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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향을 향한 여정

말과 배

by 자한형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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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배()

 

통상(通常)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에 이런 것이 있었다. 일본 아니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대비하는 것이다. 칼과 여성의 문화라는 것이 일본의 특성으로 손꼽힐 수 있다. 루스 베네딕트라는 인류학자가 쓴 국화와 칼이라는 것에서 일본문화의 특징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그들은 칼을 숨기고 있는 가운데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대하지만 그 속마음에는 언제든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면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화()라는 것이다.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실용적으로 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이게 가르친다. 한국문화는 교차역 문화라고 한다. 문화가 유입되어 흘러가는 것이고. 반면 일본은 종착역 문화라는 것이다. 결코 유입된 문화가 흘러나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고 융합되고 축적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는 지정학적으로 중간에 위치해 있으므로 대외적인 침략의 긴장감을 갖고 있게 되고 그로 인하여 보편주의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대외적인 긴장감이라는 것이 없다. 자신들의 생존과 자족이 문제가 되면서 상대주의가 강하게 지배한다. 바깥에서 유입된 문화를 자기들 나름대로 요리하고 해석해서 새롭게 만든다. 신크리티즘이라고 하여 혼합주의 또는 융합주의로 해석되는 것이다. 항상 부정성이 없다. 공존과 화해의 논리를 갖고 있는 것이 일본문화의 특성이다. 한국은 경우에는 붓과 남성중심이고 모순과 부정이 중심이다. 원칙주의 내지 원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상당히 주리론쪽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반면 일본은 주기론 쪽에 훨씬 더 무게를 두게 된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강의 중에 말과 배라는 것이 있다. 그가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는 말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라는 족속은 배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북쪽의 북방(北方)문화이고 배의 문화는 남방(南方)문화의 전형(典型)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벼라는 식물은 물의 문화이고 이는 남방문화라는 것이다. 북방문화는 유목민족의 피를 타고 나는 것이고 기마민족성을 띤다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향(指向)하게 되고 배라는 것은 통상적으로는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지향을 하지만 풍랑을 만나거나 극한상황이 되면 인위적인 조작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말은 코스모스의 세계이고 배는 카오스의 세계라는 것이다. 말은 조화로운 질서의 세계인데 반하여 배의 문화라는 것은 무질서의 세계요, 혼동(混同)의 세계라는 것이다. 말은 남성적이지만 배는 여성적이다. 말은 수평적이지만 배는 수직적이다. 말은 짝수를 좋아하고 오른쪽을 선호한다. 반면에 배는 홀수를 선호하고 왼쪽을 좋아한다. 북방민족은 이동하면서 거주하고 고기와 밀을 먹는다고 한다. 반면에 배의 사람들은 생선과 밥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말의 문화는 유가(儒家)적인데 반하여 배의 문화는 도가(道家)적이라는 것이다. 말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왕도 갈아치우고 천명(天命)을 받는다는 미명아래 혁명도 용인되고 정권의 바뀜도 용납(容納)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배의 문화에서는 오로지 복종만이 존재한다. 천황을 갈아치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말의 문화사람들은 머리를 소중히 한다. 반면에 배의 사람들은 배를 타려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에 충성을 다하고 자신의 개인의 복락(福樂)을 최소화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말의 문화의 사람들은 제일 먼저 수신(修身)이 이루어지고 그런 연후에 제가(齊家)가 이루어진 후에 치국과 평천하가 있게 된다. 배의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국가에 종속되고 천황에 충성을 다하는 일념만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명예가 소중하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그것은 곧 목숨과 한가지로 간주된다. 그런 일화가 있었다지 않은가. 어느 빵집 앞에서 아이가 빵을 훔쳤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무라이가 그랬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아이의 배를 갈랐다. 뱃속에는 빵의 흔적이 없었다. 결백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의 목을 쳤다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우리만큼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리는 일면이 아닐까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상당히 혈연중심적이고 장자상속위주로 되어있다. 또한 권력의 획득을 위해서는 과거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유교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섭렵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었다. 과거는 신분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지식의 획득이 권력의 획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과거의 최대의 의미이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의 대학을 가보면 신입생이 들어오면 엄청난 서클에의 권유에 대한 유혹이 있다. 그러면 그들이 내세우는 슬로건은 엄청 거창하다. 예를 들면 세계평화연구회 같은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고 세부적인 부분으로 해서 동아리를 형성한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그런 혈연중심의 사회나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유교에서 인()이라는 것도 그렇다. 해석을 간명하게 한다. 인이란 사람사이의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구체적인 생활의 덕목으로 유교를 받아들인다. 즉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제사도 지내지 않고 장자상속이라는 것이 당연히 없다. 일본을 지배해온 것은 사무라이 즉 칼잡이들이 정치를 하고 사회의 중심축이었다. 그들이 수행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주군을 위한 절대복종과 충성이라는 것이 기본 철칙이었다. ()라는 것의 승계라든가 상속이라는 것도 양자를 세우거나 데릴사위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200년 된 우동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대대로 가문을 통해서 상속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전혀 우리의 추측과는 판이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쇼쿠닌(職人)또는 쵸우닌(町人상공업자) 중심의 체계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가문을 잇는 것이 아니라 가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것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직능인이 그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라는 것은 일을 위한 협력체이지 사람의 혈연적인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명치유신이 1968년도에 이루어지고 동경대학이 설립되면서 일본에도 과거라는 것이 도입된 것으로 짐작된다. 종교적으로도 신도, 불교, 유교가 혼재되어져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인은 2%가 안 된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이 태어나고 결혼하는 것은 신도식으로 한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이라든가 처세에 있어서는 유교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불교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추세로는 결혼도 기독교식으로 변화해가고 있다고 한다. 성경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던 이스라엘과 카인의 후손이 된 이집트 중동인들은 영원히 상극으로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도 그들과 비슷하게 서로 간 아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도 하지만 말과 배처럼 그렇게 판이한 문명에서 비롯됨으로 인해 영원히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우리와 그들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할 만큼 서로가 반목하고 질시하는 입장에 있다. 그들은 이제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해져있고 정치적으로도 그렇게 본받고 싶은 점을 갖고 있지도 못한 실정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에게서 배우려는 시도를 거의 포기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도 일본으로의 유학을 감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수에 국한된다. 이제는 모두가 서구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배와 말 그것은 여전히 융합될 수 없을 만큼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고 고유의 문명을 형성해온 듯하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문화를 구축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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