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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웅어회와 장어

by 자한형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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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회와 장어

 

 

얼마 전 금요일이었다. 오래전부터 웅어회를 먹으러가자고 했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과를 마치고 오라는 곳으로 갔다. 행주산성이라는 지역이었고 음식점은 D라는 곳이었다. 약속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갔더니 세분이 앉아 있었다.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이 아니면 찾을 수도 없을 만큼의 오지로 여겨졌다. 신록이 우거진 산속에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식당 내에는 드문드문 손님들이 앉아 요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웅어회를 시켰다. 약주를 한잔하면서 세상살이에 대한 얘기꽃을 피웠다. 시골에 사는 내외분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 형국이었다. 현역시절에 고양 쪽에도 근무를 한 경험이 있어 이쪽 지리 향토음식 등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웅어는 회귀성으로 산란을 위해 5월에서 8월 사이에 강 하구 갈대숲이 무성한 곳에 산란을 한다. 그래서 위(갈대)어라고도 한다. 속설로 전해지는 말에 전어는 상놈이고 웅어는 양반이라는 말도 있다.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갈 정도의 고급어종이었다. 살점이 많아서인지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야채랑 버무려진 웅어회를 된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었다. 초장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냥 된장에 찍어 먹었다. 얼마 후 자리가 파하고 일행들은 차를 운전해서 인근의 원조 국수집으로 갔다. 9시 가량이 되었는데 식당 안은 무척이나 붐볐다. 메뉴는 단 두 가지였다. 비빔국수. 잔치국수. 가격은 4천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순식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다. 원조라고 되어 있었고 국수집일 뿐인데 거의 기업수준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곳을 나왔다. 대리기사를 불러 귀가했다. 같이 자리를 했던 선배의 얘기로는 고양의 능곡 쪽에도 웅어횟집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은 엄청 혼잡하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했다.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 요즘은 행주나루에서도 웅어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유명인이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 많던 웅어는 어디로 갔을까?”였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웅어박물관을 행주나루 쪽에 건립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강의 웅어도 있고 낙동강의 웅어도 있는 모양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간 후 혹시나 하고 한 번 문의해 보았다. “이제 철이 지났는데 웅어회를 먹을 수 있나요?”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항상 얼마만큼의 횟감을 보관해 두고 저장을 해놓기 때문에 언제나 웅어회를 먹을 수 있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어는 본래 민물이 있고 바다장어가 있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는데 그곳은 강화 쪽이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은 곳이 장어집이었다. 오두돈대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제대로 된 장어가 나온 듯했다. 물론 그건 바다장어였다. 장어촌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강화의 더리미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의 사이에 집단촌을 이루어 유명한 곳으로 장어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요리해 나올 때에도 양념을 한 것과 양념을 하지 않은 것 두 가지로 맛볼 수 있었다. 양념한 것은 금방 맛에 질리기 때문에 되도록 양념하지 않은 것을 먹다가 최종적으로 맛보는 것이 양념구이로 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행주산성 쪽에도 장어로 유명한 집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한 지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장어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가질 수 있었다. 회합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고 아는 지인을 통해 충분히 제대로 된 장어를 내놓는 자리에 갔을 때의 장어는 정말 일품의 맛을 느껴볼 수 있었단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따로 갔더니 그런 맛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고 하는 회한을 얘기해 주었다. 아산 쪽에도 인주면에 가면 장어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워낙 고가이고 보양식으로 이름이 높은 것이어서 좀체 맛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장어인 듯하다. 파주 쪽에는 그것을 염가로 맛보게 하기 위해 셀프서비스로 제공하는 집이 있는데 그곳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미어터지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기도 했다. 반대편에는 편안하게 서빙을 받으면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보통사람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단가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간혹 노량진이라도 가면 그곳에서 뼈를 발라내고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장어집에서 장어를 손질해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을 후라이팬에 구워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장어도 양식장어로 하다 보니 자연산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 양식을 할 때에는 꼭 항생제 등의 처방으로 인해 장어애호가로부터 상당한 기피를 당하기도 한다. 장어는 뭐니 뭐니 해도 최고 보양식으로 인정받는 부위가 아무래도 꼬리부분이라고 하는데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다 속 식품 중 '스테미너' 하면 떠오르는 어종이 있다. 그렇다. 바로 장어다. 가을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몇 달 동안 수만리 바다를 헤엄친다는 것만으로도 장어는 이미 훌륭한 강장식품이라 할 수 있다. 정력에 좋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이다. 지난 15일 고향으로 12일 장어잡이를 떠났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얻으려면 망설임 없이 내 시간을 그에게 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뢰다. 관계의 기본은 믿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장어는 붕장어, 꼼장어, 먹장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여수 쪽에서는 하모라 해서 회로도 먹고 샤브샤브를 해서도 먹기도 한다. 부산의 자갈치에서는 꼼장어가 유명하다. 모처럼 만난 반가운 지인들과 함께 바다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오늘은 장어잡이 어부체험이다. 바다에서는 '주낙'이나 '통발' 등을 이용해 장어를 잡는다. 장어통발은 장어를 미끼로 유인해 함정에 빠트려 잡는 어구다. 직경 13cm, 길이 40cm 정도의 약간 훌쭉하고 긴 원통형으로 생겼다. 한 쪽은 막혀 있고 다른 한 쪽은 장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깔때기처럼 생긴 마개를 끼운다. 멸치를 넣고 깔때기를 끼우면 끝이다. 플라스틱이 귀했던 옛날에는 주로 대나무를 엮어 통발을 만들었다. 지금은 대나무가 사라지고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미끼로는 주로 멸치를 사용하는데, 장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통발 한 개당 가운데 손가락만큼 굵은 멸치 3~4마리를 넣으면 끝이다. 어부들은 통발 50개 정도 매단 줄을 '한틀'이라 부른다. 우리가 가진 통발은 두틀이다.

