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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김유신

by 자한형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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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너무나도 유명하고 말이 필요 없는 예전 삼국시대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으로서 역사를 빛낸 위인의 반열에 올라있는 이가 김유신이다. 얼마 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의 탄생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 출신의 지인으로부터 그의 탄생에 얽힌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대충 그 얘기를 간추려보자면 이러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그 당시 각관출신으로 하급관리로 있었던 낮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된 만명 부인은 성골출신의 고귀한 신분이었다. 가야국의 후손이었으며 장군 출신이었던 유신의 아버지는 만명 부인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신분의 벽을 뚫지 못한 둘의 관계는 순조롭지 못했다. 아버지는 만명 부인을 광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러자 둘의 애처로운 사연을 알게 된 몸종이 광의 자물쇠를 부수고 만명 부인을 풀어주게 된다. 일설에는 벼락이 쳐서 광의 문이 열렸다는 얘기도 있다. 만명 부인은 김서현을 쫓아 줄행랑을 치게 된다. 우리나라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얘기였고 애절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연애담이었다. 김서현은 결국 만명 부인을 데리고 멀리 도망을 갔다. 그리고 정착을 한 곳이 진천이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유신을 낳았다. 김서현은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 두 별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꿈을, 만명은 신축일(辛丑日) 밤에 한 어린아이가 황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유신을 갖게 되었으며, 원래 경진일 밤에 서현이 꾼 태몽으로 얻었다 하여 이름을 경진으로 지으려던 것을, "날이나 달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된다"예기(禮記)의 말에 따라, ()과 자획이 비슷한 '()', '()'과 발음이 비슷한 '()'을 써서 이름을 유신이라 짓게 되었다. 김유신은 그곳에서 15살까지 성장하게 된다. 유신은 부모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15살이 되자 화랑이 되어 전국 산천을 주유하며 심신을 단련하였고 얼마 후에는 화랑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젊은 시절 한 때는 주색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작심을 하고 술집으로 가는 것을 끊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도 자주 가던 길이었고 그것에 길들여진 말이 문제였다. 항상 가던 대로 술집을 향하여 가게 되자 유신은 그 자리에서 말의 목을 베어버린다. 다음은 김춘추와의 일화이다. 그는 유신보다 아홉 살이나 아래였다. 신분이 낮았던 유신에 비해 진골출신의 고귀한 신분이었던 김춘추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둘이 축국을 하던 차에 유신이 춘추의 옷을 밟아 옷고름을 찢어버렸다. 그러자 유신은 춘추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여동생에게 춘추의 옷을 꿰매게 했다. 유신에게는 두 여동생이 있었다. 첫째가 보희였고 둘째는 문희였다. 어느 날 첫째가 희귀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은 서악에 올라가 앉아 소변을 보니 소변이 흘러내려 경성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동생인 문희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동생이 대뜸 그 꿈을 자기에게 팔라고 한다. 그리고 비단을 한필 주었다. 얼떨결에 비단에 눈이 멀어 동생에게 소중한 꿈을 팔고 만다. 김춘추의 옷을 꿰매게 될 때에도 언니는 싫다고 한다. 반면에 동생은 흔쾌히 승낙해서 옷을 꿰매준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해서 김춘추는 유신의 여동생과 연분을 맺게 된다. 김춘추는 문희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리고 깊은 관계에 빠진다. 처녀의 몸으로 임신까지 하게 된 문희를 본 김유신은 뒷마당에 불을 피운다. 그러자 이상히 여긴 선덕여왕과 김춘추가 사연을 알아보라고 한다. 그러자 그렇게 된 내막을 듣게 된 여왕은 누가 아이의 아버지이냐고 김춘추에게 묻는다. 그러자 김춘추는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자 여왕은 곧바로 김춘추에게 가서 문희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리고 둘은 정식으로 결혼절차를 거치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김춘추와 결혼한 얼마 후에 그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자동으로 왕비로 된다. 김춘추는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오기도 한다. 김유신의 탄생얘기를 해주던 지인에 의하면 김유신과 강감찬 장군이 있었는데 김유신의 태생지는 성지화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강감찬은 낙성대에 모셔져 있고 성지화가 되었다. 그 차이는 김유신은 외세를 통해서 통일을 달성했기에 성역화가 되지 못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김유신은 명민하기 그지없었고 총기발랄하고 뛰어난 무장으로서의 지도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고 죽은 후에 왕으로 추존된 유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백제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초반에 상당히 고전을 하게 된다. 계백이 이끄는 오천결사의 완강한 저항에 속수무책이었다. 계백은 자신의 패배를 예감하고 치욕적인 굴욕을 당할 것을 우려해 미리 처자식을 모두 죽인 후에 결전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랑 관창이 어린나이에 선봉에 서서 맹렬히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사로잡힌 관창은 너무나 어린나이여서 살려서 말에 태워 본진으로 보내진다. 다시 각오를 새롭게 한 관창은 다시 한 번 선봉에서 돌진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용서할 수 없다며 죽임을 당한 채 그 시신을 말의 안장에 묶어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낸다. 그러자 신라군은 처참하게 죽은 시신을 보고 각오를 새롭게 한다. 전투의지를 불태운 신라군은 파죽지세로 백제군을 섬멸한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한다. 우리나라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숭상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영웅이나 불세출의 위인을 찾아보기 힘들단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숱한 영웅, 위인, 인물들이 명멸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 제대로 발굴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3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수많은 영웅들과 위인을 갖고 있고 그들을 숭상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대통령들만 하더라도 그들의 숱한 실책과 악행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깊은 존경과 흠모하는 자세를 갖는 것에서 우리는 본보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F 케네디가 젊은 시절 몸이 약해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아버지는 기필코 신체적 약점을 보완해서 해군장교로 입대케 했다. 그가 해군장교로 근무하지 않았다면 결코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작전 수행 중 물에 빠진 부하들을 여럿 구해내는 전쟁영웅으로서 각광을 받았었다. 이와 같은 전력들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옛속담에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모든 이들이 영웅이 되고 위인이 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빛나고 존경을 받을 때에는 누란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거나 아니면 위중지란에 빠진 부하를 구하는 것과 같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데서 지도자로서의 특출함이 돋보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웅, 위인, 인물들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배출될 때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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