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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노을

오온성고와 적선여경

by 자한형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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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성고와 적선여경

 

무릇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삶을 누리고 늙어가고 병들어 죽는 가운데 가장 크게 괴롭히는 고통이 오온성고(五蘊盛苦)라고 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간의 4가지 고통이고, 이에 4가지 고통이 더해지면 팔고(八苦)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과 원한을 가진 사람과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고통, 그리고 갖고 싶은 걸 모두 얻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까지 해서 일곱 가지에 마지막으로는 오온성고가 있다. 오온(五蘊)은 곧 오음(五陰)을 뜻하고,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도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 , , , 몸의 다섯 가지를 일컫는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로도 통한다. 색은 몸을, 수상행식은 정신으로 나누어진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수는 느낌, 상은 인식, 분별, 판단을 의미하고 행은 의지, 식은 의식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정신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한 예로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몸의 일부인 눈으로 딸기를 본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아 저건 딸기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색은 물질요소로서의 육체를 가리키며, 둘째는 감정·감각과 같은 고통·쾌락의 감수(感受)작용을 가르킨다. 세 번째는 상이다. ‘고놈 딸기가 참 맛있겠네.’라고 판단하게 된다. 네 번째는그런 느낌, 생각이 작동해서 딸기를 먹는 상상을 하게되고 입에 침이 스르르 고이게 된다. 다섯 번째는 행이다. ‘딸기를 사 먹어야겠다라고 결정을 내리고 딸기를 사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반응하는 게 인간이라고 한다. 생각과 행동의 작동원리다. ‘이라는 것은 행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이고, 그 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네 번째단계 인수에서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한다. 침을 고이지 않게 하고 화를 내지 않게 하면 분쟁이 없고, 업도 쌓지 않게 되며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결국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작동하는 중간에 반응을 멈춰버린다는 말이 된다. 결국, 오온성고란 인간이 육신을 유지해가는 모든 오감의 활동에서 오로지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그것의 속성이 곧 고통이라

는 것이다. 간단명료하게 가장 흔한 말로 표현하자면 먹고 살기 힘들다로 정리할 수 있으리라.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치게 염세적일 수도 있지만, 생은 고()라고 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가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비관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장수하지 아니었던가.불교의 교리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반야심경에서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이라고설파하고있다.오온이공()하다는걸 깨우치게 될 때 절대적인 현실처럼 느껴지는 육신이 받아들인 삶의 고통은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오온이 움직이고 쇠하고 멸해지는 것은 자연현상이고 순리임에도 인간은 집착하고 고통에 아파하고 불안해하는 것에서 번민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업을 쌓게 되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오온에 집착하거나 몰입하지 말고 고통과 액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제대로 닦는 수양이 필요해진다. 범인(凡人)에게는 다소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건강한 자신을 위한 처세술로는 꼭 지녀야 할 내용이다. 얼마 전 도시 외곽에있는 어느 음식점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곳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족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적선지가(積善之家)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글은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의미이다. 주역의 문언전에 실려있는 구절이다. 대개 줄여서 적선여경(積善餘慶)이라고도 한다. 그 글에 이어 나오는 구절을 덧붙이자면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에서는 반드시 재앙이 남는다고 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래는 점차 이루어진 것이니 변론하여야 할 일을 변론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적선(積善)은 적덕(積德)과도 같은 맥락이고 음덕(蔭德), 즉 조상의 덕과도 유사한 의미이다. 옛 속담에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취하기 어려운 일에 대하여 흔히 3대가 적선하여야 한다는 표현이다. 덕을 쌓는다고 하면 베푸는 삶, 나누는 삶을 살면 3대손에 이르기까지는 그 보답을 받는다는 속설의 표현이다. 베풀고 나누는 삶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이런 적선여경(積善餘慶)을 실천한 사람으로 회자하는 이의 한 분이 홍순언이다. 조선 중기의 역관으로 사신단의 일원으로 가는 길에 묘령의 처자를만나게 되고, 그녀를 위해 삼천금을 주고 술집에서 빼내주는 적선을 베풀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공금을 횡령한 죄목으로 옥고를 치르는 곤욕을 겪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이로 인해 엄청난 복덕(福德)을 누리게 된다.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멋지게 해내게 되는 단초(端初)가 되기도 했고, 임란 때에는 원군을 요청하여 승낙을 얻게 되는 초석(礎石)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경주 고택으로 보존된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 중 하나에 들어있는 적선의 예도 유명하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는 선대의 가르침을 쫓아 성실하고 극진하게 과객을 대접하고 우대한 결과 300여 년이 넘게 부를 누린 명문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게 되는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자신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적선을 했기에 가능한 복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생의 단계는 세 단계로 분류된다고 한다. 태어난 후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와 사회와 국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삶이 일 단계라

면 성인 이후 장년 될 때까지는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이 단계의 삶이 있다. 장년 이후에는 삼 단계로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곧 베푸는 삶이요, 나누는 삶이다. 곧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삶이 충만해질 때 국가와 사회와 개인은 모두 풍요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노라고 자부하고 타인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베풀고 배려하는 삶의 지혜를 가질 때 세상은 더욱 향기로운 이상향으로 꽃피워질 수 있으리라. 인생은 고()라는 오온성고(五蘊盛苦)라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온성고는 결국 적선여경이 병행될 때만이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언제나 베풀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다면 진정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훨씬 간명해지고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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