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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집단 규율과 절대 권력의 횡포

by 자한형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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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명 : "모리 오가이"의 중편소설 아베 일족

제 목 : 집단 규율과 절대 권력의 횡포

간에이(寬永) 18(서기 1641) , 히고(備後)의 초대 번주 녹봉 54만석의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토시(細川忠利)가 병사하자 사십구재를 지내기까지 중음(中陰)기간 동안 열여덟 명의 가신이 할복하여 순사한다. 중음이란 망자가 다음 생을 기다리는 사십구일을 말하며, 순사자는 이 기간 중에 자신의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 주군의 죽음에 뒤따르는 순사는 우리에게 무척 낯선 일이지만 일본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흔히 벌어지던 일로 하나의 관례일 뿐 크게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모리 오가이 (森鷗外, 1862-1922)는 일본이 근대화 작업을 마무리한 후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웃나라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대륙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던 1913년 이미 한물 가 낡은 봉건시대의 무사도 정신을 전면으로 끌어내 의지라는 제목의 역사 소설집을 발표한다.아베 일족은 이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 중의 하나로 실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아베차사담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모리 오가이가 이 작품을 쓴 계기는 근대 일본 건설의 구심점인 메이지 천황 사망 후 이어진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 순사 사건이다.

노기 마레스케는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군인이다. 러일전쟁에서 제3군 사령관으로 최대 격전지 여순 요새 공략전을 지휘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러시아를 물리치고 일본의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황족 교육을 담당하는 학습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후에 쇼와천황으로 즉위한 황태자 히로히토의 교육을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메이지 천황의 장례식 날 자택에서 할복자살했다.

천황의 죽음을 뒤따른 순사는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국민들은 슬퍼하며 길에서 통곡하기도 했다. 사망 직후 군신으로 추앙하는 신사가 각지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시대착오적인 죽음이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 유학까지 다녀와 서양의 근대 합리주의 세례를 받은 작가 모리 오가이에게 노기 마레스케의 순사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일본 봉건시대 사무라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할복은 일종의 명예로운 죽음으로 까다로운 형식과 규범에 따른다. 공개된 장소에서 엄격하고 장중하게 진행된다.

사무라이가 평생 성심껏 주군을 섬겼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함부로 순사할 수는 없다. 주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허락 없이 순사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헛된 죽음으로 매도된다. 죽음의 결정권까지도 주군이 갖고 있는 횡포한 절대 권력의 세계이다. 군신 간에 묵계가 맺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져 인정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는 드문 일이었다. 인정된다고 해도 허락 없는 순사는 허락 받은 순사와 격이 다르므로 그에 상응하는 대우의 차별은 불가피해진다.

주군의 죽음이 임박하면 가신들은 병문안 자리에서 순사의 결의를 밝히고 허락을 받는다. 평생 자신을 도와 준 가신들이 순사를 허락해 주기를 간청하자 호소카와 다다토시는 고민한다. 죽기보다는 살아남아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 미쓰히사를 돕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만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관례 때문이었다.

당연히 순사해야 마땅하나 순사하지 않은 가신들에 대해서는 번 안팎에서 격렬한 비난이 쏟아진다. 죽어야 할 때 죽지 않은 자라고, 은혜를 모르는 비겁한 자라고, 그런 자를 주군의 후계자가 중용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이것은 참으로 모욕적인 말로 살아남은 가신들을 분하고 억울하게 하는 말이었다.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일이므로 가신들은 되풀이하여 순사를 허락해주기를 요청하고 결국 주군은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호소카와 다다토시는 열여덟 명의 가신들에게 순사를 허락한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다다토시의 측근인 아베 야이치에몬 미치노부란 무사가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겠노라. 하지만 살아남아 미쓰히사를 돌보라.”

