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처럼 진한 이를 그리며
백화만개(百花滿開)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겨울에서 바로 여름이 온 듯하다. 계절의 여왕이라 할 만한 호시절이고 아름다운 날들이다. 화창한 봄날이 주는 혜택은 참 많다고 여겨진다. 5월 중순에 자리한 스승의 날도 그렇듯 젊은 날 내 인생의 좌표를 설정해준 꽃향기처럼 진한 향기가 났던 상사가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기여하는 바처럼 좋은 리더와의 만남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산다는 즐거움의 하나로 여겨 질 수 있는 게 존경하는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20여년의 직장생활 가운데 여러 명의 직장상사를 만났고 그들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흠모하고 존경할만한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보석처럼 빛났던 상사 한 분이 떠올라 감히 그분에 대해 일필휘지(一筆揮之)해 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이라 기억된다. 책임자로서 햇병아리 시절에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그는 실로 명성 그대로 본부부서의 산증인이었고, 전설 그 자체였다. 그는 산간벽지에서 여러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제대로 된 정규교육조차 받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의 사려 깊고 특별한 배려로 군복무 후에야 비로소 느지막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졸업 후에 곧바로 입사한 농협에서도 주요부서의 여러 현안들을 척척 잘도 처리하였다. 동기들보다는 다소 늦은 입사였으므로 의기소침해지거나 위축될 소지도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업무추진력으로 항상 타의 귀감이 되었다. 지도자의 표상으로서 조직의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진가를 발휘하기까지 했다. 부하 직원의 어려움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보살펴 주었으며 한 번 맺은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는 인간적인 면까지 두루 지니고 있었다. 초임 책임자시절에 강원도 산간벽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10여년이 지났음에도 본부에 교육이라도 있어올 때면 꼭 사무실에 들러 그를 만나고 가던 기억이 난다. 이런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분의 천성과 인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상부기관으로부터의 차출이 있어 극심한 가뭄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파견근무를 며칠 동안 한 적이 있었다. 한여름의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 늦은 야근까지 불사하며 상황실 파견근무를 하였던 그때 그 힘든 공과에 의해 표창이 상신되었다. 당연히 충분한 업적을 쌓은 상사로서 수상하여야 함에도 이를 부하 직원에게 양보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건 솔직히 보통사람으로서는 쉽게 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업무자세를 갖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면서 타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마치 그에게선 당연한 덕목처럼 일관된 심성의 상사였다.
다음 예화에서는 그가 리더로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영농자재의 계통공급 업무였는데 불가피하게 공급이후 하자문제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게 되었다. 영농자재의 하자로 인한 민원부분은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반사로 발생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직까지 소비자보호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원처리의 기준 자체도 확립되어 있지 않아 정형화된 틀조차 없었다. 농업인들이 농한기에 전세버스 다섯 대를 나눠 타고 해당제품 생산업체에 몰려가 구매식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으로 언제 본부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난감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 월요일에 시작된 연좌농성은 한참 절정으로 치닫던 금요일 저녁이 되자 담당자와 함께 자신이 직접 현지생산 공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농업인과 생산업체 대표간의 합의점을 도출시키기 위해 그는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노력한 중재의 결과로 당사자 간에 서명 날인된 합의서를 받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농업인들은 그날 바로 흡족한 상태로 다시 귀향길에 서둘러 오를 수 있었다. 영농자재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중재안에 합의를 해준 것으로 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보통 바로 업무를 종결하고 쉬는 게 당연함에도 그는 토요일이라 반나절 근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3시까지 연장근무까지 하고서야 퇴근을 했다. 조직에서 그의 입지는 이렇듯 어디 허튼 구석이 없을 만큼 대단한 상사였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업무능력과 한결 같은 인품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자기가 맡은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했고 최상의 성과를 창출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라나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었고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도 남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일화 중에서 그의 부모에 대한 효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시골에 살던 연로한 모친이 수술이 필요한 병에 걸렸을 때였다. 다른 형제들이 모두 연로한데 수술은 무슨 수술이냐고 반대하는 것을 굳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수술을 시켰다고 했다. 그 결과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후로 모친은 건강하게 6년을 더 장수할 수 있었다. 모친의 연세가 적지 않았던 만큼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수술을 해 추호(秋毫)의 회한도 남기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수술 후에 한 번씩 고향을 내려갈 때마다 모친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환담을 나누었고 옛일을 회고하곤 했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늘은 야근을 좀 해야겠다" 며 양해를 구하는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통상적인 업무를 좀 더 하는가 보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야근이 끝나는 시간이 12시 자정이었다. 그러고는 수고했다고 포장마차를 가서 다 같이 한잔씩을 나눌 만큼 부하 직원의 노고에 대하여 충분한 격려를 하신 후에야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뢰가 우선되었다.
