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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수필론

by 자한형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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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론 / 신두원

우리는 오늘날 수필을 당연히 문학의 한 갈래로 배우고 있으나, 그것이 왜 문학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고전적인 갈래이론에 따르자면 서정, 서사, 드라마(희곡) 세 갈래로 문학을 나누는 것이 가장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는 교술 갈래로 또 하나 설정하여 거기에 수필을 귀속시키는 네 갈래 이론이 더 널리 통용되는 듯한데, 이처럼 수필을 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문장 일반을 가리키던 전통적인 동양의 문학 개념에서는 비허구적인 수필 역시 당연히 문학 갈래에 속하였지만, 근대적인 문학 양식이 정착하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의 우리 문학계에서는 일단 시, 소설, 드라마를 문학으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수필이 씌어지면서 수필도 과연 문학에 속하는가 여부를 가지고 고민을 했던 듯하다. 임화의 <수필론> 역시 당시 수필을 새로이 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하려는 논의의 연장선장에 서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수필이 왜 문학인가에 대하여 주로 논의를 펼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오늘날 보아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임화는 우선 수필이란 다른 문학 갈래와 달리 '규범'이나 '구조(오늘날의 용어로 하자면 '형식'에 해당한다)를 갖지 않은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문학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임화는 과학과 문학의 차이점으로부터 찾아나서고 있다. 물론 문학도 과학도 '사상'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데, 과학은 논리를 통하여 체계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반면, 문학은 사상을 형상의 직관으로써 파악하고 형상의 윤리로써 형성해 간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한다. 수필 역시 그 형식은 비문학적이지만 그것이 사상으로서는 완전히 윤리적이므로 불가불 문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수필과 다른 문학은 다 같이 사상을 모럴로써 표현하는데도 대단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일반적인 문학이 대개 작가가 직접 제 자신을 작품 속에 드러내지 않고서 형상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모럴을 표현하는 대신, 수필에서는 쓰는 사람 자신이 직접 제 일신상의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필자의 모럴이란 것이 대개 일인칭의 방법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곧 일반 문학은 개성으로 생존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개성을 탈각함으로써 개성이 표현되는 반면, 수필은 작가가 직접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모럴을 표현한다.

그래서 수필에서는 정련되지 않고 거친, 그러나 요리되지 않은 신선한 현실이 전개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수필이 다른 장르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수필에는 사소한 일상사를 통하여 심원한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요구된다. 그런만큼 장르적인 형식의 도움을 받는 다른 문학 갈래에 비해 창작이 더욱 어렵다. 왜냐하면 수필은 형상이나 구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일상의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 모럴리티를 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필을 규정함으로써 임화는 좋은 수필과 '교묘한' 수필을 구별해낸다. '교묘한'수필이란 일상사를 찬찬히 잘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상의 깊이를 갖추지 못한 수필이며, 그에 반해 "참말 좋은 수필은 일상의 지지한 사소사些少事를 사상의 높이에까지 고양하고 마치 거목의 하나하나의 잎사귀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의 표적이듯이, 일상사가 모두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 순량純良한 모럴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서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곧 교묘한 수필이란 일상사를 잘 관찰하여 훌륭한 기교를 가지고서 씌어지기는 했지만 사상의 깊이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모럴의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수필인 반면,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사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작가의 깊이 있는 사상과 결합하여 작가의 개성적 모럴의 수준으로까지 고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임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수필의 미는 요약하면 만인이 다 같이 보고 느끼는 일상세계 가운데서 투철한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의 자유로운 정신활동이 초래하는 소산이다. 그러므로 사상이 개성의 모럴이란 세계까지 충만되지 못하면 정작 좋은 수필은 씌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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