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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노을

그리운 이를 그리며

by 자한형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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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를 그리며

 

화창한 봄날이 주는 혜택은 참으로 많다. 자연이 인간(人間)에게 주는 것처럼 좋은 상사와의 만남 또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과 같이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에서 감사해하고 흐뭇해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보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분을 만나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은 최근 4년전부터다. 이 기간 동안 어렵고 힘들어 했던 날도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할 수 있었고,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부분들도 그분의 리더십으로 상쇄되었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언제나 엔도르핀이 충만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은 오랜 공덕이 쌓이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또한 질긴 인연의 끈을 반겨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도 마음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보면 어떤 숙명의 필연성을 느끼게 한다. 처음 부임해 오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일주일을 직장 근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병상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 기간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순직하면서 근무지에서 노제를 지내는 일도 있었다. 그 직원은 교육원에서만 20여 년을 근무한 성실한 직원이었다. 당시 그런 매우 급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오차나 흔들림 없이 모든 일을 순조롭게 처리했다. 유족에게도 생계에 어려움이 없도록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해주었으며,노제에서는 참여한 모든 조문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명조사를 남기기도 했다. 소신과 철학을 갖고 조직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어 나갔으며 임무가 완료된 이후 논공행상에서도 공평무사하게 처리했다. 예를들면 해외연수를 다녀온 직원은 표창에서 배제했고 표창을 받은 직원은 해외연수에서 제외했다. 이중으로 수혜를 입게 되면 그렇지 못한 직원들과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고생스럽고 어려운일이 마무리한 후에는 반드시 그것에 합당한 보상과 격려가 이어졌다. 처음 부임하고 이완되어 있던 조직의 분위기는 빠른 시일 내에 쇄신이 이루어졌으며, 항상 제일 먼저 선봉에 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부직원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서라면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외부인을 대하면서도 최대한 배려하고 성의를 다했다. 그러면서 조직에 신바람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교육생을 대하면서도 진심으로 대했으며, 부하와 상사가 잘 융화되도록 지도해 기대치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 낸 최우량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했다. 흔히 장군을 분류할 때 용장, 지장, 덕장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그런 개념으로 구분한다면 아마도 덕장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기품과 위엄을 갖추었고, 조직의 목표 달성에 온 힘을 다했다. 같이 근무하는 것이 큰 기쁨이고 복으로 느낄 수 있게 조직을 지휘해 나갔다. 백화난만한 계절에 온몸을 휘감아 스며드는 꽃향기처럼 따뜻한 가슴에 넓은 포용력으로 부하직원들을 감동하게 했고, 흔쾌히 뒤따르게 해주었던 그분을 회상하다 보니 그 동안 베푼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다. 그 분과의 인연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입사전 친절봉사 점검을 일주일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을 처음으로 만났다.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모습을 항상 옆에서 지켜보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인연이 되어 직속 상사로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온화한 성품에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안정시켜놓는가 하면 직원들 간의 화합과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 활기차고 신바람나는 조직으로탈바꿈시켜 놓기도했다. 어떤 때에는 내부직원의 결혼식 주례를 손수 서주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 있었다. 그는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상업학교를 나온 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는 직장 내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업무에도 정통할 수 있었고 제반업무도 빠르게 섭렵해나갔다. 자제로는 일남일녀를 두었는데 모두들 훌륭하게 성장해 이제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의 일화를 얘기하다보면 끝이 없겠지만 하나만 들어보자. 어느 날 출장을 갔는데 점검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사무소장이 일금으로 얼마를 보

내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그는 곧바로 되돌려주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은 얼마나 청렴(淸廉)하고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고향 쪽에서는 별로 근무하지 못했고, 강원도와 천안에서 잠깐씩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중앙본부에서 근무했다. 주요 보직으로 직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본부장을 거쳐 상무를 거쳐 지금은 자회사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술을 잘 하지 못해 여러 가지로 애로를 겪는 것이다. 어찌보면 약점이라 할 수도 있다. 일로 바쁜 와중에도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부장시절에는 대학원 과정을 이수해 학위를 받았고, 본부장 시절에는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며 지방지에 고정칼럼까지 쓰기도 했다. 더욱 특기할 만한 것은 자비로 국내 유수한 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이수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경비 일체를 부담할 때에도 다들 꺼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자비로 그 과정을 수학했다는 것은 그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강조하며 인용하는 말 중에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私事佛供)’이라는 말이 있다.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대하라. 세상 사람 모두를 부처님처럼 모시다 보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어 인간 관계에서 초래되는 불편함이 없어지게 된다.”라는 의미다. 또한, 비단옷 입고 밤길을 가지 말라는 얘기도 자주하곤 했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은 비단옷(緋緞-)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으로 아무 보람없는 행동(行動)을 비유(比喩·譬喩)하며 이르는 말이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나 행동 중의 하나로 금의야행은 결코 현명한 사람의 처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는 충분히 홍보하고, 그 내용에 대해 피력하며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면에서 오늘날은 자기홍보의 시대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는 스스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신조였다. 다음으로 강조하던 얘기가 꿩은 모이를 먹을 때 아홉 번을 생각하고 모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살펴가면서 처신하고 공과 사를 정확히 구분하라는 말이었다. 또한 불편한 관계로 말미암은 부적절한 행동을 삼가라는 지침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기 절제력을 가지고 윗사람을 충실히 보필했으며 부하직원을 대하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훌륭한 상사의 표상이었다. 내 가슴에 항상 그의 처세술과 됨됨이를 담아내기 위해 귀 기울이곤 했다. 지금그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따뜻한 꽃향기 같은 그를 그리며, 조직의 보석 같은 미래를 꿈꾸며 가끔 그가 즐겨 애송했던 시도 한 편 읊조려 본다. 이것은 백범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구기도 하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걸을지라도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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