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새해맞이
한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2개월이 다 되어간다. 얼마 전 계사년 새해맞이를 하러 영암 월출산을 다녀왔다. 한 해 세 번씩 치러지는 연중행사의 일환이기도 했고 장모님의 생신에 맞추어 치러진 것이었다. 자동차를 몰고 부산에서 출발했다. 오후 4시 경에 어찌 된 셈인지 계속 내비게이선은 광주 쪽으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영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정표도 없고 답답하기가 한정이 없었다. 계속적으로 광주주변을 뱅뱅 도는 느낌이 들었다. 곡성 IC에서 빠져 나와 국도를 타고 가는데 이때도 계속 광주방향으로 접근이 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겨우 나주 쪽 방향을 잡고 보니 남평 쪽이 나오고 나중에는 봉황 쪽까지 나왔다. 겨우 길을 찾아오고 보니 출발한 지 세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이라고 했다. 국립공원은 산세가 뛰어나고 경관이 좋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과연 명불허전일지 모를 일이다. 월출산은 809미터의 높이로 그렇게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산 정상부근의 구름다리가 유명하다고 했다. 달이 떠는 것을 차용해와 명명된 월출산 고유이름이었다. 목포에서 오고 있는 팀을 빼고는 가족들이 다 온 것 같았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환담했다. 약주도 반주정도로 간단하게 먹었다. 그리고 세배행사가 있었다. 장인. 장모님이 좌정하고 식구대로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그리고 형제 자매간의 세배를 받았고 마지막에는 아이들의 앙증맞은 세배가 이어졌다. 밤이어서 몰랐는데 아침이 되고 보니 콘도에서 보이는 월출산이 장관이었다. 올해로 일흔다섯이 된 장모님이다 보니 건강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을 듯했다. 유사로 지정된 이는 첫째와 셋째네가 맡게 되었다. 음식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이고 손이 많이 갔던 것은 생고기였다. 검붉은 빛이 도는게 싱싱하고 맛나 보였고 아침에 잡은 것이라고 하니 그 신선도가 유별났다. 넷째딸네는 작년 1년1 동안 애리조나주에 안식년을 하러 다녀왔기에 2년 만에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전 가족들에 대한 선물을 알뜰하게 준비해 와 하나씩 나눠주었다. 슬하에 6남매의 가족모임이었다. 막내딸은 며칠후면 박사학위를 받을 상황에 처해 있었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가운데의 가족모임이 되었다. 셋째 처남네는 상당히 홀가분해 보였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처남은 확실한 다이어트를 통해 몸을 너무 가볍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될 정도로 감량을 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물론 첫째네의 둘째 아들의 감량은 더욱더 눈에 띄었다. 70킬로그램 대라고 하니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날씬해져 있었다. 30키로그램정도를 줄인 것이었다. 참한 색싯감만 만난다면 결혼도 할 수 있을 듯했다. 형이 일본에서 유학 중이라 추월을 하기에 부담이 되는 점도 있기는 했지만 서른을 넘긴 나이이고 보면 계속 미뤄둘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12명의 형제자매들 중에 박사만 해도 셋이나 되니 장인이 장한 어버이상을 받는 것도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덕담 중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게 되게 된 영광을 안았던 둘째 딸의 여고생 일기에 대해서 무척이나 자랑하였다. 또한 광주시로부터 감사패를 둘째딸을 대신해서 수상하게 된 부분도 큰 영광으로 여긴다는 말씀이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이번에 막내가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넷이 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가족 육남매의 셋이 박사가 되는 것이었고 한 사람은 넷째 사위가 박사였고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넷째 딸도 박사과정을 수료해 놓은 상태이고 보니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월등한 건 맞는 것 같다. 넷째 딸은 이번에 학교에 복직하면서 연구부장을 맡았다고 했다. 맨 먼저 받은 사람은 처남이었다. 전남대에서 받았고 지금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넷째사위가 두 번째로 교원대학에서 수학교육으로 학위를 받았고 대학교수로 영전하는 영광을 안았다. 세 번째는 셋째 딸의 몫이었다. 원광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학사학위를 받았고 석사는 중앙대에서 하고 박사는 원광대에서 한 것이었다. 결혼 후의 과정이었기에 남편의 외조가 컸다. 이리까지 왔다 갔다 하는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받은 것이었다. 이번 네 번째는 막내딸이 해냈다. 전남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인도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40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다. 전과목의 올 A플러스를 받았다고 하니 그 공부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가늠이 되었다. 대전에서 광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여받게 되는 것이었고 동서의 외조도 눈물겨웠을 듯했다. 육남매 중 셋이 박사이고 보니 정말 장한 어버이상이 허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 일궈낸 성과이고 보니 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만하기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넉넉한 형편에서의 학업을 진행해 나간 것도 아니고 보면 그 성취에 남다름이 있었던 것 같다. 큰 딸네 두 아들과 우리 집 두 아들이 빠지고 전 가족이 다 모인 셈이다. 어른 14명과 아이 10명이었다. 큰사위는 50대 후반으로 얼마 후면 환갑을 맞이할 연세였다. 막내딸이 40대에 접어들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이제 팔순에 이르러 있었다. 작년에 이명(耳鳴)이 있어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였으나 이제는 치료해서 별다른 건강의 문제는 없는 듯했다. 아직도 활력 넘치게 생활하고 있었다. 지역사회의 장학회회장을 맡고 있으며 7명의 지역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올해 계사년을 맞이하는 새해맞이가 이렇게 해서 공식적인 일정이 끝이 났다. 다른 이들은 대전에 있는 모 산사를 찾아 계속적으로 모임을 같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계사년 새해맞이가 한 달여 늦게 이루어졌지만 전 가족의 안위를 확인했고 우의를 돈독히 했던 기회가 되었던 듯하다. 한해를 활기차고 의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받아온 듯했다. 우리는 그것에 참여하지를 못하고 귀경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돈독한 우애와 화기애애함을 이어가고 있는 육남매의 욱일승천과 승승장구가 계사년 새해에도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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