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할아버지의 도전
간혹 길을 가다 보면 KFC 치킨집 옆을 지날 때가 있다. 그러면 그곳에는 꼭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아주 밝고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이분이 1009번째의 기적이라는 것을 이룬 커넬 샌더스라는 분이다. 그는 1890년 인디아나 주 헬리빌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장남이었다. 6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공장에 다니는 동안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가장(家長)이 되었다. 7살이 되자 웬만한 요리는 다할 줄 알게 되었다. 7살이 되어 호밀빵을 만들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맛이 있었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엄마가 일하는 공장에 갖고 가서 맛을 보였다. 모두들 감탄(感歎)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대접하는 것에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단다. 그의 인생(人生)은 기구했다. 12살에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집을 나왔다. 농장일도 했었고 쿠바에는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철도회사, 페인트공, 보험외판원, 타이어영업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을 전전(轉轉)했다. 1920년 29세 때에 니콜라스 빌 주유소라는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유리창도 닦아주고 세차(洗車)도 해주면서 주유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그러던 차에 1929년도에 대공황이 몰아치자 결국은 주유소를 관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30년에 대사 코빈이라는 곳에 샌드스 카페를 차리고 영업(營業)을 해나갔다. 아주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상황이 되어 1935년에는 주지사에게서 명예대령으로 추앙(推仰)되기도 했다. 그것은 작위를 주는 것이라든가, 기사칭호를 명예직으로 부여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1940년도에는 레스토랑을 마련하였고 142석이나 되는 대규모였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손님이 격감하게 되고 문을 닫게 되었다. 1951년 그의 나이 62세였다. 부인과도 이혼했다. 남은 것은 사회보장금으로 나온 105달러와 압력솥 그리고 낡은 트럭 한 대가 전재산(全財産)이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11가지의 닭요리 비법을 팔아보기로 했다. 통상 일상생활에서 잠은 트럭에서 자고 세면 등은 고속도로 또는 국도변 휴게소의 공동 화장실에서 해결했다. 2년여에 걸쳐 1008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과연 이것을 팔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懷疑)가 끝없이 일었으나 그는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도전했다. 마지막 1009번째 그의 요리법을 사겠다는 식당이 나타났다. 그의 옛친구인 피터 하먼이라는 이였다. 닭한마리에 4센트를 주기로 했다. KFC 1호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0여세에 창업(創業)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몇 년후 KFC 는 프랜차이즈점의 효시(嚆矢)가 되었고 55년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이후 그는 그것을 팔았고 75세에 은퇴하고 90세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동기유발의 유명한 동영상 자료로 접하게 되는 것이 그의 1009번째의 기적(奇蹟)이라는 것이었다. 5분정도 소요되는 것에 함축적으로 그의 일생이 담겨 있다.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진력(盡力)을 다했던 것에서 감동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혈혈단신(孑孑單身)의 몸으로 아무런 가진 것도 없이 그렇게 굳굳하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이에게서 진한 감동이 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남긴 말을 음미해보자.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나는 녹이 슬어 사라지기보다 다 닳아 빠진 후 없어지리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 중에 으뜸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없으면 죽어있는 시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생에의 의지가 없을 때 이 1009번째의 기적을 보면 생에 대한 의지를 일깨울 수가 있을 것이다. 희망을 볼 수 있고 의지를 불태울 수 있다. 그렇게 무일푼으로 나락(奈落)에 떨어졌던 60대의 할아버지도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성취를 이끌어 냈는데 이보다 더 나은 조건과 상황에 처해진 이로서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를 반성(反省) 해야(反省) 할 것이다. 어떤 것을 뛰어넘어 무엇보다 살아야겠다는 확신과 의지를 바탕으로 할 때 만이 인생은 가치가 존중되는 것이고 보람된 인간의 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들려오는 커넬 샌더스의 저주에 관한 얘기가 전해진다. 미 프로 야구에 갖가지 저주가 있다. ‘염소의 저주’라는 것도 있고 ‘밤비노의 저주’라는 것도 있다. 염소의 저주라는 것은 한 시카고 컵스의 팬이 염소를 데리고 야구장에 입장하려는 것을 거절당하자 향후 이 구장에서는 월드시리즈가 결코 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데서 유래(由來)되었다고 한다. 밤비노의 저주는 베이비 루스가 뉴욕 양키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것에 빗대어 결코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데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본 프로야구에 이 ‘커넬 샌더스의 저주’가 있다. 오사카를 근거지로 하는 한신 타이거스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이 1985년에 제팬시리즈를 우승했다. 21년만의 우승이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팬들은 몰려다니며 그 기쁨을 만끽했다. 오사카에는 우리로 치면 먹자골목 같은 곳으로 보톰보리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KFC 체인점이 있었다. 그곳에는 당연히 그의 동상이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오사카를 가로지르는 조그만 강이 보톰보리라고 불렸다. 이곳에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우승의 세리머니의 하나로 여겨졌었다. 팬들은 그 동상을 들고 다리위로 가서 같이 뛰어내렸다. 그때 당시의 최강의 용병 타자 랜디 바스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이 선수가 콧수염을 길러 커넬 샌더스와 닮았다는 것에서 그 동상을 들고 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003년과 2005년에 리그 우승을 했지만 제팬시리즈의 우승은 물 건너갔다.. 그래서 커넬스의 저주가 생겨났다. 사방으로 그 동상을 건져 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건지지를 못했단다. 그러던 차에 얼마전인 2009년에 그것을 건졌고 복원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안경이라든가, 손, 지팡이 등은 없어지고 말았다. 아무튼 KFC,할아버지인 커넬 샌더스는 아직도 건재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고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어려운 상황과 여건하에서 자랐고 일생을 보냈던 그가 60을 넘긴 나이에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바를 성취시켰고 그로써 기적을 일궈냈다는 것에서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감동적인 얘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삶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불씨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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