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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향취(2019.10 7권)

H 선생님과 콰이강의 다리

by 자한형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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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선생님과 콰이강의 다리

 

얼마전 동창회 총무의 모친상이 있었다. 그곳에 갔다가 동창으로부터 H선생님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이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중이었다. 대통령의 캐나다 순방이 있었다. 당연히 경호원으로서 그는 동반했고 캐나다에 계신다던 H선생님을 수수문했다. 현지 대사관을 통해 교포중에 H선생님을 찾은 것이다. 동창생이 묵고 있었던 호텔로 찾아왔더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H선생님은 동창생을 집으로 초대했다. 동창은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다. 엄청난 집이었단다. 수영장도 있었고 식사로 나온 것은 송어회였단다. 학교 선생님을 마치시고 곧바로 캐나다로 이민을 가신 것이었다. 우리가 H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3학년 영어 시간이었다. 주교재에 관한 영어 선생님은 따로 계셨고 H선생님은 참고서 등을 수업하는 선생님었다. 휘파람을 불면서 교실에 등장하셨다. 그것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주제곡이었다. 보기중령의 행진곡이라고 명명되는 영화주제곡은 아침에 모닝콜용 곡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영화속에서 영국군 포로들이 행진할 때 나오는 행진곡이었는데 음율이 독특했다. 수업중에 콰이강의 다리에 관한 영화얘기도 해 주었다.

콰이강의 다리는 ‘57년 데이비드 린감독이 제작한 영화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부분에 수상작이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버마-태국 간 철도를 수용하는 교량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국군 포로들의 상황을 다룬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작업을 태만히 하려 하지만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 분)의 지도 아래 주어진 여건과는 상반된 영국인의 자존심인 기상과 위엄으로 다리가 건설되어야 한다는 설득을 당한다. 처음에 포로들은 일본군 사령관 사이토(하세가와 세슈)의 이익을 위해 그의 신념을 굽히기 보다는 용감하게 고문을 견뎌내는 니콜슨을 존경한다. 그는 명예롭지만 오만해서 강박관념에 현혹되어 있음을 차츰 내비친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 다리가 영국인의 기념물이 될 것임을 납득시키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념물이다. 그리고 건설 강행의 주장은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된다. 그가 모르고 있는 동안, 연합군은 워든 소령(잭 호킨스)과 미국인 시어즈(윌리엄 홀덴)가 이끄는 특공대를 정글로 보내 그 교량을 폭파하도록 하는데...

인도양의 보석 스리랑카의 밀림지대에서 올로케로 촬영한 <콰이강의 다리>는 데이빗 린 감독이 처음으로 시네마스코프 방식으로 촬영한 영화다.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보다 가로가 더 확장된 스크린 투사 방법으로 와이드 스크린으로 불리면서 대하 서사극의 제작에 많이 사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한 축인 태평양전쟁을 다룬 이 영화는 그러나 전투 장면이 거의 없는 독특한 성격의 전쟁 영화다. 전투신이 없는 대신 포로수용소 사령관과 포로 지휘관이라는 극단의 상반된 인물을 내세워 심리적 스펙타클” - 스필버그가 표현했다고 하는 - 을 세밀하고 과장되게 보여준다.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 수상에 빛나는 알렉 기네스는 영국군 장교로서 위엄과 기품을 견지하면서 적을 이롭게 하는 다리 건설마저도 자신의 야망과 영국군의 기강 확립에 필요한 수단으로 광신하고는 철저하고 엄격하게 공사를 밀어붙인다. 영화는 1943년 타이 북서부에 실제로 건설됐던 전략적 교량을 소재로 구성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불의 소설을 각색하여 제작된 것이다. 소재만 따왔을 뿐 실제 내용은 소설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다리는 완공 즉시 폭파되지 않았고 1945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다리를 보수해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포로 사령관의 행적 등도 차이가 있다. 그는 실제로 다리 공사를 지연시키고자 많은 애를 썼다. 모든 일이 원래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는게 특별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데이빗 린 감독이 원하지 않았던 알렉 기네스는 다른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을 거절한 덕택에 참여하게 되었다. 본래 뛰어난 연기로 각종 영화상을 휩쓰는 명배우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린 감독도 그의 진중한 연기에 매료되어 이후의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닥터 지바고, 1965>에 연이어 기용하게 된다. 처음에 알렉 기네스는 니콜슨 중령 역을 연기하는데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인기만점의 코미디 시리즈에 출연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은 배우였다. 니콜슨의 캐릭터는 유머도 없고 애교도 없는 심지어 따분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네스는 그의 연기에 약간의 유머를 주입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린 감독은 그 생각에 크게 반대해 엇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촬영 내내 두 사람 사이에 불화와 언쟁이 끊이지 않았다. 데이빗 린 감독은 처음에 니콜슨 중령 역에 알렉 기네스를 캐스팅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그는 기네스가 그 역이 필요로 하는 역량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작자인 샘 슈피겔은 꼭 기네스를 쓰고 싶었다. 그는 기네스가 그 역에 끌리기를 바라면서 저녁에 초대했다. 식사가 시작될 때 기네스는 그 역을 맡지 않을 것은 확고하게 보였다. 그러나 식사가 끝날 즈음 두 사나이들은 기네스가 영화상에서 어떤 가발을 쓸지 의논하고 있었다. 샘 슈피겔의 설득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알렉 기네스를 캐스팅하기 전에 샘 슈피겔은 니콜슨 역을 맡기려고 스펜서 트레이시를 기용하려고 했다. 트레이시는 그 책을 읽은 후 슈피겔에게 그 역은 영국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은 케네스 알포드가 1914년 작곡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말콤 아놀드가 휘파람 소리를 추가해 편곡한 것이다. 말콤은 그 해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했다. 들어보면 아! 하고 기억해 낼 것이다.콰이강의 다리는 비주얼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적 지평도 확장시켰다. 콰이강의 다리에 대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심리적 스펙터클이라는 표현처럼, 니콜슨 대령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내면적 소용돌이를 지니고 있다. 그가 규율을 강조하고 삶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캐릭터라고 영화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포로의 신분으로 적에게 동지애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솔선수범하여 다리 건설을 차질 없이 해내려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캐릭터들에게 종종 몽상가나 공상가의 느낌이 풍기긴 하지만, 콰이강의 다리의 니콜슨 대령은 자신의 관점과 야망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엉뚱한 영웅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깨닫는 것(다리 공사를 지연해야 한다)을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의 이기적인 행동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H선생님의 지론은 그랬다. 젊은 시절 충분히 인생을 향유하고 추구하고 방황하고 구가하면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종교는 충분히 인생을 다 영위한 연후에 죽음이 임박할 때 쯤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제대로 세상을 사는 법이란 식이었다. 40여년 전 인생을 항해할 피끓는 젊은 이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고자 했던 H선생님이었다. 이제는 우리들도 모두 회갑은 넘긴 장년이 되었다. 아득한 추억속의 H

선생님의 박력과 활력이 넘쳤던 모습이 아스라한 회상속에 남았다. 독실한 종교를 가졌던 동창생들은 H선생님의 호기에 반박하기 위해 그와 안병욱님과의 토론을 붙여야 한다고도 했다. 유명한 철학가와 맞장토론을 한다면 H선생님의 주장은 빛을 잃을 것이란 얘기였다. 젊은 시절 인생에서 콰이강의 다리에 나온 영국군 장교처럼 그렇게 자신의 신념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과연 인생을 그렇게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과 소신대로 생을 영위했는지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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