요즘 한창 떠오르는 리더십 가운데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봉사하고 지원하는 그러한 상사를 리더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의 요체(要諦)라고 한다. 지시나 통제 등의 전통적인 방식에 의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이해와 설득을 통해 부하 직원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목표달성의 성과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탁월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조직이 위기에 처하고 역경에 부딪쳤을 때에 더 빛이 나는 리더십으로 카리스마리더십이란 게 있는데 이 또한 그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부하 직원들이 저절로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이라고 했다 그 뜻은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많은 경사(慶事)가 있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주역(周易)의〈문언전(文言傳)〉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그야말로 선을 쌓고 덕을 베푸는 집안에는 기쁨이 넘친다는 얘기다. 선을 쌓고 덕을 쌓은 당대에 혹여 라도 복을 받지 못하면 3대 이내에는 꼭 보답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대에 걸친 적선(積善)이 있어야 남향집에 산다'는 속설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인간적으로 부하 직원을 배려하였던 덕분에 오랫동안 기쁨과 복락을 누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요즘 한참 회자(膾炙)되는 나눔의 삶이고 베푸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임 책임자로 외지에 가서 외톨이로 근무하면서 권위적이며 배타적이었다면 어떻게 10여년이나 지난 직장 상사를 흔쾌히 찾아올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자고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모든 어려움과 아픔과 고통을 아우른다고 했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상선약수 (上善若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善)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는 말이다. 지상 최대의 선함은 물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그 물과 같은 아우름과 포용력을 지닌 훌륭한 리더가 그였지 않았나 생각될 뿐이다.
'훌륭한 리더는 공(功)이 베풀어질 때 창문을 보고 과(過)가 부여될 때 거울을 본다' 고 한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상반된 얘기일 것이다. 성과가 있으면 그 성과의 공을 서로 다투어 자기 것으로 부풀리려 하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어떤 이의 경우에는 성과를 가로채는 상사로 인해 마음의 상처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보통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상적인 공과 내지 신상필벌(身賞必罰)에 대하여는 대개는 자기 공을 주장하고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에는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일 것이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다' 이라는 것이 그냥 생겨난 속담만은 아닐 것이다.
'모진 사람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도 조직의 상사나 구성원을 잘못 만나면 그 생활을 해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의 말일 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고초(苦楚)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에서나 신문기사에 의하면 인격적으로 성숙한 상사가 가장 선호도가 높은 상사로 한 설문에서 조사되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는 조직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아 훌륭하게 처리했으며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여 최고위직까지 올랐고 정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였고 직무가 끝난 연후에도 일말의 미련을 두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이 같이 근무하고 싶게 만들었고 부하 직원들을 애지중지해주었다. 비록 그와는 그리 오랫동안 같이 근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소신을 갖고 꿋꿋하게 조직의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진력(盡力)을 다하던 그 모습이 어떤 상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던 면모였던 것이다. 항상 조직구성원에 대하여 허심탄회
(許心坦懷)하게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고 소탈하였으며 격의 없이 업무에 관해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시켜 나갔다. 항상 부하 직원들과 대화하고 상사들과 상의해서 물 흐르는 듯한 소통의 장을 조직 내에 마련하였다. 그럼으로 인해 소신껏 업무를 처리하게 해주었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게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여인의 향기'란 영화를 보면 알파치노가 등장한 멋진 장면이 하나 있다. 고등학생의 치기어린 잘못을 밀고하고 고발하라는 교장에 대하여 전교생이 모인 상벌위원회의 석상에서 리더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연설장면이 그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퇴역육군 중령이 자긍심과 긍지를 갖고 세상 사람들에게 내뱉는 사자후(獅子吼)는 정말 굉장한 카리스마의 진수(眞隨)를 보여준다. 결국 이 작품으로 신들린 연기를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아카데미 주연상의 영예(榮譽)를 안기도 했다. 조직이나 집단이 난세가 되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그렇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끌고 나갈 리더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작금의 현실은 이러한 리더의 출현을 간절히 갈망(渴望)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위 워 솔저스' 라는 영화에서 할무어 중령이란 리더가 전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한 연설에서 리더의 표본을 볼 수 있었다. 죽음의 계곡으로 떠나는 의미심장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제군들 모두를 무사히 데려오겠다는 약속은 해줄 수 없다. 그러나 제군들과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주님 앞에 이것만은 맹세한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을 거고 맨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거며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로서 리더로서의 모습이고 올곧은 표상이지 않을까 한다.