장어는 야행성이라 주로 밤에 활동한다. 붕장어와 먹장어는 낮에 잠을 자다가 밤이 되면  먹이사냥에 나선다. 이때 통발을 만난 장어는 통발 속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멸치를 먹기 위해 환장을 한다. 이윽고 입구인 깔때기를 발견하고 통발 속으로 유유히 들어간다. 그렇게 통발 속으로 들어간 장어는 나오는 구멍을 찾지 못해 갇히고 만다. 어부들은 밤에 통발어장을 바다에 던진 뒤 4시간 마다 걷는다. 4시간 후면 갇혀있던 장어가 빠져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어는 통발에 들어갈 때 머리를 먼저 들이민다. 그렇다면 나올 때는 머리로 나올까, 꼬리로 나올까? 정답은 꼬리이다. 꼬리가 일종의 더듬이 역할을 하는데 실컷 배를 채운 장어는 뚫린 구멍만 보이면 꼬리를 넣어 헤집고 나오려 발버둥 친다. 힘 좋은 장어꼬리가 정력에 좋다는 낭설은 이 때문이다. 바다의 기상은 예측불허이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 바다가 장판처럼 평평하다. 날씨가 급변하면 파도가 거칠 게 인다. 그래서일까바다 위에서 삶을 건져 올리는 어부들은 항상 고단하기 마련이다. 장어잡이 체험에 나선 지인의 한 마디가 이를 대변한다.
"오늘 장어잡이에서 내린 결론은 차라리 사먹고 말지. 이거 보통 힘든 것이 아니구먼."
전날 놓은 통발을 걷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었지만 얼마나 잡혔을까 기대들이 크다. 첫 어장이 올라왔다. "터덕~터덕~" 통발 속에서 장어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첫 통발부터 장어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일행들이 소리친다.
"와 이건 뭐야? 진짜 장어네!"
"고놈들이 바로 꼼장어와 붕장어란 말입니다."
어장을 걷는 내내 신기해하는 일행들의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통발에는 붕장어만 있는 게 아니었다먹장어로 불리는 꼼장어도 올라왔다. 꼼장어를 잡은 건 처음이다. 지인은 뭐 저런 게 있냐고 징그럽다는 표정이다. 통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고동과 불가사리는 통발에 달라붙어 배 위로 올라왔다. 통발을 걷는 내내 외쳐대던 지인의 한 마디가 생생하다.
"어이 우리 어부로 전업해 버려 이거." 
이윽고 아침식사 시간이다. 살아있는 장어를 숯불에 구우니 별미다. 반주로 곁들인 소주와 장어구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러울 게 없는 성찬인 것이다. 아쉽지만 우리의 짧았던 12일 어부체험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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