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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

그리운 내가 온다

by 자한형 202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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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내가 온다 / 박범신

유럽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시아가 여기서 끝납니다. 바꿔 말하자면, 유럽이 끝나고 아시아가 시작되는 곳이 이스탄불입니다. 일찍이 강성했던 히타이트인들이 자리 잡았으며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 문명의 세례를 받았던 곳,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문화가 꽃피었고, 오스만 터키의 이슬람 문명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아시아 몽골 제국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울리기도 했던 곳, 동양과 서양, 오래된 과거와 현재, 갈등과 화해가 뒤섞여 흐르는 곳, 이스탄불은 터키의 심장입니다.

터키인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아즈(bogaz), 목이라고 부릅니다. 길쭉한 모양이기 때문이지만, 제게는 생명이라는 은유를 떠올리게 하는 목으로 들립니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30여 킬로미터의 이 물길은 우리에게 하나의 강력한 상징성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물길을 따라 지금 곧 아시아로 갈 수도 있고, 유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 물길은 엣것과 새것, 사람과 문명,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배타적 경계선이기도 했으나, 이제 그 모든 게 뒤섞여 흐르는 통합의 물길이 됐습니다. 경계는 곧 아름다운 통합이 됩니다.

오늘날의 터키 국경이 생긴 건 1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역사에서 영원한 영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열광에 의해 반()식민지화의 어둔 터널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술탄제는 폐지됐습니다. 터키는 공화국이 되었으며 수도는 앙카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나 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문화 통째로 무너지는 건 아닙니다. 국가 체제가 무너져 왔지만 이스탄불은 여전히 건재하며 터키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타고 달리면, 고대로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데 전혀 시간차를 느낄 수 없습니다. 수천 년 역사의 터널을 달리는 느낌이지요. 나이테의 간격이 그렇듯이 이 역사의 터널에선 시간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마 문명 뒤뜰에 비잔틴 문명이 은신해 있으며 비잔틴 문명의 안뜰에 이슬람이 깃들어 있습니다. 기능이 빼어난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 년의 역사를 단 몇 시간에 주유하고 싶다면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타거나 이스탄불 시가지를 배회하면 됩니다.

BC 7세기경 건설된 이 아름다운 도시는, 먼 세계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동경과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동로마인들의 자유의지가 담겨 있으며, 투르크 유목민들과 오스만족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야망이 깃들어 있고, 이슬람 문명의 영욕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스탄불에선 그러므로 누구나 통합의 카리스마가 갖는 아름다운 글로벌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제 신세계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항해를 통해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여 얻는 게 아니라, 이질적인 문명과 사람들이 소통과 합일을 통해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스탄불에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역사의 출구, 세계인의 관문입니다.

보스포루스 대교 위에서 보면 세계가 하나로 묶이는 느낌을 강력히 받을 수 있습니다. 국경을 총과 칼로 지키던 중세의 국가 개념은 전근대적인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자본의 제국'으로 통일되어 가는 중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건설자들은 꿈에라도 상상하지 못했을 그런 제국이지요. '자본의 제국'에선 국경의 개념조차 자본의 지배를 받을 뿐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이며 거대한 하나의 바다입니다.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에 의해 성당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들은 영생을 꿈꾸는 궁전으로서 손색이 없는 이 완전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과 모시는 신이 달랐습니다. 이스탄불을 점령한 그들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차마 부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당 천장의 성화들 위에 회반죽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화들 대신 고란의 위대한 진언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로써 비잔틴의 찬란했던 문화는 깊숙이 밀봉됐습니다. 시간이야말로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신일는지 모릅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회반죽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슬람 문명권의 오스만 제국이 봉인한 비잔틴 문화가 마침내 감옥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것은 시간의 연출이었습니다. 수백 년 만에 드러난 천장의 벽화들은 놀랍게도 어제의 그것처럼 생생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멸망했지만, 세계는 아직 두 제국이 미친 문화의 단층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이 섞여 있는 이곳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아니고선 글로벌 시대의 세계인이 될 수 없다는, 역사적, 상징적 교훈을 얻어 갑니다.

