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기행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짐을 꾸려서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직원으로부터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확인전화가 왔다. 공항에 도착하니 7시 10분전이었다. 약속시간에 10분 일찍 도착된 셈이었다. 택시비가 만오천원이었다. 사무소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권을 들고 탑승수속 절차를 밟으러 갔다. 비행출발시각은 7시30분이어서 그런대로 여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안성에 모여 전세버스로 온 것이었고 일부직원만 서울에서 공항으로 온 것이었다. 모두들 화려하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추계행사로 이 제주기행이 오래전부터 준비되고 계획된 것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 50여분의 비행 후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척이나 좋은 날씨였다. 일주일전에 태풍 산바가 지나갔던 것에 비하면 정말 화창한 가을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먼저 전세버스를 타고 서귀포의 외돌개로 갔다. 운전기사 양반이 무척이나 친절하게도 가이드까지 겸해 안내를 해주었다. 오늘의 일정은 외돌개에서 월평마을까지의 올레길 7코스를 걷는 것이다. 중간에 식사를 하고 시간은 너댓 시간이 걸리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퀴즈를 내었다. 장인, 장모를 제주도 사투리로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정답은 가지어멍, 가시아방이 정답이란다. 웃고 즐기고 떠드는 가운데 50여분을 달려 외돌개에 도착을 했다. 해변의 경치가 장관이었다. 바다 속에 외롭게 서있는 바위가 하나 보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도 찍고 경관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레길의 걷기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을 걸은 후 점심식사장소에 도착했다. 길을 잘못 알아 한참을 지나쳐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미정이라는 곳이었다. 메뉴는 옥돔구이에 미역국, 돼지고기 삶은 것 등이었다. 막걸리도 조껍데기 술이라는 것으로 해서 한잔씩 나누었다. 모 교수는 미역국 세 그릇에 밥 두 공기를 비우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올레길의 걷기가 시작되었다. 비옷 등은 미리 개별적으로 나누어주었다. 3시간쯤을 걸었을 때에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기도 그랬고 그냥 걷기도 그런 어중간한 날씨였다. 일부는 비옷을 입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그냥 걷기도 했다. 바닷가를 죽 따라서 걷는 길이어서 곳곳이 바위였고 평상시 길을 걷는 것과는 달리 여러 가지의 난코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주치는 인파도 제법 있었고 다른 관광객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한참을 걷고 난 후에 도착한 곳이 강정마을이었다. 경찰들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특이하게도 여자전경들도 눈에 보였다. 시위대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7명 내지 8명 수준이었다. 벽면에는 갖가지 반대문구가 어지럽게 쓰여 있었다. 제주해군기지 설립 반대 시위였다. 구속된 이들의 이름과 구속기간이 적혀 있기도 했다. 공사는 별무리 없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마지막 도착지는 월평마을이라는 곳이었다. 본래 약속된 곳은 약천사라는 절이었지만 기사가 미리 일행의 피로 정도를 감안해서 월평마을에 버스를 정차해 두었다. 30분가량이 절약된 셈이었다. 비는 그쳐 있었다. 일행 전체가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거의 30여명 수준이었다. 모두 다 완주한 것이 이채로웠다.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서 러브랜드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세 곳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 러브랜드가 가장 구경할만 하다고 했다. 여러 가지 요상스러운 자세와 포즈로 된 입상의 조각상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실내에 전시된 곳에서는 기념품들을 판매하기도 했다. 곳곳에는 기계장치로 된 것이 있어 그것을 직접 돌려볼 수 있도록 해 놓기도 했다. 자동차도 한 대 놓여있었는데 호기심이 일어 내부를 들여다보았으나 별게 없었다. 외국인들도 관광객들의 틈 속에 보이기도 했다. 버스로 저녁식사 장소인 제주시의 흑돈가로 갔다.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어제 과음이 있었던 터라 최대한 조신하게 절제를 했다. 그리고 다음 숙소인 OO호텔로 이동을 했다. 여장을 풀고 휴식에 들어갔다. 방에는 3인씩 배정이 되었다. 세면을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의 일정이 숨 가쁘게 소화되었고 진행되었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7시부터였다. 호텔의 지하에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찬은 간단했고 단순했다. 미트볼이 그나마 먹을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호텔 입구로 나가 환담을 하다 출발준비를 하러 호실로 올라갔다. 출발예정시각은 8시 30분이었다. 정시에 정확하게 출발이 되었다. 기사의 칭찬이 이어졌다. 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한라산 1100도로를 지나게 되고 1100고지 정상부근에서 잠시 휴식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천제연 폭포와 여미지 식물원을 관람하게 된다고 했다. 그다음으로는 중식식당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성산 일출봉을 올라간 다음 공항으로 가서 출발하면 오늘의 제주기행은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1100고지에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고상돈 산악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단체기념사진을 그 앞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고지대 습지생태계를 둘러보았다. 그곳의 관람이 끝난 후 버스에 다시 올랐다. 길이 무난하질 않고 경사가 심했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다. 서귀포의 천제연 폭포에 도착을 했다. 제주3대폭포의 하나로 제1,제2, 제3의 폭포로 이어져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렸던 탓인지 폭포의 물줄기가 시원했다. 물보라가 일었고 물안개까지 피어났다. 사진촬영을 했고 경관에 넋이 나갔다. 3폭포까지를 다 관람한 후 다시 올라와 옆에 있는 여미지 식물원으로 갔다. 89년에 개장을 했다고 했다. 90년에 승진을 해서 발령받은 곳이 남제주 군지부 였다. 1년 동안을 제주에서 살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한라산을 세 번 올랐는데 겨울의 한라산은 대단한 장관을 펼쳐보였다. 남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22년이 흘러 2000년에 한번 온 적이 있었다. 여미지 식물원에는 5개의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코끼리 열차를 타고 외부정원을 돌았다. 한국, 일본, 이태리, 프랑스 등의 정원이 있었다. 곳곳에 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곳의 관광이 끝나고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제주미향이라는 곳이었다. 남쪽바다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갈치회에 갈치조림까지 푸짐하게 상이 차려졌다. 식욕은 싱싱한 해산물이 구미를 돋웠다. 식사 후에는 정방폭포를 보았다. 육지에서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였다. 중국인까지 관광객이 무척이나 붐볐다. 다음코스는 성산 일출봉이었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모두들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졌다. 선탑을 한 상황이라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도로 갓길에는 자전거도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간간히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스쳐지나갔다. 효돈, 표선, 남원, 등을 지나 성산이 나왔다. 주차장에 내려서 올려다보니 일출봉이 보였다. 30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했고 1시간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안내방송은 계속 중국어, 일본어로 나오고 있었고 대부분의 관광객이 중국인이었다. 간혹 내지인과 일본인도 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90여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했다. 안쪽은 분지로 내려가 볼 수는 없었다. 옆으로 보이는 곳이 우도라고 했다.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곧바로 하산을 했다. 이로써 공식적인 제주기행은 끝이 났다. 이제는 우리에게보다 중국인이나 세계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고 하니 계속적으로 유명관광지로 발돋움 하리라 여겨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인 반값할인이라는 관광객 유치정책에 내국인을 홀대하는 듯 비쳐 없잖아 서운함이 생겼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모처럼 즐겁고 흥겨웠던 제주기행이었고 언제 또다시 이런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