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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다시 쓰는 본격수필 5단계 기술론

by 자한형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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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본격수필 5단계 기술론 / 권대근 

I. 열며

본격수필 창작에는 5단계 원리가 있다. 이는 수필창작 과정이 경험과 관찰을 통하고, 거기에서 삶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일에 그쳐서는 문학성 있는 수필을 창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단계를 거치면서 미적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단계적 원리는 좋은 수필이 갖추어야 할 내적 요건에 해당한다. 본격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인 자질로서 다섯 가지 개념이 단계적으로 결속성을 가져야 한다. 루이스란 비평가는 문학 창작의 과정을 (1) 씨앗을 얻는 단계, (2) 씨앗의 성장과 발전의 단계, (3) 구체적 표현을 찾는 단계로 나누었는데, 본격수필의 창작 과정은 두 가지 과정이 더 첨가되어 다섯 과정으로 나뉜다.

필자가 졸저 [현대수필창작론]에서 밝힌 바 있지만, 이 수필 창작의 5단계 원리가 수필기술론의 정답일 수는 없다. 수필을 쓰는 사람마다 수필 창작 과정이나 그 방법은 천차만별이며 천인천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각양각색의 수법이 대부분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란 전통적 수필론의 변형 또는 모방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문학이 갖추어야 할 외적 조건과 수필의 내적 요건들이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이루어야 본격 수필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차원에서 수필창작의 5단계 결속원리를 정리해 보았다. 이른 바 (1) 발견의 원리 (2) 상관화의 원리 (3) 동화의 원리 (4) 성찰의 원리 (5) 결속성의 원리다. 먼저 제1단계인 발견의 원리부터 살펴보자.

II. 펼치며

수필이 발상에서부터 창작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룰이 존재함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다섯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이다. 수필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필의 씨앗을 얻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수필 쓰기의 출발점은 인식에 있고, 수필가가 수필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수필의 질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을 보는 것’ (seeing that)이고, 다른 하나는 ‘~으로 보는 것’ (seeing as). 본격수필가는 사물을 볼 때 항상 후자의 눈을 견지한다. 이름 하여 발견의 원리.

수필을 창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쓴다’ (to write)는 것이 아니라 경험 가운데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to discover)는 의미다. 수필창작은 경험 속에서 문제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수필 창작에 있어서는 글감을 얻는 정도, 경험의 기록은 발견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일부 문학론자들은 이해하기 쉽도록 관찰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인식이란 개념은 이해되기 어렵고, 그 의미 또한 다양해서 다른 의미로 오용할 수가 있기에 쉬운 말로 관찰이라고 해도 좋겠다. 관찰이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찰이란 용어로 수필의 출발점을 설명하기엔 용어 자체가 너무 평범한 게 흠이다. 오히려 인식이 더욱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고 의미도 분명하다. 인식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신발견으로서, 모르고 있다가 새로운 진리나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개념으로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이나 관념을 재해석하는 행위다. 전자가 의미 발견이라면, 후자는 의미 부여다. 적어도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이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여야 한다.

수필가는 일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 경험에서 수필 창작의 작업이 시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험을 원고지에 수필 형식으로 옮겨 놓는다고 그것이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험 자체가 그대로 옮겨져서 좋은 수필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문학적 사건이 된다면 그 이상 좋은 재료가 어디 있겠는가. 경험의 내용이 문학이 되려면 경험을 자기의 것으로 육화해야 한다. 육화된 경험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체험이다. 문학의 재료가 되고 안 되고는 발견에 달려 있다. 아무리 엄청난 진실이 숨어 있는 일이라도 자신이 모르고 지나면 하찮게 되고,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이 거기에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면 소중한 것이 되는 법이다. 따라서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거나 하찮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발견했느냐에 따라 경험의 가치가 달라진다. 이렇게 경험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인식이다.

