러 가는 광경을 상상하였다. 나의 모든 글들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결국 다 내 얘기다. 나를 스쳐간 모든 인생들이 내 인생의 일부분인 것처럼. 그렇지 않은 글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대체로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런데 그것들의 껍질 안에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숨어 있다. 이런 묘하고 쓸쓸한 생각은 지나가 버린 내 청춘이 증명한 진실이고,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친구 손오공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장미와 장미 그리고 장미를 위하여
인간은 세상이 묻지 않은 것에는 대답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질문하지 않은 것에 관해 답변하는 인간은 크게 봐서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가 미친 인간이요 다른 하나는 작가이다. 이 둘은 세속적 기준으로 봤을 적에 별로 행복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불행할 공산이 크다. 생물학적으로 청년과 노인 사이에 있는 야릇한 존재가 된 이후로, 가끔 젊은 친구들이 세상의 이것저것들이 혼란스럽다며 찾아온다. 이런 경우 내 주특기인 ‘거절’이 쉽지 않은 까닭은, 작년 한 해만 해도 아직 인생을 살아 보지도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푸르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나는 「젊은 배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벗인 젊은 배우들은 예민하고 우울하고 분노에 차 있지만 자존심이 강해 예의가 바르다. 예의가 바르다는 점 말고는 내 젊은 시절과 사뭇 비슷하여 나는 그들에게서 근친(近親)을 느끼고,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그건 내게 괴로운 일이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누가 불구덩이 속에서 불덩이로 일렁이는 오래전 제 모습을 재회하고 싶겠는가. 전성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청년 예술가의 초상(肖像)이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아니, 자신과 자신의 꿈을 동일하게 만들고 싶고 또 진정한 자신과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느라 방황하는 젊은이란 도무지 안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시인 릴케의 장미’ 같다. 괴로운 일이라고 했지, 괴로운 일‘만’이라고는 안 했다. 진지하고 맑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기쁨이 없다면 그 외의 다른 것들에서 내가 감각하는 아름다움의 실체란 고작 가면(假面)에 불과할 것이다. 장미 같은 그들은 마음이 약하다. 의지박약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모질지 않아 상처받기 쉽다는 뜻이다. 단점만은 아니어서, 약아 빠지고 지독한 젊은이란 꼴 보기 싫다. 썩어가는 꼰대만 음흉하고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 나는 다 내려놓은 사람이다, 라며 말하는 노인이 있다. 80살에 79살까지 사탄처럼 살다가 그런 말하면 뭐하나? 아직도 거짓말 칠 힘이 남아 있는가 보다. 지옥에나 가라). 젊은 늙은이가 있듯 늙은 젊은이가 있다. 나이에는 육체의 나이와 실존의 나이가 따로 있는 셈이다. 내가 관심 있는 청년이란 몸과 영혼이 더불어 젊은 젊은이일 뿐이다. 이집트에서 온 여인에게 장미를 꺾어주고 그 장미가시에 찔린 탓에 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의 꽃.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에는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다. 정작 그러거나 말거나 중요치 않다. 다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작은 가방 하나에 당장 필요한 몇 가지를 대충 집어넣고, 지긋지긋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무의미한 집을 뒤로 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때의 그 몸과 마음이 어쩌면 우리 어른들의 나머지 삶에는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떤 나무는 숲을 거부하고, 어느 별은 별자리에서 이탈한다. 그 어떤 나무와 그 어느 별이 ‘순수한 모순의 꽃’이 된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어쩌면 천국에 있을 수도 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니 절대 악담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하나님이 데려가실 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독교 신앙심이 아주 깊은 큰누나뻘의 한 여인과 알고 지냈었다. 전두환과 이순자의 치세였다. 그 시절 나는 언덕 위에 있는 빨간 벽돌 고등학교에 다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며 남몰래 시를 쓰고 있었다. 드러내지 않는 시니컬함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라 마음이 병든 녀석이었고 이것이 삼십대 중반까지의 나를 래디컬하다 못해 악성 변종 아나키스트이게 하는 밑천이 되었다. 내가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혹한의 겨울날 그녀와 나는 교회 골방 석유난로 앞에 나란히 앉아 불을 쪼이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말들과 말 같은 침묵이 오갔다.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증오를 조금이나마 털어놓았다. 당시의 나로서는 대단한 용기였다. 내 말이 다 끝나고 침묵도 다 끝났을 때,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 사람들이 죄를 너무 많이 짓게 되면, 하나님은 악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로 하여금 그들을 지배하게 하셔. 화를 내서는 안 돼.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해.
