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3) 중국의 바둑/이재형
바둑교재와 바둑꾼들의 등장
바둑은 여러 오락 가운데서도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에서는 옛날부터 학식을 갖추고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사회에서 많이 두어졌다. 바둑을 잘 두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야 하는데, 먹고 살기에도 힘에 벅찬 일반 백성들은 바둑 같은 여흥을 즐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은 전통적으로 “품격 있는 오락”으로 여겨져 왔다. 그 반면 중독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시기에는 바둑을 금지하는 정책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놀기에 빠져 사회기강을 해친다고 것이었다.
바둑을 즐기는 고대 중국인들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군자(君子)의 품격으로서 금기서화(琴棋書画)를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즉, 음악(거문고)과 바둑, 그리고 글씨와 그림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둑은 선비의 고급스런 취미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나그네가 여행을 하다가 마을의 부자로 알려진 양반 댁에 가서 하루 묵기를 청하였다.
주인이 물었다. “손님은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손님이 “둘 줄 모르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럼 장기는 둘 줄 아시오?”
손님은 또 “장기도 못 두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저 행랑채에 가서 하인들과 꼰(고누)이나 두면서 하루 밤 묵고 가거라”
중국 원(元) 나라 시대에는 기가 막힌 바둑교재가 발간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엄덕보(嚴德甫)와 안천장(晏天章)이라는 두 사람이 지은 『현현기경』(玄玄碁経)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주로 바둑의 사활, 묘수 등에 관한 일종의 문제집인데, 온갖 기묘한 형태의 사활문제가 나온다. 물론 바둑실전에서 쉽게 발견되는 수들은 아니지만, 일단 그러한 기기묘묘한 문제를 만들었다는 데에 감탄할 따름이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명나라 때는 관자보(官子譜)란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명나라 말엽의 바둑고수인 과백령(過百齢)이 지은 책인데, 이 역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현기경에 비해 인기는 좀 덜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서점에 가면 언제라도 구입할 수 있다. 명나라 때는 바둑을 통한 도박이 성행하여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바둑을 금지하는 령을 내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문화혁명 때에도 바둑, 마작 등 중국의 전통적 게임들이 인민의 건전한 정신을 해친다고 하여 이를 금지하였고, 바둑을 두는 기사들을 하방(下放運動)으로 모두 시골로 추방해버린 적이 있다. 현대 중국 바둑의 중흥자라 할 수 있는 네웨이핑도 이때 시골로 쫓겨 내려가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독재자는 바둑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현현기경과 관자보
명나라 때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은 바둑을 가르쳐 수입을 얻기도 하였다. 즉 바둑 교습 알바를 뛰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기바둑을 두면 경마를 하듯이 여러 사람이 각자 응원하는 기사들에게 돈을 걸어 도박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바둑이 경제적인 면과 결부되어 바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게 됨으로써 바둑은 상당히 활성화되고, 기사들의 수입도 늘어났다. 그러나 청대(清代)에 들어오면서 사회불안이 계속되고, 민생이 어려워지면서 기사들의 수입도 줄었다. 이에 따라 기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도 줄어들고, 바둑 수준도 점점 낮아졌다. 중국의 경우는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半) 프로기사 정도의 기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많은 바둑 관련 용품이나 서적, 기보들이 남아있다.
청나라 말기에 들어서는 국정의 혼란이 계속되고, 경제가 피폐해져 바둑과 같은 기예는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여전히 일부 부유층의 도락(道樂)이나, 시정 껄렁패들의 도박의 수단으로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형편이 나았지만, 일본과 같은 체계적인 바둑 육성책은 없었다. 따라서 바둑 수준도 그다지 높지 못하였다고 짐작된다. 이러한 가운데 20세기 들어 중국은 만주사변으로부터 시작된 일제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간 지역에서는 일본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게 되고, 인적 왕래도 잦아졌다. 그러한 가운데 바둑분야에서도 일본과의 교류가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져 바둑 수준은 조금씩 높아졌다.
이후의 중국 바둑 이야기에 대해서는 뒤의 일본 바둑 및 우리나라 바둑을 살펴보면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