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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by 자한형 202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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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헨리

 

워싱턴 스퀘어(뉴욕 시 맨해튼 5번 가에 있는 공원)의 서쪽에 있는 조그만 구역에 가면, 길이 이리저리 마구 얽혀서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좁은 도로들로 갈라져 있다. 이 '플레이스'들은 기묘한 각과 곡선으로 구부러져 있어, 어떤 길은 그 길 자체가 한두 번씩 교차하기도 한다. 일찍이 한 화가가 이 거리에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물감과 종이와 캔버스의 계산서를 든 수금원이 거리에 들어선다 할지라도 길이 복잡해서 돈 한푼 받지 못하고 어느새 온 길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색다르고 예스러운 그리니치 빌리지에 곧 애호가들이 몰려들어서, 북향의 창문과 18세기 풍의 박공과 네덜란드 풍의 다락방과 싸구려 방을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은 6번 가에서 백랍컵과 탁상용 풍로 한두 개를 들고 들어와서, 여기에 '예술인의 마을'이 하나 생긴 것이다.

땅딸막한 3층 벽돌집 꼭대기에 수우와 존시는 화실을 갖고 있었다. 존시는 조안나의 애칭이다. 수우는 메인 주 출신이고 존시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두 사람은 8번 가에 있는 '델모니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만나, 예술감각에 있어서나 꽃상추 샐러드나 작업복에 대한 취미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공동으로 화실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5월의 일이었다.

11월이 되자 의사들이 '폐렴'이라 부르는 차갑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 이 마을을 쏘다니며, 그 얼음 같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지고 다녔다. 저편 동쪽에서 이 파괴자가 대담하게 으스대고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리고도 이 좁고 이끼 낀 '플레이스'의 미로까지 어슬렁거리며 거닐고 있었다.

폐렴 씨는 기사도적인 노신사라고 부를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미풍 속에서만 살아 핏기를 잃은 작고 가냘픈 어린 처녀는, 이 피묻은 주먹에 숨결이 거친 이 늙은 협잡꾼의 정당한 사냥감이 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존시를 덮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페인트를 칠한 철제 침대에 누운 채 거의 꼼짝도 못하고, 조그만 네덜란드 풍 창 너머로 옆에 있는 벽돌집의 텅 빈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짙은 회색 눈썹의 의사가 수우를 복도로 불러냈다.

"저 처녀가 살아날 가망은…… 글쎄, 열에 하나야.

하고 그는 체온계를 뿌려 수은주를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가망성이라는 것도 저 처녀가 살고자 하는 소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 말씀이야. 지금처럼 스스로 장의사 쪽으로 달려갈 기분이 있어서야, 처방이고 뭐고 다 바보 같은 짓이 되고 말지. 저 처녀는 스스로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결정해버리고 말았더군. 무언가 마음속에 두고 있는 일이라도 있나?"

"쟤는…… 언젠가는 나폴리 만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어요." 하고 수우가 말했다.

"그림을 그려? 바보같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 없을까? 이를테면 남자친구 같은 것 말이야."

"남자요?" 하고 수우가 유대식 하프와도 같은 소리를 냈다.

"남자가 그럴만한 값어치가…… 없어요, 선생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응, 그렇다면 그게 좋지 않은 점이군." 하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내 힘이 미치는 한 의술의 힘을 다해보겠어. 하지만 환자가 자기 장례행렬의 마차 수를 세기 시작하게 된다면, 치료의 효과가 반으로 줄어들 거요. 아가씨를 잘 구슬려서 이번 겨울 외투의 소매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리만큼 의욕을 갖게 한다면, 살아날 가망성이 열에 하나가 아니라 다섯에 하나라고 약속하지."

의사가 돌아간 뒤 수우는 작업실로 들어가서 종이 냅킨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울었다. 그리고는 화판을 들고 기분이 좋은 듯 휘파람을 불면서 힘차게 존시의 병실로 들어갔다.

