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른 노을

성명

by 자한형 2023. 2. 6.
728x90

성명

 

성명이란 글자 그대로 성()과 이름()을 이르는 말이다. 다른 말로 이름이라고도 한다. 성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로 주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를 이어 계승(繼承)된다. 성명의 표기 방법은 가계(家系)이름을 나타내는 성에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표시해 왔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전통 방식에 반해 서구에서는 성을 뒤에 붙이고, 여자들은 결혼하면서부터 남편 성을 따르게 된다.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한국 중세어에서 일홈또는 일훔등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이르다()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에서 출발하여 닐홈-일홈-이름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걸 이르는 말이 곧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사람이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토박이말로 지었던 이름이 한자의 유입과 함께 한자 이름으로 지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른다. 이름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형태가 있다. 아명(兒名)·관명(冠名)·()·()·시호(諡號)등이 그것이다. 직업에 따라 붙이는 승명(僧名), 기명(妓名)도 있다. 아명은 어린아이 때의 이름이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성리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우 이()는 관명이지만 아명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태몽에 용()을 보았다 하여 현룡(見龍)이라 불렀다. 자는 숙헌(叔獻)이고 호는 율곡 외에도 석담(石潭)·우재(愚齋) 등이 있다. 관명은 장성(長成)해서 그 집안의 항렬(行列)에 따라 짓는 이름이고, 자는 대체로 혼인한 후에 본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어른 아닌 사람들이 자()를 불렀다. 호는 자 이외에 쓰는 아명(雅名)으로학자·문인·서화가들이 가지는 또하나의 이름이었고, 시호는 경상(卿相, 재상)이나 유현(儒賢) 유학(儒學)에 정통하고 그 말과 행실이 유학의 진리에 부합(符合)한 사람) 등이 죽은 뒤 임금이 그 행적을 칭송하면서 추증(追贈)하는 이름이었다.

이름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逸話) 중에서 관상의 대가 백운학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 김종필이란 사람이 같은 육사 동기생으로 운수업을 하던 친구(석정선)와 함께 관상을 보러 갔다. 친구의 운수업이 잘되지 않아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해볼까 하고 갔는데 백운학이 친구는 놔두고 구석진 자리에 앉은 김종필을 보고 세상을 뒤집으려고 하는구먼, 성공할 게야라고 한마디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김종필이 생사람 잡을 소리 하지 마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거사가 끝나고 백운학을 다시 찾으니 그에게“89세까지 살겠소. 아니 잘하면 90세까지 살 수 있을 듯하오.라고 수명을 점쳐주었다고 한다. 졸지에 거사를 예언한 사람으로 유명세를 타다 보니 여기저기로 불려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만난 이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K그룹 A회장이었다. 들려오는 세 가지 예언이 있었다. 첫째는 셋째 아들에게 집안을 물려주어야 승승장구한다는 얘기였고, 둘째는 둘째는 항공촬영해 찍은 사진을 보고 신규사업체의 자리를 점지해 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신규사업체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유림의 반대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정해졌다고도 한다. 셋째는 K그룹 직원의 신입사원 면접 때 A회장 옆자리에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전해지는 또 하나의 일화(逸話)는 이랬다. 한국의 대표적인 형법학자였고 문교부장관까지 지내신 H모씨가 있었다.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백운학의 사주 관상을 보게 되었다. 백운학이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이 좋지 않으니 개명(改名)신청을 하시오.하고 권했다. 그렇지 않으면 20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오.그냥 허투루 듣고 무심히 넘겨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고 보니 결국은 그 다섯째 아들이 예언대로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실재 주간매경에 연재 되었던 그분의 회고록에 나

오는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이름으로 세상에 알리게 되는데 제일 먼저 아이가 태어나면 짓게 되는 것이 이름이요 성명이다. 큰아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별 생각 없이 그냥 한자음만을 붙여 쉽게 부를 수 있고 예쁘게 느껴졌던 이름으로 상일(相壹)이로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름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이름이 썩 좋은 이름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름을 그대로 두면 좋지않은 낭패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주와 관련하여 아무튼 이름을 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듣고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법무사를 통해서 증인 2명의 동의를 받아 법원에 개명을 신청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합당하고 개명에 대한 분명한 근거와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했다. 결국, 노력과 비용을 들인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이젠 틀렸나 보다 하는 상황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소식이 들려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학교에서 개명신청을 일괄적으로 받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신청을 했고 순조롭게 이름을 바꾸는 일을 손바닥 뒤짚듯이 손쉽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뀐 이름이 이승환(承桓)이었다. 개명 이후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없이 잘 자라 주었다.

처가에도 이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에 관한 특이한 내력을 갖고 있었다. 6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 (), (), (), (), ()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별로 좋은 이름이 아니라 해서 셋은 놔두고 셋을 바꿨다. 둘째 소연(昭姸), 셋째 현수(鉉秀), 막내 나영(娜瑛)으로 바뀌게 되었다. 셋째인 처남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기도 하는 횡액을 겪기도 했다. 물론 개명 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내이름으로 얘기를 하자면 아명은 봉구(鳳九), 본명은 종수(鍾洙), 법명은 철주(鐵柱), 예명은 정한(政翰)을 가지고 있다. 본명에 대해 별로 애착을 갖고 있지 못한 편인데, 동명이인(同名異人)이 하도 많아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경우를 겪었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우편물까지 바뀌어 오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이제는 이미 지난 일이어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냥 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서서히 체념을 해버렸다고 할까.

성명에 관한 지론이라면 가급적이면 조금의 비용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제대로 짓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저히 감내할 수준이나 정도가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개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TV연속극의 주인공으로 나온 삼순이처럼 남에게 놀림감이 되는 이름이라면 분명히 바꿔줘야 할 것이다. 옛 속담에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 세상에 바람처럼 물처럼 흔적조차 없이 살다 남기고 떠나더라도 어쩌면 바로 그 이름 석 자만이 외롭게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

 

 

'푸른 노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와 호연지기  (0) 2023.02.06
이발  (0) 2023.02.06
상가  (0) 2023.02.06
자동차  (0) 2023.02.03
내 집 마련기  (1)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