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가 온다 2/ 박범신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 변경까지 도망쳐 와 지하에 은거했던 중세의 기독교인들, 그들도 맞이했을 그 아침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영광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박해를 피해 은거했던 기독교 문명은 이제 동굴의 어둠 속에서 나와, 아침 해처럼,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됐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간 것처럼 사랑의 물결이 세계로 더 널리 퍼져 나갔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이에게 종교는 구원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 종교는 욕망이 된 세상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해서,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젊었을 때, 그 옛날의 우리 같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잘 살아보자는 개발 이데올로기를 따라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적 번영을 기록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가 버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공동체의 저 아름다운 결속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인간적 우의를 혹시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경제적 번영의 대가로 삶의 사막화를 불러들인 건 아닐까요?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은거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후 1세기경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햇빛 밝은 너른 들을 두고 그들은 이 지하의 작고 어둔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세계가 보잘 것 없이, 좁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외부 세계가 좁아지면 내면의 세계가 넓어집니다. 이를테면 더운 여름에 우리는 창을 활짝 엽니다. 창이 외부로 열리면 영혼의 뜰은 그에 맞춰 좁아집니다. 사유는 주로 외부로 열린 창을 닫고 커튼을 치는 겨울에 깊어집니다. 그들은 이 좁고 어둔 동굴에 살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넓은 영혼의 테두리를 갖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신과 가까이 있었으며, 상상력의 너울을 타고 마음껏 우주를 날아다녔을 것입니다.
감옥으로 치면 문명의 감옥이 더 무섭습니다. 욕망의 감옥이 더 끔찍합니다. 가까이 피어 있는 들꽃 하나 볼 새 없이, 별 하나 품을 새 없이,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해 앞으로 보고 달릴 뿐인 우리들이야말로,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재화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더 중요한 건 감옥에 살면서 감옥에 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불감증입니다.
그 어떤 문명도 대자연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웅혼한 풍경도 시간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역사도 허공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한낮의 카파도키아 대지가 그런 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은둔자들의 삶은 쫓는 자의 삶보다 깊다. 그들은 사랑하는 동료와 늘 함께 있고 가까이 신을 느끼며 멀고 깊은 꿈을 언제가 꿀 수 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자이고,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자이다. 그들은 고요하면서도 천지간을 넘어 우주에 이르는 영혼의 에스컬레이터를 이 은둔의 동굴 문 앞에 두고 있는 존재이다. 어머니 자궁 속을 나온 이후, 오늘날의 인류는 이 지구상에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쉴 곳도 없다. 인류의 현대적 비극은 어쩌면 숨을 곳을 잃어버리는 데에서부터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지중해와 흑해 사이로 길게 누운 소아시아 반도에 자리 잡은 터키의 곳곳은 비와 바람과 태양이 빚어내는 신화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문명사는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 터키의 대지엔 그 기록의 수석들이 촘촘히 묻혀 있습니다. 이곳의 대지는 광활하고 비옥하며, 산맥은 웅혼하고, 오랜 역사를 지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칩니다. 터키에선 시간이 유장하게 흐릅니다. 이곳에선 시간을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나와 자연과 역사를 갈라보는 문명인의 버릇은 삶의 안뜰을 좁게 만듭니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나면, 허공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역사는 흐르고, 삶은 계속되고, 길은 또한 길로 이어집니다.
