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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취(6권 수필집)

팔순 잔치

by 자한형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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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잔치/이미애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예순을 넘긴 어르신들이 환갑이니 진갑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청순도 예순부터라는 말처럼 젊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바뀌었는지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아버지가 팔순을 맞아 4남매가 아버지의 팔순 생신을 위해 잔치를 준비한다고 분주했다. 워낙에 종친 사람들이나 친구들 모임을 좋아하는 아버지다보니 초대할 분이 많았나보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지나 친구정도나 부를 요량이 차츰 규모가 커져 50인석을 차지하는 횟집에 잔칫상을 차리게 되었다. 초대한 사람이나 찾아온 사람들이나 모두 흥겨운 시간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유독 들떠있었다. 아버지는 인사말씀을 시켰는데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선사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애처가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불러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2절까지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멋들어지게 불러주셨다. 울컥하니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정말 이렇게 곱게 나이든 부모님이 건강하게 두 분 다 건재하게 곁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5남매의 막내인 아버지와 6남매의 막내인 어머니 중에서 생존해 있는 분은 고모 2분이었다. 사회자인 막둥이가 돌아가신 분들을 열거할 때는 왠지 기분이 묘했다. 삶과 죽음이 어떻게 이렇게 기구하게 갈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예전 같으면 이 팔순잔치가 동네잔치로 번져 찌짐과 동동주, 편육, 두부김치 등이 자리했을 상차림이 기교를 잔뜩 부린 초밥에 회접시에 잣죽, 해산물 등 예전에 봐왔던 환갑잔치와는 사뭇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동네가 들썩이든 잔치의 묘미는 사라지고 이젠 그 품격 있는 축하와 격의 있는 덕담만이 오고갈 뿐이었다. 마지막에 시조창을 배운 외사촌언니가 연륜이 있다 보니 시절가를 한 구절 뽑아내어 모든 이의 심금을 울렸다. 그냥 딱히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모두가 절로 숙연해지는 매력인 창의 가락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절로 어깨춤을 들썩였는데 슬픈 곡조에 휘적거리는 품새는 참 묘한 앙상블을 이뤘다. 나이가 많아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렇게 장성한 자식들 앞에서 그 장수함을 축하를 받게 되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고 늘 입으로만 하던 자랑을 아버지는 이렇듯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식당에 허락된 시간은 2시간30분으로 그리 넉넉한 시간도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기분을 업 시켜주는 데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노래방으로 2차를 옮겨 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평소 한 번도 본 적 없는 춤을 아사 한복차림으로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마치 예전 시골마당의 춤사위를 보는 듯이 나풀거리며 흥에 겨워했다. 끝까지 아버지기분이 언짢지 않게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 흥을 돋웠다. 술도 오르고 기분도 좋아져 모두 신나는 곡조로 자신들의 애창곡을 유감없이 불렀다. 점심때 시작된 팔순잔치는 해거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모두가 즐거웠고 초대된 친척들은 마치 내 부모가 자신들의 팔순 부모인양 같이 즐겨주고 웃어주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함께 즐거워하고 노래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끌어안아 축하해주는 모습이 여간 보기 좋았던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팔순 잔치는 그렇게 어둠이 잦아들 때 마무리가 되어 모두 뿔뿔이 제갈 길을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친 발걸음으로 아이들이 배웅해주는 집 초입에서 헤어졌다. 팔순의 연세로 두 분의 하루 잔치는 힘든 여정이었고 고된 손님맞이 행사였지만 이제 평생 있을까말까 하는 뉘앙스의 뒤풀이도 끝이 났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적막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별 말없이 씻으시고 각자의 잠자리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팔순 잔치는 이미 끝이 났지만 아버지만이 아직도 그 여흥이 남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식들은 효도다운 효도를 한 것 같이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하는 전화 한 통화로 팔순 잔치를 갈무리했다.

아버지, 아머니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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