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단상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다.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그 지인이 전한 북해도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북해도에는 본래 아이누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곳에 일본 본토의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일본에 속하게 되었다. 명치 시대의 일본에서는 북해도의 문명화나 개화를 위해 선진화된 인물을 위촉해 오고자 했다. 그런 속에서 명망 있는 이를 초빙해오게 되었다. 그가 일본의 북해도 발전에 초석을 놓은 윌리엄. S. 클라크 박사라고 한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는데 홋카이도 대학 초대 총장으로 초빙되었다. 1876년부터 77년까지 총장으로 지내면서 홋카이도의 문명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초기에 학교규칙을 만든다고 하니 그런 것은 필요 없고 ‘신사가 되라’는 한가지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술에 취해 학교에서 꼴불견의 모습이 되었을 때에도 자신이 가져온 양주를 모두 교실로 옮겨놓고 금주를 선언하기도 했다. 맨 마지막에 이임하는 자리에서도 다음과 같은 연설로 유명해진 일화를 남겼다.
「'소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만의 야망이어선 안 된다. 이기적인 것만을 구하는 야망이어선 안 된다. 명성과 같은 허황한 것을 위한 야망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그런….'」
홋카이도 대학에는 그분의 흉상이 남아있으며 아직도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삿보르시의 히츠지가오카 전망대에는 그분의 전신상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팔을 쭉 뻗은 모습의 동상이다. 그리고 그의 동상과 흉상에는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홋카이도에는 이런 연유로 해서 일본의 가장 서구화된 부분일 수도 있고 빠르게 선진화가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었던 때에도 클라크 박사의 동상에는 전혀 위해가 가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경우에는 한창 인천 앞바다에 세워진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해야 하니 마니 하는 논란이 있는 것과는 아주 대비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북해도(훗카이도)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 혹시 눈 축제, 설경 등 겨울 이미지 만으로만 고정되어 있나? 그렇다면 이맘때 북해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 일본 북방의 섬 북해도의 광대한 들판에 서면, 이제껏 가졌던 북해도에 대한 관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에 자작나무 우거진 너른 벌판과 그 위를 가득 메운 감자 꽃, 그리고 청량한 공기가 대신 들어찬다.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 떠나는 북해도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시원함’에 있다. 북해도 서부나 중부 일부 지역은 한여름이면 간혹 30도에 육박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북해도의 여름철 기운은 20도 중반을 넘지 않고, 동남쪽의 습지인 구시로(釧路) 습원 일대는 여름철에도 최고기온이 20도를 밑도는 날이 더 많다. 인구는 5백 7십만 명이라고 한다. 일본국토의 오분의 일이라고 한다. 삿보르시에 백팔십만 명이 산다고 한다. 삿보르 동계올림픽은 1972년에 개최되었다. 우리나라가 2018년에 치르게 될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과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홋카이도 대학에는 클라크 박사가 오면서 가져온 시계가 벽에 부착되어 있는데 120년 동안 고장이 난적이 없다고 한다. 여름 장마가 없고 습도도 낮아, 더위에 지친 일본인들도 최고의 여름휴가지로 북해도 여행을 꼽는다. 그 지인은 낙농과 관련된 일을 하였었는데 이로 인해 북해도를 조만간에 또 방문하게 된다고 했다. 이번으로 총 42번째의 방문이라고 하니 수도 없이 왔다갔다 온 교류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초창기에는 상당히 애로가 있었다. 서울에서 바로 가는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던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호락호락 갈 수가 없었다. 먼저 동경으로 가서 나리타공항에서 내려 도심으로 가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삿보르를 가는 비행편으로 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인 손자를 홀로 홋카이도로 보냈다고 한다. 열흘간의 일정으로 그곳을 둘러보고 오게 했다고 한다. 일만 엔의 용돈도 줘 보냈는데 지인들에게 안내를 부탁한 탓에 일만 엔을 그대로 도로 가지고 왔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의 아들은 미국을 고등학교 시절에 방문했는데 한 달여 동안에 완전히 변해버려 공부에 더 집중을 못 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해서 돌아왔다는 얘기를 했다. 미국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자신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이 성숙한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다가간 것이 너무 성급했고 결국 방종으로 치닫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가고 선진문물을 접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심사숙고해서 외국에도 가야 할 것이다. 제대로 목적에 적합한 여행을 하고 충분한 준비를 해서 여행을 하고 선진문물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제대로 된 국외여행을 한 사례도 있었다. 작은아들의 친구였었는데 중학생 시절에 유럽을 여행하고 와서 제대로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열중하게 되었고 특목고에 진학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는 것이다. 외국을 가보니 외국어를 공부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고 보통의 공부로는 선진국에 따라잡을 수 없음을 느꼈던 것이었다. 참으로 유효적절했던 국외여행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을 제공한 셈이 되었다. 아주 오래된 얘기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 마르코폴라라는 서양 여행가에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중 도둑에게 잡혀 그 소굴로 잡혀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도둑의 소굴에는 세계명작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책들을 읽고도 도둑질을 한단 말이오”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도둑의 두목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나쁜 것만 배우는 사람이라오” 마르코 폴로가 할말을 잃었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져감에 따라 국외여행이 일상사가 될만큼 외국여행은 그 선호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언젠가는 한번쯤 북해도를 여행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무지막지한 혹한이 엄습하고 자연환경이 열악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홋카이도는 정말 사람들이 생활하고 지내기가 보통의 노력으로는 힘든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위기극복의 힘은 단조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본보기가 되리라. 세상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하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도 한다. 새옹지마는 세상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좋은 일로 바뀌고 슬펐던 것이 다시 또 기쁨으로 화하기도 하는 등 굴곡진 삶의 행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새옹득실(塞翁得失)·새옹화복(塞翁禍福) 또는 단순히 새옹마(塞翁馬)라고도 한다. 새옹이란 새상(塞上:북쪽 국경)에 사는 늙은이란 뜻이다.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로,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위로를 하니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역시나 도망갔던 말이 새로운 말 한마리를 더 데리고 왔다. 이번에는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자 전쟁이 터졌다. 그래서 성한 사람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 죽었는데 이집 부자는 다리가 부러진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상사는 어떻게 변화되고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반면 고진감래는 고생이 다하면 기쁨이 있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철칙을 교훈적으로 일러주는 것이다. 과연 세상은 그렇게 고전의 얘기대로 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철칙이 있을까. 보통사람이 세상사의 모든 부분을 다 통찰할 수는 없지만, 어느 만큼은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평탄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한두 번쯤의 위기와 어려움은 어쩔 수 없이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도 더욱 척박하고 어려움 속에서 삶을 영위해 온 이들을 생각한다면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진정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성취해 나가도록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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