존시는 이불 밑에 잔잔한 파도 하나 일으키지 않고, 얼굴을 창문으로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수우는 그녀가 잠든 줄 알고 휘파람을 그쳤다.

 

수우는 화판을 세워 어떤 잡지 소설의 삽화로 쓸 펜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젊은 화가는, 젊은 문인들의 문학에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쓰는 잡지소설에 삽화를 그려줌으로써 화가로서의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수우가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다호 카우보이의 말 품평회에 입고 나갈 멋진 승마바지와 외안경을 그리는 순간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나지막한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얼른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존시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창 밖을 바라보며 수를 세고 있었다.

"열둘." 하고 그녀는 세고 조금 있다가 "열 하나." 이어 "열, 아홉."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여덟, 일곱." 하고 세었다.

수우는 궁금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뭐가 있어서 세지?'

그곳엔 그저 살풍경하고 쓸쓸한 안마당과 저편에 벽돌집의 텅 빈 벽면이 보일 뿐이었다. 뿌리가 뒤틀리고 썩은 한 그루의 해묵은 담쟁이덩굴이 벽 중간쯤까지 기어올라가 있었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떨어뜨린 탓인지 잎이 몇 남지 않은 발가숭이 가지가 허물어져 가는 벽돌에 매달려 있었다.

"뭐니, 얘?" 수우가 물었다.

"여섯." 하고 존시는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제는 빨리 떨어지기 시작했어. 사흘 전에는 거의 100개쯤이었는데. 세고 있으면 머리가 다 아팠는데, 하지만 이젠 쉬워. 아, 또 하나 떨어지네. 이제 남은 것은 다섯 잎뿐이야."

"뭐가 다섯 잎이지? 얘기해 보렴."

"잎사귀야, 담쟁이덩굴의 잎.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질 때는 나도 가는 거야. 나는 사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지 않데?"

"그런 바보 같은 소린 들은 적도 없다, 얘." 하고 수우는 몹시 경멸하는 듯이 투덜거렸다.

"마른 담쟁이 잎사귀와 네가 낫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니? 그리고 넌 저 덩굴을 아주 좋아했잖아, 이 말괄량이야. 바보 같은 소리 작작해라. 선생님은 말이야, 오늘 아침에 네가 곧 완쾌할 가망성은…… 선생님 말씀대로 정확히 말한다면…… 십중팔구라고 말씀하셨어! 그건 뉴욕 시내에서 전차를 타거나 신축 빌딩 밑을 지나갈 때의 위험률과 같은 거야. 자, 이제 수프 좀 마셔 봐. 그래야 내가 안심하고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지. 잡지사 편집자에게 팔아야 앓아 누운 우리 아기에겐 포도주를, 먹성 좋은 나한테는 돼지고기를 사 올 수가 있잖아?"

"포도주는 이제 살 필요가 없어." 하고 존시는 계속 창 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또 한 잎 떨어지네! 아니 수프도 먹고 싶지 않아. 이젠 네 잎뿐이야. 어둡기 전에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그러면 나도 가는 거야."

"존시." 수우는 그녀 위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내가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는 눈을 감고 창 밖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지 않겠니? 난 이 그림을 내일까지 넘겨줘야 한단 말이야. 광선이 필요해서 그래, 그렇지 않으면 커튼을 내리고 싶다만."

"다른 방에서 그릴 수는 없어?" 하고 존시는 차갑게 물었다.

"난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하고 수우는 말했다. "게다가 네가 줄곧 저 쓸데없는 담쟁이 잎을 바라보고 있는 게 싫어서 그런다."

"다 그리고 나면 금방 알려줘야 해." 하고 존시는 눈을 감고 쓰러진 조각처럼 창백하게 조용히 누워서 말했다.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으니까. 난 이제 기다리기에 지쳤어. 생각하는 것도 지쳤고,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떠나, 꼭 저 가엾고 고달픈 나뭇잎처럼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싶어."

