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가족행사
올해의 가족행사는 예년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이르게 치러졌다. 작년도에 윤년이었던 관계로 인해 설이 늦어지기도 했고 예년처럼 행사를 진행할 경우 학기초의 무척이나 분주하고 바쁜시기임을 감안해서 설명절보다 더 일찍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치러지는 행사에 공교롭게도 유사까지 겸하게 되어 부담이 되기도 했다. 출발은 토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온 가족이 단체로 이렇게 가보는 것도 오랜만인 듯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한녀석은 군에 가 있었던 관계로 인해 전 가족이 다함께 참가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게 세월이 지난 것으로 여겨졌다. 둘째녀석은 군에서 전역하고 처음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큰녀석도 지난 7개월여를 어학연수를 다녀온 터여서 오랜만에 가족행사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제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딜 것으로 예상이 되니 이제는 대학생으로는 마지막 행사가 되는 셈이었다. 두 장성한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을 위해 가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날씨는 그렇게 차가운 편은 아니었다. 도로사정도 정체구간이 많은 상황도 아니어서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두 형제는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평소에 서로간 소통이 부족했던 부분이 다 해소가 될 것으로 보였다. 안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집사람은 옆좌석에 앉아서 계속 휴식을 취했다. 천안 쯤에서 방향을 바뀌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정읍쯤에 오자 다시 휴게소에 들러서 운전을 집사람과 교대했다. 그리고 휴식을 취했다. 30여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였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이리저리 헤매느라 시간을 좀 허비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정오무렵이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예약해둔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정오로 예약시간을 30분간 앞당겨 두라고 해서 그렇게 얘기를 해놓았다. 식당은 횟집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한가족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30여분 후에는 전체가 다 모였다. 약주를 한잔씩 따른 후 건배를 하며 장인어른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축배를 들었다. 어른만 17명이었고 아이들까지 하면 26명이었다. 아이들도 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까지 골고루 있었다. 이제는 어느정도 입가림을 할만큼 다들 성장해 있었다. 고등학생 1명 중학생 3명 초등학생 5명이었다. 식사는 매운탕에 먹었다. 그곳에서의 점심은 처제네의 집들이를 겸해서 행사가 진행되는 모양새였다. 아파트에 살다가 이번에 빌라쪽으로 입주를 한 네 번째 딸이었다. 다음은 장을 볼 차례였다. 식당 앞쪽에 대인시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행사에 필요한 각종 식재료 등을 1차적으로 샀다. 홍어와 머리고기 그리고 각종 김치류, 과일류 등을 구입했다. 아들 둘이 보조를 했다. 다음은 홈플러스로 가서 장을 봤다. 그리고 둘째 동서네의 이사한 집으로 귀가했다. 3층형식의 복층 구조였다. 아래쪽에 방이 세 개가 있었고 욕실도 있었다. 다시 2층에 올라가면 안방과 드레스룸 화장실 그리고 서재겸 방이 있었다. 거실도 넓직했고 베란다도 있었다. 식탁까지 겸비해 있었다. 3층에는 조금 천정이 낮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운신이 가능할 정도의 높이여서 활동에는 지장이 없을 듯했다. 그렇게 새집을 구경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니 지하에 원룸형식의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 공간이 별개로 있었다. 8평이나 10평정도의 원룸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해 보였다. 서울의 고급빌라촌의 빌라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로 여겨졌다.
다음은 저녁행사였다. 주 메인요리는 삼합이었다. 홍어와 머릿고기 그리고 익힌 김치였다. 피조개도 곁들여졌다. 워낙 인원이 많아 전체적으로 통제에 애로가 있을 듯했으나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육남매의 가족행사가 치루어지는 것이었다. 을미년 첫행사의 시발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본래 행사는 대를 이를 주씨 집안의 장손의 집에서 하는 것이 정도라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있으시기도 했다. 저녁행사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밤늦도록 서로간의 근황과 안부를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은 누룽지와 떡국으로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세배행사가 이어졌다. 아직 정식적으로 설이 되지는 않았지만 부득이 설에 이동이 어려운 가족들을 위해서 세가족이 해당이 되었다. 순서로는 둘째와 다섯째 그리고 막내였다. 맨 먼저 장인, 장모님께 세배를 올렸고 덕담 말씀을 들었다. 다음은 각 형제들이 세배를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막내네가 받으면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장모님의 생신 행사차례였다. 손자, 손녀들의 축하카드와 선물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케잌의 점화가 이루어졌고 생일축하 노래가 합창되었다. 케잌의 촛불을 꺼는 일이 있었고 모두들 만수무강을 기원드렸다. 그리고 케잌을 맛보면서 행사가 종료되었다. 다음은 최종행사로 점심식사를 외식을 하는 것으로 진행이 되었다.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한 식육식당에서 행사를 치렀다. 불판에 고기를 구워서 먹으면서 담소를 나눴다. 가족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으로 이런 가족행사가 일년에 몇차례씩 주기적으로 치러지다보면 서로간의 소식도 전하게 되고 아이들의 성장소식도 듣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뉴스는 한 손주의 상장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3개의 상장을 타온 쾌거를 이루었다. 하나를 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세장의 상장이라면 그것은 대단한 노력의 결과라 할만 했다. 그래서 세배돈도 갑절을 받았다. 동서네는 흐뭇해했고 자식키우는 보람을 만끽했으리라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새해를 맞고 또 한해를 보낸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예상외로 순탄한 길이었다. 두아들이 유사의 보조일을 하느라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뜻깊은 행사에 참여를 한 보람을 느꼈고 또한 세배돈도 두둑히 챙겨서 한밑천 잡은 행사가 되었다. 큰아들은 운전을 하고 싶어 했는데 다음에 기회를 가지도록 남겨놓았다.
장인어른은 당당하게 살 것을 주문하셨다. 모두들 사회 각계각층에서 제역할을 해내고 있는 자식들이었고 모두들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가고 있는 모습이 가족 행사를 더욱 뜻깊게 했다. 여러 가지 계획이 있었기에 다른 계획은 비록 무산이 되었지만 그런대로 의미있고 감회가 남다른 가족행사였던 듯하다. 모든 가족들이 올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뜻한 바를 성취해나가는 그런 멋진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