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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역사, 이야기 수담, 칼럼 바둑기사 등

바둑의 역사4

by 자한형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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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역사 (4) 일본으로의 전파/이재형

바둑 전래의 두 가지 설()

일본에 바둑이 들어가게 된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바로 직수입되었다는 설() 한반도를 통해 들어갔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일본에서는 대개 6-7세기경부터 바둑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바둑 용품은 성무 천황(聖武天皇, 쇼무 텐노 701-756)의 유품이다. 그의 유품으로는 여러 가지가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 바둑판과 바둑돌도 있다고 한다.

한반도를 통해 들어갔다는 추정은 일본이 당시 백제와 활발한 교류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바둑도 함께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최근 7세기 중반 이전부터 일본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유물, 서책 등이 발견되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한반도를 통해 바둑이 전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할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직접 전래되었다는 설은 7-8세기 견당사(遣唐使)들이 중국에서 바둑을 수입해왔다는 설이다. 견당사는 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그 이전에 이미 일본에 바둑이 전래되었다면 바둑의 한반도 전래설이 유력할 것이다.

견당사란 일본이 중국 당나라에 보낸 사신단(使臣團)을 말하는데, 그 주된 목적은 선진문물을 수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은 신라(新羅)의 삼국통일 이전에는 한반도로부터 직접 문화를 수입하기도 하고, 한반도 루트를 통해 중국과 직접 교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적대적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그 루트가 단절되었다. 한반도 루트가 단절되자 어쩔 수 없이 일본은 해로(海路)를 통해 중국과 직접 교류하려고 하였으며, 그러한 목적으로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견당사이다. 당시 빈약한 선박과 항해기술로 험한 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견당사는 실로 목숨을 건 장정(長征)이었다.

일본의 중국 사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는 여기서 잠깐 옆길로 빠져 일본을 가리키는 왜()라는 말의 유래를 알아보자.

()는 오래전부터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멸시하거나 비하하여 말할 때는 왜국이라 하고, 일본인을 왜인(倭人)”, 또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로는 왜놈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일본을 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일본인들의 키가 작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작다는 뜻의 왜는 한자로 로 쓴다. 한자 에는 작다는 뜻이 없다. 한자 는 단순히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사용해왔다. 기원전부터 중국 각 왕조에서는 일본을 왜라고 불렀다.

견당사

일본의 여러 정치세력들도 기원전후 경부터 7세기 말 경에 일본의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하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왜 또는 왜국(倭國, 와고쿠)라고 불렀다. 그리고 왜에 사는 사람을 왜인(倭人, 와진)이라 불렀다. (), 일본어로는 라는 한자음은 화()와 발음이 같다. 일본어로는 왜()나 화() 모두 로 발음한다. 그래서 왜를 화()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는 또 야마토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외에도 유순하다라는 뜻도 있어 결코 나쁜 뜻을 가진 말은 아니다.

()의 유래에 대해 좀 더 재미있는 설도 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 쓰인 弘仁私記라는 책에서는 일본을 라고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세기경 일본은 처음으로 중국 위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위나라 황제(조조의 아들 조비였을까?)는 각국에서 그를 알현하려 찾아온 사신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맨 끝자리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복장을 한 사신 하나를 발견하였다. 황제는 궁금해서 그를 불러일으켜 세워 물었다.

못 보던 놈인데 너는 어디서 온 놈이냐?”.

일본 사신은 당황하였다. 황제가 가장 말석에 앉아있는 자기를 꼭 집어 물어올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던 거다. 사신은 당황하여 일어나서 얼떨결에 대답을 하였다.

저 말입니까?”.

즉 일본말로

() 데스까?” 좀 더 고어(古語)스럽게 표현한다면 ()데 고자르까?”

그러자 중국 황제는

그래? ‘라구? () 국에서 온 놈이구나

이 사신은 일본에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중국 황제께서는 우리나라를 와국(我國, 倭國)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일본은 스스로를 와()로 표기하게 되었다는 거지. 이 이야기는 그냥 우스개 소리 같지만, 그건 아니고 일본에서도 란 말의 유래에 대한 유력한 설()로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은 이미 5-6세기 무렵부터 스스로를 한자로 와()로 표시하였다. “자도 일본어로 와로 발음되므로 와 혼용되어 쓰기도 한다.

이야기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견당사는 16회 정도 파견되었는데, 무사히 중국에 도착한 것은 9회뿐이라고 기억된다. 그렇지만 일본 기록에는 견당사 이전에도 바둑을 둔 것으로 해석되는 유물 및 고서가 발견되어 바둑은 견당사가 중국을 왕래한 7세기 이전에 이미 일본에 들어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에의 문화전래

어떤 학자들은 도래인(渡來人)들이 일본에 바둑을 전했다고 하며, 그 도래인은 한반도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도래인이란 7세기 이전 중국 및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을 말하는데, 백제인들이 많았고, 고구려인, 중국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당시 기술적으로 낙후된 일본에 선진문물과 제도, 기술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여하튼 일본에서는 8세기 때 만들어졌다는 바둑 관련 용품이 제법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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