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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조선 책사

by 자한형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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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책사

 

 

얼마 전 한창 공전의 흥행 기록을 남겼던 관상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속에서 관상가를 찾아간 한명회는 자신의 사후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결국 사후에 그는 그렇게 다시 한 번 죽음을 맞이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게 된다. 오래전 오자서란 인물의 얘기가 전해지는데 거기에 부관참시에 관한 것이 있었다.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자서는 복수의 칼을 갈고 우왕을 섬기며 호시탐탐 그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결정적인 기회를 잡아 초나라를 쳐서 조왕을 부관참시하면서 자신의 복수극에 막을 내리게 된다. 타국에서 떠돌며 철천지한(徹天之恨)을 품고 살았던 오자서의 사무치는 원한이 해소된 것이다. 한명회는 세조를 왕위에 올린 일등공신이다. 칠삭동이로 태어나 제대로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음서로 공직에 취임하여 경덕궁지기로 있던 이가 일약 최고의 공신으로 거듭나고 용의 여의주로 화해 혁혁한 공훈을 세우게 된다. 친구 권람의 소개로 수양대군을 알게 된 그는 제대로 용을 알아본 것이었다. 측근 30여명을 천거하고 수양의 야심을 성취시켜나가게 된다. 계유정난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수양의 권력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계유정난은 그때 당시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김종서 등을 제거하기 위해 정변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그가 작성한 것이 살생부라는 것이었다. 국가 비상사태를 맞아 대궐로 대신들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살생부에 적혀있는 이는 곧바로 죽임을 당해 황천길로 갔던 것이다. 이로서 수양의 입지는 굳건해졌다. 선양의 형식을 빌려 왕권을 찾은 수양은 다음으로 단종복위운동을 빌미로 해서 사육신을 다 몰아세운다. 수양은 용이었고 여의주가 없었다. 그 여의주의 역할을 한 것이 한명회였다. 그는 조선 최고의 책사로 손색이 없었다. 세조가 되었을 때 그는 한명회를 그렇게 평했다. 나의 자방이라고 했단다. 한고조 유방의 최고 책사 장자방을 빗댄 것이리다. 세조가 왕이 된 후 명나라 사절을 환영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를 기회로 사육신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킬 음모를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행사는 단출하게 치러지고 거사계획은 순연된다. 그러던 중 김질이라는 이가 음모내용을 고변하게 되고 성삼문 등 사육신은 옥고를 치르고 결국 역모죄에 몰려 삼족이 멸하는 화를 당하게 된다. 한명회의 첫딸은 신숙주의 아들과 혼인을 하게 되고 둘은 사돈이 된다. 신숙주는 수양이 명나라 사은사로 가는데 동행하면서 세조의 권유를 받아 세조의 사람으로 변해가게 된다. 신숙주와 한명회는 세조의 두 축으로 작용하게 된다. 신숙주가 세조가 왕좌에 앉은 후에 왕권을 유지해 가는데 공훈을 세웠다면 한명회는 왕권을 세우는데 진력을 다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반역이라는 맥락에서는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왕권을 공고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한명회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은 각각 예종과 성종의 정비가 됨으로써 한명회의 부귀영화와 권세는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 두 딸이 비록 원자를 생산하지는 못했지만 한명회의 권세를 유지시켜가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이다. 어느 날 세조가 세자를 앉혀놓고 한명회와 신숙주가 마주앉아 정담을 나눈다. 그러던 중 세조는 신숙주에게 자신의 팔을 잡아보라고 한다. 한참 머뭇거리던 신숙주는 세조의 팔을 꽉 움켜진다. 얼떨결에 술에 취해 무심코 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세조는 세자에게 너는 결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이른다. 술자리가 끝난 후 한명회가 신숙주에게 오늘은 집에 가면 책을 읽지 말고 일찍 잠자리에 드시오.” 라고 하자 영문도 모른 채 신숙주는 한명회가 이른 대로 그렇게 평소와 같지 않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후에 들린 얘기로는 내관이 신숙주 집에 들러 신숙주의 방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불이 켜져 있었더라면 술자리에서 행동이 심히 불손한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숙주는 집현전 학사였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집현전에서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 임금이 직접 자신의 호피를 벗어 덮어주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랬던 신숙주는 세종의 은총도 잊고 그렇게 변심을 했다. 계유정난이 있던 날이었다. 정절을 지키고자 했던 신숙주의 부인은 신숙주가 분명히 충절을 지켰을 것이라고 믿고 그는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해서 관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고도 한다. 야사에서는 그런 그를 보고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해서 그 부인이 자결을 했다고 한다. 아무튼 한명회는 엄청난 예지력을 갖고 있었고 실행력과 기획력을 갖고 세조를 왕위에 올리는데 충성을 다한다. 한때 남이장군 등의 위세에 눌려 잠시 권좌에서 물러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순풍에 돛을 단 듯 그렇게 일취월장(日就月將)하여 최종적으로는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성종조에 왕비가 일찍 죽고 난 후에는 권세에서 물러난다. 명의 사신을 접대하는 과정에서 소홀함이 있어 공직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말년에 그는 압구정에 은거하며 노후를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천수를 누린다. 사후에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수양을 왕으로 만드는데 최고의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고 한다. 왕권을 확립하기까지 매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 치라도 빈틈을 보인다면 언제 어떻게 상황이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속에서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그것에 쫓아 일을 진행시켜 나갔고 그러면서 세조를 왕위에 올린 것이다. 세조는 왕이 되고 난 후에 병마에 시달렸고 자식도 일찍 죽게 되는 횡액을 겪는 등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업적에 있어서도 왕권을 공고히 하고 초기 왕조를 굳건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사관에 따라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조선 책사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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