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 응집, 잡초, 글 이야기-서봉수론[2]/타이젬
"상대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절대 칼을 버리지 마라!"라는 말은 오카미 이토의 신조입니다.
오카미 이토는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일본 사무라이 만화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만화를 보지 못하여 자세히는 모르지만, [외로운 늑대와 그 새끼]라는 제목의 만화를 [복수의 칼(sword of vengeanc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고, 그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아들을 동반한 검객]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총 7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편이 개봉되었고, 저는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가 가장 무서운.....' 하던 시절에 미래를 망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릎 쓰고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불법 비디오테이프'로 너 댓 편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우려먹을 게 없어서 만화까지 들먹거리느냐고 '찜빠'를 먹을 게 분명해 보이지만, 저는 서봉수와 오카미 이토의 호흡이 서로 관통하고 있다는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오카미 이토는 정통 사무라이의 신분에서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닌자' 집단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 떠돌이 무사입니다. '낭인(로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온갖 추저분한 계략과 음모를 꾸밀 때 꼭 등장하는 코드가 닌자집단인데, 오카미 이토가 그런 닌자집단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신경 쓰지 말아달라는 감독의 주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카미 이토는 혼자서 떠도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널빤지로 대충 뚝딱거려 만든 듯한 유모차에 대여섯 살 먹어 보이는 아들을 태우고 사선을 향하여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긴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정인 것입니다.
홍콩에서 아류로 나온 영화중에 [유모차를 동반한 무사]라는 무협영화가 있었는데, 스토리는 엇비슷하지만 오카미 이토는 단 일합으로 상대를 베는 데 반하여, 중국무사는 수십 번 칼을 부딪쳐도 소리만 요란하지 '뒈지는 놈'이 하나도 없어서 중간에 보기를 포기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협영화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뒈지는 놈'이 얼마나 멋있게 '뒈지느냐'를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쫓는 작자나 쫓기는 작자나 먹어야 살기에 그도 암살을 청부받아 민생고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그가 청부받는 암살은 [제 5전선 - 미션 임파시블] 팀이 와도 해결될까 말까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습니다. 1대20의 '칼부림'은 보통이고 심할 경우 1대100의 대결도 펼쳐집니다.
때로는 그의 아들이 유모차 속에서,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의 프랑코 네로에게 무이자 3개월로 급히 대여받은, 프랑코 네로가 관 속에 '꼬불쳐' 넣고 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광을 내던 그 '빠까번쩍한' 회전식 기관단총을 난사하여 일거에 적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신기의 사격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이 존재하는 한 올림픽 사격 금메달을 꿈꾸는 영재들은 분루를 삼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은 그가 쫓기면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이지만,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굴욕을 강요당할 때, 그는 아들에게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이르며 사무라이의 자존심을 고수할 정도로 냉혹한 면모도 보여줍니다.
오카미 이토는 뒤로는 닌자집단에게 쫓기며 앞으로는 최강의 적들을 만들어 베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존재 그 자체가 전쟁인 '외로운 늑대'인 것입니다.
오카미 이토를 연기한 배우는 와카야마 도미사부로인데, 저는 그를 '야쿠자(폭력단)'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검술의 고수로서, 칼집에서 칼을 빼는 것과 잠자리를 베는 것과 칼집에 칼을 집어넣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실력자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그를 만난다면 "죄 없는 잠자리를 꼭 베야만했던 것이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살이 떨려서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와카야마 도미사부로는 끊임없이 검술을 연마하고 있는 배우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 눈에 오카미 이토의 검술실력은 결투가 거듭될수록 진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피 튀게 싸울수록 더 강인해지고, 죽음의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칼춤사위가 더욱 날카로워 졌습니다.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익히 아시겠지만, 아무리 다양한 트릭으로 영화를 잘 만들어 내더라도, 주인공의 내공이 진보하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봉수의 [명인] 등극은 분명 획기적인 사건이지만, 저는 등극 자체보다는 그가 그 길로 내리 4기 연속 방어에 성공하였다는 업적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높이 사는 것이 총 5연패라는 타이틀 횟수만은 아닙니다. 저는 그가 결투를 통하여 진화해나가는 독특한 내공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승부를 거듭할수록 더 강인해지고 위기를 딛고 일어날 때마다 더욱 날카로워 졌습니다.
저는 그의 기재가 천재적이라는 것과 그가 어떤 형태로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만 나이 14세에 바둑을 접했고, 거기서부터도 엘리트코스를 밟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치명적인 결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훈현이 '한강다리를 건넌' 이후 통일천하 시절에 유일하게 그와 '맞짱 떠' 성벽을 허문 승부사이며, 공한증의 대명사로 군림한 승부사이며, [진로배]에서 '나가리판 흔들고 쓰리고 피박 광박 멍따 혼자서 아홉판 아도치기'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승부사이며, [응씨배] 우승으로 세계챔피언에 오른 승부사입니다.
저는 그의 도제시기에서 그의 빛나는 행보의 동력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급기야 저는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준비된 승부사라기보다는 승부를 통하여 진화해 나가는 기괴한 호흡의 승부사인 것 같습니다. 그는 양육되는 승부사라기보다는 자생하는 승부사인 것 같습니다. '자생'은 '재배나 보호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연히 싹 터 자란다'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저는 서봉수의 수식어로 이 이상의 단어를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오늘의 승부에서 내일의, 승부의 키워드를 읽어내는 능력을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오늘의 승부에서는 상대 보다 갑절의 피를 흘리기 때문에 일단 상대의 초식을 빨아들여 과다출혈을 예방하는 선에서 견뎌내지만, 내일의 승부에서는 빨아들인 상대의 초식과 자신의 초식을 버무려 업그레이드 된 제 3의 초식으로 결전에 임하는, 실전 그 자체가 도제이자 승부인 괴이한 승부호흡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승부를 통하여 수업한다는 것은 말이 그럴 뿐 현실적으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승부는 자신의 공력을 모두 끌어올려 발산하는 것이지, 새로운 공력을 끌어들일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승부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그의 바둑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열린 마음에서 그 단초나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면 날마다 한국기원 기사실에 출근하여 아마추어든 프로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바둑을 두는 기사가 있었답니다. 해설을 할 때, 아마추어 진행자가 무엇인가를 물으면 몰라도 '빠꼼이'인 척 행세하는 것은 프로의 특권일 터인데, 그 자신이 완전히 납득하기 전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사가 있었답니다.
