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
지난 월요일에 95명의 인원이 오대산 종주훈련을 무박이일로 다녀왔다. 출발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날씨를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그런대로 포근한 날씨였다. 한 시간여를 달린 후에 도착한 곳은 영동고속도로 상의 문막휴게소였다. 잠시 휴식을 취했고 다시 버스3대와 봉고차 1대가 출발했다 여직원이 17명이었다. 남자들은 걱정이 없었지만 여직원들의 걱정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조는 6개조로 회사가 12개 회사였다. 많은 인원이 선발된 회사는 한 개 조로 형성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몇 개의 회사로 조가 구성되어 있었다. 교육인원은 86명이었다.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었고 기필코 해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3시간여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도착지는 오대산 입구에 있는 켄싱턴 플로라 호텔로비 소연회장이었다. 모두 버스에서 배낭을 메고 내렸다. 훈련지도자들의 안내에 따라 홀로 집결했다. 간단한 소개 후에 훈련내용의 설명을 들었다. 각종 장비와 물품을 지급했다. 경광등도 있었고 형광조끼에 야광링도 배낭에 메달아 놓아 야간에도 서로간의 식별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기다란 끈을 각 조별로 배부를 해서 끈을 꽉 잡고 길을 가도록 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끼도록 했다. 4시 반부터 한 시간여에 걸쳐 결의를 다지는 훈련을 홀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버섯전골로 먹었다. 젊은 혈기로 땀을 제법 흘린 후라서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홀에 6시30분에 집결해서 9시30분까지 3시간에 걸쳐서 ‘180초를 잡아라’ 라는 제목 하에 과제해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거의 진을 다 소모할 만큼 힘든 일이었고 과업이었고 과제해결이었다. 작년에는 34킬로미터였는데 올해는 23킬로미터 정도로 거리가 한층 단축되어 있었다. 9시30분에 버스가 호텔을 출발했다. 버스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꼬불꼬불한 산길이어서 조심스럽게 30여분을 달렸다. 기사는 진고개 정상을 넘어야했기에 맑은 날씨였음에도 산길을 조심스럽게 운행해 갔다. 맑은 날씨였음에도 섣불리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도로사정이 원만하지는 못하였다. 좌우양쪽으로는 1미터정도의 눈들이 쌓여져 있었다. 얼마 전 내린 눈을 치워놓은 덕택이었다. 종주훈련 출발지에 드디어 도착이 되었다. 일단은 준비된 야식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지 4시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식욕이 왕성하진 않았지만 밤새워 길을 가야하는 극기 훈련이니 만큼 든든히 속을 채워두어야 했다. 오대산 휴게소식당이었다. 훈련지도자들은 라면으로 요기를 했다. 두부전골이었다. 10시50분에 집결이 되었다. 훈련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각 조별로 한마음이라는 글자를 사람이 모여 만드는 것으로 출발순서가 결정되었다. 1조의 단결력이 좋아 첫번째가 되었다. 교수요원들이 먼저 출발했다. 길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대열과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걸은 후에 산길로 접어들었다. 40여분을 오른 후에 잠시 휴식을 취했다. 교육생들은 젊은 혈기였으므로 특별한 문제는 없어보였다. 뒤에는 앰뷸런스가 따라오고 있었고 봉고차도 뒤따랐다. 각조별로 훈련지도자들이 리드를 해나갔다. 가끔씩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젊은 사람의 걷는 속도를 따를 수가 없을 듯해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교직원들은 먼저 출발을 했다. 깜깜한 밤중이었고 달도 없었다. 별빛만 초롱초롱했다. 정상까지는 순조롭게 올라갈 수 있었다. 정상을 조금 내려간 곳에서 제1포스트가 있었다. 잠깐 쉬었다가 대열이 정비되기 전에 먼저 출발을 했다. 내려가는 길은 순조로웠지만 응달이어서 얼음이 얼어 있는 미끄러운 길이었다.
