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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을 향한 여정

경영의 신

by 자한형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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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

 

 

기업이나 사업 등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을 경영이라고 한다. 그런 경영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이를 일러 경영의 신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로 치면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정도라 할 것이다. 일본으로 치면 마쓰시다 고노스께, 혼다 소이치로, 가즈모리 가즈오, 손정의가 있고 미국에는 카네기, 록펠러, 포드가 있다. 책으로 되어 있는 경영의 신은 1권이 한국 2권이 일본 3권이 미국의 경영의 신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미쓰시다 고노스께에 대해서 접근해 보려고 한다. 한국으로 보면 삼성 현대 LG를 창업한 이들이다. 일본을 보면 마쓰시다 전기를 건립한 마쓰시다 고노스께, 그리고 혼다 자동차를 건립한 혼다 소이치로 그리고 부도직전의 기업에 들어간 가즈모리 가즈오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정혁준이라는 이었다. 마쓰시다 고노스께를 선택한 것은 그들 중 세계를 바꾼 지도자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인을 꼽고 있었다.

10인에는 등소평, 빌리 그랜트() , 넬슨 만델라, 프랭크린 루즈벨트, 룰라 다 실바, 타르야 할로넨,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허브 켈로허였다. 등소평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인물이었다. 빌리 그랜트는 독일의 통일을 이룬 이였고 넬슨 만넬라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아프리카의 등불을 밝힌 인물이었다. 루즈벨트는 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치적을 이뤘고 대공황을 극복하게 하였으며 미국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든 인물이었다. 룰라는 브라질의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타르야 할로넨은 스웨덴의 대통령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훌륭한 인물이었다. 빌 게이츠는 세계최고의 부자로서 또한 최고의 기부를 행한 이로 유명하며 오프라 윈프리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있고 허프 캘로허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EO로서 펀경영을 이뤄낸 탁월한 경영자로 이름이 나있는 지도자이다. 마쓰시다 고노스께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을 받았으면서도 세계를 바꾼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연구해 보기로 했다. 그는 1984년 와카야마시 와사무라에서 태어났다. 8남매의 막내였다. 그는 가난했고 학력도 보잘 것 없었다. 그것에 더불어 건강하지도 못했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형제자매들은 30세를 넘기지 못했다. 그가 11살이던 때에 오사카에 화로가게 점원으로 가게 된다. 그러다가 자전거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6년 후 17세가 되었을 때 전등회사에서도 일을 하게 된다. 1917년 회사를 관두고 소켓을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1924년에 자전거 램프를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전기다리미를 생산했다. 1929년에는 미국의 대공황 등으로 인해 일본에도 불황이 찾아왔다. 모든 공장이 인력감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명도 해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매일 반일근무를 실시한다. 생산량은 반으로 줄인다. 단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를 줄여라. 전 직원이 솔선해서 발 벗고 나섰다. 2개월 만에 재고는 다 소진되었다. 193255일 창업한 지14년이 지났다. 그런 때에 창립기념식을 했다. 그는 그때 기업의 사명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날 길을 가고 있는 마쓰시다에게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어느 여행자 같은 이가 손수레에 잔뜩 짐을 싣고 길을 가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 그가 수도가로 가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보고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자기 회사 제품을 마음껏 사용하게 해서 편리함을 얻고 만족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기업인의 사명이라는 것이었다. 물이나 공기처럼 그렇게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 같은 그런 제품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활용하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얼마 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이라는 것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점령군(GHQ)로부터 전쟁 중에 군수물자 등을 생산한 기업인 등을 추방하게 되는 공직 추방의 대상자에 오르게 된다. 그러자 노동조합에서 전 직원의 93%가 서명한 서명부를 제출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는 추방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받게 된다. 대공황 때에 종업원을 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종업원이 사주를 구해준 것이었다. 1956년에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향후 5년 내에 4배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5개년 계획의 목표액 800억엔을 4년 만에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것은 대중의 바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1965년에 마쓰시다는 주5일제를 실현시켰다. 1964년 아타미의 뉴후지야 호텔에서 대리점 사장 간담회를 열었다. 모두들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틀예정이었던 회의는 3일로 연장되었다. 그는 과연 여러분들은 오줌이 붉어지도록 그렇게 열심히 우리 제품의 판매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앞으로 분발하도록 제가 솔선하겠습니다. 그의 호소는 전 대리점 사장들을 분발하게 만들었고 재도약의 계기를 조성하게 만들었다. 마쓰시다 전기의 신입사원의 면접에서 그에게 꼭 그렇게 물어본다고 한다. 당신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까? 필수 질문이었고 그 대답은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긍정적이어야 합격을 할 수 있었다. 60년대에는 타임스의 표지모델로도 올랐다. 196670세가 되어 몸이 쇠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좌우명을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썼다.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과 희망이 넘치고 용기에 차 매일 새로운 활동을 계속하는 한 청춘은 영원히 그대 곁에 있다.” 19758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된 고노스께는 그렇게 얘기했다. “내 이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 신입사원이 어떻게 회장님은 이렇게 훌륭하게 회사를 경영해 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그랬다.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의 축복을 받았다. 첫째는 가난이다. 가난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둘째는 허약한 것이었다. 내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항상 건강에 신경을 써야 했고 열심히 운동하고 일하고 건강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세 번째는 배우지 못한 것이다. 내가 배우지 못했으므로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항상 배울 수 있었고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혼다 소이치로와 대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최고의 경영인에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경영능력을 선보였고 성취인의 표상임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고의 역경지수를 지니고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데 남보다 월등한 추진력을 가진 최고의 경영의 신이었다고 여겨진다. 최하위의 열악함에서 최고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빈틈없이 자신의 목적과 위업을 이뤄낸 전무후무한 인물로 추앙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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