문학을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했을 때, 발견의 원리는 인식의 차원에 근접한다. 일차적으로 수필가가 무엇을 발견했느냐에 따라 수필의 성패가 결정된다. 본격수필의 창작에 있어서는 발견된 것을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그것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의 언어가 목적하는 것은 전달의 차단이고, 차단된 언어가 요구하는 것은 감동이기 때문이다. 감동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문학에서 감동이란 연상과 상상이란 요로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수필가는 자신이 발견한 글감으로 바로 수필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것과 가장 유사하되 참신한 다른 재료로 글감을 다시 봐서 미적 정서가 생겨나도록 변형하고 보수해야 하는 것이다.

수필 한 편을 통해서 발견의 원리를 살펴보자. 최시병은 <진열장 속의 왕세자>란 작품을 썼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이 사진관, 저 사진관에 진열된 아이들의 돌 사진 속에서 임금님의 용포를 입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여기서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알아내었다. 용포를 입고 있는 돌 사진에는 우리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최시병은 어떻게 이 수필의 씨앗을 얻었을까? 그는 관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렇듯 수필의 씨앗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체험한 데서 얻을 수 있긴 하지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격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여지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좀더 의도적이며 집중적인 태도로 씨앗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창작할 수 있는 글이다.

아무리 특별하고 큰 경험이라도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수필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반대로 사소한 것에서도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발견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문학적 사건 즉 체험으로 승화한다. 송명화의 [고도]라는 작품은 발견의 원리가 돋보이는 수필이다. 그녀는 단 한 줄짜리 대학생이 굶어 죽은 사건에 관한 신문기사를 놓치지 않고 거기에서 작품에 대한 착상을 얻게 된다. 작품 속의 인물인 대학생은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다. 아무에게도 요청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눈물만 흘린다. 이런 상상의 결과로 방 안은 작가에게 물이 흥건한 바다가 되고 죽어버린 시신은 움직일 수 없는 섬으로 현시된다. 그녀가 고도를 통해서 이웃과 단절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비정함을 잘 형상화한 배경에는 발견하기의 원리가 착상의 과정에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일을 경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발견하느냐가 창작의 출발선이 된다는 것이다.

늘 강조하지만 훌륭한 수필가는 구경꾼이요, 방랑자요, 게으름뱅이다. ‘인식을 잘 하는 방법은 경험이 생길 때 일어난 일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끝까지보았다가 나중에 당시 느꼈던 실감을 미적 정서로 표현해야 한다. 뉴턴이 일상의 관찰에서 중요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작은 일에 문제의식을 부여하여 거기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수필의 씨앗이 툭 튀어나오면 바로 적어놓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수필가는 그 즉시 실감을 일상의 언어로 서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느꼈던 것을 변형시키고 보수해서 연상과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즉시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지만 본격수필은 실감으로부터 유리된 정서로 쓰여 지지 않으면 좋은 글이 안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메모해 놓는 것이다.

III. 닫으며

발견의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그 발견이 단순한 의미를 알아내거나 남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아닌 자기만의 참신한 발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견의 첫 단계가 관찰인데, 관찰을 잘 하려면 무엇에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나 문제의식을 갖고 세밀하게 사물을 보는 습관을 가짐과 동시에 그것 자체로 보지만(seeing that) 말고 본 것을 ‘~으로 보는 법’(seeing as)을 익혀야 할 것이다. 수필의 출발점이 인식에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수필 창작에서 발견하기는 옷의 첫 단추에 비유될 수 있겠다. 지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늘 보는 것일지라도 애정을 갖고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소재에 대한 애정 부여가 스파크를 일으키게 되면 이것이 글감이 되고, 여기서 수필가가 글감을 제재화하면 본격수필의 씨앗이 싹트게 된다. 발견의 원리가 수필 쓰기의 스타트인 만큼 수필가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깨고 사물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좋은 수필은 수필가의 가슴 속에서 이미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수필의 초보자는 관찰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수필을 쓸 수 있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도 일반 사람들이 얻을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수필인 본격수필은 더 깊은 자기 초월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발견을 하고 나서 수필가는 발견한 것에 대해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한 논리를 찾아나가야 한다. 생각을 통해 경험에서 발견한 것을 자기 삶에 비추어 보고 삶에 도움이 될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바로 사물과 나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2단계는 상관화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