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역사 (5) 프로 기사제의 태동/이재형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일해(日海)
일본에서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바둑은 오랫동안 귀족계급이나 승려들의 오락이나 소일거리로 이어져 왔다. 그러던 것이 무로마찌 시대(室町時代, 14세기 중반-16세기 중반)에 들어오면서 바둑 전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무로마찌 시대에 접어들자, 그때까지 귀족이나 승려 계급에서 즐겨하였던 바둑이 무가(武家)나 서민들에까지도 널리 보급되었다. 유력자들은 바둑에 거의 전업하다시피 하는 바둑고수들을 끌어 모아 돌봐주면서 이들을 서로 대국하게 하고 관전을 하거나, 또 이들을 선수로 내세워 다른 유력자와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들 바둑고수들을 고우찌(碁打ち, 바둑꾼) 또는 죠즈(上手, 고수)라 하였다.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 16세기)는 일본의 전 국토가 수많은 영주국으로 할거되어 서로 전쟁으로 날밤을 새우던 시대였다. 영주들 간의 영토 다툼은 물론, 각 영주 국가 내부에서도 하극상(下剋上)이 일상적으로 일어나 전란이 끊일 날이 없었다. 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바둑은 크게 성행하였고, 전문화도 뚜렷이 진전되었다.
전국시대에 이렇게 바둑이 융성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바둑이라는 게임이 갖는 전략성으로 인하여, 전쟁의 시뮬레이션의 하나로 바둑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둑이 갖는 정적(靜的)인 취향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전국시대 무장들은 전쟁으로 날밤을 새웠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긴장된 나날의 연속에서 무엇인가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되었고, 바둑은 그러한 마음의 위안에 적합한 취미였다. 이러한 이유로 바둑이나 차도(茶道), 꽃꽂이, 선(禪) 같은 정적인 예술이 전국시대라는 난세에 크게 융성하였다. 정말 역설적인 현상이라 할 것이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등 여러 전국(戰國) 무장(武將)들이 바둑을 애호하였고, 이들은 바둑꾼들을 휘하에 거느렸다.
전국시대 말(16세기 중후반 경) 일본 근대 바둑의 길을 연 한 인물이 등장하였다. 바로 일해(日海)라는 승려다. 연희동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머리 일해(日海)와 똑같은 한자를 쓰는 일해(日海, 닛까이)는 일본 불교인 일련종(日蓮宗)의 승려였다.
전국시대 무장들: 우에스기 켄신, 다케다 신겐,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여기서 잠깐 또 옆길로 빠져, 일련종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일련종은 일본에서 발생한 불교의 한 유파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부산 등 남부지방에 적지 않은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련종은 13세기 일본에서 일련(日蓮)이라는 승려가 창시한 불교의 한 유파이다. 불경 가운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연화경 또는 법화경이라고도 한다)을 유일한 바이블로 삼고 있다. 연화경에 귀의한다는 뜻의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일본어 발음으로는 난무묘호렌겟교)라는 주문만 계속 외우면 현세에서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복신앙적(祈福信仰的) 불교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극단이라 할 것이다.
13세기 일본, 백성들은 그야말로 도탄에 빠져있었는데, 일련은 불교를 통해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불교는 기본적으로 소승불교(小乘佛敎)로서 선과 학문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해탈을 구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불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선을 통해 스스로 깨달을 경지에 이르기도 어려웠다. 이에 일련은 백성들이 간단히 불교에 귀의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너무 어려운 불경을 익히는 대신 ‘남무묘볍연화경’, 즉 ‘난무묘호렌겟교’라는 주문만 쉬지 않고 외우면, 정토(淨土)에 갈 수 있다고. 일련은 많은 백성들로 존경받게 되고, 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무로마치 막부는 사회불안을 이유로 그를 처형하였다.
일련과 일련정종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일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당대의 바둑 제1인자로서, 그의 이름은 일본 전국에 퍼졌다. 때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패권을 잡은 시대. 일해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만나 그가 보는 자리에서 바둑을 두게 된다. 노부나가는 일해의 뛰어난 바둑실력을 보고 감탄하여 그를 “명인”(名人, 메이진)이라고 칭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바둑의 최고 실력자를 ‘명인’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는 후에 우리나라와 중국에도 전해졌다.
또 잠깐 옆길로 빠진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관한 책을 읽은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되는데, 그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무리지은 일대 패장(一代覇將)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함께 16세기 일본의 역사를 장식한 3대 영웅이었다. 도요토미는 그의 몸종 출신의 충복(忠僕)이었고, 토쿠가와는 그에게 신하를 칭한 동맹관계였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이 세 명에 관한 유명한 일화 하나.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인다”,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도록 만든다”,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고 대답했다지.
세 사람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물론 만들어 낸 이야기이겠지만...
일해는 어느 날 교토 근처에 있는 본능사(本能寺, 혼노지)라는 절에서 노부나가가 보는 앞에서 다른 승려와 대국을 벌였다. 여기서 3패(패가 3곳에서 벌어진 것. 어느 한편이 양보하지 않는 한, 같은 수가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라는 희귀한 형태가 발생하여 그 바둑은 무승부로 끝났다. 다음날 새벽 노부나가는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반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3패는 불길의 징조”라는 말이 퍼졌다. 참고로 조치훈의 바둑에서 3패가 나타난 적이 있으며, 우리나라 프로바둑에서도 한 두 차례 발생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불길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