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8월 중순쯤이었다. 3일연휴가 이어졌다. 하루는 집사람이 선원을 가는 날이라 이틀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다. 두아들을 불러놓고 상원사를 다녀오겠다고 다짐을 주고 길을 나섰다. 지난 겨울에 이어 두 번째였다. 물론 그전에도 찾은 적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연휴 2일차여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이 더 힘들어 보였다. 반대편 차선은 귀경을 서두르는 인파로 인해 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으로 변해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먼저 일단 숙소부터 정했다. 다행히 연휴임에도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집사람의 몫이었다. 원주의 리츠칼튼 호텔이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상원사를 둘러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중부고속도로로 가다가 호법에서 영동으로 갈아타고 가는 중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갓길의 운행 허용이었다. 가는 길이 순탄치만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인해 한결 운행이 순조로울 수 있었다. 진부IC에서 국도로 접어들었다. 오후에 출발한 탓에 5시경이 되고 있었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은 한적했다. 한여름임에도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을 실감해 볼 수 있었다. 신록이 푸르럼을 더해가고 있었다. 지난해 연말에 올 때에는 백설이 만연했었는데 분위기가 너무도 달랐다. 월정사를 지나고 보니 곧이어 비포장길이 나왔다. 한참을 올라갔더니 상원사 입구 주차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차를 주차해 두고 선재길을 따라서 상원사까지 올라갔다. 짧은 거리여서 금방 상원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여름의 더운열기가 이곳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소나기가 한줄기 뿌려졌다. 그동안은 꼼짝없이 법당옆에서 비를 피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상원사는 조선왕조 7대임금 세조와 인연이 깊었다. 불공을 드리러 세조가 왔다. 그는 몸에 부스럼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근처의 냇가에서 몸을 씻었다. 한 동자승이 오길래 등을 좀 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신당부를 했다.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발설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동자승이 얘기했다. 어디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얘기하지 말라더라는 것이다. 세조는 화공을 불러 문수보살의 형상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목조각을 해서 후세에 남겼다. 그것이 목조문수보살좌상이라는 것이란다. 다음에 또 세조가 상원사를 방문했다. 법당에 들어서려는데 고양이가 한사코 소매를 물고 늘어지더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인적을 수소문했더니 글쎄 자객이 법당 깊숙이 숨어서 그의 목숨을 노렸더라는 것이다. 세조는 고양이 덕이 목숨을 건졌다. 그래서 그는 상원사에 묘전을 내렸단다. 고양이를 위한 전답인 것이다. 이후 상원사에는 방한암이라는 선사가 있었다. 6.25 전쟁 당시의 얘기였다. 국군이 후퇴하면서 상원사의 절이 적의 근거지나 요충지가 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불태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자 한암선사가 나를 죽이고 절을 불태우라고 했다. 그러자 군인들은 문짝만 떼어서 태우고 후퇴를 해서 전란 가운데 상원사가 보전될 수 있었단다. 절터의 왼쪽으로 올라가면 적멸보궁과 사자암을 만날 수 있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이었다. 적멸보궁 뒤에는 사리탑도 있었다. 한켠에는 고3수험생을 위한 보시도 받고 있는 듯했다. 집사람의 도반 두분은 시간이 날 적마다 이곳 적멸보궁에 와서 서너시간씩 좌선을 하고 간다는 얘기를 했다. 갑자기 까마귀들이 떼지어 날아왔다. 소나기가 내린 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흉조인지 까마귀떼들이 몰려왔다.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했기에 몸은 비에도 젖었고 땀에도 젖어버린 상태였다. 집사람이 간단히 예불을 하고 하산길을 서둘렀다. 월정사를 둘러볼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곧장 횡성 둔내정도를 목적지로 하고 자동차를 몰았다. 결국 지체구간을 만날 수밖에 달리 여지가 없었다. 면온IC에서 국도로 빠져나왔다. 한적한 길이라 막힐 일은 없었다. 바로 옆이 고속도로였다. 그렇게 해서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우프라자였다. 얼마나 손님이 많았던지 번호표를 배부하고 있었다. 번호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쪽에는 회갑연을 하고 있는 대가족을 보았고 또 한쪽에는 단란하게 식사하는 40대 중반의 부부와 가족이 열심히 맛좋은 횡성한우를 음미하고 있었다. 가격도 서울의 일류식당에 버금가는 가격이었고 보통사람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만한 가격이었다. 우리도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품질의 한우를 맛보기 시작했다. 맛은 일품이었다. 육즙이 제대로 우려져 나왔다. 횡성한우의 특별한 맛을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연휴를 그나마 이렇게라도 즐길 수 있고 보낼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올림픽경기는 한창이었고 무지하게 무더운 올해의 더위는 끝날 줄을 모르고 열대야까지 몰고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전기세 걱정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피서를 제대로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올여름도 가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오래 더위가 온다고 해도 세월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은 멈출 수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것을 항상 잊고 살기가 일쑤인 것이다. 소중한 시간들 나날들을 아낌없이 후회없도록 소중히 여기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상원사에서의 여름나기가 이렇게 지나갔다. 아주 의미심장한 순간이었고 지난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앞으로의 나날을 대비하고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남아있는 날들을 더욱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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