아야 소피아 성당을 완성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머리가 아파 어느날 성당의 한 기둥에 잠시 이마를 대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두통은 이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신께서 이 기둥의 한끝을 붙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고 나서도 이 기둥의 신묘함은 유지됐습니다. 예배의 방향을 잡아 주는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종교의 편 가르기는 신의 뜻일까, 신을 앞세운 인간의 뜻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초월의 딴 세상에서 예수님과 마호메트는 서로 나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겐 근원에서 나오는 힘 있는 사랑이 있으니까요.

비잔틴 시대부터 인종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과 갖가지 문화가 돈을 매개 삼아 그랜드 바자르에 모여들고, 자연스럽게 하나로 섞였고, 재탄생했습니다. 이미 중세에, 유럽의 물건과 아시아 동쪽 끝에서 온 물건이 나란히 놓인 것도 바로 이곳입니다. 유럽 문명과 아시아 문명의 가장 원만한 접합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상혼(商魂)은 문화를 낳고, 문화는 언제나 체제와 이념을 넘어서 존재하니까요. 동화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지중해 기행에서 이곳을 가리켜 이스탄불의 심장이라 불렀습니다.

양탄자를 최초로 만든 게 터키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탄자는 터키의 대표적 특산물로서 터키인들의 삶과 문화가 그 무늬와 색깔로 집약됩니다. 이슬람의 영향 때문에 잎과 꽃무늬의 기하학적인 장식이 많지만, 현대에는 세계인의 모든 문화가 깃든 것으로 확산돼 그 문양이 실로 다양합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구하려면 중세의 그랜드 바자르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양탄자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문화의 정수이자 보고입니다. 터키의 양탄자는 터키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없나요?" 나는 한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있었는데, 어제 마지막 한 장을 팔았습니다. 운이 없으시네요." 상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마지막 그 양탄자를 살 수 있었더라면, 단번에 사랑하는 서울의 당신에게 날아갈 수가 있었을 텐데요.

그리스 신화엔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진 미다스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아침 식탁에서 왕의 손에 닿는 빵, 과자, 치즈, 물이 모두 금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딸도 손을 잡았더니 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물을 마실 수도 없었고 사랑하는 딸과 사랑의 말을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왕은 비로소 금이 행복과 사랑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금이 한 모금의 물보다 더 소중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왕은 가슴을 쳤습니다.

마호메트는 일찍이 고아가 되어 백부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의 삶은 황야에 버려진 것처럼 고독했습니다. 신은 고독한 길을 따라 찾아오는 것인지 모릅니다. 양치기 고아와 사막을 오가는 외로운 장사치로 살던 마호메트는 마흔 살 무렵 비로소 신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황야의 한 동굴에 은거했고, 그곳에서 신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것으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헤어진 옷과 깊고 깊은 외로움뿐이었습니다. 마호메트는 깨달음을 얻고도 기존의 기득권자들에게 내침을 당했습니다. 그는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다시 메카로 돌아온 그는 세계인의 마음 안에 새 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아랍은 물론 세계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 놓는 위대한 길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 지역을 비롯해 북아프리카, 지중해, 발칸 반도, 유럽의 동남부, 그리고 아시아 일부까지 지배했던 실로 광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이슬람은 그들의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동서 무역로가 소아시아 지역에서 대서양, 인도양으로 전환된 것이 오스만 제국의 몰락을 불렀습니다. 기독교 문명은 세계화를 가속시키면서 끈질기게 그들에게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사적 변화를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제국은 그렇게 멸망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이슬람 문화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인류 문명은 다급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희생자였던 여자들이 역사의 주도자로 등장하는 것을 오늘날의 세계에선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롭고 위대한 실험입니다. 남자들이 쓰는 역사가 '불의 역사'라고 한다면 여자들이 쓰는 역사는 '물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여성성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성성은 관용이고 이해이며 생명 그 자체입니다. '불의 역사'로서 인류의 진보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물담배를 물고 반쯤 누워 있으면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릅니다. 이곳에선 급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천히, 달구지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 속에선 신의 창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옛날의 한량들이 모두 '신의 창'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나로부터 내가 분리된 상태가 우리에게 불안을 배달합니다. 신의 창으로 들려면 현대 문명의 불안을 넘어서야 합니다. 내 속에서 외출해 버린 나를 다시 맞아들이는 것이 불안을 이기는 첩경입니다. 내 자유의 최종적인 꿈은 시간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세대 간의 배타성이 강한 우리와 달리 터키인들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인생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나이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닙니다. 나이로 편을 가르는 우리의 습성은 경쟁 중심의 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병리 현상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는 젊은이도 있고 나이는 들었으나 인생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늙은이도 있습니다. 인간주의 층위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나 친구로 맺어질 수 있습니다. 터키의 여로에 올라 있으면 그게 가능합니다.

