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에서의 하루
오래전부터 얘기되었던 일정이었고 계획이었다. 본래 제주에서 1박2일로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국감으로 인해 한 달여가 순연된 것이었다. 집합은 서울의 강동구청 부근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새벽 4시30분이었다. 제법 거리가 있어 한 시간 정도의 소요를 예상하고 출발했는데 88을 타고 가다보니 금세 도착이 되어 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1차집결지에 도착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었고 오로지 가로등 불빛만 비춰져 나오고 있었다. 인근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약속시간이 되자 모두들 모였다. 어떤 이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를 해 둔 이도 있어 대략난감이었다. C프로의 차에 가방과 클럽을 다 싣고 출발을 했다. 다음은 2차 집결지였다. 골프장 인근에 있는 식당이었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깜깜한 새벽이었는데 도로에는 안개가 잔뜩 끼여 있었다. 시야가 가려져 제대로 속력을 낼 수도 없었다. 약속시간이 6시30분이었는데 정시에 도착을 할 수 있을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달렸다. 중부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가 중부내륙을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선탑을 했다. 뒤에 탑승자는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운전자가 혹시라도 졸음운전을 할까 우려되어 계속 얘기를 했다. 좀 조용히 하라는 권고도 있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 시간여를 달린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방 토속음식으로 유명한 올갱이 해장국집이었다. 마침 다른 팀도 정확히 도착해 반갑게 조우가 되었다. 인사를 나누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무척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손님들이 많았다. 특이하게 올갱이 해장국이라 하지 않고 올뱅이 해장국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금방 밥과 국, 그리고 찬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 차를 한잔 마셨다. 식당을 나와서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지척의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되었다. 안개는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라커를 배정받고 라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준비를 하고 나오니 아직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 공을 나눠주었고 또한 핫팩도 하나씩 주었다. 손이 시렸는데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한쪽에서는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다. 7시 20분대의 티업시간이었다. 다음은 30분대였다. 7분 간격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 조는 후반야였다. 스트레칭을 하고 본격적인 경기에 들어갔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가렸지만 스윙에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11월 하순의 날씨였음에도 제법 한기가 느껴졌다. 단풍은 거의 끝난 상황으로 여겨졌고 잔디도 거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다 빠진 상황이었다. 안개가 좀 걷히는가 싶더니 다시 또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좀체 안개가 끼는 지역이 아니었는데 안개가 낀 형국이 되어버렸다. 전반야 파3홀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K프로가 티샷을 벙크에 빠뜨렸다. 그런데 벙크샷을 했는데 그것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 버디가 되었다. 한바탕의 축하가 있었고 하이파이브가 나왔다. 후반야에서 L프로의 버디와 K프로의 버디가 추가로 나왔다. 실력들은 다 비슷해 보였으나 L프로가 정확하고 정교한 샷을 구사했다. 본래 예정은 전반야가 끝나고 선수교체를 할 계획되어 있었는데 그냥 그대로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전체 경기가 끝나고 나니 거의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최종 마무리가 되고 캐디언니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캐디언니는 고향이 원주라고 했다.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었는데 그로 인해 스윙이 상당히 향상된 이도 있었다. 그래서 농으로 캐디언니에게 레슨을 받으러 원주로 따라 가야겠다고도 했다. 대체적으로 무난한 경기가 이어졌다. 친선 경기였고 부담이 없는 경기를 펼쳤다. 스코어는 L프로가 제일 나았고 그다음이 K프로였다. 경기를 하면서 얘기를 나눴고 속내를 드러낸 얘기도 있었다. 항상 친숙하게 지내오긴 했지만 그렇게 속내를 드러낼 일은 없었던 듯했다. 경기를 마치고 라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라커에서 몇몇 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서울에서 워낙 먼 거리를 달려 왔기에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코스는 정규홀로 손색이 없었고 국제경기도 할 만큼 이름난 곳이라고도 했다. 경관도 무척 좋아보였다. 특별히 문제될 만한 시설도 인근에는 없는 듯 여겨졌다. 일행들은 모여서 다시 식사를 하러 갔다. 골프장 입구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운동을 하고 난 후라 시장기가 돌던 터라 제법 식욕이 샘솟았다. 등심에 식사를 했고 반주도 한잔씩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담을 나눴다. 운전을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제법 술을 마신 듯했다. 국도를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일죽 IC에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차들이 무지 많았다. 휴일 오후였기에 상당히 막히는 구간이었음에도 조금 지나자 순조로운 흐름을 보였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차를 한잔하기도 했다. 국도를 타고 고속도로를 탄 것이 주효했는지 생각보다는 막힘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4시 가량이 되었다. 본래의 계획은 거기서 각자 해산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변동이 생겼다. 다시 한잔을 더하자는 얘기가 나와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두 명의 초청인사가 왔다. 그리고 다시 자리가 만들어졌다. 휴일 오후라 손님은 없는 편이었다. 횟집이었다. 세꼬지와 산낙지를 시켜서 먹었다. 본격적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다섯 명이 앉아 얘기를 하며 우의를 돈독히 하는 자리가 되었다. 휴일 새벽부터 움직여 무척이나 긴 하루가 되었다. 가을날의 막바지에 정겨운 이들과 한차례 늦가을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리가 다소 멀었고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던 부담감은 있었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날씨도 안개가 계속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터라 괜찮은 편이었다. 언젠가 나이가 더 들면 그렇게 즐기려 해도 즐기지 못할 때가 오리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