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어느 휴일날 오후 늦은 시각에 눈이 얼어 빙판길이 되어 있는 동네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지척거리의 목욕탕으로 갔다. 두 아들이 모두 따로 나가 있다보니 같이 가는 것도 오래전 옛일이 되어버렸다. 목욕가방이라 해도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것처럼 많은 용품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칫솔, 면도기, 샴프 몸세정제, 그리고 이태리 타월이 전부다. 찜질방을 겸하고 있는 24시간 목욕탕이다보니 언제나 사람이 인산인해로 붐비는 곳이었다. 1층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티켓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가면 남탕이 있다. 그곳에서 신발장열쇠와 옷장열쇠를 교환하게된다. 그 카운터의 바로 옆에는 조그만 의자를 두 개 놓고 운영되는 이발소가 있다. 본래 출입문 입구에는 구두닦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옷장키로 옷장을 열고 옷을 벗고 탕안으로 들어갔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맨먼저 몸을 씻을 만한 좌석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켠에서는 일하시는 분이 열심히 다른사람의 몸을 씻어주고 있었다. 사우나 실이 두군데가 있고 중앙회 온탕과 열탕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편에 냉탕과 폭포수를 맞을 수 있게 설계가 되어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가 원시상태 그대로 다 드러내 놓고 험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참 몸을 씻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탕의 가장자리 부근에 한 어르신이 넘어져 있었다. 좌로 넘어진 채였고 아마도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뒤쪽에서 본 바에 의하면 흉물스럽게 넘어질 때의 갑작스러운 충격때문이었던지 배변이 일어난 채로였다. 급히 종업원을 불러 상황설명을 했다. 그러니 종업원은 몸을 잡아 흔들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재촉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후 그분의 의식이 돌아온 듯했다. 바깥에서는 급하게 119를 호출해놓은 상황이었다. 5분여만의 시간이 흐른 후 119 대원 세명이 들이닥쳤다. 어르신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듯 멍해 보였다. 다급하게 119대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신발도 신은 채였기에 종사원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종용을 했다. 어르신은 종업원의 권유에 의해 탕바깥으로 나왔다. 잠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의식은 돌아왔지만 제대로의 상황파악이 안되는 듯 보였다. 이마 한쪽에는 넘어질 때 생긴 찰과상으로 피멍이 들어 있었다. 차분히 정신상태를 확인하게 위해 이것저것 물어 보는 대원들에게 어르신은 어느정도는 답변을 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복장을 갖춘 후에는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목욕탕을 떠났다. 얼핏 보기로는 일흔에 가까운 연세로 여겨졌다. 혼자 다니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였는데 이렇게 일을 당하고 보니 홀로 다니는 것도 주의를 해야할 듯했다. 목욕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1924년 평양이 최초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해에 서울에 들어왔다고 한다. 대중목욕탕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초창기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을 했다고 한다. 한창 잘나가던 때에는 찜질방으로 화해 목욕탕의 문화가 단순히 목욕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풀고 스트레스까지 날려버리는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듯하다. 한창 찜질방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시들해진 듯하다. 대신 맛사지나 안마 등이 도입된 듯했다.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보면 변변한 목욕탕도 없었던 동네에 살았던 터였기에 항상 밤늦은 시각에 부엌이나 한적한 곳에 큰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물을 넣어놓고 어머니의 손길에 의해 목욕을 하던 때도 있었던 듯하다.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을 다녔던 기억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렇게 바쁘게 세상을 산 탓이 아니었을까하고 기억이 된다. 대부분이 형제들과 같이 갔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은 한번씩 시골을 가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목욕탕을 가는 것이 다반사다. 명절이나 가야 한번 목욕탕을 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던 듯하고 그것은 그시절의 가장 큰 호사가 아니었던가 여겨지기도 했다. 자식들이 어릴 때에는 꼭 휴일마다 데리고 가서 씻기고 입히고 하면서 곤욕을 치르고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때를 밀지 않겠다고 억지를 쓰면 겨우 달래고 군것질꺼리로 사탕발림을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되어져 버렸다. 머리가 커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자간에 목욕탕을 같이 가는 것도 멋쩍어져 버렸다. 요즘에는 목욕탕이 서민들의 휴일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근무지 인근에는 건강나라라고 해서 자칭 동양최대의 찜질방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여러곳의 찜질방이 마련되어져 있고 식당까지 구비되어 있으며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각종 세제 등을 판매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것들도 여기저기에 비치되어져 있기도 하다. 요즘은 피부를 관리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너도나도 피부에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려고 하는 세태가 되어가고 있다. 목욕탕은 언제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항상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그 본래모습 그대로 승승장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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