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보통 사람이 여자에 관해서 처음 눈을 뜰 때는 대략 사춘기 정도가 아닌가 한다. 청춘에는 그렇게 애달파하고 몸부림을 치며 갈구하던 때도 어느 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무감각해 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理致)인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염세주의(厭世主義)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여자라는 것은 참 알다가도 모를 성이라고 했다. 어깨가 좁고 허리가 가는 여자라는 종족은 먼 앞일을 내다보지는 못하지만 현실적이고 눈앞의 이익에 있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성(屬性)을 지니고 있단다. 우리가 그렇게 미인에 눈이 뒤집히고 부러워하고 소유욕을 가지지만 30년 지난 후라고 간주하고 상상하면 여지없이 뒤돌아서게 된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필요와 갈구가 소용없게 된 후에는 천하의 미인도 소용이 없다. 그에 의하면 남자는 그래도 보다 더 이성적인데 반하여 여자는 감성적이고 훨씬 복잡 미묘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의 여자의 속성으로 예술적이고 철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에서 그의 독선이 엿보이기도 한다. 우리기준으로 본다면 예전에 여자는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속담에 ‘첫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했었다. 또한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라고도 했다. 요즘은 세상사에 여성의 지위가 막강해졌고 사회의 각 분야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더욱 괄목(刮目)할만 한 것은 여성대통령까지 나왔다. 그가 참고하라고 얘기하는 부분은 그런 것이었다.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코앞에의 장애물 등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충분히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항상 훌륭한 어머니의 교육과 지도, 지원이 있었다. 가장 빛나고 보석처럼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모성애(母性愛)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만큼 그렇게 값진 것이 없다. 동화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천상에서 지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을 천사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가지고 간 것이 셋인데 하나는 ‘아름다운 꽃’이었고 두 번째는 ‘애기의 웃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천상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자 꽃은 시들어버렸고 애기의 웃는 얼굴도 볼품이 없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지상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결론지어졌다. 그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제대로 수긍되고 공감되는 부분일 것이다. 도올이라는 걸출한 동양철학자가 내놓은 책 중에 하나가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있었다. 80년대 초반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교수를 할 때 그렇게 열변을 토하며 강의를 했던 부분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이었다. 토요일마다 특강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이 할 때도 있었고 유명강사를 초빙해서 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의 특강 제목으로 했던 것이 ‘여자란 무엇인가’였던 것이다. 그 전주에 자신의 모친을 모셔놓고 특강을 했는데 150명도 채 오지 않았단다. 그런데 그 다음 특강에는 2천명이 넘게 왔단다. 6개월을 준비를 했다고 한다. 하필 그해 처음으로 눈이 내렸고 교통은 엉망이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청중들로 인해 강의실을 세 번에 걸쳐서 옮겼다. 강당을 꽉 메운 입추의 여지없는 청중을 놓고 3시간동안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고려대학에서의 철학, 대만대학에서의 동양철학, 동경대학에서의 철학, 하버대학에서의 철학이 망라된 동양학의 한 방법론으로써 여자라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해부와 분석이 이뤄졌다. 프로이드의 ‘오디푸스 콤플렉스’가 나왔고 그것에 대한 비평도 쏟아졌다. 오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은 모든 남자는 어머니에 대해서 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원초적이라는 것이다. ‘일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자는 아버지에 대한 성적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학으로 여자에 대한 부분도 해석이 되었다. 그의 잘못은 시간을 초과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화장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의 강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를 바탕으로 한 책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자라는 것은 예전부터 종족보존의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소중한 존재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인류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이도 수없이 많다. 어느 작가는 수십 년을 같이 산 마누라에 대해서 아직도 그 깊은 속을 헤아릴 길이 없다는 것으로 잘라 얘기하고 있기도 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소회였다. 어떤 경우는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쌍심지를 켜기도 하고 그의 마음을 살필 길이 없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에 있어서 가장 빠르게 느끼게 되는 것은 어머니로 부터의 여자에 대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가장 어머니 같은 여자를 선호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한(恨)이라는 것이 있다. 여자들의 한(恨)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한(恨)의 정서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결국 한(恨) 많은 인생을 낳고 주야장천(晝夜長川) 그 한(恨)을 풀지 못한 넋이 그렇게 구천을 떠돌게 되고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 여자의 길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도 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커서는 남편을 따르고 마지막에는 아들에게 순종해야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같으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한칼에 날려 보낼 억측이 될 것이다. “여자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면 그 집안은 망한다.”는 옛말이 있고 또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도 있다. 요즘은 그것이 변모되어 암탉이 울면 알을 하나씩 낳는다“ 라든가 ”여자말을 들어야 집안이 평안해진다.“ 라는 것으로 희석되었다. 여자라는 속성이 본래는 남자를 도와주고 보필하는 것에서 이제는 엄연히 주체적으로 자각하고 자기세계를 펼쳐가는 자주적인 인격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안일만 하고 피동적인 역할에서 주도적인 역사를 이끄는 주체로서의 그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이 사회의 주도자로 대체되고 있고 엄청나게 역동적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각계각층에 여자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요즘은 여자의 목청이 좋아야 세상을 호령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얘기될 것 같다. 하도 여자들의 기가 드세져 사회 각 분야에서 여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이루지 못한 바가 없는 여성천하(女性天下)인 것이다.
'심향을 향한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장병 다스리기 (2) | 2023.03.22 |
---|---|
옹골찬 아내 (2) | 2023.03.22 |
암의 해법 (0) | 2023.03.22 |
정봉길에서의 단면과 이면 (0) | 2023.03.22 |
행복한 부모가 만드는 행복한 아이 (0) | 202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