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유람기
우리 아파트에 3명이 모였다. 교육원의 정교수와 김대우가 왔다. 골프채와 가방을 김대우차에 실었다. 운전은 김대우가 했다. 앞좌석에 정교수가 앉았다. 다행히 아파트에 주차공간이 있어 그곳에 정교수 차를 주차해 두고 출발했다. 오전7시 10분전이었다. 날씨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화창했다. 며칠 전에 갑자기 김 부장한테 연락이 와서 급하게 멤버를 구성해 약속이 잡혔다. 늦을까싶어 정교수는 1시간 전에 도착해 주변을 한 바퀴 돌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대우도 보내준 약도를 참고하고 GPS덕에 잘 찾아온 모양이었다. 10시40분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전주 IC를 나오면 CBS가 있는데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사람이 기다리기로 했는데 김 부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해후여서 악수를 교환하고는 인사를 했다. 운전을 교대하려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전주에서 군산 간 국도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잘 닦여져 있었다. AI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얘기했고 대통령을 모실 기회를 가졌던 부분까지 말씀하였다. 공기 좋고 맑은 고향에서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콩나물해장국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지금은 한창 예민한 시기라 김 부장은 모자에 선글라스를 껴서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상석을 권했지만 김 부장은 주위시선을 의식하신 탓인지 바깥쪽을 자청해서 앉았다. 대한민국에서 콩나물해장국을 제일 잘 하는 집이라고 칭찬을 했다. 종업원의 표정이 달라지는 듯 했다. 1인분에 4천원이었다. 김 부장이 식대계산을 했다. 오늘은 김 부장이 계산하고 내일은 우리보고 하라고 했다. 부장은 라커도 들어가질 않았다. 식당에서 클럽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도착해서는 옷들을 갈아입고 라운딩에 나섰다. 부장과 김대우는 7만원, 정교수와 나는 5만원을 내고 운동을 시작했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잔디는 짙푸르렀고 평평한 게 무엇보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였다. 군산CC 81홀이라든가 어쨌거나 1004홀도 있다고 했다. 동남아의 골프경기를 TV로 많이 보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거의 부장의 독무대 수준이었다. 김대우가 오랜만에 버디를 한번 해서는 피치를 올렸다. 그늘 집에서 맥주도 한잔하였다. 평지였지만 중간 중간에 벙커도 있었고 해저드도 있었다. 그런대로 쉬워 보였는데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었다. 파를 한 두 번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더블보기 수준이었다. 오비도 가끔 났고 공도 몇 개를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라운딩이 끝나고 나자 4시 50분가량이었다. 샤워를 하고 귀로에 올랐다. 캐디피를 계산하고 보니 내기를 걸었던 원금에서 5만원이 비었다. 손을 탄 모양이었는데 하는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크게 막히지 않았다. 쏘가리매운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국물 맛이 진하기 그지없었다. 부장이 와인을 두병 가져왔다. 쌀이랑 토마토, 감자 등을 적당히 먹고는 자리를 옮겨 고스톱을 했다. 운이 좋아 제법 딴 상황이 되었다. 개평을 3만원 드리고는 부장을 배웅하고는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는 2차를 하러 나갔다. 조개탕에 소주를 몇 잔하고 모텔에 맥주를 사가지 와서 또다시 판을 벌렸다.
다음날 새벽5시경에 김 부장이 왔다.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는 나왔다. 부장의 차를 타고 갔다. 아침을 먹으러 김치찌개 집으로 갔는데 무척 맛이 좋았다. 이른 새벽시간이었지만 좌석이 꽉 차 있었다. 식사를 하고 임실로 출발했다. 전주 상그릴라 CC이었다. 산속에 있었고 익숙한 간판이 붙어져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술도 덜 깬 상태에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라스베이거스를 하기로 했다. 10만원씩을 각출했다. 편을 갈라서 라운딩을 하게 되니 일방적으로 잃지는 않게 되었다. 5만원인가를 건졌다. 니어홀도 있었고 롱기스트도 있었으며 오피러스 자동차를 걸고 만원을 내는 홀인원을 노리는 홀에는 여직원이 한명 대기해 있었다.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셈치고 김대우가 시도했다. 하지만 무위로 끝났다. 부장이 얘기하길 50퍼센트 확률이 아니면 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운동을 끝내고 나서 주변에 있는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상경 길에 올랐다. 고궁이라는 유명한 식당에서 한참을 기다려서 전주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30분을 기다려 입장했고 입장해서도 30분을 기다려 그 유명한 원조 전주비빔밥을 먹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오후7시경에 도착을 했고 각자 해산을 했다. 오는 동안 내내 졸음 방지를 위해 계속해서 얘기를 하느라 혼이 났다. 고속도로상의 상습정체구간에서 많이 밀렸다. 정교수의 딸이 민족사관학교를 다니는데 그것에 관한 얘기를 했다. 김대우는 독신으로 사는 부분도 익숙해지면 그렇게 불편한 부분은 없다는 식으로 얘기를 털어놓았었다. 모친께서 본격적으로 아들 장가보내기에 매달리는 모양이었다. 본래 하던 식당을 접고 새로운 분야에의 진출을 위해 잠시 쉬고 있는 상황에서 아들을 독려하기 위해 상경해 있다고 했다.
제법 오래전 이야기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이 황당한 얘기가 전해져 온다. 우리 경제가 제법 후진국에서 벗어나 도약할 때쯤이었다. 한 대기업 임원이 외국으로 출장을 갔다. 그 외국은 물론 선진국이었고 골프가 비즈니스와 연계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도 접대문화가 상용화된 분위기였다. 초청을 한 나라에서는 비즈니스를 위하여 최고의 골프장에 골든타임에 골프부킹을 잡고 그날의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약속한 날은 다가왔고 그 임원은 부킹은 해놓았는데 골프는 골 짜도 모르는 백지상태였다. 고민에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팔에 붕대를 감고 골프장엘 갔다. 그리고 변명을 했다. 여차저차해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 임원이 된 핑계는 이런 것이었다. 어제저녁 샤워를 하러 호텔목욕탕엘 들어가다가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초청자는 바로 호텔지배인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를 파악한 후 호텔지배인을 바로 해고시켜버렸다. 출장에서 돌아온 임원은 자초지종을 그룹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회장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그룹 내 전임원이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룹차원의 골프장건립도 지시하게 되었다. 골프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전의 이야기 한 토막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 세상만사 중 누워서 하는 것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섹스가 최고이고 앉아서 하는 일 중 최고봉은 고스톱 또는 포카이고 서서하는 것 중 으뜸은 골프라고 한다. 이 일화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라면 그 외국 초청자의 고객에 대한 배려심이다. 손님의 실수나 과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님을 모시는 상황 하에서 최대한 고객을 배려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에서 고객 만족경영의 시발을 보게 된다. 우리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생각이고 발상이지 않은가. 또 하나는 대그룹회장의 세상을 보는 시각 내지 변화에의 대응능력과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사람이 곧 경영이다’라고 했던 재벌총수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그만큼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발 빠르게 경연환경을 대응시켜 적응하도록 이끌어낸 리더십의 탁월함을 본받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