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열기
8월의 뜨거운 폭염(暴炎)은 유난히 길었던 장마의 지루함을 상기시켜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녘에서부터 부산하게 시작이 되었다. 네 명의 참가자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침식사는 처제가 끓인 누룽지로 훌륭하게 해결이 되었다. 새벽안개가 뿌옇게 끼여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가량이 되었다. 라카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니 바로 티업을 나가야할 시간이었다. 우려했던 바대로 안개가 자욱히 끼여 있었다. 시야(視野)가 가려져 있어 누구 말대로 핑계거리가 생겨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상당한 스코아를 자랑하는 이였고 또 두 사람은 그런 대로의 실력을 갖춘 이였다. 오랫동안 같이 운동을 해왔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온 탓에 거리낄 것이 없는 관계였다. K시 인근에 있는 PCC였다. 한사람은 구력이 10년 이상의 베테랑이었고 또 한사람은 1년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온 터라 싱글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었다. 첫 홀부터 5홀까지는 새벽안개 때문에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플레이가 이루어졌다. 방향은 전조등(前照燈)에서 내뿜는 불빛을 보고 그것을 지향점으로 삼아 감으로 치는 수밖에 없었다. 전반야를 마치고 나니 11시 가량이 되었다. 그늘집에서 30분을 기다려야 다음차례가 된다는 것이었고 캐디언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언질(言質)이 있었다. 날씨가 예사롭지않아 그렇게 무더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음료와 함께 한담(閑談)했다. 그러던 차에 다른 팀에 지인(知人)을 만났다. 직장동료였고 한참 선배였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고 악수를 나누었다. 휴가를 낸 것 같았다. 간혹 가다보면 종종 골프장에서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 게 세상사인 듯했다. 첫 홀이나 시작할 때 만나다 보면 그늘집에서도 뵙게 되고 또 다른 때에는 샤워실에서 만나거나 라커룸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늘집에는 전체적인 홀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파악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골프장의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소나무가 즐비했고 티박스로 솔방울 모양으로 되어져 있었다. 캐디 이름도 남자 이름이 있어 물어 보았다. 남자 캐디가 많은 편인가요? 라고 말이다. 20%정도 된다고 했다. 남자만 골프를 친다고 생각한 것은 고정관념이었다. 파트너와 치는 경우도 있었고 여자들끼리 치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것은 정반대의 입장임을 간과한 것이었다. 전반야 마지막 홀에서 어프로치샷이 기가 막히게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곧이어 또다시 그런 장면이 한 번 더 연출이 되었다. 그다음 샷은 퍼팅이었는데 거의 8미터 수준의 퍼팅이었는데 그것도 그림처럼 홀인이 되었다. 모두들 유쾌한 기분으로 전반을 마치고 후반에 들어갔다. 무척이나 무더울 것으로 우려를 많이 했는데 그런대로 운동을 할 만한 날씨였고 상황이었다. 파격적인 샷은 17번 홀과 18번 홀에서 연거푸 일어났다. 현 프로가 두 번 연속 버디를 한 것이었다.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모두들 축하해 주었고 부러워했다. 운동을 마치고 목욕을 간단히 하고 귀로에 올랐다. 시내 외곽에 자리 잡은 한적한 음식점으로 갔다. 쌈밥정식이 주 메뉴였다. 정갈하고 깨끗한 밑반찬이 먹음직스러웠다. 그냥 가기에는 섭섭할 듯해서 안주거리를 하나 시키고 막걸리를 시켰다. 운전은 성 프로가 하기로 하고 호기롭게 약주를 마셨다. 안주는 삼합이었다. 적당히 삭힌 홍어와 묵은지가 색달랐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일일차의 라운딩이 마무리 되었다. 1위 현프로 2위 성프로 3위 한프로 4위 홍프로였다. 홍프로의 실력이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정도였었다. 골프를 시작한지 2년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몇 년 전의 제주에서의 골프할 때에는 초창기여서 그런지 어설픈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날에 스크린 골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던 모습과는 차이가 난 부분이 아쉬운 점이었다. 한 해 동안의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려버린 느낌을 주었다. 서로 간에 존중하면서 서로가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나눈다는 것은 기분을 흔쾌하게 하는 일이었다. 홍프로의 말대로 40이후에 생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즐거운 일을 같이하다보니 생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만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이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 서서하는 것 중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 골프라고 너스레를 뜬 사람도 있었다. 