가끔 사는 게 내 마음 같지 않고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꽃향기처럼 사람 내음 물씬한 이가 그리워진다. 사람 개개인이 지닌 삶의 향기란 아마도 가장 극대치의 고통을 이겨낸 가운데 오롯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절망과 고통의 밤을 지새우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쉬이 우려낼 수 없는 영혼의 향기가 인생의 긴 성장통을 넘어선 이후에나 발산된다는 것을 중년의 축 처진 어깻죽지에서 더러 느끼게도 된다. 각자가 안고 걸어온 삶의 무게에서 조직과 사회의 온갖 고난을 잘 견뎌낸 이의 향기는 은근하고 간절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있어서 유일한 멘토였고 멋진 상사였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내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였고 인생의 커다란 지침서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멋지고 오랜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상사가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상사님의 [ 답장 메일 ]
늦은 시간에 서재에 들려 메일을 보았습니다.
모처럼(6일만에) 햇볕이 나왔기에 고추, 참깨, 감자, 옥수수 그리고 과수나무(사과, 복숭아, 자두, 감, 대추, 포도, 다래, 배, 모과, 살구)에 농약을 살포했습니다.
채소류는 농약사용을 자제하지만 과수와 일반 농작물은 그래도 몆번은 살포합니다. 오전에는 농약살포(7시부터 11시까지)를 하고(아침식사를 11시30분경에 함)
쉬다가 오후 2시부터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양주 교육을 받았는데 오늘은 삼양주로 만든 술을 빚는 날이라 난생 처음으로 술을 만들었습니다. 술맛 참으로 좋았습니다. 물을 타지 않은 술(전내기 또는 진땡이)이라 알콜도수가 18~19도 정도되며 단맛도 매우 높아 먹기 좋습니다. 집에 가져와서 물로 희석(전내기3 : 물1)시켜 냉장보관(약 7일)으로 숙성시키면 도수가 낮은 부드러운 막걸이가 된다고
합니다. 이형! 술맛보려 ..
나에 대한 글이 아니라 소설을 쓴 것 같습니다.
만약 사실 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준 이형이 오히려 더 진취적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항상 매사에 신중하고 새로운 것을 얻고자 노력한 이형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이지만 그때가 즐겁고 보람있었습니다.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 고맙습니다.
지금 산자락에 옹크리고 있는 나의 집 주위에는 많은 산짐승들이며 산새들도
깊은 잠속으로 떠난 것 같습니다. 간혹 잠자지 않는 짐승들 때문에 개들이 적막을 깨며 짖어 대는 때도 있으나 지금은 모두 꿈속에 있는 듯 합니다.
내일은 야생화 기득한 화단에서 태풍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살펴야 합니다.
이형!
추억속에 있을 나이는 아직 아닙니다. 안성 횟집의 성찬이 떠 오릅니다.
이번에는 제천에서 자리를 만들면... 범래, 정호와 같이 하면 더 좋지않을까?
막걸리 마주하면서..... 좋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건강과 행복하시기를...
이천십일년 유월 이십팔일. 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