"좀 자도록 해봐." 하고 수우는 말했다. "나는 베어먼 할아버지를 불러다가, 은둔한 늙은 광부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해야겠어. 곧 돌아올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움직이지 마."

베어먼 노인은 존시와 수우네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화가였다. 나이는 60이 넘었고, 도깨비 같은 체구에 반수신(숫사자 갈기) 같은 머리를 하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모세의 수염 같은 굽실거리는 턱수염을 하고 있었다. 베어먼은 예술의 낙오자였다. 40년 동안 화필을 쥐어 왔지만, 예술의 여신의 치맛자락을 잡으리만큼 가까이 가보지는 못했다. 언제나 걸작을 그린다고 하면서도 아직 시작해본 적이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상업용이나 광고용의 싸구려 그림을 이따금 그린 것뿐이다. 그는 전문적인 모델을 채용할 능력이 없는 젊은 화가들의 모델이 되어주고는 조금씩 돈을 얻어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면서도 술을 많이 마시면 여전히 머지않아 걸작을 그린다는 말을 하곤 했다. 성품이 거칠고 왜소한 그는 누구든 나약함을 보이면 사정없이 비웃고, 특히 위층 화실에 있는 두 젊은 예술가를 지키는 감시견으로 스스로 자처하고 있었다.

수우가 보니 베어먼은 아래층의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노간주나무 열매(열매에서 짠 기름은 술 종류인 진의 향료로 씀)의 냄새를 물씬하게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가 화가에 얹혀 있었는데, 장차 걸작으로 남겨질 그림의 첫 획을 25년 동안이나 기다려 온 것이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시의 망상을 얘기하고, 존시는 정말 나뭇잎처럼 가볍고 연약해서, 이 세상에 대한 가냘픈 집착이 더 약해지면 둥둥 떠서 날아가 버리지 않을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베어먼 노인은 핏발선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어이없는 망상에 큰 소리로 모멸과 조소를 퍼부었다.

"뭐라고!" 그는 소리쳤다. "아니 그래, 다 썩은 덩굴에서 잎이 떨어진다고 저도 죽는다는 그런 얼빠진 소릴 하는 놈이 이 세상에 어딨어? 나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싫어, 나는 아가씨의 그 쓸데없는 은둔자의 숙맥 같은 모델이 되기 싫다고. 어째서 아가씨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존시가 하게 내버려두는 거지? 아아, 가엾은 존시……."

"걔는 몹시 앓아서 쇠약해졌어요." 하고 수우는 말했다.

"그리고 열 때문에 마음이 병적으로 돼서, 별의별 이상한 망상으로 가득 찬걸요. 좋아요, 베어먼 할아버지, 제 모델이 되기 싫으시다면 필요없어요. 하지만 전 할아버질 정말로 너무나 변덕스러운 할아버지라고 생각할 테예요."

"여자란 금방 저래서 탈이야!" 하고 베어먼은 소리쳤다. "누가 모델이 아 돼 준다고 그랬나? 가라고, 나는 언제라도 모델이 되어주겠다고 했었지. 허, 참! 여긴 존시 아가씨 같은 착한 처녀가 병들어 누워 있을 자리가 못 된다고. 머지않아 나는 걸작을 그릴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 다른 데로 옮기자, 정말이야! 그렇게 하자."

두 사람이 위층에 올라가 보니 존시는 잠들어 있었다. 수우는 커튼을 창턱까지 내리고, 베어먼에게 옆방으로 가자고 몸짓을 했다.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은 겁먹은 듯이 창문으로 담쟁이덩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서로 말없이 쳐다보았다. 차가운 진눈깨비가 쉴새없이 내리고 있었다. 베어먼은 낡은 푸른 웃옷을 입고는, 바위 대신 엎어놓은 큰 솥 위에 걸터앉아 세상을 등진 광부의 자세가 되었다.