서봉수의 일화입니다. 이 일화에서 그의 바둑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저를 '죽이는' 일입니다.
숙적인 조훈현과 내기바둑을 두어 번번이 코피 나 푼돈이지만 꼬박꼬박 수업료를 바치면서도, '쪽팔려' 하기는커녕 조훈현에게 수를 배우는 것 자체를 운수대통이라고 생각하는 기사가 있었답니다. 조훈현의 그늘에 가려 숱한 좌절을 겪었으면서도 "조훈현이 나의 스승이었다."라는 승부사로서 자폭에 가까운 고백을 서슴지 않는 기사가 있었답니다.
서봉수의 일화입니다. 이 일화에서 그의 바둑에 대하여 '화아알짝' 열린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저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누군가 조훈현에게 "정석을 몇 개나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조훈현이 "3개."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23,456개를 예상한 질문자가 뒤로 발라당 넘어가도 좋을 만큼 무색한 답변이지만, 그가 정석을 3개 안다고 대답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정석을 몰라도 최선의 수를 찾아나가는 능력이 있으니, 그의 답변은 '모든 정석을 다 알고 있다'라는 대답과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그는 정석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그걸 수읽기라고 하지요. 저는 조훈현이 '좋아하는 정석이 몇 개냐?'라는 질문과 혼동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다른 일류들과 비교하여 서봉수의 수읽기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가 수읽기의 넓고 깊은 바다를 항해하여 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그는 체계적인 도제를 통하여 비급을 전수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는 그 일천한 경륜의 갭을 승부를 거듭하며 채워나간 걸로 보입니다. 그의 [명인]등극과 4기 연속 방어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이뤄 낸 업적이라는 점에서, 승부를 통하여 진화해 나가는 그의 기괴한 승부호흡은 처음부터 그 힘을 발휘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조훈현과의 [왕위] 타이틀전에서 흉내바둑을 두어 타이틀쟁취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호사가들은 그의 흉내바둑을 일컬어, 조훈현을 '긁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겠느냐, 바람직한 승부자세가 아니지 않느냐고 입방아를 찧었다지만, 그 진위와 선악을 떠나 "초반의 판짜기가 딸려서 궁여지책으로 시도하였다."는 그의 고백이 진실이라면, 흉내바둑은 서봉수의, 자생의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에피소드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승부를 더할수록 강해지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봉수의 진면모의 하나일 것입니다.
'승부를 더할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승부사라면 누구나 갖는 바람이고 승부의 속성상 어느 정도는 보장된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봉수는 보장된 부분의 차원을 넘어 블랙홀이 무엇인가를 흡수하듯 상대의 초식을 빨아들여 나날이 강한 승부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기재가 범상치 않고 그가 온 힘을 다하여 공부하는 승부사라는 증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도 항아리를 비우고 빗물을 받아들일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 그의 겸허한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존심과 투혼이 생명인 승부사가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서봉수는 현명하고 민첩한 승부사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는 것은 진보의 가장 적나라한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둑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열린 마음이야말로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그의 치명적인 결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그만의 본령이며, 그의 자생력과 하모니를 이뤄 그가 지금처럼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데 동력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거친 전쟁터에서,
인생의 야영장에서,
침묵으로 쫓기는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돼지새끼가 되지 말고,
결전에 나서는 투사가 되어라.
-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 [인생찬가] 일부(번역/흰고독)
누군가는 잊었지만 인류문명의 역사를 '천재들의 역사'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부의 천재가 창조를 해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모방하여 호주머니를 채운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조와 모방의 관계는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처럼 쓸모없는 수다만 제공할 뿐이지만, 저는 모방이, 서봉수의, 상대의 초식을 빨아들여 자신의 초식과 버무리고 마침내 제 3의 초식을 잉태하여 폭발하는 코스처럼 진화하는 것이라면, 모방이라는 말은 창조라는 말보다 더 큰 무게를 갖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궤변이지만, 궤변이 아니고서야, 만 나이 14세에 바둑을 접한 한 승부사의, 자생의 궤적을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바둑이라는 전쟁터에서, '인생의 야영장에서' 한 평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는 명문가와는 거리가 먼 낭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승부의 길이라면 지옥의 불길속도 마다하지 않는 '내추럴 본 파이터'입니다. 그는 상대가 숨을 쉬는 한 절대 칼을 버리지 않으며 사선을 넘나들수록 더욱 강해지는 냉혹한 승부호흡의 소유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여명을 가르고 낡은 유모차를 덜컹거리며 피바람을 동반한 외로운 늑대가 오고 있습니다.
'한국인물. 우리 시대의 거장, 스승을 말하다(월간중앙 연재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수미 (소프라노) (0) | 2023.08.30 |
---|---|
서봉수론3 (0) | 2023.08.25 |
서봉수론 1 (0) | 2023.08.25 |
귀거래사와 인생 이모작 (0) | 2023.08.06 |
33년 교수직 내려놓고 ... 고향서 미술관 새출발 (2) | 2023.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