다시금 침묵이 시작되었다. 내가 듣기에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이야기였고, 어처구니없는 논리였다. 나는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가. 사실은 모든 과거가 그러하듯, 이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석유난로의 철망이 기억난다.
청춘은 세상과 삶의 모순 속에서 고통 받지만 거기서 무엇으로든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 꽃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꽃이 아니라 저마다 스스로의 가치가 있는 꽃이다. 노인으로 사는 것이 더 힘든지 청년으로 사는 것이 더 힘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사회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젊은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일 정도가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몰두하는 타인에 대한 적개심이 창궐하는 사회. 듣고 싶은 대답을 자기가 미리 정해 놓고 상대에게 던지는 가장 더러운 질문들로 점철된 사회. 옳고 그르고를 떠나 무조건 질기고 뻔뻔하지 않으면 단지 심리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실지로 목숨을 저버리게끔 만들어 버리는 사회. 나아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정의로움으로 포장되는 대중파시즘의 사회.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일반화된 느낌마저 드는 이 언어적 집단 린치와 영혼살해의 요인은 경제적 불평등과 가난이 아니라, 어떤 평범한 사악함이다. 우리는 무지하고, 무자비하고, 무도하고, 야비하다. 취직이 안 돼서 헬조선이 아니라, 여기는 재미 삼아 죽여 놓고 애도하는 것이 무한 반복되는 괴물사회, 장미 같은 그들의 자살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타살이다.
왜일까. 나는 앞으로도 연이어 그렇게 죽어갈 저 마음 약한 젊은이들이 우리 모두가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처럼 여겨져 끔찍하다. 일단 씹으면 제 것이라며 가책 없이 삼켜 버리는 육식동물이 아니라,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간 한 줌의 기억조차도 믿지 못해 자꾸자꾸 되새김질 하는 소심한 초식동물. 왜 그 유순한 초식동물의 각을 뜨고 피를 뿌리며 번제(燔祭)의 제물로 드려 이 교활하고 무정한 육식동물의 죄를 씻어야 하는지 하나님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이다. 그 혹한의 겨울날 교회 골방 붉게 아른거리는 석유난로 앞에서 들었던 그녀의 그 말도 안 되는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좋은 상담자가 아니다. 제대로 살아오지도 못 했을 뿐더러,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혐오한다. 자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세상에서 상처받았으나 그 아픔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에 사람들로부터 숨어 버린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다. 사적인 친분관계로 검사(檢事) 몇을 종종 만나곤 한다. 나는 허구한 날 범죄자만 대하는 검사들이라니 당연히 인간에 대한 환멸이 대단할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막상 별로 그렇지 않았다. 은근히 관찰하기도 하고 직접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정말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생의 대부분에 걸쳐서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체험이 누적되는 사람들에게 무슨 사람에 대한 정나미가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아니었다. 피부 안쪽의 것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봐도 피부로 가려진 해골과 애정을 나누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다면, ‘인간’을 연민하고 옹호하고 사랑해야 마땅하다고들 요구되어지는 ‘시인’인 나는 왜 이토록 ‘인간’을 싫어하는 것일까? 고백하건대, 나는 이미 파괴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 오히려 그런 사람을 자유롭고 강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배짱이 있다. 이것은 믿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둡고 불모함이라고 부르기에는 자칫 경솔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한 분명한 것은, 만일 내가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살인을 저질렀거나 자살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신은 지옥으로도 인간을 구원하신다. 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아니다. 내가 선호하는 묘비명은 이소룡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이런 것이다.
─브루스 리, 절권도의 창시자.
