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 (2) 고대 중국의 바둑/이재형
요임금이 만든 신의 게임
바둑의 기원, 즉 바둑이라는 게임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중국의 요(堯) 임금이 우둔한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치기 위해서 두뇌 훈련용 게임으로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또 중국 고대 점성술의 일부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요임금이 만들었든, 순임금이 만들었든, 단군이 만들었든 누가 만들었으면 어때? 어차피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이미 아득한 옛날 바둑이란 게임이 생겨났다는 것만 알면 되지.
요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아들 단주
2000년 전에 이미 중국에서는 대중적인 게임으로서 상당히 널리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의 고전인 『논어』와 『맹자』에도 바둑에 관한 언급이 있다. 공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낫다”(「飽食終日,無所用心,難矣哉!不有博弈者乎,為之,猶賢乎已!」)라고 했다고 한다. 공자는 바둑을 별로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게임으로 보진 않은 것 같다. 『맹자』에도 바둑을 잘 두려면 큰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실려 있다고 한다.
삼국지의 관우(關羽)도 화살 맞은 팔을 명의 화타(華陀)에게 수술을 받으며, 마취 대신 바둑을 두면서 그 고통을 참았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정말 독하다!!!). 조조(曹操)는 병법을 통달한 지략가이자 시와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바둑을 잘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기보로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오(東吳)의 손책과 그 신하 여범(呂範)이 둔 기보(棋譜)가 전해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위작(僞作) 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바둑을 두면서 화타로부터 수술을 받는 관우
중국에서는 오래된 바둑 유물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바둑판으로서 전한 시대(前漢時代)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제 바둑판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한나라 경제(景帝, 재위 BC 157~141년) 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매장(埋葬) 품이 아니라 능을 지키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능 옆에 있는 바윗돌에 바둑판을 그리고 거기서 바둑을 둔 거다. 이것은 이 시대에 이미 하급관리들이 바둑을 둘 정도로 바둑이 상당히 널리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만고의 진리를 하나 확인할 수 있다. 언제 두는 바둑이 제일 재미있을까? 퇴근길에 한수 두는 바둑? 느긋한 휴일 오후 친구와 즐기는 바둑? 아니다. 직장인이라면 근무 시간 중에 상사의 눈을 피해 두는 바둑, 학생이라면 수업시간 중에 노트에 바둑판을 그려 선생님 몰래 두는 바둑, 그것이 진짜 바둑의 맛이고 바둑의 즐거움이다. 2000년 전의 중국의 능지기들도 능을 지키면서 윗사람 몰래 바둑을 즐긴 것이다. 바로 근무시간 중에...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란 만고의 진리를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손책과 여범의 둔 기보
당나라 시대에는 왕적신(王積薪)이 유명하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산속 오두막 집에서 만난 모녀로부터 바둑을 배운 바로 그 당사자. 바둑고수인 왕적신은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바둑 격언을 만든 것으로 후세에 그 이름을 길이 남기고 있다. 위기십결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는 경구(警句)가 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옆길로 새서, 위기십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이기지 못한다.
2. 입계이완(入界宜緩): 상대방의 영토를 침범하려거든 멀찍이서 서서히 들어가라.
3. 공피고하(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할 땐 스스로를 잘 살펴라
4. 기자쟁선(棄子爭先): 사소한 것은 버리고 주도권을 잡도록 하라.
5. 사소취대(舍小就大): 작은 것은 주고, 큰 것을 얻어라
6.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해진 돌은 버려라. 살리려들면 더 크게 죽는다.
7. 신물경속(慎勿輕速): 너무 가볍게 바둑을 두지 말고, 신중하게 두어라.
8. 동수상응(動須相應): 약한 말은 적과 함께 움직여라.
9. 피강자보(彼強自保): 상대가 강하면 스스로를 잘 지켜라
10. 세고취화(勢孤取和): 내 돌이 위험할 땐 적당히 타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