아무리 간청을 해도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다다토시가 순사를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야이치에몬을 특별히 아껴서가 아니었다. 야이치에몬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매사 실수가 없다. 성실하고 완벽했다. 이러한 점이 공연히 다다토시의 심기를 언짢게 했다. 다다토시는 야이치에몬을 볼 때마다 왠지 이 사내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었다. 절대 권력의 횡포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야이치에몬은 주군에게 할 일을 사전에 보고하지 않고 처리하곤 했다. 일 처리가 정확했으므로 비난할 여지는 없었다. 다다토시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보려 무진 애를 썼지만 달이 흐르고 해가 지나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야이치에몬이 자신의 의지로 일을 척척 처리하는 것이 미워지기도 했다. 이러한 감정의 갈등은 주군이 최고 권력을 갖고 있는 봉건제 주종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주군의 사소한 기분 하나로 한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했다.

주군의 사십구재가 지나자 순사하지 않은 야이치에몬을 비난하는 눈빛이 사방에서 번득거렸다.

야이치에몬은 주군이 순사를 허락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허락이 없다 하더라도 주군의 뒤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험담까지 귀에 들어왔다.

이 야이치에몬이라는 사람이 목숨이나 아까워하는 사내로 보인단 말이지? 좋다. 그렇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

야이치에몬은 할복하여 자신의 결의를 표했다.

주군의 허락을 받지 못한 순사였으므로 야이치에몬의 가족은 순사자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주군 미쓰히사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하야시 게키라는 가신이 주군의 허락을 받은 순사자와 차별을 두어야 하므로 야이치에몬의 지위를 맏아들 아베 곤베에에게 상속할 수 없다고 주장한 때문이다. 야이치에몬의 녹봉은 다섯 명의 아들들에게 분할되었다. 일족 전체의 녹봉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아베 가문을 배려한 미쓰히사의 조치였지만, 아베 일족의 본가가 소멸함에 따라 아베가의 지위는 예전보다 크게 낮아졌다.

다다토시 1주기 제삿날 곤베에는 분향을 마치고 단도를 꺼내 자신의 상투를 잘라 다다토시의 위패 앞에 바쳤다. 순사자 가족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 즉 아버지의 지위를 상속받지 못한데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무사의 신분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주군 미쓰히사는 감정을 누르거나 사심을 억제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곤베에는 곧 참수된다.

할복 지시가 있었다면 아베 가족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명예로운 죽음이기 때문이다. 곤베에가 격렬하게 불만을 드러낸 것도 내심 할복 기회를 갖고 가문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은혜를 베풀어 불만에 대처하는 관대한 마음이 부족한 미쓰히사는 도적 무리를 처형하듯 백주에 곤베에의 목을 베었다. 아베 일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참수당한 가족을 둔 집안이 무슨 면목으로 동료들과 어울려 주군께 봉사하겠는가. 남은 일족도 평온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토벌될 것이다. 모두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 아베 일족은 곤베에의 저택에서 저항하다 죽기로 결정한다.

결전을 앞두고 아베 일족은 저택 내부를 구석구석 청소하고 보기 흉한 물건은 모두 태웠다. 마지막 주연을 연 후 노인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자결했다. 이들의 시신은 정원에 큰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젊은이들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고 격렬히 저항하다 모두 다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작가는 이 같은 가신들의 순사 관례를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무라이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짙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노리는 것은 바로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야이치에몬은 관례대로 주군을 따라 죽는 일을 택하고 싶었음에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고, 주군의 명령대로 살아남아 새 주군을 모시며 살아가려 힘썼지만 이 또한 주변사람들의 비난으로 견뎌낼 수 없어 결국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할복은 일반적으로 자의로 결행하는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간주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명예와는 거리가 먼 죽음이었다. 관례대로 순사를 하는 것은 절대 권력의 규범이라는 압력에 따른 것일 뿐이고 주변사람들의 비난에 의한 할복은 사회분위기에 저항할 수 없어서 행해지는 어쩔 수 없는 행동일 뿐이다.

모리 오가이가 이 작품을 쓴 의도는 노기 마레스케 부부의 순사를 미화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이러한 순사는 전근대적 행위라고 일침을 가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절대 권력을 따라 순사해야 한다는 규범에 따르는 노기 장군을 보며, 집단의 규율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비극을 이 작품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이나 권력의 과오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을 둘러싼 얘기는 결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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