나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커트 보니것. 참전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돼 드레스덴의 한 공장에서 노역 중이던 그는 도살장 지하 생육저장실에 갇혀 있던 덕에 원자폭탄 투하에 비견되는 미군과 영국군의 공습폭격에도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이 드레스덴 대공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고 대재앙적인 폭탄투하로 기념되고 있다. 나치 괴벨스가 연합군의 비도덕성을 선전하는 데에 사용한 것은 물론, 윈스턴 처칠이 부끄러워했을 정도니까. 그러한 며칠이 지나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청년 보니것은 불지옥이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드레스덴 대공습에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미국으로 돌아가 이윽고 유명 작가가 된 그는, 그때로부터 거의 40년이나 흐른 1984년에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실패했다. 하지만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모기에 물려죽었던 황당하지만 엄연한 사실과 같은 격이라고나 해야 할까, 보니것은 2007년 맨해튼 자택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몇 주 뒤 사망했다. 이게 인간이고 이게 인생이다. 드레스덴 대공습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자기 집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죽은 것이다. 명불허전, 괜히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블랙코미디의 대가가 아닌 거다.
‘어른’이라는 게 별게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타인이 자신의 고통처럼 이해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한 사람. 그런 그가 어른이라면 나는 어른이 맞다. 인간이 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짐승이라는 팩트 앞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타인에 대한 어리석은 기대를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대에게마저도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내려놓으라고 담담하게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함이고 누가 사기꾼인가. 나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작가들이 사람으로나 문학으로나 미덥지 않다. 이제껏 내가 환멸하는 인간들 가운데 그들이 가장 개새끼들이었다. ‘인간의 제일 더러운 짓’으로 제 욕심과 욕망을 채웠다. ‘인간의 제일 더러운 짓’이 뭐냐고? ‘사람의 사람에 대한 착한 마음을 악용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완전히 복종하고 싶은 자가 무언가를 지독히 증오하는 법이다. 이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들은 그런 사람들을 제 노예로 만들어 착취당하고 악행하게 한다. 노예가 돼 버린지도 모르는 채 악행하는 건지도 모르도록 거짓 정의로움에 중독시킨 채로. ‘인간에 대한 불신’이 사람을 못되게 만든다는 생각은 모자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은 우리를 차분하게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은 정말로 진실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조건이다. 인간을 신뢰한다고 떠벌리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으면 나쁜 일들을 많이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나쁜 일들을 하지 않고 살다가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작은 가방 하나에 당장 필요한 몇 가지를 대충 집어넣고 지긋지긋한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무의미한 집을 뒤로 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때의 그 몸과 마음이 어쩌면 우리 어른들의 나머지 삶에는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떤 나무는 숲을 거부하고, 어느 별은 별자리에서 이탈하며, 신은 지옥으로도 인간을 구원하시니까. 죽음처럼 절망스러울 적에 나는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들을 ‘즐겨’ 읽는다.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내가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 있던 그들보다 절망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절망과 고난은 굳이 극복하는 게 아니다. 굳이 극복하려다가는 불구덩이 속에서 재가 돼버리고 만다.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절망은 빠져나가고 고난은 견디면 비로소 올바른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고백은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 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여기 ‘삶이라는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죽었고, 또 죽어 가는 내 ‘릴케의 장미 같은’ 젊은 친구들 앞에서 나는 미안할 것까지는 없어도 마음이 좀 불편하다. 대신 나는 나의 순수한 젊은 친구들에게 「젊은 배우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셈치고 이런 이상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한 인간이 온갖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순진하다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순진한 사람은 자신의 깨끗함에 상처받아 죽어 가지만, 순수한 사람의 깨끗한 상처는 그 삶의 빛나는 훈장(勳章)이다. 순수한 사람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순수는 혁명가의 이념이다. 순수한 사람은 자기와의 혁명의 결과다. 나는 그 어떤 부자와 권력자도 부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수한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나는 순수한 사람을 그저 좋아하는 것에 반대한다. 순수한 사람은 참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인간 저마다는 하나의 고유한 외계어 사전이다. 나는 작가란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자가 아니라 타인을 세상에 번역해 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삶을 용서하기 위해서라면 ‘운명’을 믿기보다는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을 세상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예배로 만들면 된다고 믿는다. 어느 누가 불구덩이 속에서 불덩이로 일렁이는 오래전 제 모습을 재회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청년 커트 보니것은 불구덩이 속에서 재가 되지 아니하고 살아나와 그의 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불꽃이 되었다. 불구덩이를 인정하는 이들만이 자신이 견뎌내고 빠져나온 그 불구덩이가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순의 꽃인 불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이 질문하지 않은 것에 관해 답변하느라 세속적 기준으로 봤을 적에는 별로 행복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불행할 공산이 큰 미친 작가인 내가 번역한 당신의 이야기다. 그리고 좋은 상담자가 못돼주어 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