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
마침내 24주년을 맞이하게 되었구려! 처음 만난 걸로 따지자면 28년이나 되었네그려. 참 장구한 세월을 함께해 온 것도 같고 앞으로 남은 날들이 지금껏 해로한 만큼 될지 안 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오. 그 옛날 교과서 속에서 고구마를 삶아서 함께 먹으면서 가난한 날의 행복을 잔잔하게 얘기하던 작가도 있었던 듯하오. 우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참으로 팍팍하고 힘든 세월을 참아내고 이겨왔던 것이 아닌가하오.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자면 고진감래의 세월이었고 인고의 시간이었으며, 형극(가시밭길)의 길이었오. 더 말해 뭐할까 싶을 만큼 고생도 시키고 마음까지 상하게 한 부분에 대하여 송구함을 금할 길이 없구료.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절절히 맺혀있고 응어리져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질 날을 위해 노력할 테니 관용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오. 세월은 참 쉼 없이 흘러 포대기에 싸인 갓난쟁이 아들이 벌써 장성해 성인이 다 되었으니 참으로 대견하고 감개무량 하리라 믿소. 현재로서는 이 글마저도 읽을 수 있을 시간이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에 빠져있음에 심심한 위로를 드리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서글픈 영욕의 세월이 아니었나 하오. 신혼 초에 주말부부로 시작해서 서울에서 어렵게 시작한 단칸방 생활이 주는 고달픔에 채 아파하기도 전에 그걸 뒤로 하고 떠나야했던 제주도 발령. 그리로 떠날 때의 애절한 아픔 또한 어느새 외로움이 차곡차곡 쌓인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되었구려. 제주도에서 잠깐의 독신생활을 접고 함께 지냈던 몇 개월은 어찌나 달콤한 시간이었던지 아직도 그 기억만은 오롯하오. 세 식구가 서울 부산 고흥에 삼분되어 있다가 겨우 한 지붕 밑에 둥지를 틀었던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소. 어찌 그때를 잊을 수가 있겠소. 그 시간도 아주 잠시 다시 둘째를 낳으러 떠나가 버리자 그때는 왠지 걱정에 앞서 내 생활의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박탈감과 허전함 만이 극에 달했던 때 였소. 그런 뼈아픈 별리의 고통이 만만찮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다시 모여 살 수 있는 해후의 기쁨을 품을 수 있지 않았소. 서울 모지점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었지 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말 정신없었고 눈코 뜰 새 없는 시절이었소. 그 와중에 처제까지 와있었지 않았소. 95년 이후부터 99년까지 평촌의 아파트를 위해 헌신했고 그때만 해도 알콩달콩 참 재미가 있었소. 99년에는 그 아파트에 입주하는 기쁨도 누려보지 못한 채로 세를 주고 말았지 않았소. 2001년에는 교육원으로 가게 되어서는 또 다시 주말부부 같은 세월을 2년 반이나 보내게 했구려. 그리고 6년간의 서울생활 이후 또다시 교육원으로 가게 되어 주말부부를 세 번이나 겪게 되었구려. 2000년부터 시작된 녹색소년단 생활은 4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지 않았소. 짧지 않은 시간동안 휴일도 반납한 채 여유라고는 없이 상부상조의 마음가짐에 초점을 두고 주말 월례행사에 몰두했던 것 같소. 몸이 성하다는 게 어쩌면 어불성설일 지경이었소. 학교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긴 했지만 그 시간동안 겪었던 우여곡절은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라 생각되오. 그런저런 세월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 이제는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뿌리를 깊게 박아 안정을 찾게 된 것 같다고 어느 정도 낙관하며 살아가고 있소. 물론 세상일은 장담할 게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말이오. 요즘 마음은 이렇게 건강하게 우리 가족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진정 살아 가는 것의 뿌듯함을 느끼게 되오. 선물을 사러 갔는데 마음에 맞는 것을 고르질 못했소. 스물 네번째의 기념일을 보내면서 뜻 깊은 날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떠올려보게도 되는구려. 처음 프러포즈나 고백을 했을 때는 평생 속 썩이지 않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해놓고는 이제와 함께한 시간이 진정 행복하게 해주었나를 뒤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구려. 탈도 많았고 속앓이도 너무 많아 죄스럽기 그지없구려. 내 나름대로 가족을 위해서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고 하지만 모든 게 부족했고 생각이 많이 짧았던 것 같구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고생시키고 애를 태우게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나온 것만큼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오. 이제는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서로가 사회에서 활동할 만한 세월도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듯 생각되오. 자식들 속 썩이지 않고 부모님 모두 건강한 이것이 인생삼락(人生三樂)의 제일락 중에 하나라오. 몸도 변변치 못해 입원까지 하게 되고 여러 가지로 고생을 시킨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드리리다. 모든 잘못된 허물을 감싸 안고 덮어주면 언젠가는 그것에 꼭 보답을 하리라 다짐하고 싶소.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날을 자박자막 추억하며 반추해보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나마 인생의 큰 고비 없이 그런대로 순조롭고 무난하게 지나왔었던 것이라 나름대로는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하오. 비바람 몰아치는 험로를 우리 두 사람이 똘똘 뭉쳐 헤쳐 나왔지 않았소. 우리의 분신인 두 녀석도 모두 무탈하게 뚜렷한 주관과 자긍심을 가진 훌륭한 청년으로 잘 자라고 있다고 여기고 있소. 과연 우리가 뒷바라지 한 바에 부족함이 있었는지는 혹여 먼 훗날 그들이 부모에 대해 불평하고 볼멘소리를 할 지 어떨지는 모르겠소. 옛날에는 남에게 뒤쳐지고 추월당하는 부분에 대하여 정말 속상해 하고 울분을 참을 길이 없었던 적이 있었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속절없는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고 웃어넘길수 있게 되었다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거목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이 아니오.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고 하지 않소. 바르고 곧게 사는 것도 인생의 한 방편일 수 있으나 긴 마라톤 같은 인생의 길목에서 한순간의 승리자일 수 있으나 영원한 패자가 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건 어떻겠소. 변변하게 해 준 것도 없고 마냥 푸념하는 대로 그 흔한 영화 한편 같이 본 것도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구려.
마지막으로 한마디 거들자면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명귀가 있소. 세상만사의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순리를 좇아 가야한다는 것이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처럼 그렇게 순조롭고 조화롭게 물과 같은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오. 이제 우리 앞에 놓여진 생은 사주쟁이의 예언대로 탄탄대로이고 험로를 다 지나 왔을 지도 모를 일이오 아무튼 앞으로의 살아갈 날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적게 남았다는 부분을 되새기며 하루하루에 열과 성을 다해 각고의 노력을 해 봅시다. 술도 적정하게 마시고 건강에도 신경 써서 속 끓이지 않도록 할 테니 마음 놓고 해 보고 싶은 것 다하고 필요한 부분을 말만 하시오. 얼마만큼 실현이 되고 공염불이 되지 않을지는 알 수 없으나 노력하는 모습은 최대한으로 보이도록 하겠소. 장문을 열심히 읽어주느라 고생이 많았소. 이게 다 나의 오랜 마음이라 여겨주시오. 그럼 건강 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