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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노을

완벽주의자와 처세

by 자한형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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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와 처세

 

온 세상이 꽃으로 가득한 잔인한 4월이다.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처음 묘사한 사람은 T.S. 엘리엇이라는 유명한 시인이다. 봄을 찬미하는 노래에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고 읊조렸다. 어제는 종로5가에 가 난을 좀 사서 심었다. 온 집안이 꽃향기로 가득하다. 오래전 우연히 다큐스페셜에서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집중조명하는 걸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완벽주의 배우로 연기 하나만은 알아주는 배우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역을 맡았던 주인공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강마에였고, 하얀거탑에서는 장준혁이었다. 그가 무명 시절 겪었던 심적 고통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선 과정 등을 인터뷰와 자료화면으로 구성해 보여줬다. 김명민은 박진표 감독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를 촬영하고 있었다. 운동신경 세포가 점차 파괴되어 호흡에 필요한 장기까지 마비되는 희귀난치병 루게릭병을 앓는 종우 역을 맡았다. 그날 방송에서 김명민은 루게릭 환자로 완벽하게 변신한 모습과 수개월 간의 치열한 준비 과정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촬영 수개월 전부터 루게릭병에 대한 자료조사는 물론 실제 루게릭 환자들과 주치의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철두철미한 준비를 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목발을 짚는 등의 연기는 단순한 흉내 내기가 아니라 병의 진행 단계별로 손동작, 발동작, 표정까지 분석한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몸과 생활 습관을 실제 루게릭 환자들의 병 진행 과정에 맞춰 재현해냈다. 특히 김명민은 체중을 57kg까지 감량해 저혈당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영화가 후반부 촬영을 앞두고 계속해서 다이어트 의지를 표명해 제작진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제작진의 만류와 팬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캐릭터에 대한 완벽함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마에란 역할을 위해 수개월 동안 지휘 연습을 감행하는 등 철저하게 배역을 준비하는 완벽주의를 보였던 것이다. MBC스페셜 제작진은 작년 1월 말부터 3월 말까지 취재하고 지켜본 결과 김명민은 모든 일상이 배우라는 기준에 맞춰 돌아가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방송이 나간 직후, 해당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김명민은 진정한 명품 배우다.”,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다 이유가있다.”,“정말 감명 깊었다.”라는 찬사로 가득하다. 한편, ‘내사랑 내곁에는 루게릭병과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와 그를 지켜보는 지수 (하지원 분)의 휴먼 드라마이다. 신문의 인용문마다 참 대단한 직업의식을 가진 인물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몸무게의 감량이라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절제가 첫째이고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하얀거탑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그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식사량을 줄여나갔다고도 했다.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실재 그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숙소에서 연구와 연습을 하고 작품 속의 인물로 완전히 변환한다는 것이야말로 너무도 힘든 일일텐데 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너끈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를 참으로 철두철미하게 살아가는 인물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인생을 잘 살아가는 기본원리가 아닐까. 아름답고 멋진 삶을 보는 것 같았다.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에 매진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내 삶의 철칙 중 하나가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조직의 목표와 목적을 충분히 감안한 행동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명민이란 배우는 내가 세운 삶의 철칙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란 정상에 우뚝선 김연아, 박태환, 신지애 등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에서 닮아 있다. 어린 시절에 신지애는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그 한을 안고 어머니의 생명과 바꾼 돈으로 골프 연습을 하고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한없이 약하디 약한 어린 나이에 굳건한 정신력으로 그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박세리 키즈로 불리는 그녀는 88년생이다. 몸매가 예쁘지 않아 지방흡입술도 하고 싶다는 솔직함도 표현하는 신세대였다. 김연아는 세계대회에서 꿈의 점수 200점을 넘었다. 모든 관중이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열화와 같은 성원과 기립박수를 보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세계를 제패하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희망과 큰 기쁨을 선사했다. 대한민국 야구는 또 어떤가. 이 조그만 나라에서 국제적인 규모의 메이저리거를 다 물리치고 국가의 위상을 더 높이지 않았는가. 비록 일본 야구의 영웅 이치로에게 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말 세기적인 명승부를 펼쳤다.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곳에서만이 그 결실이 보장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항우와 유방에 관한 책을 보았다. 혈기 방장한 항우에게 항상 패배를 당하고 굴욕만 맛보았던 유방이 어떻게 천하를 손에 넣었는가하는 궁금증을 가지면서 보았는데 참 대비되는 두 영웅이었다. 역발산기개세로 욱일승천하는 패기와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항우에 비해 항상 뒤처지면서도 절묘한 인재등용술을 가졌고 덕을 베풀 줄 알았던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게 되는 세상이치에 다시 한번 하늘의 뜻을 새겨보았다. 그와 더불어 천하를 손에 넣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신이라는 천하의 명장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소위 말하는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된 불운한 사나이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컸다. 장자방이라는 참모 내지는 책사라는 사람의 역할과 헌신도 대단한 볼거리였다.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로 처세라는 게 있다. 어떻게 하면 적절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항상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위와 아래에 공명정대하게 하면 될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막상 제대로 된 처신과 행동을 취할 상황에 처하면 처세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난감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유방의 천하 제패에 일등공신이었던 자방의 처세는 후세에 칭송을 받지만, 한신의 처세는 손가락질 받은 것을 기억하면 얼마나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은가를 쉬이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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