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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주홍글자

by 자한형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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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얼마 전에 도올의 중용강의를 듣는 중에 주홍글자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건 중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 여자와 딸 펄 그리고 의사(칠링워스) 목사(딤스데일) 이렇게 4사람이 엮어가는 갈등과 반목 인간의 깊은 곳을 파헤친 역작이라고 했다. 호돈이라는 작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헤스트 프린이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딸을 가슴에 안고 교수대에 올라 세 시간을 서있는 것으로 해서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가슴에 A자의 주홍글자를 새긴 채 살도록 형을 받는다. 그녀는 끝내 자신의 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기를 거부하고 주어진 운명 속에서 삯바느질을 해가며 굳굳하게 살아간다. 7년의 세월이 흐르고 목사는 더욱더 건강이 악화되고 죄책감에 고통을 받고 결국은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헤스트 프린은 목사를 설득해서 딸과 함께 다시 영국으로 가자고 종용한다. 의사는 펄의 아버지가 목사임을 알게 되고 끊임없이 목사를 괴롭혀간다. 그 배에 타려고 하는 사람 중에는 의사도 끼여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목사는 마지막 순간 교수대 위로 헤스트 프린과 딸을 올려놓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고백을 한다. 이 여자를 사랑한 사람은 자기였으며 딸의 아버지가 자기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목사는 죄책감에 시달려 했고 가슴에 주홍글자를 갖고 있었다. 헤스트는 점점 자신을 성스럽게 만들어 갔고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글자도 그 의미를 천사에로까지 변환시켰다. 목사는 결국 병사하게 되고 헤스트는 딸을 키우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의사도 얼마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자신의 전 재산을 펄에게 상속하게 된다. 간음하지마라는 성경의 계명을 어긴 이에게 초기 청교도 사회가 어떻게 단죄하였고 그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그 질곡속에서의 삶을 영위했는가를 실감나게 묘사했던 것이었다. 95년에 영화화된 내용은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데미무어가 맡았었다. 공포와 박해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에 살게 된 헤스트 프린은 외딴곳에 집을 장만하고 남편보다 먼저 와서 정착하게 되는 과정에서 목사와 정분이 나게 되고 성직자와의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이 죄이면서 죄의 값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한 가운데 불륜에 빠져든다. 그리고 재판을 받게 되고 형벌을 받게 된다. 끊임없이 목사와 소통하면서도 끝내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마녀로 몰리기도 하고 펄의 몸에서는 마녀의 자국을 찾으려는 목사의 흉계에 의해 마녀사냥식의 재판을 받기도 한다. 인디언들과의 반목에서 목사는 그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려했고 조정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마녀로 몰아 사냥하려던 상황에서 목사는 진실을 고백하고 자신이 단두대에 올라선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인디언들이 나타나 그를 구하게 되고 세 사람은 신세계로 멋지게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들이 죽게 되지만 펄은 자신의 생을 구가하게 된다. 펄의 고백처럼 얘기는 전개되고 종말을 고하게 된다.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하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가. 사회라는 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인간은 사회 속에서 죄를 짓는 것과 벌을 받는 것에서 그 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던 듯하다. 순수하게 서로 사랑한 것 외는 다른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에서 사회제도나 법 또는 단죄라는 것은 공동의 선과 목적에 희생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듯했다. 철없던 시절에 결혼한 불한당 같은 놈과의 인연이 족쇄가 되어 그녀를 올가미 씌우고 평생을 고역 속에 지내게 했던 굴레였던 것 같았다. 요즘으로 이러한 상황을 재구성한다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듯하다. 이제는 우리사회도 간통이라는 것이 제대로 된 단죄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 듯해 보이고 이제는 공공연해진 느낌도 많은 것 같다. 개인적인 부분이고 감정적인 것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다.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서로의 뜻이 맞아 애정을 나눈 것이라면 그것은 당사자 등이 해결해야할 부분인 듯이 여겨진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보호되어야하고 지켜주어야 할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형벌까지 가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듯하다. 깨끗하게 제대로 된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바람직한 방향에로의 모색과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선진국에서도 사문화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주홍글자에서처럼 형식적인 부부관계에 있는 것이 제대로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보호되어져야할 것은 과연 어떤 것이냐고 의심하는 것이 당연시 될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그들은 남편이 죽은 것으로 알고 그렇게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면 그것에 어떻게 죄악시하고 형벌을 가할 수 있겠는가. 기준이라든가 잣대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죄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작품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이에게서 감동을 주었고 그 죄를 속죄하는 가운데 인간의 참모습을 구현해 가고자 했던 것에서 찬사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적으로 죄책감을 가졌고 반성하고 후회하고자 했던 목사로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 단죄되었고 고통 받았던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결코 세상사에서 비밀이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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