거대한 지하 도시 카파도키아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입니다. 이제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지하 도시 카파도키아를 등지고 태양을 좇아 길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삶은 유랑과 회귀의 반복입니다. 길을 떠나기 위해 있는 것이고 또 돌아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떠날 때 등 뒤에 나를 남기지 말 것이며, 돌아올 때 먼 데 내려놓은 나를 챙겨올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신기루인가 했습니다. 멀리서 볼 때 그것은 흰빛으로 보이기도 하고 연한 보랏빛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터키의 중부 내륙 깊은 곳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소금으로 된 호수였습니다. 이 거대한 소금호수는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부 내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소금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소금은 단지 짠맛이 아닙니다. 햇빛과 바람이 익혀 만들어 내는 이 오묘한 결정체엔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다 들어 있습니다. 소금의 기원은 생명의 기원에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내륙 한가운데 이런 소금호수가 만들어졌을까요. 오래전에 이곳은 바다였을 것입니다. 지구는 현재도 역동적으로 움직입니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며 유기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이 지구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소금호수는 지구의 역동성이 빚어내는 신비함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드디어 도자기와 양탄자의 전통 마을, 아바노스에 도착했습니다. 아바노스의 도자기는 이미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감각의 도자기들을 이곳에서 개발하고 또 생산합니다. 멀게는 히타이트 양식의 도자기들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그들은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문화에서의 세계화란 융합입니다. 옛것을 지키면서 새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도자기 공방 젊은 주인이, 우리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하고 항아리 케밥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항아리 케밥은 아바노스 일대에서 많이 먹는 이 지역의 전통 음식입니다. 요리의 매력은 바로 황토 항아리에 있습니다. 비밀스러운 항아리 속에서 터키의 흙과 햇빛이 익힌 재료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또 거칠까요. 항아리를 묻은 구덩이 위에 불을 땔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온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토가 서서히 덥혀지고, 마치 햇빛이 탄소동화작용을 하듯이, 그 황토가 내뿜는 열로 음식들이 속속들이 익어 가는 방식입니다.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항아리 케밥을 완성하려면 최소한 네 시간 정도 불을 때 주어야 합니다. 과정에 "빨리빨리"는 없습니다. 기다림은 최상의 사랑입니다. 항아리 속에서 신이 준 음식 재료들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면서, 사람들은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살아온 시간들오 뒤돌아봅니다. 사랑의 길고 감미로운 밀어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그렇습니다. 항아리 케밥이 익어 가는 네 시간은 우주적인 합일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터키에 와서 대제국 로마의 흥망성쇠를 만납니다.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던 로마가 지나가고 칭기즈 칸이 휩쓸고 가고 오스만 터키가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간 곳, 옛날에도 이 작은 들꽃들은 피어 있었을 테지요. 그 어떤 제국의 꿈도 결국 작은 들꽃 하나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만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된 원형극장은 기원전 2세기 때 건설됐습니다. 수천 년을 견뎌 온 돌 하나하나에 세월의 무상함이 서려 있습니다. 날이 저물면 이 원형극장도 어둠 속에 묻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 로마인들의 꿈이 다 소멸한 건 아닙니다. 사람은 불멸의 꿈을 다 저버리지 않습니다. 영원한 제국, 로마 제국의 꿈도 아마 그런 것이었겠지요. 그들은 불멸을 꿈꾸었습니다. 이곳엔 그들이 가졌던 꿈의 잔해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의 잔해를 보는 일은 처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는 쓰러진 이 원형극장의 돌 틈에서 무심히 자란 들꽃을 보며 로마인들이 품었던 이상과 예술의 정령을 생각합니다. 괴퇴는 역사에서 배울 걸 찾지 못하는 자는 암흑 속에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터키 남단, 아시아 대륙의 끝에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을 바라봅니다. 아시아와 유럽은 먼 대륙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패권을 다투었던 역사적 경험, 그에 따른 정서와 문화의 편차 때문에 멀게 느낄 뿐이지요. 21세기는 대륙 간, 나라 간 또 인종 간의 단층과 문화적 편차를 극복해 가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이제 문화가 주인이고 세계화의 키워드입니다.
종교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 수많은 사람을 한마음으로 묶어 내는 어떤 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라가 저의 신은 아니지만 저는 이들과 일체감을 느껴 보고 싶었습니다.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삶의 유한성을 넘어설 수 없으므로, 인간은 누구나 신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영원한 삶의 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터키에서 경이로운 자연을 보았습니다. 또한 유구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새로운 문화로 거듭나는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갈등,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신세기의 꿈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우리의 자연과 역사, 사회적 변화들이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고 느꼈습니다. 터키는 무엇보다 사랑과 불멸을 향한 인류 보편의 꿈을 제게 강렬하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꿈이 쇠락한다면 인류의 미래에서 희망은 적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휩쓸고 있다 해도 더 높은 이상과 보다 원만한 삶을 꿈꾸는 마음속의 갈망은 소진되지 않는 게 사람이며 존재의 빛입니다. 심만 송의 시인이자 티베트의 성인인 미라르파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네 몸이 신들로 가득한 너의 사원이니." 터키는 먼 곳이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우리의 얼굴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깊이 보면, 나와 다른 사물, 다른 역사,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참된 즐거움은 바로 그것, 먼 것들과 필연적으로 가까워지는 경이로움의 발견입니다. 터키에서 나는 매 순간 경이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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