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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이 시대의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소설 낙하하는 저녁을 읽고

by 자한형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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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소설 낙하하는 저녁을 읽고 -전홍범

사랑이란 무엇인가. 왜 첫사랑은 마지막 사랑이 되기 어려운 것일까. 격렬히 사랑하던 연인이나 부부가 어떻게 그토록 쉽사리 헤어져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하며 살게 되는 것일까. 한때의 도저한 사랑보다 더 큰 증오를 간직한 채.

여류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평단이 극찬하는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1964)낙하하는 저녁이라는 다분히 통속적인 소설에서 풀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서로 사랑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8년간이나 동거한 남녀 다케오와 리카가 어느 날 헤어진다. 남녀 간의 이별이 대부분 그렇듯 원인은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남녀가 헤어진 후 다시 결합하기까지 15개월간의 기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분히 기술한다. 그 기간 동안 두 개의 축이 교향악의 주제와 부제처럼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며 뒤엉킨다. 하나는 다케오와 리카의 관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케오와 리카를 이별하게 만든 빌미가 된 하나코와 리카의 관계이다. 이들 두 개의 축이 서로 엉키고 꼬이면서 토해내는 하모니는 놀랍도록 매혹적이다.

소설은 이별의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격렬한 감정의 대립과 극도의 긴장이 펼쳐져야 제격일 정황이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싱겁고 밍밍하기 짝이 없다.

나 이사할까봐, 이사는 나 혼자서…….”

심드렁한 남자의 말에 알았어.” 라는 여자의 말로 이별은 가볍게 결정된다. 호소도 애원도 눈물도 없다. 남자는 여행을 떠나듯 집을 떠나며 여자에게 놀러와.” 라는 말을 남기고, 여자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아니 묵묵부답으로 긍정을 표한 것인지 여자는 자주 남자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고 때로 카페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별했다고도 할 수 없고 이별 안 했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관계다.

남자가 떠난 뒤 여자는 욕실에서눈물을 훌쩍였지만 혼자만의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쉽게 단행한 이별과 달리 여자의 속마음은 남자를 잊지 못한다.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는 주위의 온갖 사물에서 남자의 환영과 남자와 함께 한 추억을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자는 남자에게 애원하지도 않고,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도 않는다. 자존심 때문일까? 독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간 작가는 교묘한 술수로 독자들의 눈앞에 여자가 애써 감추고 있는 속마음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그대로 놓아두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랑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리듯 작가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속마음 깊숙이 빠져든다.

혼자 남은 리카의 집에 하나코가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미묘하게 전개된다. 하나코는 무작정 리카의 집에 찾아와 둘이 살면 집세를 반씩 분담하니 경제적이잖아.”라고 하면서 리카의 집에 눌러 앉는다. 리카는 하나코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이들의 관계는 다케오가 가끔 리카의 집에 들러 하나코와 함께 셋이 식사를 하기도 하는 비현실적이며 모호한 상태로 진입한다.

이야기가 이쯤 흐르면 예리한 독자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 그렇고 그런 이야기구나. 결국 한 남자가 두 여자와 함께 살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노라 하는 지극히 통속적인 결말이 나겠구나. 작가는 아마도 새로운 사랑의 방법과 가족형태를 제시하려는 모양이구나.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는 가라. 이제는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적 다자연애)의 시대다.”

일본의 신세대 문학을 주도한다는 에쿠니 가오리라면 당연히 이렇게 외치고 싶겠지.

이쯤 되면 전통 가치관에 충실한 50대 이상의 보수성향의 독자들은 행태가 지극히 비윤리적이라며 눈살을 찌푸릴 것이며, 20대와 30대의 젊은 독자들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식상한 주제라며 짜증을 내며 책장을 덮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다케오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지만 리카는 다케오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대신 리카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것 같지 않던 하나코와 차츰 공통의 관심사를 넓히며 우정을 만들어 간다. 그러는 사이 다케오에 대한 하나코의 사랑은 마른 풀처럼 시들어버리고 만다. 남성편력이 화려한 하나코에게 다케오는 애초부터 그저 호감이 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다케오는 하나코의 마음을 갖지 못해 번민하고 그러한 다케오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 리카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리카는 하나코에게 다케오를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자신이 다케오에게 다가가 사랑을 다시 회복하자고 설득할 수도 없다. 사랑이란 결코 강요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코와의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한 우정도 리카를 망설이게 만든다.

엉거주춤한 관계는 바람둥이 하나코가 한 때의 연인인 나카지마의 별장에서 손목의 동맥을 잘라 자살하면서 급격히 종결된다.

하나코의 장례를 마치고 몇 달이 지나 하나코에 대한 그리움도 서서히 흐릿한 추억으로 바뀌어 가는 무렵 리카는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다케오의 집을 급습한다. 그리고는 마치 다케오를 겁탈하듯 끌어안고 격렬한 정사를 벌인다.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 리카는 다케오에게 말한다.

이사할까 봐.”

15개월 전 다케오가 리카에게 말했던 것처럼 심드렁하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여자가 15개월 전 알았어.”하고 무덤덤하게 대답한 것처럼 남자도 여자에게 알았어.”하고 간단히 대답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이들 남녀가 재결합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야기 흐름상 하나코의 자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하나코가 왜 자살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설명이 없다. 갑자기 발밑에서 쾅 하고 지뢰가 터진 것처럼 갑작스레 하나코의 죽음이 등장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하나코가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것을 추리하는 기쁨을 선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삶이란 것이 결코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는 의외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낙하하는 저녁이라는 소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다.

사랑이란 가볍게 버리거나 깨뜨리기에는 너무 고귀한 선물이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희망과도 같은 멋진 선물이다. 너무 고귀하고 멋진 그 선물은 조심스레 갈고 닦지 않으면 금세 벌레가 파먹거나 상해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정성껏 갈고 닦아도 시련은 닥쳐오는 법. 그러나 결코 낙담하지 마라. 한번 시작한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마라. 묵묵히 참고 견디며 극복하라. 사랑이 한때 곁을 떠났다고 해도 결코 분노하거나 집착하지 마라.

에쿠리 가오리는 전통의 가치관은 붕괴되고 있지만 그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가치관이 만들어지지 않아 방황하는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전통적인 가치관뿐이다 라고 외친다.

에쿠니 가오리가 여류 무라카미 하루키로 칭송 받는 이 시대 최고의 대중작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결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아닐까. 이런 작가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한 일본 사회는 희망이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오해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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