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얼마 전에 모처럼 맞은 한가한 휴일이라 느긋한 기분으로 이발소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빨강, 파랑, 흰색의 삼색의 형광 불빛이 돌아가는 표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반가운 기분으로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삼색의 의미는 본래의 이발이 외과의사를 겸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파랑은 정맥, 빨강은 동맥, 하양은 붕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발소란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주로 ‘남자’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는 곳을 이른다. 반면 미용실이란 파마, 커트, 화장, 그 밖의 미용술을 위주로 여성의 용모, 두발, 외모 따위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해 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 셈이다. 요즘은 어찌 된 셈인지 이발소를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미용실은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현실로 되어가고 있다.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그냥 이발소가 아닌 목욕탕에 딸린 이발소였다.이곳까지와서 뜻을 굽힐 수도 없고 그냥 돌아가자고 하니 왠지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되든 안 되든 한번 부탁이나 해 볼 요량으로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마침 목욕하러 온 듯한 두서너명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을 기다리니 차례가 되었다. 주인장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문의했다 “죄송합니다만 목욕은 아니고 이발만 좀 하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상당한 의아한 듯한 표정이 되어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고 답변을 한 후 안쪽으로 들어갔다.나왔다. 그런 연후에 “들어가 보세요.” 하며 허락했다.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이발용 의자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겉옷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이발사는 익숙한 솜씨로 수건으로 목을 두른 다음 가운을 입혔다. 중년의 이발사는 손님이 들어오자 반색을 하며 맞았다. 의자에 앉아 주위 분위기를 보니 상당히 시설은 오래된 듯 노후화된 느낌이 들었다. 휴일임에도 한여름이라 그런지 목욕 손님도 두서넛 뿐이었다. 이발소도 덩달아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이발소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보통의 이발소에는 앞에만 거울이 있는데 반하여 이곳에는 뒤쪽에도 조그만 거울을 비치해 놓아 한자리에 앉아서도 손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고객을 끔찍이 생각하는 듯 느껴졌다. 이발을 하다보면 상당히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뒷머리는 어떻게 깍이고 있는지 인데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자신의 뒤통수를 볼 수 있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래쪽에 조그만 선풍기를 비치해서 작동을 시켜 놓았다. 아래쪽 부분이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보통의 이발소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아이디어였다. 고객 만족의 사례로도 충분히 참고할만한 것이었다. 이발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요즘은 이발이라는 것이 사양화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왜그렇게 되었느냐는 것에 대한 해답이 참 걸작이었다. 그 이유는 40대 이하는 이발소를 오지 않는데 모두 어머니를 따라 미용실을 다녔던 유년의 추억으로 인해 이발소의 필요성을 모르고 가 본 경험이 없는 탓에 경원시한다는 것이다. 겨우 이발소를 찾는 이는 40대 이후의 세대들로 간헐적으로 오다 보니 이발소는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용실은 우후죽순처럼 늘어 나는 데 반하여 이발소는 사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이발 기술을 배우려면 예전에는 2`~3년씩 걸렸다고 한다. 머리를 깎는 조발, 머리감기, 면도 등 제각각의 분야별로 6개월이 넘게소요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배운 연후에 기술자격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서 이발소를 차릴 수가 있게 되었다. 충분히 익숙해져 숙련도가 몸에 붙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연륜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즘 이발소 풍경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이발소라는 것이 제대로 진화하지 못하고 변질한 채 물의를 빚는 등 이슈화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든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이발소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목욕 손님이 20~30명 쯤 오면 그 중 서너 명이 이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욕도 공중목욕탕이 늘어나게 되고 사우나, 찜질방 등이 난립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런데 이곳의 경우도 연료비 인상으로 목욕료를 올리다 보니 손님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이발이요, 목욕일 것이다. 세월이 변해 가는 것과 더불어 세태도 바뀌는 것에 안쓰러움이 남았다. 옛추억 속의 이발소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 떠오른다. 연탄난로 위의 면도용 비누가 보글보글 끓기도 하고 세숫대야 위에서는 면도용 수건이 뜨겁게 삶겨지기도 했다. 색 바랜 알량한 그림이 한쪽 벽면 위에 걸려 있었다. 소가 쟁기를 끌고 가는 한가로운 전원풍경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그 속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적혀 있기도 했다.
그곳에서 동네 소문의 진원지가 되었고, 서민의 애환이 스며 있었고, 삶의 진한 향기가풍겨 나오기도 했었다. 한쪽 평상에서는 바둑판이나 장기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간혹 푼돈내기 심심풀이용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속설로 전해지는 얘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루가 기분 좋으려면 목욕을 하고 삼일 기분 좋으려면 이발을 하고, 한 달 기분 좋으려면 새 옷을 사라”고 한다. 또는 “석 달 기분 좋으려면 결혼을 하고, 일 년 기분 좋으려면 자동차를 사고, 삼 년 기분 좋으려면 집을 사라”고도 했다. 이발을 하면 삼 일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는데 분명히 상쾌한 기분으로 이발소를 나왔는데 뒤끝이 왜 이리 씁쓸해질까. 이 세태가 이렇듯 옛말을 빈말로 만들어버릴 만큼 변변한 위력을 지녔기는 한 건가. 낭만의 한 귀퉁이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인지상정의 한 단면으로나마 오래도록 이발소가 정겨운 추억거리로만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편의시설로 세세연연 남아 있어 주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