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을 오르며
지난 월요일이었다. 예정대로 직원들과 함께 금오산을 올랐다. 정상까지는 상당히 가파르고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단다. 거의 1/3수준까지만 답사를 하는 것으로 했다. 목요일에 교육생들을 이끌고 가야 했기에 사전에 미리 돌아보는 것이었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해발977미터였다. 정상에는 헬기장도 마련되어져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 대해폭포까지는 1키로 남짓한 거리였다. 정상까지 가려면 2.2키로미터를 더 가야했다.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져 있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었고 차량의 주차비로 입장이 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차량이 회차해서 바로 돌아갔기에 별도의 비용 부담은 없었다. 한 직원은 이제 갓 결혼한 신혼의 새댁이었다. 가장 힘들 것으로 여겨졌는데 역시 젊은 새댁답게 씩씩하게 걸어서 올랐다. 다들 물병을 하나씩 챙겨들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산길을 올랐다. 처음에는 나무로 계단이 되어 있었고 고무로 된 탄력있는 깔판이 깔려 있어 순조로운 출발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돌 길이 이어졌다. 한 직원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옆길에 계속 이어지고 있는 소나무에 대한 얘기였다. 나무가 붉게 되어져 있는 소나무는 국산이라고 했다. 그것은 솔잎이 두가닥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산 소나무는 솔잎의 가지수가 세가닥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병충해에 강한 것은 아무래도 외국산이 더 강한 것으로 되어 있단다. 금오산의 입구에는 자연보호 헌장의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입구에는 호수가 길다랗고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변으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산책로가 되어져 있었고 그곳을 다 걸어서 돌아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40분 정도라고 했다. 입구에는 메타세콰이어가 길게 줄지어 자라고 있었고 최소 수령이 35년을 넘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예전 근무했던 곳에 수령이 30여년된 메타세콰이어가 8그루 가량 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키가 둘레가 커 보였기 때문에 추정한 것이었다. 외국산이어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는데 숲 속에 있으니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간간히 등산객들이 즐비했다. 그것도 대부분은 부인네들이었다. 40여분을 산행해서 도착한 곳은 대해폭포였다. 여기저기에 벤치가 마련되어져 있고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기념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며 등산의 피로를 씻었다. 그전에 케이블카의 내리는 곳이 있었고 그 옆에는 약수터와 해운사라는 암자가 하나 있었다. 돌담틈으로 다람쥐가 한 마리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옆에 직원에게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얘기를 했다. 그것이 하나의 사단의 빌미를 제공했다. 어슬프게 사진을 찍는다고 핸드폰을 꺼내던 차에 같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카드를 땅바닥에 떨어뜨려버린 것이다. 신록의 푸르럼이 날로 더해가는 6월의 싱그러움이 더할나위 없었다. 무더울 법도 한데 산속이라 그런 무더위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대해폭포에는 예전 대통령이 그곳을 방문하셔서 처음으로 그곳에 버려져 있던 병조각 등을 주으면서 자연을 보호하고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시작된 자연보호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라고 했다. 목적지에서 내려오면서 보니 금오산 입구에 자연보호헌장이 새겨진 표석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라는 표석을 크게 새겨놓았다. 일행을 모두 모이게 해서 기념사진 촬영도 했다. 대해폭포에는 그때당시의 박대통령의 사진이 새겨져 있었고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라는 표식을 해 두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다.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금오란 이름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화상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 곧 전설속에서 태양 속에 산다는 금오(金烏)가 나는 모습을 보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단다. 이곳 사람들의 금오산에 대한 긍지와 존경을 보여주는 설화의 한 토막이겠는데, 그밖에도 이 고장 사람들의 금오산에 거는 애정과 기대를 보여주는 얘기는 수도 없다.ㅍ선산에서 보면 붓끝같이 보이는 금오산의 ‘필봉’(筆峰) 덕에 선산에는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난 사람들이 많이 난단다. 이미 금오산의 정기를 받아 대통령이 나셨으니 그 정기는 남다른 바 있다. 구미시 인동에서 이 산을 보면 귀인이 관을 쓴 것 같아서 ‘귀봉’이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큰 부자와 높은 벼슬아치가 흔한 까닭이 이 때문이라는 게 인동사람들의 자랑이다. 또 김천에서는 노적가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금오산을 ‘노적봉’이라고 부르며, 같은 김천의 개령에서 보면 도적이 짐을 지고 내려오는 모양이라 하여 ‘적봉’(賊峯)이라 하는데, 이 때문에 이곳에서 큰 도적이나 모반이 자주 일어났다고 엉뚱하게 풀이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주지방에서는 이 산이 여자처럼 보인다 하여 ‘음봉’(陰峯)이라 부르며 성주 기생이 이름난 것도 이러한 산세 탓이란다. 또한 일설에는 부처님의 얼굴형상을 산 능선이 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얼굴상의 광대뼈 부분에 전신주 탑이 세워져 있어 별로 좋은 정기를 뿌리내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전신주 탑을 뽑아야 한다는 등의 얘기도 나오고 있단다. 본디 우리 일행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목요일에 오게 될 직원들이 식사를 하기로 예정된 식당에 들러 식사를 했다. 한시간여의 산행이었지만 신록의 푸르럼을 새삼스럽게 느껴보았고 금오산의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래 고향집과 감나무집이 있었는데 감나무집에 들어갔다. 정갈하게 차려진 소담스러운 음식들이 나왔다. 능이버섯 백숙이라고 했다. 무척이나 맛깔나는 음식들이었고 시장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토리묵 무침 등은 추가로 더 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금오산의 1/3밖에 오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나마 구미의 영산(靈山)이라는 곳을 오르면서 여러 가지 감회가 떠올랐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그분의 뜻은 아름답게 우리 나라 국토 곳곳에 그 정신을 뿌려놓고 가셨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공과가 뒤섞여 있지만 어느만큼의 재평가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심신의 피로를 풀고 금오산을 오르며 새로운 정기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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