이튿날 아침 수우가 한 시간쯤 자고 눈을 떠보니, 존시는 흐릿한 눈을 크게 뜨고 내려진 녹색 커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어줘, 보고 싶으니까." 하고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마지못해 수우는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담쟁이의 마지막 잎이였다. 그 잎자루 가까이는 아직도 진한 초록빛이었지만, 톱니 모양의 잎 가장자리는 풍상 때문에 누렇게 퇴색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땅 위에서 20피트쯤 되는 가지에 당당히 매달려 있었다.

"저게 마지막 잎새야." 하고 존시는 말했다. "밤중에 틀림없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바람소리를 들었거든. 오늘은 떨어질 거야. 그러면 동시에 나도 떨어지는 거야."

"뭐라고!" 하면서 수우는 지친 얼굴을 존시에게로 돌리면서 말했다. "네 자신을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 내 생각이나 좀 해다오. 난 어떡하면 좋으냐?"

그러나 존시는 대답하진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것은, 신비로운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영혼이다. 그녀를 연결하고 있는 우정과 이 땅의 기반이 하나하나 풀어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망상이 점점 억세게 그녀를 휘어잡는 것 같았다.

그날도 다 지나가고 해거름이 되었는데도, 그 외로운 담쟁이덩굴의 잎 하나는 벽 위의 줄기에 그냥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밤이 되더니 북풍이 다시 사납게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한편 비는 줄기차게 창문 쪽으로 들이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직한 네덜란드풍 처마에서 뚜두두둑 흘러 떨어졌다.

이윽고 날이 새자, 존시는 사정없이 커튼을 올리라고 졸랐다. 담쟁이덩굴의 잎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존시는 드러누워서 가스 스토브 위에서 닭고기 수프를 젓고 있는 수우에게 말을 건넸다.

"난 나쁜 계집애였어, 수우." 하고 존시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나쁜 계집애였는가 알려고, 저 마지막 잎새를 저 자리에 남겨둔 거야. 죽고 싶어하다니 죄받을 일이지. 자, 그 수프 좀 줘, 일어나 앉아서 네가 요리하는 걸 보고 있을 테야."

한 시간 뒤 그녀는 말했다.

"수우, 난 언젠가 나폴리 만을 그리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왔다. 의사가 돌아갈 때 수우는 슬그머니 뒤따라 나왔다.

"희망은 반반이다." 하고 의사는 수우의 떨고 있는 여윈 손을 잡고 말했다. "간호만 잘해주면 당신이 이겨요. 그럼 이제 아래층에 있는 환자를 보러 가야지. 베어먼인가 하는 사람인데 화가 같더군. 역시 폐렴이오. 나이가 많고 몸도 약한 사람인데 갑자기 당했어. 살 가망은 전혀 없지만, 오늘 입원시키면 좀 편해지겠지."

이튿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이제 위험은 벗어났소. 당신의 승리야. 앞으로는 영양과 뒷바라지 뿐이오."

그리고 그날 오후. 수우가 침대로 다가가 보니, 존시는 누운 채 짙은 파란색 털실로 도무지 쓸모도 없어 보이는 숄을 만족스러운 듯이 짜고 있었다. 수우는 한쪽 팔로 베개째 그녀를 껴안았다.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귀여운 아가씨." 하고 수우는 말했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오늘 병원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단다. 겨우 이틀을 앓으셨을 뿐이야. 첫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에 있는 그분 방에 가봤더니 할아버지가 몹시 괴로워하고 계시더래. 신발과 옷은 흠뻑 젖어서 얼음처럼 차갑고, 날씨가 그렇게 험한 날 밤에 대체 어디를 갔다오셨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각등과 언제나 놓아두던 곳에서 꺼내온 사다리, 흩어진 화필과 초록과 노랑 물감을 섞은 팔레트를 발견한거야. 그러구 얘, 창 밖으로 저 벾에 있는 마지막 담쟁이덩굴의 잎 좀 쳐다봐. 바람이 부는데도 조금도 흔들거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게 이상하지 않니? 아아, 얘, 저건 베어먼 할아버지의 걸작이란다.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던 날 밤, 그분이 저 자리에 그려놓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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