이스티크랄 거리를 관통하는 도심 속의 전차, 튀넬을 탑니다. 우리에게도 전차가 있었지요.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사뭇 설렙니다. 전차는 정말 옛 친구처럼 정다웠습니다. 전차가 빠른지 걷는 사람이 빠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사람과 차가 속력을 다투지 않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합니다. 행복으로 가는 속도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달구지 속도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속도, 그 속도로 흐르면서 내다보는 사람들이 참 정답고 아름답습니다. 서울의 거리에서, 굳은 표정을 한 채, 행여 다른 누가 나를 앞지를 새라, 전투적으로 걷고 있는 우리네 풍경이 자꾸 떠오릅니다.

노천 카페에서 즉흥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는 달부카 연주자를 만났습니다. 악기가 아니라 손이 만들어 내는 소리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음악은 국경이 없습니다. 정파에 따른 편 가르기도 물론 없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연주가의 리듬이 먼 곳에서 온 내 마음을 건들고 지나갑니다. 나는 거리악사에게 찡긋하고 윙크를 합니다. 악사가 내 윙크를 받아 윙크로 답을 합니다. 우린 그때 이미 친구가 됐습니다. 음악은 영혼입니다.

내가 본 이스탄불은, 너와 내가 합쳐져 만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아름다운 예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로부터 분리된 내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나는 이스탄불에서 보았습니다. 경계를 벗어나 보세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문명의 출구이고 새로운 문명의 입구인 그것들이 물과 육지를 따라서 흐르고 교행하고 섞이는 곳, 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섞여서 제3의 문명으로 만들어지는 그런 곳, 아마 터키의 매력이 아닐까요.

어둠은 신비롭습니다. 지구의 꼭대기에 신이 은거하고 있으면서, 어둠과 밝음을 풀어내는 거대한 물레를 돌리고 있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물레를 앞으로 돌리면 어둠이 풀어져 나와 전 지구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물레를 반대로 돌리면 밝음이 퍼져 나와 어둠을 빨아들입니다. 여명은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밝아지면 역사의 한낮이 열리고 어두워지면 역사의 흥망성쇠가 다 묻히고 맙니다. 카파도키아의 지하에 살던 사람들은 어둠과 밝음을 그들 자신이 조절했습니다. 한낮에도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밤이 됩니다. 밤은 휴식이고 너그러움이며 일상의 휴지기입니다. 사방이 어둠 속에 묻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은 상상력을 타고 빅뱅처럼 폭발해 넓어집니다. 한낮의 영토는 보이는 데까지에서 멈추지만 어둠 속의 상상력은 제한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주를 내다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고 다가오는 신의 발소리를 듣습니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으니, 스파이더맨 인형을 가지고 노는 이곳의 아이들은, 더 이상 여기에서 대를 물려 살지는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들은 세상의 손짓을 따라 곧 이 어두운 동굴집을 떠나겠지요. 삶의 터전이 넓고 환해진다고 해서 그들의 꿈이 더 넓고 환해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정보화는 사랑의 깊은 울림을 가로막습니다. 신에게 가는 지름길도 가로막습니다. 오늘날 과연 우리가 찾아 헤매는 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주황빛 놀에 물들어 가는 카파도키아 계곡은 신비했습니다. 사람은 자연에 깃들어 대대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자연은 사람을 만나 문명으로 거듭납니다. 이곳의 풍경은 터키의 것이라기보다 보는 이의 것입니다. 저물녘을 가리켜 불교에선 '다르마타의 바르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가장 살아나는 과도기가 바로 황혼녘입니다. 한낮은 끝나고 어둠은 시작됩니다. 어떤 것은 허물어지고 어떤 것은 쌓여집니다. 무엇이든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느낄 때가 바로 희망의 찬스가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다음의 시간을 보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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