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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세월

by 자한형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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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月 / 유두영

세밑에 의정부 근처 서우랭이라는 마을에 간 일이 있다. 이 마을은 삼십 수년 전에 어떤 연유로 일 년 남짓 머물러 있던 곳이다. 소관사를 다 마치고 나니 문득 그때 저 뒷산 고갯길을 넘어서 삼밭골이라는 처가(妻家)가 있는 마을을 단 한 번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라 장모님을 찾아뵙고 싶었다.

버스로 편안히 갈 수 있으련만, 굳이 이 길을 더듬어 보고 싶은 까닭은 단 한 번 넘은 그 길이 퍽 인상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내 추억의 그 길은, 마치 동화 속의 고개처럼 아름다웠고, 옛이야기의 선경(仙境)을 연상할 만큼 그윽했다.

일종의 향수를 느끼면서 고개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마을을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옛 모습이 아니었다. 울창하던 송림이 다복솔밭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길도 없어졌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리니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다복솔에 덮여 버리기도 하고 가다가는 끊어져 도랑이 되어 있기도 하다. 아마 교통이 편리해지니 넘는 사람이 없어져서 폐로가 된 것 같다.

마루턱에 이르렀다. 그런데 있을 줄로만 알았던 돌무더기 서낭당이 보이지 않는다. 다복솔에 덮여버린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없는 것을 내가 환상으로 그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을에서부터 한두 송이 휘날리기 시작하던 눈발이 마루턱에 올라섰을 때는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진다. 그때에도 눈이 내렸는데, 싸락눈이었던가…….

그때 내리막길인 떡갈나무, 참나무 숲속으로 내려갈 때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른 가랑잎에 싸락눈 떨어지는 바스락 소리를 반주로 삼아 제각기 제 목청을 뽐내면서 지저귀던 멧새들의 노랫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건만, 지금은 그 멧새들도 나무들도 없어졌다.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었다면 이 얼마나 삭막한 고갯길일 뻔했으랴. 이제 이 고갯길은 아름다운 동화 속의 고갯길도, 신선 세계를 연상하던 그런 그윽한 고갯길도 아니다.

발목이 빠질 만큼 쌓이던 눈도 멎는다. 이 길을 걸어서 찾아가던, 그때의 처가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타박타박 눈길을 밟고 걷다가 눈이 쓸려 있는 외딴집 문밖에 이르러 멈추었다. 어느덧 처가 바깥마당에 이른 것이다. 그 때의 처가는 대농가의 모습을 갖춘 촌가였는데, 오늘의 처가는 반 양식이라고나 할까, 국적 불명의 건물로 바뀌었다.

헛기침을 하면서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는 안방 뙤창 미닫이의 쪽 유리로 내다보던, 오십 대의 장모님이 허둥지둥 반기면서 뛰어나와짚신을 거꾸로 끄셨는지는 기억에 없지만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왔느냐면서 백년지객(百年之客)인 사위를 맞아들이셨는데, 오늘은 역시 오십 대인 홀로 된 손아래 처남댁이 나와서 정중하게 맞아들인다.

그때는 장모님이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청동화로를 들여놓고, 내 부모인 사돈의 안부서부터 당신의 딸인 나의 아내, 외손자인 내 아이들의 안부까지 자상하게 묻고 나서는 우선 몸을 녹이라면서 밖으로 나가셨다. 그런데 오늘은 처남댁이 다락에서 석유난로를 꺼내 놓으면서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구순의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라야 장모님이 물으시는 몇 마디 말에 대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거나 좌우로 가로젓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은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싸우듯이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하고, 그것도 대개의 경우는 동문서답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참 만에 장모님이 또 묻는다. “자네 새해 되면 서른여섯 되지?”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빙긋이 웃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손가락을 펴 보였다. 이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저 할머니가 그때 사위를 그토록 반기고 그처럼 자상하던 오십 대의 장모님이었는데, 오늘의 저 모습은 마치 등걸만 남은 고목을 연상하게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새삼 실감한다. 그때는 내가 불을 쬐고 있는 동안 저분이 나가신 잠시 후에 깨액 깨액하는, 이 집 씨암탉의 비명이 들리고, 이어 부엌문을 안으로 걸고 술 거르는 소리가 들리다가, 한참 만에 소반을 들고 들어오셨다. 소반 위에는, 큰 뚝배기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삶은 통닭이 올려 있고, 옆에는 반병 들이에 농주가 그들먹한 쪽박이 떠 있었다. 장모님은 쪽박으로 술을 떠 잔에 부어 권하면서 닭의 다리를 뜯어 입에 물려주셨건만…….

오늘은 처남댁이 나간 뒤, 이윽고 주안상이 들어왔는데, 상 위에는 따끈하게 데운 청주가 담긴 주전자와 맛깔스러워 보이는 찌개 냄비 하나가 조촐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처남댁은 변변치 않지만 들라고 권한다.

그때는 언 몸이 풀리면서 농주 몇 잔에 노곤해져서 그대로 아랫목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베개가 베어져 있고 이불이 덮여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랫목은 구순의 장모님이 차지하고 계시기도 하려니와, 촌수로 따지면 아주 가까운 사이면서도 가장 거북스런 처남댁이 조심조심 드나드니 누울 수가 없었다. 난로 곁에 점잖게 도사리고 앉아서 담배 몇 대를 피우고는 그만 일어서고 말았다.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 큰길까지 나오면서 그동안 모든 것이 변했구나 하는 허무감에 잠겨 있었다. 십년일석(十年一昔)이라고 하는데, 삼석(三昔)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것이 오히려 자연의 추세가 아닐까?

그 때 오십이던 장모님은 오늘 구순 노령으로 아랫목을 차지하여 자리보전 하시고, 그때 새색시이던 처남댁이 오늘은 오십 대의 초로(初老)로서 이 집안의 안어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도 차지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던 이 집안의 백년지객의 위치는 처남댁의 사위에게로 그 배턴이 넘어간 지 오래다.

나는 아직 이 집안의 귀한손님의 자격으로, 뒷전에 물러앉은 자신의 처지를 새삼 깨닫고는 마음이 허전했다.

버스에 앉아서도 오직 금석지감(今昔之感)에 잠겨 차창 밖의 저녁놀을 망연히 바라보노라니, 저 놀이 마치 인생의 황혼을 암시하는 것 같아 암연(黯然)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유두영(1920~1999) 서울 출신. 수필가.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 1982년 한국수필 등단. ‘수필문우회활동. 부드러운 문장으로 편안한 정감을 드러내는 수필을 많이 씀. 세월, 그 한 마디, 되돌아보기, 이화에 월백하고등 수필집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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