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떡
추석을 앞둔 얼마 전 축구를 하다 상대편과 부딪치는 바람에 발목 부위를 다쳤다. 간단한 구급약으로 치료를 하고 얼음물로 냉찜질을 한 다음 파스를 붙였다. 집으로와서는 맨소래담이라는 소염진통제로 문지른후 압박붕대로 싸맸다. 그런 상태로 이틀 여가 지나 바로 추석연휴가 이어졌다. 시골로 내려가서 한의원에 전화를 해보니 쉬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생각해낸 요법이 치자떡이었다.
“얘야 치자떡을 해서 한 번 붙여보자!”하는 것이었다. 금시초문이었다. 치자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효험이 있는지 몰랐다. 일단 물을 끓였고 그것에 치자 열매를 으깨어 넣고 밀가루에 반죽했다. 처음에는 밀가루가 없어 찹쌀가루로 반죽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치자떡은 예쁜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랩으로 싸서 발목 상처 부위에 붙였다. 아마도 이런 것이 대목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대목이 되면 날씨가 궂어지거나 나쁜 일들이 더러 발생하는 것이 세상사다. 시퍼렇게 멍든 발목은 욱신거리고 제법 부어올라 있었다. 웬만한 민간요법은 제법 안다고 여겼었는데 치자떡은 생소했다. 그렇게 치자떡을 붙여놓은 자리는 이내 시원해졌다. 붓기도 좀 빠진 듯했고 통증도 완화되었다. 다음날 제대로 밀가루 반죽을 해서 붙여 보았다. 그러다 치자떡이 랩을 비집고 나와 지저분해졌다.
피멍이 들었던 부위의 피들은 발목 아래쪽으로 내려가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고, 치자떡의 노랗던 부분은 검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치자떡을 만들어서 삐져나오지 않게 압박붕대로 완벽하게 감쌌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치자떡을 붙일 때 비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연휴가 끝나고 한의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당장에 물어보았다. “치자떡을 붙였습니까?” “예” 단박에 치자떡을 붙인 것을 간파해내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피멍이 든 상태를 보고 치자떡을 붙인 줄을 안단 말인가? 요즘에도 민간에서는 치자를 여러 용도로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나처
럼 넘어지거나 삐어서 타박상을 입었을 때 밀가루와 치자 열매를 함께 개어 타박 부위에 붙인 뒤 붕대로 감아두면 어혈을 빨아들이는 효능이 있다. 할머니들은 이것을 치자떡이라고 하는데 부어오른 발의 염증을 빨리 가라앉히기 때문에 많이 애용해 왔다. 또한, 치자는 흰색의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사람도 늘고 있고 자연염료로서 물감을 물들이는데도 사용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치자의 성질이 차기 때문에 열독을 없애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속을 끓여 가슴이 답답해서 화닥증이 나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특히 입안이 자주 마르며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울러 소변을 잘 보게 할 뿐 아니라 소강(당뇨)에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만약 치자가 없다면 파로 대신할 수도 있다. 그런 상태로 다른 친척들을 뵐 수는 없을 듯해서 제사는 생략하기로 하고 가족과 함께 성묘를 가기로 하고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고향에 다녀왔다. 한결 번거로움이 덜했다. 날씨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성묘길을 올라가던 중에 비를 만나 한바탕 소동도 있었다. 그렇게 궂은 날씨였지만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넉넉하고 편안하게 성묘를 마치고 올 수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에 한의원에 들러 침으로 한방치료를 받고 나왔다. 한의원에서는 뜨거운 찜질을 20여 분했다. 그러고나서 침 시술을 하고, 마지막으로는 사혈을 뽑아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한의원을 찾았을 때 원장이 우려를 나타냈다.
“뼈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니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결국은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의사가 말하길 “사진으로 봐서는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육의 상태를 보려면 초음파를 해야 하는데 초음파에 대하여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습니다.”하는 수 없이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3일치의 약을 지어와 복용했다.
발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발은 직립보행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고 활동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홀대하고 소홀히 취급하곤 했다. 오래전에 손을 다쳤을 때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발이 다쳐 있던 옆 환자를 보고 그 불편함에 애달픈 심정을 가진 적이 있었다. 손이야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지만 발은 그렇지 않았다. 일일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데도 그렇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모든 일상사가 다른 사람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발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넓적다리 부근의 뼈가 부러지거나 그 외의 다리 어디라도 다치면 오랫동안 고생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최소 치료기간이 9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깁스를 하고, 그것이 다 아문 후에도 처음에는 휠체어에 의지했다가 다음에는 목발을 사용하고, 그 다음에는 지팡이를 짚은 후에야 온전해지는 듯했다. 물리치료도 꽤 오랫동안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은 없게 되었다. 예전 성현들의 말씀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다.‘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뜻으로,부모에게서물려 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말이다.《효경(孝經)》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새삼스럽게 신체의 소중함을 느꼈고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될 것이로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젠가의 뉴스에 나온 장기를 판매하려는 젊은 층의 안타까운 내용이 취재 기사로 나온 적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러했겠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그들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정말 절망을 느낄만큼 암울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평생 사용해야 할 장기를 한 순간 잘못 생각해 매매하는 세태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명품을 원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팔아 사주는 황당한 일들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이번 명절은 치자떡 덕택에 그나마 편안하고 안락한 명절을 지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