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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상파울루에서 온 박사장 귀국 환영회

by 자한형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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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에서 온 박사장 귀국 환영회

몇 개월 전이었다. 아마도 지난여름이었다. 8월 초순 경으로 무척이나 무더웠던 날이었다. 불금이었다. 상파울루에서 박사장이 월초에 귀국을 하여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모임에의 참석대상자는 순수하게 고교동창 대학동기 서클모임인 라멜 14기 회원들이었다. 78년도 새내기 시절의 인연이니 4545년 성상을 함께 살아온 셈이다. J , L 모, G 모,  C 모, K 모 다른 KK 모 등이었다. M회장만 불참이고 전원 참석이었다. 오후 5시쯤에 집에서 채비를 해서 나섰다. 이틀 전에 이미 장소를 예약해 두었고 사전 답사까지 해 놓은 형국이었다. 선배들도 있었지만 모두 다음 기회로 미뤘다. 또한 다른 동창생들도 있었지만 한정해서 만나게 된 모임이었다. 양재역 근처의 C횟집이었다.

 

이곳저곳 적정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찾아낸 곳이 C횟집이었다. 김사장은 영국으로 귀국하여 9월 중순에 돌아올 예정이어서 만날 기회가 될 수 없었다. P선배 등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시국은 한참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고 있었는데 대회 운영 미숙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큰 망신살이 뻗친 상황이어서 수습에 온 나라가 혼신의 수습책을 쏟아내고 있던 때여서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박사장은 상파울루를 출발해서 중동 두바이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을 했고 부인과 함께 돌아왔으며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33년 만에 귀국한 것이었다. 박사장의 고명딸은 뉴욕 소재 굴지의 미국 신용평가회사에서 9년째 근무 중이라고 했다. 이제 혼기가 꽉 찬 듯한데 어떨지 모를 일이다.

 

하필 그날은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초복 중복이 지나고 말복으로 넘어가는 더위가 절정인 때였다. 엊그제 귀국한 박사장은 원주에 회사를 다니러 갔다가 약속장소로 오는 상황이었다.

박사장은 원래 LG에 근무를 했었는데 20여 년 전에 브라질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가 그곳에 아예 정착을 하게 되어 브라질에서의 타국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거의 매년 아니면 2년에 한 번씩은 귀국을 했었는데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4년 만에 귀국을 하는 셈이었다. 귀국 환영회의 약속시간은 오후 630분이었다. 오후 610분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박사장과 G사장, C교수가 먼저 와 있었다. 주문은  4인용 상차림 단위로 23만 원 하는 것을 메뉴로 시켰다. 곧바로 회합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에 K부사장이 오면서 거의 올사람은 다 왔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추억담들을 늘어놓았다. 회가 먼저 나왔고 해삼, 멍개, 산 낙지에 이어 대하와 세꼬시 회가 나왔다. G사장은 어제의 과음으로 진도가 느렸다. 소맥으로 말은 폭탄주로 시작을 해서 그것을 계속 마셨다.

 

참석자 중에서 손자를 가진 이는 C교수와 나뿐이었다.. 모두들 결혼적령기의 자녀들의 혼사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박사장은 브라질에서 당한 스미싱 사기로 인해 손실을 입기도 했다는 경험담을 얘기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매운탕에 식사를 했고 마무리를 지을 때쯤에 P박사가 늦게서야 합류했다. 1차 계산은 용인 팀인 G사장과 C교수가 공동으로 했다. 2차는 인근에 있는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맥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눴다. 늦게 참석한 P박사가 계산을 했다. K교수는 정년이 남았음에도 2년 조기 명퇴를 해서 생활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어번 근무했던 곳에 강의를 계속 나가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J군과 L군은 현대자동차에서 정년을 하고 이제는 은퇴 후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모두들 60대 중반에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일부 현역을 제외하고는 장년의 은퇴 후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C교수는 HR 사의 임원을 역임한 후 퇴임했고 퇴임 후 K 교수가 봉직했던 대학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라멜의 회원들은 금년 초 봄에 한 번 강남의 식당에서 회합을 한차례 가진 적이 있었다. 전체 6명 정도의 참석이 있었다. 자주 모여서 모임을 갖기로 했었는데 모두 바쁘다 보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박사장의 귀국 환영회는 이렇게 1차가 마무리되었다.. 박사장은 모두에게 포로 폴리스를 한 병씩 선사하기도 했다. 은퇴 후의 연금 등은 브라질 정부로부터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화 2000불 수준으로 예상했다. 20년 이상 불입한 우리식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은퇴 후 노후 자금인 셈이었다. 박사장의 얘기로는 연금은 귀국하더라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부산에서의 박사장 행보는 20 여일쯤 여정이었다. 그리고 J군과 K상무와의 간단한 회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K상무는 양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J군은 여전히 조금씩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두 번째 자리는 8월 하순 일요일에 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교대역 근처의 S횟집이었다. 휴일이어서 휴무 안내판이 벽에 붙어 있기도 했다. 나는 먼저 자리를 확보하고 인근의 와인 판매점에 가서 와인을 사 오려고 했는데 와인 판매점도 휴무여서 인근 슈퍼에 가서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사 왔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박사장이 M회장이랑 같이 왔다. 곧이어 G사장도 왔다. M회장이 화이트와인 몬테스 알파를 세 병 가지고 왔다. 집에 갖고 있는 술이 없어 매장에 가서 사가지고 왔다는 얘기에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본래 P선배, K선배에게도 연락을 했는데 선약으로 모임에의 참석은 어려웠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술자리의 주 대화는 브라질 얘기, 건축, 싱가포르 등 여러 가지 화제에 다채로웠다. 와인바에 가려던 것은 무산되었고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로비에 있는 호프집으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삼성역 근처에 있는 특급호텔이었다. 택시로 그곳까지 이동해서 좌정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였고 호화로움 그 자체로 느껴졌고 풍미가 달랐고 차원이 다른 손님들인 듯 보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작별을 고하고 귀가했다. 무척이나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제대로 얘기다운 얘기도 나누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하기도 했던 박사장의 용태에 관해서도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지 못했다. M회장은 고위급 고객들과의 남미 투어를 주기적으로 한다고 하니 와인 주산지 칠레 등 방문으로의 남미 여행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듯했다.

박사장의 인천 공항행은 처남이 수고를 하는 듯했다. 상파울루에서 한국까지 단숨에 달려온 박사장에게 제대로 환영도 못해준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음에는 보다 세심하게 살펴서 잘 환영해 주어야 하리라. 박사장 건강하고 행복한 해외생활 잘하고 항상 승승장구하고 만사형통하길 기원할게. 안녕.