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갖는 의미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흔히들 얘기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살게 하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 그것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인가. 까뮈란 작가가 말했다.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것에서 답이 긍정적이면 사는 것이고 부정적이면 죽는다는 것이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면 죽어야 한다. 그것에서 거론되는 것이 자살이었다. 자기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상실한다면 살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는 오로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개개인의 몫으로 여겨진다.
이제 잠수종과 나비에 관해 살펴보자. 42살의 잘나가는 여성잡지 엘르지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는 어느 날 출근길에 차속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어린 아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사람을 부르고 119를 부른다. 그는 20일 후에 깨어난다. 병명은 감금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살아있는 것은 왼쪽 눈뿐이다. 그가 의식하고 감지하고 뇌가 살아있는 것뿐이지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리따운 언어치료사 또는 도우미가 두 명이나 치료를 돕지만 회복은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이 겪은 것에 대해 눈까풀의 깜박임만으로 소통하고 그것을 가지고 책을 집필한다. 6개월 동안 피나는 소통을 통해서 탄생한 작품은 “잠수종과 나비” 라는 것이었다. 소통을 위해서 가족이 오고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어린 아들이 닦아준다. 가족은 그래도 아빠라는 자리를 지켜주며 뽀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고향집으로 가서 아버지의 면도를 직접 시켜주는 것이었다.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 면도를 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체득했었다. 그는 가족이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았다. 그녀는 전화로 자신의 얘기를 전해왔다. 진실로 가보고 싶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싫다고 했다. 매일매일 그녀를 기다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의 친구가 오고 가족이 오지만 결국은 그와 소통할 수 있는 이를 고용해서 그를 통해서 눈꺼풀로만 소통하면서 책을 쓴다. 그리고 그것은 완성된다. 바다도 가고 산천을 떠돌아보지만 그는 그 예전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옛 애인과의 추억도 되돌려 보지만 관계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유사한 형태인 여성의 복수극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 했다. 음식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는 급기야 폐렴까지 걸리게 된다. 그는 그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가 가진 삶이라는 것은 어떤 가치와 목적을 예정한 것일까. 손 또는 발 소위 말하는 사지육신하나 제대로 운신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그 속에서 삶의 깊은 심연을 느껴볼 수 있을까. 결국 그렇게 의식이 회복된 상태에서 그는 6개월간을 의사소통에 몰입했고 그 속에서 잠수종과 나비가 탄생되었다. 그런 후 그는 10일 더 살다가 영면했다. 우리가 보았던 세월호 사건에서 투입되었던 다이빙 벨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잠수종이었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기 위해 들어가는 곳 그 속에서는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고 소통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도미니크 보비는 어떤 것을 느꼈을까. 그가 겪었던 일화 하나가 소개되었다. 그가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탔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 비행기의 좌석을 자신과 바꾸자고 했던 것이다. 그로써 그는 베이루트로 가서 그곳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억류되었다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그 두 사람의 운명은 어쩜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될 수 있었던 것일까. 결국 우리는 그런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보비가 그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가 저지른 죄업의 결과인지 업보라는 굴레인지는
정확히 장담할 순 없다. 보비에게 닥쳐온 불행이 어느 누구한테나 닥쳐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그는 정말 인생의 정점에서 횡액을 당했고 자신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처지에 놓였고 그것은 그의 희망이나 바람과 상관없이 그렇게 갑자기 다가왔다.
옛 고전에 천지불인이라는 말처럼 천지는 결코 그렇게 자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착하고 문제없는 인간에게도 횡액은 사정없이 몰아치고 부딪치게 만든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전생의 업보에 의해서 귀책을 따질 수도 있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마치 자연현상처럼 사람에게 다가오는 숙명이고 굴레의 한 방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에 너무 휩싸여서 몰입해버린다면 인간의 의지가 정말 형편없이 추락해버린다. 잠수종과 나비가 주는 암시는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만큼 곤궁한 때나 횡액당하는 시기를 대비하고 그것에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항시 갖추라는 운명의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