서로간의 일상사들을 얘기하며 내려왔다. 여유로운 발걸음이었고 자유로웠다. 자유분방한 가운데 순조로운 산행길로 보아도 좋을 듯 했다. 거의 산을 다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났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사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 적막감을 더해주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한장면처럼 주인공과 동이가 밤길을 가는 것과 흡사했다. 중간중간에 물을 먹기도 했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여러 가지 길이 나타날 때면 어느 쪽인지를 가늠하기도 했다. 한번 지나가본 길이었음에도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새롭게 들어선 집들도 꽤 있었다. 찻길이었지만 거의 지나다니는 통행이 없었다. 상점주인의 말에 의하면 1년에 이만명이 다녀간다고 했다. 건수로 200여건이 된다고 했다. 종주훈련 코스로는 이쪽 말고 충남의 대호방조제 쪽도 있기는 하다고 했다. 그곳은 평지요 논두렁길을 하염없이 가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오대산 종주코스는 산만 넘으면 바람도 도움을 받아가며 걸을 수 있고 일출을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대호방조제 쪽은 일몰을 보고 출발해서 아침일출까지의 여정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기온이 내려가는 면에서는 오히려 강원도 쪽이 그래도 편하고 나은 편이라고 했다. 영하20까지 내려가면 도저히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무리일 정도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하염없이 걸음을 걸었다. 미리 나누어준 핫팩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손도 시려웠고 얼굴도 차가워졌다. 그런 때면 핫팩으로 손을 문지르거나 얼굴에 갖다 댐으로써 임시방편의 응급조치를 했다. 북두칠성이 저 멀리 보이기도 했고 카시오페아 별자리도 선명했다. 한 팀장은 무릎에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모두들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었다. 제2포스트에서는 오뎅이 준비되어 있었다. 꼬치로 400개가 준비되었고 오랜 시간동안 끓여놓고 있었다. 간장이나 그런 것은 없었다. 부산어묵이라고 했는데 진위는 알 길이 없었다. 트럭위에 가스불을 피워 큰 냄비에 어묵을 끓이고 있었고 연기의 집적을 위해 비닐로 감싸놓았다가 빼내기도 했다. 교육생들은 오랜 추위에 떨었던 터였기에 모두들 맛있게 먹었으며 국물이 한결 추위를 녹여주었다. 한 여직원은 소화불량이 심해 응급차를 타기도 했다. 평지가 계속되는 듯 했지만 평탄한 길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멀었다. 제법 오르막 길도 있었고 간간히 얼음이 얼어 있거나 눈이 쌓여져있어 미끄러웠다. 살금살금 걸음을 걸어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봉고차는 미끄러운 고갯길을 올라올 수 없어 우회로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집결지는 어성전 삼거리였다. 그곳까지 도착한 시간이 거의 새벽 6시였다. 도착할 때쯤해서는 얼굴과 손이 얼어있는 듯했다. 버스는 6시10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6시30분에 출발을 했다. 바로 동해안 하조대입구까지 갔다. 7시정도에 도착했다. 일출예정시간은 7시20분이었다. 학생장으로부터 훈련종료 결과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각오와 다짐을 선서하는 식으로 했다. 일장훈시가 있었다. “직원여러분 차가운 날씨 속에서 무박이일간 오대산 종주훈련을 하느라 대단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도전을 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취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이 여러분의 생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이런 종주훈련의 도전과 성취를 생각하고 되살려본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입직원여러분에게 당부말씀 몇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결혼입니다. 결혼은 빨리하십시오. 생활의 안정을 위해 빨리 결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두르십시오. 둘째는 집입니다. 집은 빨리 장만하십시오. 그래야 빨리 기반을 잡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차입니다. 차는 되도록 늦게 장만하세요. 차는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만큼 천천히 어느 정도 기반이 되고 안정이 된 다음에 차를 가지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부모님께 용돈 드리지 말라입니다. 용돈을 드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봉급을 알뜰하게 꾸려나가고 운용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보다 먼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아껴두고 나중에 어느 정도 정착이 된 다음 주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월급의 선물을 사드리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출을 줄이고 일정규모이상의 자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공부하라 입니다. 입사도 했으니 이제는 공부에서 손을 떼도 상관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이제부터 평생토록 자신의 전공부분이든 업무부분이든 교양과 상식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여서는 어떠한 성취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여러분 잘하실 수 있겠죠.” 일장훈시를 마치고 직원들은 풍선을 하나씩 받아들고 하조대 팔각정으로 올라갔다. 여명이었다. 일반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고 모여 있었다. 카메라를 거치해 놓기도 했다. 파이팅을 외치고 풍선에 꿈을 담아 날려 보냈다. 각 조별로 기념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일출은 조금 후 이루어졌다. 구름위로 찬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팔각정에서 전체인원이 참가한 기념사진촬영이 있었다. 그리고 식사장소로 이동해 아침을 먹었다. 건배를 제의했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최고야, 우리가 남이가.”를 건배구호로 했다. 꿀맛 같은 아침식사였다. 아침에 한 잔의 술로 무박이일의 고생을 말끔히 씻어내었다. 마무리를 하고 버스에 승차해서 출발했다. 9시경이었다. 교육원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일일이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모두들 식당으로가 점심을 먹었다. 누군가가 얘기했었다.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자기자신을 극복하는 극기가 더 힘든것이라고 했다. 비록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고 있긴 했지만 어려운 극기 훈련을 해낸 성취감이 얼굴에 흐뭇한 미소로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