이프로는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제대로의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일취월장(日就月將)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보여주었다. 한프로만 여전히 예전실력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답보상태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미국에서의 골프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은 2일차였다. OCC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7시정도에 티오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제 한프로가 보스톤백을 다른 차에 두고 오는 바람에 한바탕 쇼가 있었다. 일단 신발은 빌려 신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하는 수없이 구입을 해야 했다. 나머지는 성프로에게서 빌렸다. 모자랑 티셔츠랑 양말을 빌려서 입었다. 문제는 바지였다. 반바지 차림으로 갔는데 그것은 그대로 입고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쪽도 강가여서 어제처럼 안개가 끼여 있지 않을까 우려를 했는데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순조롭게 출발이 되었고 어제처럼 간격이 촘촘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압박 받지 않고 여유롭게 라운딩을 했다. 중간 그늘집에서는 토마토 주스에 막걸리를 섞어 일명 고름주라는 것을 만들어 마셨다. 안주는 두부김치였다. 그것을 마시고 나니 성프로는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고 소회(素懷)를 밝혔다. 그리고 버디를 쳤다. 기분이 상승되니 라운딩도 잘되는 모양이었다. 총계로 버디가 두 번이었다. 현프로는 한 번의 버디로 만족해야 했다. 정규홀을 끝내려고 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캐디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전으로 추가라운딩의 가능여부를 타진했다.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다. 끝난 시간이 11시였으니 시간은 충분한 상태였고 그대로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27홀을 도는 것으로 된 것이었다. 금방 시간이 갔고 순조롭게 라운딩이 끝났다. 2일차의 순위는 1위 성프로 2위 현프로 3위 홍프로 4위 한프로 였다. 성프로의 스코어는 거의 싱글수준이었다. 마지막 9홀의 순위는 공동3위를 홍프로와 한프로가 차지했다. 정규홀이 아니고 프블릭코스여서 상당히 코스가 좁을 것으로 우려를 많이 했는데 여느 정규홀 못지않은 듯했다. 끝나고 점심식사는 인근에 한우촌으로 갔다. 두 사람은 육회비빔밥을 시켰고 두 사람은 떡국을 시켰다. 그리고 등심을 2인분 시켜 맛을 보기로 했다. 술은 사맥으로 했다. 사이다와 맥주를 섞은 것이었다. 먼저 사이다를 조금 따른 다음에 맥주를 따르고 그것에 젓가락을 넣고 손가락으로 튀기니 사이다 거품이 컵 위로 올라왔다. 그것으로 건배가 잇따랐다. 문제는 양송이 버섯이었다. 2인분을 시켰으니 양송이가 2개만 달랑 나왔다. 다시 추가로 시키니 인심 좋게도 5개가 나왔다. 계산은 성프로가 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맛을 보라고 생고기를 조금 샀다. 그런데 눈에 띤 게 수박이었다. 종업원용으로 접시에 잔뜩 쌓아 놓았다. 4개만 달라고 했더니 다른 손님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간절히 얘기를 하고 억지를 부렸더니 인심 좋게 다섯 개를 주었다. 차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가져다주고 포장된 생고기를 받아 나왔다.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은 시골길이었다. 이틀 동안을 구름위에서 보낸 듯했다. 푸른 하늘에 파란 잔디위에서 더할 나위없는 시간을 보낸 듯했다. 현역에 있을 때도 그렇지만 은퇴한 후에도 간간히 이렇게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할 듯했다. 그래서 오우(五友)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로 요청되는 것이 다섯 명의 친구라는 것이다. 라운딩은 4명이 하는데 왜 다섯 명이 필요한가 했더니 그랬다. 언제든지 한명의 친구는 스페어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자신의 내자를 골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친구가 저세상으로 가게 되거나 라운딩을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그 내자가 마지막 파트너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여름의 열기가 가득한 1박2일이었던 듯하다. 일 년 내내 이이야기로 추억삼아야 할 듯하다. 프랑스에서는 그런다고 한다. 일 년의 전반기는 휴가를 계획하느라 보내고 한 달간 휴가를 갔다 온 후에는 그 갔다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생의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한다.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충실하게 잘 보낸 듯했다. 이제 한여름은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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